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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Oct 31. 2019

살아줘서 고맙다. 자주 찾아오마!

책을 쓴다니 지나던 소가 웃었다 #10 전문가들의 함정  

3. 전문가들의 함정     


”매주 한 권 책 쓴다.” 강의를 하면서 항상 예를 드는 친구가 있다. 수원에 사는 친구다. 그는 대학에서 글쓰기 전공자이고 한때는 제자들에게 글쓰기와 문학에 대해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의 글들은 필력과 내공이 대단하다. 그의 지식 또한 내가 지금까지 접한 그 누구보다 박식하고 깊이 또한 남달랐다. 동서양 철학이나 문학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      


지난해 가을 한국에 오자마자 나는 그 친구를 자주 찾아갔다. 이유는 병문안이었다. 그는 시골에서 비닐하우스 공사 도중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대부분의 뼈가 부러지고 장기들은 기능을 상실하였다. 영국에서 전해 들은 그의 사고 소식은 절망적이었다. 살아난다 해도 중증 복합 장애인으로 평생 누워서만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슬픔마저도 상실한 채 막연하기만 하였다. 결혼도 하지 않은 그였다. 항상 똑똑하고 공부도 잘했던 친구다. 그런 친구가 기적처럼 살아난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그 드라마의 주인공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아주대 중증센터의 이국종 교수였다. 이국종 교수가 헬기를 타고 전주의 모 병원에서 아주대로 이송하였다고 한다. 아주대 중환자실에서도 모두 고개를 저으며 포기 쪽으로 기울었지만 이국종 교수는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환자 자신도 포기한 생명을 그와 아무런 인연조차 없는 이국종 교수가 살려낸 것이다.

한나절 내내 그에게 전해 들은 그의 사고와 치료 그리고 재활 과정에서 생명의 위대함과 이국종 교수가 내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지금은 산에도 올라가고 자전거도  정도로 회복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입원해 있을 때 북한 군 귀순 병사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판문점 JSA에서 남쪽으로 귀순하다 총알 세례를 받은 그 이야기도 이국종 교수와 관련이 있었다. 그는 그 귀순 병사와도 친한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가 아주대 중환자실을 나설 때 병원 관계자들이 일렬로 도열해 그의 퇴원을 축하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주대 병원 최초로 그의 사례를 기념하는 기념패가 제작되어 벽에 걸렸다고 한다. 북한군 병사는 그보다 먼저 또는 나중에 퇴원했는지는 친구에게 미처 물어보지 못하였다. 친구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기 때문이었다. 한나절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커피숍 테이블 위에 있는 친구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한마디 했다. “살아줘서 고맙다. 앞으로 자주 찾아오마! “     


그 뒤로도 분당이나 수원 쪽 방향으로 가면 어김없이 그 친구를 찾았다. 그 친구의 아픔이나 외로움 때문이 아니었다. 나의 아픔과 외로움을 희석시키려는 본능이 그 친구를 자주 찾게 만들고 있었다. 그토록 죽음을 원하던 나는 그 친구 앞에서는 항상 죄인이 되었다. 삶이 그렇게 소중한 것인지 그 친구는 온몸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굳이 이국종 교수가 아니라도 그 친구 이야기는 너무나 드라마틱하였고 나에게 부끄러움을 보따리 채 선물해 주곤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책에 미쳐있던 친구는 병원에서 그리고 퇴원해서도 하루 종일 책 속에 묻혀 지내고 있었다.     


나는 점점 글에 대한 본심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이 정도의 친구가 곁에 있다면 나만의 책을 몇 권쯤 쓰는 일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평생 희망이기도 하였다. 나만의 책을 쓰고 싶었지만 현실은 냉혹하였고 책에 대한 꿈은 희망고문으로 굳어져 갈 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유자차 한잔 놓고 그와 대화를 하면 한나절이 후다닥 가기 일쑤였다. 그는 일방적으로 이야기하고 나는 듣기만 할 뿐이었다. 대화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대화란 어떤 주제에 대해 비슷한 수준의 지식이나 통찰이 수반되어야 가능해진다. 그 친구와 만날 때마다 본의 아니게 글쓰기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이후에도 시간 날 때마다 남양주에서 수원까지 달려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친구를 만나면 만날수록 글쓰기는 요원해져 갔다. 글쓰기는 어렵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 친구는 많은 원고를 묵혀두고 한 권의 책도 출간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설득해도 막무가내였다.”내가 쓴 글은 모두 쓰레기여!” 친구가 늘 상 내뱉는 말이었다. 헤밍웨이가 작가 시절 초기에 몇 년 동안이나 원고를 묵혀두고 했던 말들이었다.      


실제로 작가들은 책 한 권 내려면 몇 달에서 몇 년씩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나마 작가이기에 책을 낼 수 있다. 책을 내지 않으면 밥벌이 전선에 당장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처럼 책을 내기가 어려운 것은 문법이나 문장력 또는 내공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유명 작가라는 국민들의 눈높이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한 권의 책을 낸다는 의미는 독자들뿐만 아니라 경쟁 작가들과 많은 평론가들까지 의식해야 하는 지난하고 어려운 작업이다. 한마디로 스트레스 덩어리인 것이다.     


교수나 다른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논문이나 책을 한 권 내기란 쉽지 않다. 언제든 다른 교수나 전문가들의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묘한 기법을 동원한다. 바로 공저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이다. 주로 박사과정에 있는 제자들과 공저 형태로 출간하는 것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제자의 오류로, 칭찬이나 업적으로 평가되면 자신의 공으로 돌린다. 박쥐 같은 이중적인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바로 전문가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쓴 책을 두고 전문성을 따지거나 문장력을 두고 시비를 걸진 않는다. 오히려 쉽게 술술 잘 읽힌다. 쉬운 언어로 글을 썼기 때문이다. 어려운 전문용어를 사용하고 싶어도 몰라서 사용할 수가 없다. 어떤 지식을 내세우고 싶어도 내세울 지식이 없다. 평소 일상에서 보고 느낀 점을 글로 옮겼을 뿐이다.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들이다. 재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만한 찌질 한 글들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술술 잘 읽힌다. “그래 맞아! 나도 그런데!” 하다 보면 어느새 책 한 권을 읽어낸다.      


전문가들이 아니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글쓰기는 일반인의 영역이 아닌 작가나 전문가들의 영역이었다. SNS가 지금처럼 발전하기 전까지는 말 그대로 전문가들의 세상이었다. 그들의 신작을 기다렸고 그 재미로 독서를 하였다. 일반인들의 책은 서점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일부 서평이나 일반분야의 책들은 그때에도 일반인들의 몫이 있기는 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전격적인 일반인들의 시대가 열렸다. 열린 정도가 아니라 이미 대중화되고 있는 추세다. 그 중추적인 역할을 카카오 브런치가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카카오 브런치 팀에 초보 작가이자 독자로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참고로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는 삼성동 아지트리에서 "나는 매주 한 권 책 쓴다" 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루 만에 책을 쓰고 매월 또는 매주 책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처럼 매주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이 10명 이상 되었다. 앞으로도 그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강의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https://www.onoffmix.com/)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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