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영역다툼과 기득권의 진영싸움

영국의 오만과 편견 1권 이방인

by 런던남자

2화. 사냥하는 고양이

11세 생일 선물로 받은 5파운드짜리 영국 지폐


“I want a moving cat! “


6월 중순의 런던 날씨는 화려한 장미만큼이나 한가롭고 찬란하였다. 그날도 몇 달 전 레고 사건으로 아이가 울었던 날처럼 화창하고 선명한 토요일 오후였다. 오후 6시가 넘었는데도 태양은 중천에 떠 있었다. 3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시작된 서머타임이 본격적으로 효력을 발휘하는 런던의 6월이다. 아이는 유치원 친구의 생일파티에 다녀왔는지 고깔모자를 쓰고 조잡하고 음정이 제멋대로인 플라스틱 종이 피리를 불어대고 있었다. 월드컵 때마다 등장하는 피리와 유사하였다. 그가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아이가 인상을 쓰면서 항의를 시작하였다. 친구들 집에는 다 있는 고양이가 왜 자기 집에는 없는지 따지는 것이었다.


지난번 Croydon의 레고 가계로 향하며 농담 한번 잘못했다가 아이의 가슴에 상처를 준 일이 먼저 생각났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타운센터로 나갔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큼직한 고양이 인형을 사 온 것이다. 아이는 기뻐하며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남자아이인데도 인형을 안고 자기도 하였다. 자는 모습마저 행복해 보였다. 유치원생 아이에게도 결핍은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그것이 궁핍에서 올 때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였다.


다음날은 일요일 아침이었다. 아이는 도도한 고양이의 재롱이나 야옹 소리를 원하였지만 인형 고양이는 침묵만을 지킨 채 요지부동이었다. 인형이 도도할 수도 없고 아이와 놀아줄 수도 없는 것은 당연하였다. 아이는 이내 인형 고양이를 집어 단지며 울음을 터트렸다. 놀랍게도 이번엔 울음 방식이 레고 사건 때와는 달랐다. 닭똥 같은 눈물 대신 요란한 대성통곡이었다. 가난이라는 현실을 처음으로 접하며 숨죽이며 울던 당시와는 정반대였다. 그래서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아이는 자기 집이 생각만큼 가난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요일 아침의 눈물 없는 대성통곡에 2층에서 늦잠을 자던 아내가 파자마 차림으로 뛰어 내려왔다. 아이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그와 아내는 당장 수소문을 시작하였다. 아이가 했던 이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I want a moving cat! “ 아이가 원하는 고양이는 살아있어야 하고 움직여야 하며 아이와 놀아주어야 한다. 아기 고양이면 더 좋다.


”아기 고양이를 입양하라! 그것도 최대한 빨리”


어느 나라든 재외 국민들이 살아가는 중심에는 한인 타운이 있다. 물론 온라인 커뮤니티도 활성화되어 있다. 영국에서는 ”영국 사랑”이라는 사이트가 있다. 아내는 영국 사랑의 광고란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혹시 고양이 분양하는 광고가 있는지 찾기 위해서였다. 놀랍게도 전날 저녁에 올린 고양이 분양 광고가 있었다. 턱시도 고양이인데 6주쯤 된 새끼가 6마리였다.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서 바로 전화를 하고 달려갔다. 지역은 그의 집에서 30여분 떨어진 Tooting Broadway라는 동네였다. 무슬림들이 집성촌처럼 모여 사는 곳이다. 런던 시내와도 가깝다. 현제 런던 시장인 사디크 칸이 살던 마을이기도 하다.

고양이를 분양하는 집 앞에 도착은 하였지만 주차할 공간이 없어서 몇 바퀴를 돌았다. 골목이 좁아서 일방통행이었다. 주차된 차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고양이가 사고 없이 지낼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복잡하였다. 결국은 다른 골목의 제법 먼 곳에 주차를 하고 그 집으로 걸어갔다. 집주인은 중년의 한인 여성이었고 부부를 반겨주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소파 위아래로 앙증맞은 고양이들이 우글거렸다. 길고 좁은 정원으로 난 창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밖에 있던 어미 고양이는 낯선 인기척을 눈치채고 벌써 창틀에 뛰어올라와 앉아서 거실 안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비록 고양이지만 어미의 직감은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직감대로 그 어미 고양이는 자신의 새끼 한 마리와 생이별을 해야만 했다. 그가 어린 시절 시골집에서는 소를 키웠다. 누렁이는 자신의 새끼가 팔려나갈 때 왕방울만 한 눈에서 눈물을 떨구었고 며칠 밤낮을 울부짖었다. 모성애는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그는 어미 고양이를 보면서 누렁이의 왕방울만 한 눈에서 떨어지던 눈물이 떠올랐다.

생후 4개월 무렵의 둘째 아들



가장 겁 많고 체구가 큰 아기 고양이가 가족이 되었다. 어미 고양이와의 생이별은 아리고 아팠지만 그 또한 운명이었다.

6마리의 새끼 고양이는 비슷해 보였지만 모두 달랐다. 표정도 인상도 체구도 심지어 울음소리도 달랐다. 그중에서도 덩치는 가장 큰데 유난히 겁이 많은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겁 많은 그 새끼 고양이는 소파 아래로 숨고 나오지 않았다. 다른 5마리의 고양이는 달려와서 재롱을 피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와 그의 아내는 소파 밑에 숨은 녀석의 매력에 빠져 그를 낙점하였다. 주인도 좋다고 하였다. 소파를 살짝 들고 그 겁 많은 고양이를 꺼내자 어미가 창틀에서 안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결사적으로 자기 새끼 내놓으라고 울부짖기 시작하였다. 그가 재빠르게 새기를 주머니에 넣었기 때문이었다.


그와 그의 아내는 어미 고양이의 애절한 눈빛을 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 아기 고양이를 유괴해가는 파렴치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주인아주머니는 그냥 살짝 나가라고 하셨다. 자기가 어미 고양이를 잠깐 안고 있겠다고 하였다. 부디 잘 길러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그 순간의 어미 고양이와 주인아주머니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아기 고양이의 주인이 된 아이는 부자가 되었다.
친구들에게 자랑할 거리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난 지 않아 누가 주인인지 헷갈려 하기 시작하였다.
누가 재롱을 떨어야 하는지 당황해하였다.

그렇게 입양된 고양이는 6주째였고 생일까지 알려주었다. 그 고양이는 한 달 정도 우유를 먹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드디어 아이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아이는 친구들에게 자기도 고양이가 있는 “부자”이고 “주인”이라고 자랑하고 다니기 시작하였다. 아이는 고양이가 자라면서 주인이 뒤바뀌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주인은 고양이였고 아이를 포함한 가족 모두는 집사였다는 사실은 6개월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터득하기 시작하였다. 그 고양이는 겁이 많았지만 호기심도 많았다. 거실의 커튼과 소파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난장판이 되어 갔다. 카펫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비로소 동생이 생겼다며 행복해하였다. 그러한 행복도 잠시였다. 예상치 못한 돌발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아이의 피부가 이상해지기 시작하였다. 툭하면 눈가가 붉어지며 눈물을 흘렸다. 아이에게서 고양이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아이는 약을 먹어야 했고 다행히 1년이 지나면서 그 증상은 사라졌다. 고양이를 포기해야만 했지만 아이가 원하지 않았다.

사냥해온 쥐와 집 앞에서 놀고 있는 모습! 둘은 과연 무슨 대화를 나누었을까?



영국의 고양이들은 아웃도어 켓이다. 24시간 들락거리면 자유롭게 산다. 영역싸움을 하고 사냥을 즐기며 난적인 여우와도 패권을 다투어야 한다.


그 새끼 고양이가 지금은 12살이 넘었다. 내년 5월이면 13살이 된다. 그가 그렇게 덩치가 클 줄도 사냥을 많이 할 줄도 몰랐다. 동네 짱을 그렇게 오래 해먹을지도 몰랐다. 완전한 장기 집권이었고 독재였다. 새끼 시절 겁 많던 고양이의 반전이었다. 1살이 넘어가자 영역 싸움에 관해서는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상대가 여우여도 예외가 아니었다. 동네에서는 한집 걸려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다. 영국의 주택에는 cat door라고 현관문 아래쪽에 고양이 전용 문이 있다. 고양이들은 24시간 언제든 집을 들락거릴 수 있다.


그의 고양이는 쥐의 번식기가 되면 매일 사냥을 해온다. 쥐의 번식기는 분기에 한 번은 되는 듯하였다. 1년 내내 번식한다고 보면 된다. 고양이가 그렇게 많은데도 쥐는 잡혀 들어왔다. 문제는 쥐를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기 위해서 사냥한다는 점이다. 정원 쪽 창문에 cat door가 있다. 거실에 있던 아내가 그 고양이가 들어오면 입부터 살핀다. 그리고 입에 쥐의 꼬리가 늘어져 있으면 기겁을 하고 2층으로 도망을 간다. 고양이는 쥐를 거실 바닥에 내려놓고 살아있는 장난감처럼 데리고 논다. 물어서 집어던지기도 하고 심하게 물면 쥐가 죽기도 한다. 일단 쥐가 사망했다는 본인 소견이 나오기가 무섭게 고양이의 관심은 사라진다. 현장 감식을 하고 사체를 처리하는 것은 물론 그의 몫이다. 그렇게 처리된 쥐가 수백 마리가 넘는다. 물론 온갖 종류의 새들도 예외는 아니다.


둥지를 털어서 아기 새 전체를 물어온 적도 있다. 집안은 새의 벼룩과 이로 난리가 났다. 어미 새에게 돌려주려고 별의별 노력을 다해도 결국 아기 새들은 모두 죽었다. 자연의 섭리로 이해하기에는 아기 새들이 너무 불쌍하였다. 권력을 쥔 고양이의 횡포였기 때문이다. 배가 고파서가 아닌 사냥 본능에 의한 행동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고양이의 잔인성이 미워지기 시작하였다.

지난해 6월 곧 대학생이 되어가는 첫째와 여전히 사냥 중인 둘째 아들의 모습


고양이와 인간의 영역싸움과 권력에 대한 욕망은 본능 이상으로 닮아있었다. 고양이가 인간에 가까운지 아니면 인간이 고양이에 가까운지 모르겠다.


쥐를 잡아다 거실에서 놀 때가 더 큰 문제였다. 고양이가 한눈을 파는 사이 쥐는 책장이나 소파 밑으로 들어가 버리면 고양이도 어쩔 수 없다. 심지어 한 달간이나 쥐와 동거한 적도 많다. 쥐는 고양이의 밥과 물을 먹으며 버티다 결국은 고양이에게 생포되고 최후를 맞이한다. 오늘도 사냥하는 런던의 둘째 아들이 그립다. 비록 힘과 권력을 남용하지만 주인의 본능을 집사가 제어할 방법은 없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지키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역(진영) 싸움에 목숨까지 걸고 다른 고양이의 몫을 가로채 잉여의 쥐와 새를 잡는 행위는 인간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더 큰 문제는 쥐와 새들이었다. 그들은 고양이라는 모든 권력을 가진 기득권 세력에게 언제든 모든 것을 내주어야 했다. 운명이라기엔 너무 슬픈 일이다. 오늘도 아내는 고양이가 거실로 난 창문의 켓 도어를 통해 머리를 내밀 때 녀석의 입부터 살필 것이다. 부디 고양이의 입 밖으로 기다란 꼬리가 늘어져 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영국의 오만과 편견 1권 이방인 (2019년 11월 25일 / 하루 만에 책 쓰기로 제작된 책의 일부임)

참고로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는 삼성동 아지트리에서 "나는 매주 한 권 책 쓴다" 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루 만에 책을 쓰고 매월 또는 매주 책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처럼 매주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이 10명 이상 되었다. 앞으로도 그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강의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https://www.onoffmix.com/)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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