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 너도 내가 처음이지? 4화. 가장들의 어깨
1인 가구 비율이 30%를 넘었다는 것이 뉴스다.
이제는 가족의 의미도 형태도 변하고 있다. 전통의 대가족에서 획기적인 4인 가족이 된지도 그리 오랜 세월이 필요치 않았다. 심지어 핵가족이라고까지 표현하였다. 그런 핵가족마저도 무너지고 있는 추세다. 결혼 자체를 하지 않는 비혼 주의자들도 늘어가고 있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유독 한국이 심각하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는 식구라 불리는 사람들이 살아간다. 그 식구에는 아내와 남편이 있고 아이들도 있다.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가 된다. 이 가족들이 건강해야 사회도 건강하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가정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육아 단계가 끝나고 아이들이 독립할 무렵이 되어가도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독박 육아와 시 월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아간다. 서로가 의지하며 오손도손 살아가는 가족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아니, 드라마에서 조차 사실대로 표현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날카로운 비수를 던져댄다. 부부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던져진 말은 비수가 되어 상대방을 찔러댄다.
가장들의 최후는 예고되어 있다!
가족을 이끌어가는 가장의 지위와 역할은 점점 줄어든다. 돈만 벌어다 주면 된다. 그것마저 못하면 가차 없이 버려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과거의 강력했던 가장의 권위가 그립다는 말은 아니다. 한 때 기업체의 간부로 잘 나가던 가장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밀려나가는 순간 끈 떨어진 연이 되고 만다. 심각한 것은 아무도 위로는 고사하고 삼시세끼 밥이나 축내는 삼식이라 놀린다. 뭐라도 해야 하지만 직장 일만 하던 가장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설상가상으로 그 시기가 되면 여기저기 아프기까지 한다. 그렇지 않아도 눈에 가시였던 남편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 머리도 벗어지고 배도 나와서 남자로서의 매력도 전혀 없다. 입만 살아있지 실속이 없다. 그래도 가장이라고 군림하려 들지만 어림도 없다. 오히려 역풍을 맞고 휘청거릴 뿐이다.
그는 또래의 한국의 가장들을 대할 때마다 안쓰러운 생각이 먼저였다. 겉보기에는 멀쩡하고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좋은 동네에 살며 수입차를 타고 다녔다. 가끔 필드에 나가 골프도 즐기고 휴대폰에는 인맥으로 차고 넘쳤다. 수시로 톡이 울려댔고 약속으로 항상 바쁘게 살고 있었다. 새벽에 나와 밤늦게 들어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새벽에 들어갔다가도 새벽에 출근한다. 무슨 AI들도 아니고 저렇게 살다가 쓰러지면 어쩌려고 저럴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쁘게 살면서 과연 가족과 대화라는 것을 할 수는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모든 것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심지어 친구들의 사생활에도 거리낌이 없다. 궁금하면 반드시 물어보고 만다. 친구들의 대화법은 패턴이 있었다. 커피나 차 한 잔 마시면서 하는 대화는 가볍고 경쾌하다. 주로 각자의 분야에서 먹고사는 것이 이야깃거리가 된다. 술자리의 대화는 분위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속내들이 조금씩 드러난다.
알코올의 힘을 빌어서라도 힘듦을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통제력을 유지하면서도 순간순간 한숨과 함께 묻어 나오는 이야기 속에는 의외로 외로움이 묻어났다. 집에 일찍 들어가지 않는 이유도 부인과의 사이 때문인 친구들이 많았다. 집은 하숙집처럼 잠만 자고 나오는 곳이었다. 아주 가끔 밥도 제공되긴 하였다. 그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휴대폰에 저장된 그 많은 인맥들은 어디에 필요한 것일까! 영업직도 아닌 친구들의 인맥은 놀라울 정도였다. 물론 그는 한국에 온 지 1년밖에 되지 않아서 인맥 자체가 없다.
아내도 있고 그 많은 인맥을 자랑하던 친구가 외롭다고 한다.
그 많은 인맥을 두고도 외롭다고 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비록 아내와의 사이가 좋지 않다고 외롭기까지 하단 말인가! 결혼이 빠른 친구들은 이미 자녀들도 성인이 되었다. 집에 가면 아내와 단 둘 뿐이다. 얼마나 호젓하고 좋을까! 그 힘들던 육아도 마치고 이제는 부부만의 사생활을 즐기며 살 수 있는 시기가 온 것이다. 얼마나 오매불망 고대하던 시간이었나!
왜 아내들은 남편들을 외롭게 하는 것일까! 물론 아내를 외롭게 하는 남편들도 많을 것이다. 그동안 가장의 무거운 역할을 해내느라 번 아웃된 남편들을 좀 다독여 주면 안 되는 걸까!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무섭게 서류 뭉치를 내미는 아내들을 보면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남편들이 외로운 것은 결국 아내들의 독주 때문이다. 남편이라는 작자가 무슨 일을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예 아들 하나 더 키운다고 생각하고 결혼 생활한 지 오래다. 나이가 들면서 남자의 매력은 고사하고 말 많고 고집만 새 지는 아재가 되어간다.
그렇지 않아도 갱년기가 일찍 찾아와 만사가 귀찮은데 말이다. 남편의 모든 것이 밉다. 각방을 쓰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술 냄새도 그렇지만 방안이 울릴 정도의 코 고는 소리 때문에 도대체 잠을 잘 수가 없다. 평생을 같이 살아도 적응이 안 되는 것은 안 되나 보다. 당연히 혼자 자는 게 숙면에도 좋고 편하다. 남편은 집에 오면 여전히 손끝 하나 꼼짝하지 않는다. 아직도 양말은 벗으면 거꾸로 뒤집어서 던져둔다. 수건도 쓰고 나면 아무 데나 던져놓는다. 신기하게도 남편이라는 남자는 나이가 들어도 절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아이가 되어간다.
외도의 완벽한 조건과 배우자들의 통한의 기록들!
어떻게 이런 남자에게 콩깍지가 끼어 결혼까지 하고 살게 되었는지 스스로를 원망한다. 자학 수준으로 신세 한탄을 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다. 여성들에게는 갱년기가 오면 남성호르몬이 나오면서 없던 수염도 나기 시작한다. 만사가 귀찮고 우울하다. 왜 사는지 허무하다. 아이들도 자라서 둥지를 떠나갔다. 믿고 의지할 사람은 남편뿐인데 남편이라는 작자는 하는 짓이 딱 큰아들 수준이다. 아니 큰아들만도 못하다. 당연히 무시하고 상대도 해주지 않는다. 각방을 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혼은 생각 중이다. 그래도 경제 활동 중이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잘리는 날이 바로 남편의 제삿날이다. 아내는 이미 변호사도 만났고 남편의 뒤도 많이 캐 두었다. 수컷이 어떻게든 본능을 발산한다는 것을 아내는 직감으로 안다. 특히 술에 취해 남편의 귀가가 늦어지는 날에는 물증들이 나온다. 긴 여자 머리카락 하나만으로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소중한 물증이 된다. 그렇게 쌓여간 물증들은 일기처럼 치밀하고 세세하게 기록해 둔다. 그 기록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사본까지 만들어 별도로 보관한다. 참 무서운 세상이다. 아내가 만든 덫에 걸리는 줄도 모르고 남편들은 외도를 한다. 물론 그 반대인 경우도 많다. 그 낙도 없으면 살아가는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외도 대상을 허술하게 고르지 않는다. 같은 입장의 가정이 있는 여자를 고른다. 남자든 여자든 가정이 있는 사람을 외도의 파트너로 고른다. 서로의 사생활은 철저하게 보장해준다. 1주일에 한번 정도 만나서 회포를 풀면 그만이다. 사랑 따위의 감정은 상관없다. 수컷의 본능에 충실할 뿐이다. 외도하는 남편의 숫자만큼은 아니더라도 외도하는 아내의 숫자도 많을 것이다. 파트너가 싱글이나 돌싱은 위험하다. 그는 점점 친구나 선후배들이 왜 멀쩡한 가정을 두고 외롭다고 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최고의(?) 남편으로 귀여움을 받는 가장을 만나다!
흔치 않지만, 외롭지 않고 여전히 귀여움을 받으며 잘 사는 가장들도 있다. 다국적 기업에 다니는 후배의 사례다. 퇴근하자마자 집에 와서 밥하고 빨래하고 밀린 설거지에 청소까지 하는 남편이다. 그것도 모자라 쓰레기 처리는 물론 강아지 산책까지 시켜준다. 금상첨화로 분기에 한번 정도 해외 출장도 가 준다. 그러면서도 부인님 눈치를 본다. 그래도 남편 대접은 받고 사는 걸 보니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저런 피나는 노력이 있었구나! 그도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반성하고 도 반성하였다.
가정이라는 공간은 사회의 최소 단위다. 물론 1인 가구도 있지만 여기서는 일반적인 가정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공론화화는 것 자체가 무리다. 가정이란 천이 면 천 다 사정이 다르고 사는 모습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고는 이야기 자체를 꺼낼 수가 없다. 통계청 자료만으로 딱딱한 논문을 쓰지 않는 이상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글이란 태생적으로 자기만의 생각과 경험을 정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들었음을 밝힌다.
어떠한 외도도 정당화될 수 없다. 누군가! 아니 우리 모두에게 불편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지만 언제까지 쉬쉬 하면 산단 말인가! 외도는 case by case라서 일반화시킬 수 없다는 점도 안다. 다만 사회문제 차원에서 사회현상을 다루었을 뿐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행복하고 화목하게 잘 사는 가정들이 훨씬 많다. 이 숫자가 더 늘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