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도 시월드가 있을까?

슬럼프! 너도 내가 처음이지? 3화. Top up please!

by 런던남자
관계의 역설


한국의 가장들의 어깨는 오늘도 처져 있거나 기울어있다. 어김없이 오늘도 일터로 향한다. 숙명과 같은 일상이다. 그 일상은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 힘들다고 울 수도 없다. 강한 자에게는 조아리고 약한 자에게는 가차 없다. 꼰대에게 당하기도 꼰대가 되기도 한다. 항상 문제는 그들의 아내였다. 세상에 가장 무서운 사람은 부장님도 가맹점 본사 직원도 판검사님도 아니었다. 바로 아내였다.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아내가 가장 이해를 하지 못하였다. 가정에서 가끔 육아도 돌봐주고 설거지와 청소도 하지만 티도 나지 않는다.

또 하나의 문제는 한국 남자들의 어머니다. 그놈의 고부갈등은 끝이 없다. 같은 집에 대가족을 이루며 살던 시집살이를 경험한 어머니다. 할머니인 시 어머니의 시집살이는 혹독하였지만 견뎌낸 어머니다. 자기 며느리에게만은 그런 만행(?)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어머니였다. 그가 보기에도 아내는 시집살이와는 그렇게 관련이 없어 보였다. 명절 때와 경조사를 합해도 1년에 서너 번 정도의 대면이 전부였다. 하지만 아내는 명절이나 경조사만 생기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였다. 시월드의 "시"자만 나와도 이성을 잃었다.


물론 영국에서도 고부갈등이 있다. 하지만 자녀들이 만 18세가 되면 독립하기 때문에 시댁이란 개념 자체도 없다. 남편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는 집일 뿐이다.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하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나 생일이 아니면 특별히 방문하지 않는다. 며느리와 시어머니 간에 서로 바라는 것도 없다. 줄 것도 없고 주지도 않는다. 학비도 결혼자금도 자녀들이 알아서 준비한다. 결혼식은 교회에서 하기 때문에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경제 문제도 전혀 얽혀있지 않다. 가족 간의 식사도 몇 달 전부터 예약해서 레스토랑에서 만난다. 영국의 최대 명절인 크리스마스 때는 시어머니가 거의 모든 음식을 준비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칠면조 요리와 파이 푸딩 등 영국 전통(?) 음식들이 준비된다. 며느리가 도와주려 해도 상 차리는 것 정도다. 요리다운 요리가 없기 때문에 한국처럼 지지고 볶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이 아니라 선물을 주고받는 행사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때는 칠면조라도 굽는 것은 전통이기도 하지만 모든 레스토랑이 문을 닫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며칠 전부터 음식과 술을 사재기하듯 한다. 그렇지 않으면 쫄딱 굶어야 할 수도 있다.


한국은 어떠한가? 아들이 결혼해서 아내가 다시 시어머니가 되면 한국의 아내들은 과연 어떻게 변할까? 그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할머니와 어머니를 보고 아내와 아들을 본다. 물론 딸의 결혼도 생각해본다. 아내가 아들과 딸을 결혼시켰을 때의 반응이 궁금하다. 아들에게는 며느리가 딸에게는 사위가 생긴다. 과연 아내들은 며느리와 딸을 어떻게 대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자신의 아들보다 며느리를 더 챙기고 위해줄 수 있는지 굳이 묻고 싶지 않다. 물론 사위는 장모사랑이라 사위 걱정은 하지 않는다.


”나미야 잡화점을 하나 만들까!”


그는 요즘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가끔은 나미야 잡화점이 생각난다. 어릴 적 꿈과 추억을 찾아주는 잡화점 주인이 되고 싶다. 카드처럼 인간들도 충전이 필요한 때가 있다. 번 아웃된 사람들을 충전해주는 가게는 없을까? 그는 그런 가게를 언젠가는 만들어서 운영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삶의 활력을 충전해주고 싶었다. 충전에는 그 어렵고 힘든 용기도 필요치 않다. 약간의 시간만 투자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다시 활력을 얻고 순간과 하루를 밀어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삶은 흐르는 강물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강물처럼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물도 고이면 썩듯이 삶도 고이면 썩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가끔은 제자리에 서거나 한두 발짝 물러서고 싶다. 강물이 한두 달 고여 있다고 썩지는 않는다. 호수도 마찬가지다. 그만 큼 삶이란 나약하거나 허술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한시도 우릴 가만두지 않는다. 하다못해 꿈이라도 꾸게 한다. 꿈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듯이 밀어붙인다. 아내와 아이들을 볼 때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오버랩되었다. 시절이 바뀌었고 여성의 역할과 인권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물론 구시대적 유물인 남성우월주의는 사라져 가고 있다. 그게 언제 있었는지조차 요즘 세대는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시도 때도 없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아직은 과도기인 모양이다.


”영양만점인 굴(Oyster)이 런던에서는 카드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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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는 Oyster라는 카드가 있다. 충전해서 사용하는 교통카드다. 충전은 지하철이나 기차역은 물론 동네 슈퍼에서도 할 수 있다. 동네 슈퍼 출입문에 Oyster 카드 표시가 되어 있는 곳이 많다.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충전이 불가능하다. 참고로 런던의 버스에서는 Oyster 카드 없이는 탑승할 수 없다. 몇 년 전부터 더 이상 현금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Oyster 카드를 살 것인지 One day travel card를 살 것인지는 잘 따져봐야 한다. 하루 이틀 체류할 거면 Oyster가 굳이 필요치 않지만 1주일 이상 체류할 거면 Oyster 카드를 사서 충전해 쓰는 것이 편리하다.


한 때는 그의 영국집에 오이스터 카드가 대여섯 개 이상인 적도 있었다. 한국에서 지인들이나 친구의 자녀들이 놀러 오면 충전해서 주었다. 그 카드 하나면 런던의 버스부터 지하철까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런던 시내를 나갈 때 지갑은 안 챙겨도 오이스터는 챙긴다. 한국에 와서는 교통카드 기능이 있는 신용카드를 사용한다. 충전할 필요도 없이 편리하다. 하지만 런던에서 오이스터 카드를 충전할 때마다 느끼는 그 기분을 더 이상 느낄 수 없어 아쉽기는 하다. 편리함의 이면에는 숨겨진 아날로그 감성이 그리워지는 날이다.


지난해 5월이었다. 철쭉이 한창인 런던에 장미가 이미 피어나고 있었다. 미국에서 유학 중인 친구의 자녀 둘과 그 자녀의 친구가 런던에 놀러 온 일이 있었다. 1주일 정도 그의 집에 머물렀다. 그때도 그는 공항에 픽업을 나갔고 가끔은 한식 요리를 해주기도 하였다. 그가 챙길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오이스터 카드였다. 혼자 지내는 그가 가게일 때문에 그들을 가이드해줄 수는 없었다. 다행히도 대학생인 그들은 스스로 잘도 다녔다. 영어부터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었다. 그래도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지만 마음뿐이었다. 1주가 지난 토요일 아침에 그들은 공항으로 떠났다. Drop off을 해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 우버를 불러주었다.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공항까지 데려다주어야 하는데 택시를 태워 보내는 것이 마음 아팠다. 그래도 건강하게 잘 자라서 멋진 성인이 되어 준 녀석들이 고마웠다. 휘경동에서 보았을 때는 유치원생이던 아이들이 대학 졸업반이 된 것이다.

가난이 대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창틈 사이로 도망친다.


그 아이들의 가족은 부모와 같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몇 년 후, 사정상 아이들만 남겨두고 부모는 한국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사업이 어려워진 상태에서 부부 사이도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친구는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이들에게 미국으로 학비를 송금하고 있었다. 그 심정을 그 또한 잘 알고 있다. 그의 아들이 아픈 엄마를 따라 3년 동안 한국으로 유학을 갔기 때문이다. 한때 친구는 기러기 아빠였고 그는 역기러기 아빠였다. 친구도 그도 지쳐갔다. 가장 큰 문제는 단지 경제문제만은 아니었다. 바로 아내와의 관계였다. 한 때 여유마저 있던 가세가 기우는 것은 순간이었다. 마냥 행복이 곁에 머물 줄 알았다. 하지만 행복은 민들레 홀씨처럼 어느 순간 날아가 버렸다. 보이지도 않는 뿌리와 드러난 앙상한 잎과 줄기만 남긴 채 사라졌다. 행복이 사라진 자리에는 불행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이밀기 시작하였다. 어려워질수록 부부가 일심동체가 되어 똘똘 뭉칠 줄 알았는데 그마저도 환상이었다. 오히려 한마디 한마디의 말에는 날카로운 유릿가루들이 섞여 있었다. 부상까지는 아니지만 상처가 나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부부 사이에는 남아있던 사랑마저도 창틈 사이로 새어나가기 시작하였다.


“자신에게도 충전을 “


그는 요즘 한국에서 별 다방 카드를 충전에서 사용 중이다. 보통 한 번에 5만 원의 거금을 충전하지만 겨우 10일을 버틸 정도다. 그만큼 별 다방을 매일 간다는 이야기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김없이 8시에 별 다방에 출근한다. 밤 10시에 문을 닫으면 퇴근하듯 별 다방을 나선다. 그의 지정석도 있다. 그는 요즘 사람처럼 사이렌 오더를 한다. 줄을 서서 오더 하지 않는다. 가끔 10개의 별이 모이면 쿠폰으로 한 잔을 선물 받는다. 별 다방에서 10일에 한 번씩 충전을 하면서 잔액이 5만 원이 넘어가면 든든해진다. 마치 부자가 된 느낌이다. 5만 원의 행복은 주유소에서도 느낀다. 주유소에 가면 가득 넣었었는데 이제는 5만 원씩만 주유한다. 요즘 한국은 셀프도 많아져서 스스로 넣어야 한다. 영국의 경우에는 100% 셀프다. 이렇듯 우리는 충전을 하면서 살아간다. 카드가 비어도 자동차의 연료통이 비어도 충전을 하며 살아간다.


이제는 우리들 자신에게도 충전이 필요하다. 사회와 기업 곳곳에서는 긍정과 감사를 외치며 생생하게 살아가라고 등을 떠민다. 번 아웃이 되어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충전이다. 충전을 하려면 일단 멈추어야 한다. 차가 달리면서 연료를 충전할 수는 없다. 현대 사회에서의 개인은 철저하게 소모되고 있다. 경제논리와 효율성에 부합되지 못하는 개인과 사물은 더 나은 것으로 대체된다. 엄연한 정년이 있지만 일반 기업에서 정년까지 대체되지 않고 버티는 일은 만만치 않다. 공기업과 공무원 열풍이 불었던 이유다. 이는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유효하다.


그가 매일 별 다방으로 향하는 이유는 충전을 위해서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에너지들이 소진되었다. 그가 어떻게 지금까지 버티며 살아왔는지 모를 정도로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정신력으로 버티다 보니 정신마저도 고장이 나고 말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고장 난 신체 기관들에게 휴식을 주고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일이다. 강물이 좀 흐르지 않아도 상관없다. 강물이 흐르지 않아도 썩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는 온갖 질병들과 동거하고 있다. 현대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질병들을 글쓰기를 통해 치유하고 있다. 물론 그만의 방식이다.

살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하다.


글쓰기에 빠져든 이유는 살고 싶어서였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던 그였다. 막상 죽음 앞에서는 뭐라도 잡아보고 싶었다. 글이 아닌 넋두리여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잡은 누군가의 바짓가랑이가 바로 글쓰기였다. 그는 그렇게 글쓰기의 힘으로 수혈과 영양을 공급받아 살고 있는 중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몸도 마음도 충전하는 성스러운 작업이다. 글의 힘은 어떠한 방사선이나 초음파보다 강력하다. 글을 쓰는 동안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토닥이고 그동안 고생했지! 하며 자신과 소통한다.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그만의 충전방식이다. 그가 매일 그을 쓰는 이유 중 하나다. 그는 매일 별 다방에 충전하러 간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에게 필요한 것은 소모된 삶의 충전이다. 10년 이상이나 충전하지 못한 그를 위해 그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그는 서서히 회복 중이다. 글쓰기 치유법의 놀라운 효과를 체험한 그가 하는 일은 단순하다. 매일 쓰고 또 쓴다.





슬럼프! 너도 내가 처음이지? (2019년 11월 18일 / 하루 만에 책 쓰기로 제작된 책의 일부임)

참고로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는 삼성동 아지트리에서 "나는 매주 한 권 책 쓴다" 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루 만에 책을 쓰고 매월 또는 매주 책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처럼 매주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이 10명 이상 되었다. 앞으로도 그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강의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https://www.onoffmix.com/)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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