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의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아이는 소리 없이 닭똥만 한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당시 유치원생이던 아이는 이태리제 경차의 왼쪽 보조석에 않아 있었다. 물론 카시트를 한 상태였다. 카시트는 뒷좌석에만 설치해야 하지만 아이가 워낙 차 타는 것을 좋아해서 할 수 없이 법을 어기고 카시트를 앞좌석에 해주고 있었다. 별일 없는 평범하고 한가한 토요일 오후였다. 적어도 아이의 닭똥만한 눈물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오전에 축구 경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점심을 먹고 있었다. 아이는 며칠 전부터 찍어둔 레고를 사려고 이미 마음이 잔뜩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가 사는 동네의 타운센터에 레고를 파는 가게가 있다. 아이의 마음은 벌써 그곳에 가 있었다. 점심을 절반도 먹지 않았는데 아이는 아빠가 밥을 너무 늦게 먹는다고 호들갑이다. 아이는 1주일을 기다려온 주말이었다. 다행히 그날 오후는 일정이 비어있었다. 대신 저녁에 공항 픽업이 두 건이나 잡혀 있었다. 이민 초기의 그의 직업은 미니 캡 기사였다. 한국으로 치면 콜택시 기사다. 주로 한국인 어학연수생과 주재원들이 고객이었다.
점심을 먹고 설거지도 못한 채 집을 나서야 했다. 아이는 이미 차의 키를 들고나가서 시동을 걸어놓고 온갖 기능들을 체크하고 있었다. 차를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마치 장난감 다르듯 하였다. 안전장치는 해서 차가 움직일 수 없게 해 둔다. 그가 운전석에 앉으면 그제야 본인의 자리인 카시트로 가서 앉는다. 뒤 자석엔 아이 엄마가 탄다. 집에서 쇼핑센터 까지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쇼핑센터의 주차장에 주차하고 매장으로 나오기가 무섭게 아이는 레고 가게로 달리기 시작한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레고였다. 기능도 단순하고 가격도 10파운드 정도밖에 안 되는 자동차 모양의 레고였다.
문제가 발생한 것은 레고 가계에 들어서서였다. 아무리 찾아도 아이가 원하는 레고 자동차는 보이지 않았다. 비슷한 자동차는 많이 보였지만 아이는 같은 제품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당황하기는 그와 그의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아내가 사태 수습에 나섰다. 일단 직원에게 인근에 가까운 레고 가게가 어디쯤에 있는지 알아보고 있었다. 다행히 30분 거리의 Croydon에 아이가 원하는 제품의 재고가 있다는 정보까지 알려주었다. 다시 아이는 주차장으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유치원생이 저렇게 빨리 달리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주차장에서 지도를 보고 가계의 위치를 파악한 다음 Croydon으로 출발하였다. 참고로 Croydon은 IKEA가 있는 런던 남부의 거점 도시다. 홈 오피스와 이민국도 있다. Croydon으로 가는 길은 제법 막혔다. 토요일이 아니어도 항상 막히는 곳이다. 그래도 아이는 즐거운지 싱글벙글 거리며 좋아했다. 뒷좌석의 엄마와는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든 대화는 영어였다.
“아이는 가난이 뭐냐고 물어보았다. “
차도 막히고 날씨도 화창하고 방금 점심까지 먹고 난 후의 식곤증이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오전의 축구 경기가 좀 과 했나 보다. 그는 슬슬 장난기가 발동하여 아이에게 장난을 시작하였다. 지갑을 열며 돈이 한 푼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안하다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아이는 왜 돈이 없느냐고 물었다. 당시 아이는 신용카드나 데빗 카드를 알지 못하였다. 여왕 할머니가 그려진 파운드라는 지폐와 동전만 돈인 줄 알던 나이였다. 그는 가난해서 돈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레고 자동차를 사줄 수 없다고 하였다. 아이는 가난이 뭐냐고 물어보았다. 엄마 아빠가 여왕 할머니가 그려진 돈이 없는 것이 가난이라고 아이에게 설명하였다.
”아이의 눈에서는 닭똥만 한 눈물이 뚝 하고 떨어졌다.”
아이는 아무 말도 없었다.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앞차만 응시하고 있었다. 마침 앞차는 아이가 좋아하는 미니 쿠퍼 최신형이었다. 색깔까지 블루였다. 그 당시 아이는 모든 색깔은 블루만 고집하였다. 1분도 채 안되어 아이의 눈에서는 닭똥만 한 눈물이 뚝 하고 떨어졌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아이는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이가 판단해도 가난이라는 것은 현실이었던 것이다. 유치원생 아이가 생각하는 가난은 심각한 것이었다. 그토록 원하던 레고 자동차를 살 수 없는 것이었다.
뒤에 타고 있던 아이 엄마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아이에게 급히 사과를 하였다.
“미안하다. 사실은 아빠가 농담했어. 엄마 아빠가 부자는 아니지만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가난하지는 않단다. 여왕님이 그려진 지폐가 아니어도 플라스틱 카드로 돈 대신 사용할 수 있단다. 그러니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란다. Croydon에 가서 레고 자동차도 사고 IKEA에 들려 놀다 올 거란다.”
“유치원생이 느끼는 가난은 하늘이 무너지는 심각한 것이었다. “
그제야 아이는 눈물을 멈추고 웃음이 돌아왔다. 찰나였지만 그는 아이의 닭똥 같은 눈물을 보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이방인으로서의 삶이 힘들고 고달플 때마다 아이의 눈물을 생각하였다. 가난을 너무 쉽게 생각하며 살아온 자신을 반성하였다. 가난이라는 것은 불편하고 좀 견디면 되는 것인 줄 알았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유치원생이 느끼는 가난은 하늘이 무너지는 심각한 것이었다. 가난이라는 단어조차 모르던 아이가 가난이 뭐냐고 물어올 때 얼굴이 화끈거렸다. 뒤에 앉아있는 아내에게도 면목이 없었다.
”IKEA 레스 트랑에서 음료수를 1인당 하나씩 산 통 큰 아빠!”
Croydon에 있는 레고 가게에 도착하자 아이가 찾던 레고 자동차가 있었다. 그는 다른 레고도 하나 더 골라도 된다고 하였지만 아이는 쿨 하게 한마디 하였다. “it is ok!” 아빠는 가난하지 않으니 하나 더 골라보라고 해도 괜찮다고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IKEA에 들러 아이가 좋아하는 코너에서 실컷 놀다 왔다. 이른 저녁으로 미트볼엔 칩스도 먹었다. 미트볼은 스웨덴 사람들이 주식처럼 먹는 음식이다. 고기를 잘게 다져서 밤톨만 한 사이즈로 둥글게 다진 간단한 음식이다. 미트볼에는 앙증맞은 스웨덴 국기가 꼽아져 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하다. 음료는 컵을 사는 방식이어서 무한 리필이 된다. 그날은 당당하게 세잔을 모두 샀다. 영문을 모르는 아내의 눈동자가 똥그래졌지만 그날만은 부자 아빠처럼 당당해지고 싶었다. 이민 초기의 고단한 삶을 헤쳐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그날 아이의 닭똥 같은 눈물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영국의오만과 편견 1권이방인 (2019년 11월 25일 / 하루 만에 책 쓰기로 제작된 책의 일부임)
참고로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는 삼성동 아지트리에서 "나는 매주 한 권 책 쓴다" 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루 만에 책을 쓰고 매월 또는 매주 책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처럼 매주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이 10명 이상 되었다. 앞으로도 그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강의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https://www.onoffmix.com/)에서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