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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Nov 07. 2019

글쓰기는 풋풋한 생물이어야..

책을 쓴다니 지나던 소가 웃었다 #15 글은 문법이 아니라 옹알이부터

글은 문법이 아니라 옹알이부터     


브런치 작가가 되는 일은 나에게 고시였다!  솔직하게 브런치고 대상이고 관심조차 없었다. 글을 써서 올릴만한 곳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글을 써서 서랍에만 묵혀 두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던 시절의 많은 홍길동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글을 쓰고 싶은데 발행할 수 없다니! 그것도 서랍에만 넣어두라니! 발행하고 싶으면 작가 신청을 하라니! 그래서 당연히 신청을 했다. 이미 책을 30권 이상 매주 써오며 책 쓰기 강의까지 하고 있던 때였다. 대충 써서 신청을 하긴 하였다.

당연히 합격시켜 줄 줄 알았다. 근데 탈락이었다. 하늘이 노랬다. 이 비밀이 새어나가는 날에는 큰일이라도 날 것만 같았다. 나를 따라 매주 한 권씩 책 쓰기를 하고 있는 동료 작가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그래서 누가 브런치에 글 좀 올려보라고 하면 그딴 거에는 관심 없다면 브런치를 폄하하곤 하였다. 한 달 넘게 혼자서 끙끙거렸다. 그러다 잊어버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앓는 이를 빼거나 치료하지 않는 그 기분은 잊을만하면 통증처럼 밀려왔다. 그래서 다시 도전하였다. 열과 성도 모자라 혼을 담아서 작가 신청을 하였다. 나만 쓸 수 있는 글들을 써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취업 시에도 이처럼 치열하게 자기소개서를 썼던 기억은 없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재수 끝에 그 어렵다는 브런치 고시를 합격하고 하루가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대상을 수상한 작가도 5수를 했다는데 재수면 정말 재수가 좋은 편이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3개월이 흘렀다. 3개월 동안 많은 글을 올렸다. 150개 정도를 올렸으니까 하루에 거의 2편 가까이 올린 셈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우리말 문법을 잘 모른다. 맞춤법도 많이 잊었다. 그 사이 표준어도 바뀐 것이 많았다. 특별히 따로 공부하면서 우리말을 익힌 경험도 없다. 20년을 해외에서 산 결과라고 둘러대기에는 심할 정도다. 심지어 한자로 내 이름도  쓰지 못한다.     
 

지난달 삼성동 연구소 주위에서 있었던 일이다. 20년 만에 인감도장을 새기러 갔다. 당연히 한글 도장을 생각하였다. 한글이 대세가 된 지 오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장집 사장님은 한자를 권하셨다. 위조 방지 차원에서도 한글보다는 한자가 유리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격도 같았다. 한때 한자 폐지론자였던 나는 인감이라는 무게에 눌려 결국 한자 도장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한자 이름을 써 달라고 내민 반으로 접힌 하얀 A4용지로 얼굴을 가리고 싶어졌다. 성은 썼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20년 이상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 이름을 한자로 쓸 수 없는 나 자신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하였다. 변명할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사장님이 먼저 그 위기를 수습하였다.      


사장님은 급히 난감한 상황을 수습하셨다.
 주민등록증에 한자 이름이 한글과 함께 쓰여 있다며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라고 하셨다. 사실, 주민등록증에 한자 이름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당연히 한글 이름만 새겨져 있는 줄 알았다. 지금이 어는 시대인데 한자를 병행해서 사용한단 말인가! 급히 지갑을 뒤졌지만 주민등록증은 없었다. 신분증을 가지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없는 것은 당연하였다. 한글 이름을 써주면 본인이 찾아보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도장집 사장님은 잃어버린 나의 한자 이름을 깨우쳐 주셨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나를 아프게 하였다. 아무리 공교육이 엉망이어도 고등학교는 졸업을 해야 한다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도장을 새기기 시작하였다. 즉, 고졸은 되어야 그나마 한자로 자기 이름이라도 쓸 수 있다는 의미로 들렸다. 졸지에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무식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민망해서 도망치듯이 나와 근처의 선정릉을 한 바퀴 산책하였다.  여러 기의 왕과 왕의 능이 모셔져 있었다. 그분들마저도 무식한 나를 비웃는 듯하였다.   
  

이러한 내가 글을 쓰고 책을 쓰고 있다. 정말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다. 한국 물정도 모르면서 한국사회를 왈가왈부하기도 한다. 일방적으로 아내로부터 이혼당한 주제에 사랑을 논하고 가정문제를 이야기한다. 우울증으로 극단적인 생각을 하던 사람이 세상은 살만하다고 떠벌리고 있다. 집도 절도 없는 주제에 미니멀리즘을 이야기하고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한다. 더욱 가관인 점은 이러한 내가 책 쓰기 강의를 한다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사실이다.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반부터 삼성동 아지트리에서 2시간 동안 ”나는 매주 한 권 책 쓴다. “ 강의를 하고 있다. 그 강의에는 출간 작가들도 많이 참석한다. 종이책 한 권 내본 적 없는 위인이 출간 작가를 상대로 책 쓰기 강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지나던 소가 웃을 노릇이다.
     

한자를 몰라도 우리말을 할 수 있다. 심지어 읽고 쓰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일부 보수 신문은 얼마 전까지도 한자를 병행하여 신문을 발행하였다. 한자를 사용하면 그 뜻을 좀 더 명확히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그 숨은 속내는 유식해 보이려는 것이다. 나처럼 한자로 이름도 쓰지 못하는 사람들은 한마디로 무식한 백성이 되고 계몽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자 세대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한글과 영어만으로도 충분한데 한자까지 쓰기에는 시대가 용납하려 둘지 않는다. 쉬운 한글도 줄이고 또 줄여 쓰는 세상이다. 심지어 임홍택 작가는 90년대생이 온다라는 책으로 세태를 절묘하게 꼬집어내고 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문법을 몰라도 말할 수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더 이상 구어체와 문어체를 엄격하게 나누던 시대도 아니다. 오히려 구어체일수록 끌림이 강하다. 우리가 말하는 것을 녹음해서 그대로 글로 옮기면 그것이 글이다. 글쓰기란 기본적으로 생각을 활자로 옮기는 것이다. 말하기가 생각을 입 밖으로 내보내는 원리와 같다. 굳이 다른 점이라면 구어체와 문어체의 차이다. 구어체는 문어체에 비해 조금 덜 정제된 현미 같은 것이다. 반면 문어체는 상당히 정제된 백미와 같다. 현미와 백미는 선호도의 차이만큼이나 특성도 다르다. 본질은 같은 쌀이라는 것이다.    
  

글쓰기가 말하기라는 본질을 이해하는 순간 한결 글쓰기가 쉬어진다. 초등학생이 쓰는 일기도 훌륭한 글쓰기다. 회사원들이 쓰는 제안서도 마찬가지다.

문자에 자신의 생각이라는 자양분을 주면 글은 자란다. 혼과 생명을 부어 넣으면 넣을수록 그 글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 되는 것이다. 글은 책 속이라는 공간에 갇혀 있지만 언제든 외출해서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생물인 것이다.     

생물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또한 겉치레가 없어야 한다. 아이가 말하는 것처럼 간결해야 한다. 옹알이부터 시작하는 아이에게 자꾸 문법을 가르치려 드는 오류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에게 고급지고 체계적인 우리말을 가르치겠다고 문법을 가르치는 부모는 없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려면 옹알이부터 시작해라.
 문법책을 보면 고급 진 영어를 한다고 하는데 세상에 고급 진 영어는 없다. 격조 높은 영국 여왕이 쓰는 영어도 세계 최고의 권력을 움켜쥔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쓰는 영어도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언어일 뿐이다. 격식이 있기는 하지만 그 언어들을 고급지다고 말하지 않는다. 고급 진 우리말도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표준어인 서울말을 고급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지방의 시골 출신이라는 사실을 내색하기 싫어서 사투리를 자제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것뿐이다. 서울말이 고급 져서가 아니다.  문법부터 가르치는 책 쓰기 교실이나 책자는 오히려 글쓰기를 방해할 뿐이다. 이제는 그 고정관념의 틀을 스스로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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