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등정을 할 때 자기만의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는 특별한 산악인들이 있다. 전문 산악인 중에서도 개척 정신이 아주 강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루트가 늘어난다. 하지만 그 최초라는 이름을 붙이려면 목숨을 걸어야만 한다. 고산 등정에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처럼 위험한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산 등정의 루트들은 그렇게 개척되어 세상에 알려지곤 하였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는 각종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조심조심 한 발을 내딛을 수밖에 없다. 언제 어디에 깊고 깊은 크레바스가 있을지 알 수 없다. 언제 어디서 눈 폭풍이 불어 닥칠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이 정상을 등정했을 때는 그들의 이름이나 나라 이름으로 루트 이름을 정할 수 있다. 한발 자욱 한발 자욱이 역사가 되고 기록이 되는 것이다. 그 역사의 기록들을 정보 삼아 다른 산악인들은 비교적 쉽게 정상을 공략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매주 한 권씩 정기적인 루틴으로 책 쓰기를 하는 심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외로운 고산 등정에서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는 기분으로 매주 월요일이라는 하루를 집요하고 강렬하게 불태우고 있다. 이러한 자부심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즐기지 못하는 일은 어차피 포기만이 기다리고 있다. 가슴이 뛸 정도의 희열을 느끼지 못하는 일을 평생 하는 것은 애당초 기대해서도 안 된다. 사랑의 슬픔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가슴이 평생 뛰지 않는다는 점이다. 잠깐 뛰는 동안에 평생 아옹다옹하며 살 수 있는 근력을 길러야 한다. 하지만 나부터 그 사랑의 달콤함과 안락함에 함몰되고 말았다.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한 교훈들을 바탕으로 책 쓰기에 대한 사랑을 매월 재정립시킨다. 즉 책 쓰기 근육을 단련시키는 것이다. 책 쓰기가 주는 수많은 마법들을 포기해도 되는지 자신에게 묻고 또 묻는다. 연인에 대한 사랑의 맹세나 확인처럼 진부한 일을 끊임없이 한다. 세상에는 온갖 유혹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 유혹들을 이겨내는 근육은 어느 날 길러지거나 생기지 않는다. 나의 경우, 하루 24시간을 온통 글쓰기만 생각한다. 심지어 독서도 편식을 한다. 더 이상 교훈적인 자기 계발 서적들은 읽지 않는다.
글쓰기 자체만으로도 자기 계발은 차고 넘친다. 글도 전문작가의 글보다는 아마추어 작가들의 글을 주로 읽는다. 그들이 생각하는 관점이나 살아온 방식의 다름을 이해하고 싶어서다. 그들의 거친 호흡이 느껴지는 투박한 글에 그들의 삶이 투영되어 있다. 소소한 글감들에서 큰 감동을 받곤 한다. 거창한 주제보다는 그들만의 삶이 녹아서 압축된 글감들에는 진솔함이 묻어있다. 글에서 그 삶의 냄새가 배어 나온다. 그들의 진한 땀내가 느껴진다.
세상의 모든 글 쓰는 사람은 아마추어든지 프로이든지 상관없이 모두 나의 스승이다. 갓 한글을 깨친 80대 시골 할머니의 일기 같은 시나 산문이 주는 감동만큼이나 진솔한 글을 써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매주 월요일이면 한 권의 새로운 책을 낳으려고 별 다방 2층에 똬리를 튼 채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나의 독수리 타법으로도 하루 한 권의 책이 탄생하는 경이로움은 놀라움 그 자체다. 10달 동안 엄마 뱃속에서 세상을 향해 나오는 신생아처럼 말이다. 그렇게 나는 매월 월요일에는 한 권의 신생아를 출산하느라 10시간 이상 꿈쩍도 하지 않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것도 허리디스크 환자가 말이다.
돈부터 바라고 책을 쓰면 포기하는 이유
1년 전에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단 1초의 망설임도 필요 없었다. 바로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상 어디를 들러 보아도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없었다. 스스로 귀를 자른 고독한 화가 고흐도 나보다는 낳아 보였다. 심지어 런던이나 파리 거리에 널려 있는 홈리스들조차도 나보다 훨씬 행복해 보였다. 세상의 모든 걱정과 불안은 나의 것처럼 보였다. 어디를 봐도 통로는 보이지 않았다. 극단적인 생각도 자주 하였지만 그것마저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절망하곤 하였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바꾸어서, 지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또한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를 수치로 보여줄 수 없어 아쉽다. 나는 한국에 집한 채는 고사하고 땅 한 평 없는 사람이다. 지난해 가을 내가 한국에 와서 원룸이라는 낯선 공간에 똬리를 틀면서 처음 느낀 감정은 하나였다. 나는 한국에 안식년이 아닌 유배형을 받고 왔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원룸은 창살만 없었지 햇볕 한 줌 들지 않는 감옥 그 자체였다. 갑자기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으로 전락해 있었다. 안식년은 쥐뿔!!! 그리고 절망하기 시작했다. 그 많은 돈은 어디로 갔을까? 내가 가난한 사람으로 밝혀지기가 무섭게 친구들부터 떨어져 나갔다. 그동안 돈 냄새가 나던 그 친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형편없는 처지의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니? 아무래도 실성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답변 이리라! 돈만 없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몸과 마음은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 그 자체였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 상황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단지 변한 것이 있다면 1룸에서 1.5룸으로 이사 왔다는 사실뿐이다. 그것도 서울에서 더욱 멀어진 곳으로 말이다. 이유는 돈이 없기 때문에 월세라도 아끼려는 마음에서다. 한적함이나 시골을 좋아한다는 낭만적인 말은 나의 가난을 살짝 숨겨보려는 허세에 불과하였다. 그 가난이 숨긴다고 숨겨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더욱더 자극적인 자기 합리화가 동반되어야 했다.
그렇게 가난한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비결은 바로 책 쓰기에 있었다. 그것도 매주 한 권씩 9개월을 쉬지 않고 써오면서 비로소 나 자신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결코 가난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우울할 필요도 없었다. 아니 우울할 틈이 없어졌으리라! 책을 쓰면서 수많은 나를 만나는 중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재산은 없지만 빚도 없었다. 세상은 신용불량자로 넘쳐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마이너스가 아닌 그나마 제로인 것이다. 이제 플러스가 될 일만 남았다. 집이나 땅도 마찬가지다. 까짓것 돈 벌어서 현금으로 사겠다고 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은행 대출 끼지 않고 말이다. 물론 그날이 언제 올진 기약이 없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일단 3년이라는 설정을 해둔 상태다. 3년이면 156권의 책을 쓸 수 있는 시간이다.
지금 당장은 참고 견디기보다는 시간을 즐기고 있다. 책 쓰기가 주는 미래를 생각해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막연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책 쓰기로 거창한 사업을 할 생각도 없다. 책 쓰는 일만큼 가슴 설레는 일을 찾지 못하는 한 죽을 때까지 쓰다 보면 언젠가는 한방 터트린다는 생각으로 돈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그런 자세가 아니고 돈부터 생각하며 글을 쓰고 책을 썼다면 포기해도 진작 포기했을 것이다. 책을 쓴다고 당장 돈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돈을 포기할 때 가장 큰돈이 벌릴 수 있다. 하루 종일 계산기 두드릴 시간에 나의 콘텐츠를 어떻게 개선시키고 모두가 좋아하는 것으로 만들지 연구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24시간 글만 생각한다. 읽고 쓰고 자고 읽고 쓰고 잔다. 가끔 강의도 하고 강의도 듣는다. 주말엔 축구도 하고 선후배들도 만난다. 그 외 시간은 글에만 집중한다. 내가 행복해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매주 한 권 책 쓰는 사람들
10월 14일 월요일 현재, 나는 36주째 36권의 책을 써냈다. 그 과정 자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그렇게 매주 월요일은 오로지 하루 종일 책 쓰기에만 집중한다. 미리 써두거나 하지 않고 무조건 당일 날 쓴다. 이 과정 또한 중요한 훈련이기 때문이다. 요령을 피우다 보면 본질을 잃어가기 마련이다. 본질은 하루 만에 책 쓰기다. 그것을 매달이 아닌 매주 한다는 일은 부차적인 것이다. 루틴을 만들어 보려는 시도에서 매주라는 한계 설정이 의미가 생겼을 뿐이다. 매월이라고 했으면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인터벌이 너무 길기 때문에 자꾸 딴생각을 할 시간적 여우가 생기고 그러다 보면 다른 비즈니스에 현혹되기 쉽다. 비즈니스를 하고 싶어 온몸이 근질거리는데도 참는 이유는 그 과정이 얼마나 지난하고 고달픈지 여러 차례의 경험 때문이다. 더 이상 내가 하면 다를 거야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하나로 덤벼들 나이도 용기도 지나버렸다.
이제는 저자처럼 매주 한 권 책 쓰는 사람들이 제법 늘어나고 있다. 나는 언제나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매주 한 권씩 책을 쓰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책 쓰기 전도사가 되고 말았다.
에필로그
어쩌다가 사주팔자에도 없는 작가가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어쩌다가 매주 한 권 쓰는 특이한 이력을 쌓아가는 작가가 되었다. 하루 만에 책 쓰기나 매주 한 권 책 쓰기는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개념임에 틀림없다. 내가 카카오 브런치 작가가 되어 브런치에 올리기 전까지는 나 자신도 확신을 갖지 못하였다. 독자들의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운 좋게도 비교적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있다. 오프라인 강의에도 참석하여 하루 만에 글쓰기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매월이 기본이지만 매주 한 권씩 쓰는 회원들이 늘어가고 있다.
브런치에서의 반응이 시작된 것은 내가 그동안 매주 써온 책들을 공개하면서부터였다. 아직 절반 정도밖에 공개하지 못하였다. 책 쓰기부터 판매는 물론이고 강의와 독서까지 일이 산재해 있다. 하지만 그 일은 기존의 일이 아니었다. 즐거운 놀이였다. 놀이기에 매일 즐거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브런치 북으로 7회 브런치 대상에 공모도 할 예정이다. 물론 대상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나의 성격상 도전하지 않는 삶이란 상상하기 힘들다. 계란으로 바위를 쳐도 좋다. 맨땅에 헤딩해도 상관없다. 나의 삶은 항상 도전이었고 그 도전 속에서 성취하며 살아왔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도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진실처럼 굳어져 가고 있다. 그 산증인이 바로 나였다.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이제는 도전은 그만두어야지 하면서도 매일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일단 먹이를 잡으면 놓치지 않는 맹수처럼 살려고 노력한다.
천재성보다는 노력하는 삶을 좋아한다. 노력보다는 끈기를 추구하는 삶을 선호한다. 그리고 항상 나의 DNA에는 도전이라는 식지 않는 열정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그 피에는 혈전도 고지혈증도 없다. 나이가 들어가도 도전은 온몸의 혈관과 세포들을 동원해 게으름이라는 관성으로부터 나를 불러낸다. 이제는 좀 더 멋지고 근사하게 나이 들고 싶다. 인생의 후반전에서는 더 이상 시간을 죽여 가며 게으르게 살고 싶지 않다. 돈은 낭비해도 시간은 낭비할 수 없는 시점에서 가치 있고 아름다운 하루만을 생각한다. 좀 더 멋지게 늙으려면 나에게도 흰머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무심한 머리카락들에는 눈이 내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고 검은 머리를 흰머리로 염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음 도전은 자유로운 삶이다. 시간, 공간, 경제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 매주 하루를 불태우고 있는 중이다.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한 달 살기를 통한 하루 만에 책 쓰기 프로젝트가 나의 다음 꿈이고 목표다. 그 도전을 위해 하루를 한 달처럼 살고 있다. 아마도 내 후년 가을부터는 시작되리라 확신한다.
나의 작은 도전이 전 국민은 물론 전 세계로 알려져 누구나 쉽게 그리고 꾸준하게 자신만의 독특하고 매력 있는 이야기들을 책으로 쓸 수 있는 날을 소망한다. 이제는 여러분들도 그런 삶을 꿈꾸기 바란다. 꿈을 꾸는 일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 왜냐하면 꿈은 언젠가는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