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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Oct 30. 2019

고마워! 나의 질병들아..

안식년 맞아? 그러다 과로사해 #6

                                                         

일단 멈춤  

   

인생을 살아오면서 하프타임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가끔 글로 접한다. 그런데 정말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러고 보면 나는 실행력 하나는 금메달감이다. 올림픽 일지 전국체전 일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하프타임의 중요성은 구기 종목  특히, 축구를 해본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단순한 축구경기의 규칙이어서가 아니다. 동네에서 조기축구를 할 때는 하프 타임은 그저 중간에 쉬는 시간 10분이다. 전반이 끝나면 물도 마시고 잠깐 쉬었다가 다시 진영을 바꾸어 후반전 경기에 임한다. 따라서 하프타임이 주는 의미는 단순한 휴식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것도 경기의 규칙이니까 지키는 것이다. 가끔은 하프타임을 무시하고 계속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회에 출전할 때는 하프타임의 의미가 크게 달라진다. 이때는 전후반 90분을 함께 생각하며 전반과 후반의 전략을 달리해야 한다. 선수기용도 마찬가지다. 초반부터 밀린다고 전반전에 선수 교체 카드를 다 사용해서는 안 된다. 승부는 항상 후반전에서 갈리기 때문이다. 명장이 아니더라도 하프타임을 기점으로 전반과 후반의 전략을 잘 구사해야 경기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100세 시대라는 말이 더 이상 새롭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미 100세를 넘기는 노인들이 실제로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골에 가보면 60대는 노인 측에도 끼워주지 않는다고 한다. 80대는 되어야 그래도 노인 행세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문제는 나이가 아니다. 100세 시대의 도래에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고 그것들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90세까지 산다고 하면 하프타임은 45세가 된다. 100세까지 산다고 하면 50세가 하프타임이다.      


하지만 서글프게도 우리의 현실은 그리 녹녹지만은 않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바쁜 세상이다. 하프타임은 고사하고 전반전도 힘들어서 끙끙댄다. 후반전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교체 카드도 전반전에 다 소진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도 형편이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악조건에서 하프타임이 왔다고 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그것도 안식년이랍시고 팔자 좋게 1년씩이나 말이다.      


문제는 후반전이다. 전반전에 사력을 다했기 때문에 이미 체력도 소진되고 여기저기 부상도 심각하다. 후반전은 두려움과 공포의 시간이 되고 만다. 아무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의 파상공세가 시작된다. 각종 질병과 경제문제들까지 산 너머 산이다. 죽지 못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버티는지 조차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래도 형편이 조금 낳은 경우에는 하프타임에 일단 멈춤을 할 수 있다. 전반전에 잘못된 전략과 전술을 뒤돌아보고 후반전에는 새로운 전략을 구사한다. 그 하프타임이 바로 1년의 안식년이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하프타임을 활용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는 어쩌면 운이 좋은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무작정 쉬고 싶어서 안식년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은 아니었다. 각종 질병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질병들은 하나씩 순차적으로 밀려오지 않는다. 중요한 부위 하나가 무너지면서 동시다발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질병과의 전쟁은 생존을 걸고 하는 사투일 수도 있다. 자동차가 연식이 좀 되면 여기저기서 소모품을 교체해 달라고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그 소모품만 교체해주면 자동차는 계속 사용할 수가 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그 소모품들을 교체하기가 쉽지 않다. 이상이 생기면 그 소모품을 수리해서 사용해야 한다. 수리가 안 되면 폐차의 수순을 밟아야 한다. 그 폐차과정이 바로 죽음이라는 것이다. 이 과정을 늦추거나 피하기 위해서는 하프타임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작전 변경     


인생의 하프타임이 주어져서 후반전을 다시 계획할 수 있다면 운이 좋은 것이다. 1년간의 안식년은 많은 것들을 느끼고 깨닫고 배울 수 있었다. 전반전에 잘못된 것들을 수정하고 후반전에는 작전을 변경해서 새로운 경기를 시작할 수 있다. 전반 45분은 지나간 과거다. 이 과거를 토대로 나머지 후반 45분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는 하프타임에서 결정된다.      


문제는, 후반 45분이 규칙대로 주어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언제 어느 시점에 몰수 패를 당할지 알 수 없다. 그것이 우리 인생이다. 따라서 후반전부터는 1분 1초가 중요해진다. 언제 교체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부품이 교체된다는 의미는 곧 죽음이다. 제임스처럼 어느 날 갑자기 말 한마디 못하고 그렇게 떠나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계획하고 설계해서 살지는 않는다. 주어진 삶이 모두 공정하거나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계층과 계급이라는 굴레가 주어진다.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태어나는 것은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일이다. 반면, 죽음에는 어느 정도 선택이나 완급조절이 가능하다. 거기에는 사전 준비나 자본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죽음마저도 평등하지 못한 세상이다. 더 큰 문제는 남 걱정할 때가 아니라는 점이다.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의 건강도 지키지 못한다는 현실이 더 아프다.      


나의 경우에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선택을 하였다. 물론 아내의 배려도 있었고 나의 의지도 작용하였다. 그 의지는 물론 질병으로부터 파생된 것에 불과하다. 만약 질병들이 이렇게 일찍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안식년을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나의 질병들은 허리디스크와 그에 따른 우울증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다. 내 생각에는 허리디스크의 통증이 심해지면서 우울증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 통증은 잠깐 왔다가는 것이 아니었다. 24시간 지속되었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도 통증은 멈추는 법이 없다. 어쩌면 평생 같이 가야 할 친구가 이미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서로 이웃 맺기를 강요하는 통증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우리는 이웃을 넘어 친구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우울증이 먼저 시작되었을 확률도 높다. 허리가 아프기 훨씬 이전부터 우울을 여러 차례 느꼈기 때문이다. 이 우울함의 강도는 파도처럼 출렁였다. 그 이유를 알 길이 없었지만 우울감이 주는 고통 또한 만만치 않았다. 디스크가 허리와 다리 통증을 유발했다면 우울증은 정신 통증을 유발했다.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하면 생각은 폭포처럼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내렸다.     


허리 통증은 여전하지만 우울감은 글쓰기를 하면서 많이 좋아졌다. 이제는 더 이상 상담치료를 받지 않아도 될 만큼 호전되었다. 문제는 밤에 잠을 자기 위해서는 반드시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통증이 심해지면 우울지수도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통증과 우울의 관계가 없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다. 그래도 책을 매주 한 권씩 쓰면서 우울감은 거의 치료가 되었다는 점은 놀라운 사실이다. 책 쓰기에는 분명 치유의 효과가 숨어있다. 하루 만에 책 쓰기로 매주 한 권씩 써내는 프로젝트에 그토록 매달리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치유효과 때문일 것이다.    



                                                                                       

항로 수정     


하프타임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바로 인생의 항로 수정이었다. 항로가 잘못되어서라기보다는 나에게 좀 더 적합한 항로를 발견한 것이다. 안식년이 준 커다란 선물이기도 하다. 스스로에게 1년의 안식년을 허락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도 영국에서 생활하고 있었을 것이다. 여전히 아내하고 티격태격하며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을 것이다. 사랑이 떠난 커플이 같은 공간에서 산다는 것처럼 비극적인 일도 많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항로를 수정해서 내가 타고 있던 배는 더 이상 영국이 아니라 한국으로 변하였다. 그 변화는 비행기 한번 타는 것으로 시작되는 단순한 일이었다. 결단을 내리는 과정이 힘들었지 이를 실행으로 옮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수정된 항로는 모든 삶의 방식과 가치마저도 바꾸어주었다. 마치 도미노 효과처럼 말이다. 그래서 혁명이나 개혁도 아주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제2의 인생을 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잠깐 쉬었다가 다시 영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프타임 기간 동안에 나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나의 것으로 만드는 일은 기존의 틀을 깨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들이었다. 나는 기꺼이 그 고정관념을 타파하였고 지금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삶이 계획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변화무쌍한 삶이 가져다주는 선물을 받을지 거부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나는 어떠한 선물도 일단 받아보고 취할지 버릴지 고민한다. 마음의 문부터 닫아버리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경계하는 점이 바로 우물 안의 고인물이다. 우물물의 특징은 계속 사용하지 않으면 새로운 물로 채워질 수 없다는 점이다. 그 결과는 우물물이 썩어서 사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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