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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Jan 01. 2020

#45,46주 차, 템스는 바다로만 흐르지 않는다

매주 한 권 책 쓴다(2019년 12월 16일, 23일)

Note: 하루 만에 책 쓰기로 매주 한 권 책 쓰기 프로젝트는 나의 평생 프로젝트로 2019년 2월 11일 월요일에 춘천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죽기 전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을 소망한다. 만일 이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면, 나는 이미 질병과의 전투에서 1패를 기록하며 다른 별로의 고독한 여행을 시작하였을 확률이 아주 높다.



@ 부제: 템스는 영국의 과거를 연결하는 다리들을 통과하며 미래로 흐른다그 속에는 현재의 삶이 들어있다.

@ 분량: 이북 기준 총 375페이지(폰트 22)

@ 판매: 블로그 서점(https://blog.naver.com/jebyi)



@ 프롤로그


여: 반가워요! 고향이 어디세요? 

그: 네 반가워요! 런던인데요! 

여: 에이 초면부터 농담 마시구요! 

그: 정말인데요.

여: 강원도 두메산골 표로 보이거든요. 혹시 화전민 출신 아니세요?

그: 화천요? 춘천에서 군 생활했는데요.

여: 아뇨! 화전민요(아이고 답답해 죽을 것 같다!)

그: 화전민이라뇨?

여: 아니면 말구요.

그: 아버지가 영국으로 농업이민 가셔서 저를 런던에서 낳으셨어요. 그래서 고향이 런던이에요.

여: 믿을 수 없지만 세상에 그런 일도 있군요! 

그: 아! 네 

여: 화전민 이야기에 불쾌하셨다면 미안해요.

남: 아뇨 전혀요. 혹시 나중에 연락해도 될까요?

여: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저는 오늘부로 비혼 주의자예요.

그: 아니 왜 갑자기 비혼 주의자요?

여: 저는 바빠서 이만.

그: 10분도 안되었는데 커피는 마시고 가셔야죠!


위의 대화 내용에는 젊은 시절 그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워낙 자주 그리고 많이 당해서 면역성을 든든히 갖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도 마시지 않은 커피 잔에서의 가물거리는 온기는 아픔이었고 서글픔이었다. 소개팅을 나온 아가씨와의 대화는 이런 식으로 싱겁게 끝나곤 하였다. 그가 결혼 전 소개팅이나 선을 볼 때마다 신상 이야기가 나오면 레퍼토리처럼 읊어댄 말이었다. 그의 농담을 믿는 착한 아가씨도 한두 명 있기는 하였다. 대부분은 실없는 사람이라며 재수 없다는 듯 그의 애프터를 단칼에 거절하며 커피숍을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그는 현실은 한국에 있었지만 런던이라는 가상현실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유머가 사라진 세상은 차갑고 무서운 어둠만이 지배한다는 근거 없는 믿음은 그를 더욱 힘들게 하였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유머가 강산이 두 번 이상 바뀐다는 세월 후에 한국에 돌아보니 아재 개그로 비하되고 있었다. 한국에서 제대로 된 유머를 구사하기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군 전역 후 1년 반 동안 런던에서 경험한 체험 삶의 현장이 준 충격은 강렬하였다. 그중에서도 런던 사람들의 유머와 여유는 인상적이었다.”빨리빨리“를 외치며 형체도 알 수 없는 긴박함에 쫓기 듯 살아가는 한국 사회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5년이나 지났음에도 여전히 몸은 한국이지만 마음은 런던에 가 있었다. 이성에게도 강한 끌림이 있고 그 끌림으로부터 사랑이 시작된다. 그는 런던이라는 중후하고 볼거리로 넘쳐나는 매력에 끌려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문제는 런던과의 사랑도 짝사랑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소원은 남북통일도 짝사랑도 아니었다. 남들 다하는 보통의 연애였다. 보통의 연애가 가장 어려웠다.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어서가 아니고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유채 이탈 형 인간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소개팅에서 그를 대하는 여성들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어떤 말이 진실이고 어떤 말이 농담인지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이해가 어려웠을 거다. 심지어 제주도 감귤농장의 땅 이야기도 단골로 등장하였다. 너무도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감귤농장은 그의 외모와 잘 어울렸다. 심지어 그의 아내도 이민 생활 초기에 카드 돌려 막기에 지칠 때마다 제주도 감귤농장 이야기 뻥 맞지를 확인하는 가슴 아픈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웃자고 한 이야기가 아내의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두고두고 죄책감과 미안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결과는 이성은 물론 런던과의 사랑에 성공하여 런던의 품에 안길 수 있었고 런던을 안아줄 수 있었다. 런던과의 20년의 사랑 중에도 권태기가 몰려왔다. 아내로부터 외면당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한국의 사계절에 흑심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내연녀가 있는 한국으로 급히 날아왔다. 그렇게 시작된 한국과의 외도는 벌써 1년을 넘기고 있다. 이 외도가 언제쯤 끝날지는 그도 알 수 없다. 한국의 아름다운 봄이 그리웠다. 특히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고 따뜻한 남도의 봄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남도의 봄에는 어머니의 사랑과 채취가 화려한 꽃들과 어우러져 사방에 널 부러져 있었다. 


이번 봄에 세 번이나 남도를 찾아 나섰다. 예상과는 달리 남도의 봄은 적막하였다. 상상하던 어머니의 채취는 찾을 수 없었다. 한국의 계절도 이상해졌지만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파헤쳐진 산하는 더욱 아팠다. 도시에서부터 시골까지 레미콘 차가 꽁무니를 내리고 쏟아부은 콘크리트가 난무하였다. 산도 강도 아팠다. 그가 정작 그리웠던 것은 정겨운 남도의 시골 풍경들이었다. 가마솥과 아궁이가 있고 구들장이 있는 집들을 찾아 나섰지만 그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강들에도 레미콘 차가 얼마나 들락거렸는지 회색이 난무하였다.


도시는 말할 것도 없었다. 몇 년이나 내다보고 레미콘 차를 들이대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순간 편리하고 순간 돈이 되면 밀어붙이는 식이었다. 런던이나 파리와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한국과의 외도가 1년이 지났지만 그 충격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외도 자체가 태생적으로 마음 편하게 이루어질 수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20년이라는 시간이 빚어낸 세월의 괴리 때문일 수도 있다.


여행자에게 런던은 유럽 여행의 시작이거나 마지막인 경우가 많다. 섬나라의 특성도 있고 서유럽에서도 아일랜드와 함께 가장 서쪽에 있기 때문이다. 비싼 물가도 런던을 스치듯 지나가게 만드는 요인이다. 시내 유명 관광지 몇 군데 둘러보고 유럽으로 떠나거나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곳이 런던이다. 런던은 매력은 있지만 살인적인 물가로 관광객들의 기를 미리부터 죽여서 지갑을 닫게 만드는 모순된 도시기도 하다. 


현지에 사는 사람들은 런던의 물가를 그렇게까지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민들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생필품 물가는 관광객이 느끼는 물가와는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그가 체험한 장바구니 물가는 한국이 런던을 이미 능가하고 있었다. 빵이나 우유는 물론이고 감자나 고기 종류는 확실히 런던이 한국보다 저렴하였다. 문제는 인건비였다. 그렇게 저렴한 식빵의 변신은 놀라울 정도다. 먼저 식빵 두 쪽에 잼과 버터를 바른다. 그다음 체더치즈와 토마토와 양파 상추 등을 넣는다. 마지막으로 주재료인 삶은 계란이나 삶은 새우 또는 베이컨 등을 마요네즈와 함께 넣는다. 그리고 나머지 식빵을 덮는다. 순식간에 완성되는 샌드위치는 서울에서 한 끼의 밥값으로 변신한다. 관광객과 현지인이 느끼는 물가 차이가 커지는 이유다. 


런던이라는 도시는 오래 살면 살수록 매력들이 넘쳐난다. 어느 지역이나 어느 거리를 가든 그 지역만의 독특한 매력들이 살아 꿈틀댄다. 세월이 주는 무게감과 아름다움을 당해낼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나와 보라는 낡음의 자신감이다. 중고차가 금방 뺀 풀 옵션의 세차를 우습게 아는 적반하장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오래됨의 미학을 보여주는 런던과 유럽의 도시들이다. 반면 세월이 흐를수록 거대한 콘크리트 더미들은 살 처분을 기다린다. 처음부터 살 처분을 고려해서 탄생한 한국의 아파트들은 때도 되지 않았는데 살 처분해 달라고 떼를 쓴다. 일제 강점기나 625 전후 건설된 것도 아니고 올림픽 전후로 지어진 아파트들이 떼를 쓴다. 빨리 좀 살 처분해 달라고 말이다. 그래야만 초고층의 아파트를 다시 지을 수 있다. 건설사도 재건축 조합도 입주민도 다 바라는 바다. 한국 사회의 단면이다. 


사회 시스템은 철저하게 경제 논리로만 돌아간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멀쩡한 아파트도 살 처분시킨다. 안전 검사를 해서 위험하지 않고 더 사용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와도 무시하고 떼를 쓴다. 소나 돼지 또는 닭이 전염병으로 살 처분되는 현장은 생지옥이 따로 없다. 같은 공간에서 사육되고 있었다는 이유로 병에 전염되지 않은 멀쩡한 가축들도 같이 순장을 당한다. 이게 비단 한국 사회의 문제만은 아니다. 하지만 가축이 아닌 아파트들까지 조금 낡았다고 살 처분되는 현장은 마음이 아프다. 한국의 문화와 전통이 과연 콘크리트와 얼마나 조화를 이룰지는 미지수다. 국토의 67%가 산인데 어쩌란 말이냐고 하면 할 말이 없기는 하다. 두바이나 아부다비는 산이 많아서, 중국은 땅이 좁아서 거대한 콘크리트 빌딩들을 지어댔을까? 그들의 인식은 한국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경제효율이나 경제논리가 우선이면 그만이다. 


이제라도 천년은 아니지만 최소 백 년이나 이백 년을 내다보고 건물을 지었으면 좋겠다. 영국이나 유럽인들이 아파트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원이 없고 개나 고양이랑 같이 살기 불편하기 때문이다. 정원은 반려동물은 물론 바비큐 파티를 하며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사교의 장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정 반대의 현상이 완벽하게 주류 문화로 고착되고 있다. 백 년 후의 서울의 모습을 그려보지 않을 수 없다. 백 년 전의 런던이나 파리는 간판만 때면 사극 세트장이나 다름없다. 변한 것이 거의 없다. 백 년 후의 런던이나 파리의 모습도 외계인의 침공이 없는 한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서울은 어떨까? 달라도 너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이제 외국인에게 서울은 콘크리트 말고 뭔가를 보여주지 않으면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상실해 갈 것이다.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서울이 어쩌다가 이렇게 콘크리트 더미로 덮여 가는지 모르겠다. 가장 훌륭한 문화유산이나 관광자원은 국민들이 살아가는 모습 자체다. 그런 면에서 런던이나 파리는 놀라운 도시고 매력적인 도시다. 전 세계인이 찾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단순한 것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보존“의 가치는 ”개발“보다 우선이었다.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는 미래의 세대를 위한 배려였다. 그들이라고 경제논리를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개발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우리가 사는 모든 것은 미래를 위한 유산이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후손들로부터 잠시 빌려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런던과의 20년의 사랑은 단지 외형뿐만이 아니었다. 그 외형이 마주하는 아름다운 사계는 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도시,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 런던은 사람들이 살기에 나쁘지 않은 곳이다. 그 런던을 남북으로 가르는 템스는 오늘도 말없이 흐르고 있다. 비록 맑지도 못하고 탁한 색상의 물이 흐르지만 개의치 않는다. 겨울철에는 흙탕물이 끊이지 않고 흐르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까지 담아내고 있다. 


그는 20년을 템스 강을 끼고 있는 동네에 살았다. 매일 템스와 마주했고 그만의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왔다. 그래서 템스와도 사랑에 빠졌다. 템스에는 사계절이 흐르고 있다. 지금 템스에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오늘 바다 같은 한강 하류를 산책하였다. 바람은 거칠었고 매서웠지만 장대하고 아름다웠다. 이맘때쯤에도 강변에서 생맥주를 마시던 두고 온 템스가 더욱 그리워지는 하루다. 


한강을 통해 템스 강을 생각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템스 유역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한강 유역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비교해보려는 것이다. 어쩌면 둘 중의 한 유역에 사는 사람들은 불편하거나 기분 나쁠 수도 있다. 만약 한강 유역에 사는 사람들이 불편하다면 이유나 반박이 있을 것이다. 왜 하필 서울의 비교 대상이 런던이냐는 반문이 나올 수도 있다. 동남아나 아프리카의 수도들과 비교하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가 나올 수도 있다. 한국 정부나 한국의 기득권 세력들이 줄기차게 외쳐온 것이 한국의 경제와 무역규모였고 선진국이었다. 그들 말대로 이제 한국은 3만 불 시대에 진입하였고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다. 그래서 더욱 런던이나 파리가 비교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선진국을 개도국이나 후진국과 비교한다면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분까지 나뿐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총 5권으로 구성되었다. 1권은 런던의 사계, 2권은 런던의 일상이다.



끝으로 거대 담론이나 불편한 논쟁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 책으로 나오기까지 지구 반대편에서 응원을 아끼지 않은 그와 그의 가족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또한 한국의 깨어있는 수많은 시민들에게도 경의를 표하고 싶다. 



@ 목차: 



프롤로그 

         

제1권: 런던의 사계(2019년 12월 16일)     


1부, 런던의 봄

1화. 매화를 위로하는 수선화

2화. Hay fever의 고통

3화. 한국전 베테랑의 정원

4화. 리치먼드 파크의 사슴들

5화. 꽃 사과나무에서의 장례식     


2부, 런던의 여름

6화. 연기들이 모락거려야 여름

7화. 가뭄과의 전쟁

8화. 템스 강변의 카페와 펍

9화. 노출에는 수위가 없다

10화. 게으른 석양     


3부, 런던의 가을

11화. 입학과 축구 시즌

12화. 홍차야 반가워!

13화. 핼러윈 저녁의 극단적인 선택

14화. 빨갱이야! 온통 빨강이네

15화. 벽난로에서 태어난 생명들     


4부, 런던의 겨울

16화. 겨울왕국

17화. 런던에 눈이 온다면?

18화. 낮부터 시작되는 저녁

19화. 템스 강도 얼까?

20화. 겨울에도 맨발로 노는 아이들




제2권: 런던의 일상(2019년 12월 23일)  

 

1작지만 큰 차이

1화. 영국의 팁 문화

2화. 런던의 횡단보도

3화. Roundabout

4화. 허리를 굽히는 버스

5화. 택시 내부구조   

  

2약자에 대한 배려

6화. Red book

7화. Zip oyster

8화. Midwife

9화. Lady first

10화. Privacy     


3삶의 여유

11화. 홈리스와 중독자들의 천국

12화. 예측 가능한 삶은 행복할까?

13화. 런던에 눈이 온다면?

14화. 과거 현재 미래의 공존

15화. 서울 하늘에서 바라본 런던     


4고독 사회

16화. 자발적 고립

17화. 영국 할머니들의 쇼핑 법

18화. 넘쳐나는 독립투사

19화. 외로움은 사회적 전염병

20화. 설렘이 모여 사랑이 된다.     


에필로그




@ 에필로그 


템스 강은 그의 오랜 이민생활을 지켜본 산 증인이었다. 그 또한 템스 강을 통해 런던 사람들의 일상을 보고 느끼고 배웠다. 일방통행의 주입식이 아닌 양방통행의 학습법은 스승도 학생도 없었다. 단지 템스 강은 쉬지 않고 흐를 뿐이었다. 그가 슬프거나 우울해도 흘렀고 기쁘거나 즐거워도 흘렀다. 순간 순강의 삶에 휘둘리지 않았다.      

20년간 템스를 관찰하면서 느끼고 배운 점은 꾸준함이었다. 템스의 물은 단 한 번도 맑거나 진한 청색을 표현해내지 못하였다. 언제 봐도 탁하거나 심지어 흙탕물이었다. 유속 또한 아무리 홍수가 져도 서두르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비의 나라 잉글랜드를 굳건하게 떠 받쳐주는 것은 섬 전체를 호위하듯 감사고 있는 위세 당당한 대서양이 아니었다.  바로 짧고 가늘다 못해 울퉁불퉁한 템스였다. 어디를 봐도 화려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런 템스 가 한때 해가지지 않는 나라의 원동력이었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 템스를 끼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특별하거나 거창하지 않았다. 소박하고 인간답게 살아가려 나름 열심이었다. 불의에 저항하고 부도덕에 맞서며 부정과 부패를 강물에 흘려보냈다. 지상에서는 절대 그러한 모습을 용인하지 않을 태세였다. 그 결과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오늘을 살 수 있었다. 물론 그 녹여낸 혼탁의 대가는 고스란히 템스의 차지였다. 템스를 흐르는 강물이 여전히 혼탁해 보이는 이유다.      


템스 유역의 시민들은 유별나게도 자연친화적이었다. 개발보다는 보존을 삶의 가치로 내세웠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흉물스러우면 흉물스러운 대로 보존하였다. 수백 년은 족히 넘었을 화력발전소들은 폐허처럼 템스 유역에 남아있었지만 흉물스럽다는 이유만으로 철거되지 않았다. 그만큼 역사적 가치가 담겨 있고 하늘을 찌를 듯한 그 커다란 굴뚝에 영국인의 삶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템스 유역에 사는 사람들은 내일이나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그만큼 탄탄한 복지 시스템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치열한 자본주의의 현장이지만 기회의 공정성과 분배의 정의 앞에서 그 자본주의는 본연의 역할에만 충실할 뿐이다. 북 치고 장구치고 까지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강 유역의 사람들도 하루빨리 분배의 정의가 이루어져서 내일이나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살기를 희망한다. 내일이나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행복은 공염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떳떳한 행복도 마찬가지다. 그 행복이 며칠 또는 몇 달이나 지속되리라고는 당사자는 물론 주위 사람들도 고개를 젓기 때문이다.   

   

누구나 꿈꾸는 이상적인 삶은 행복해지는 것이다. 오래 사는 것도 부자로 사는 것도 잘 사는 것도 아니다. 행복해지려면 내일이라는 희망과 먼 미래에도 나를 돌봐줄 정부와 국가가 있어야 한다. 개인의 건강이나 부는 아침 안개 같은 것이다. 아무리 농염한 안개도 한나절 이상을 가지 못한다. 그 안갯속에서 행복을 찾아 아옹다옹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안개가 물러난 자리에 남아있는 것들은 추악하거나 음흉한 사리사욕이 아니기를 바란다. 눈앞의 이익에 후손들의 미래를 절도하는 몰염치한 일들이 이제는 줄어들기를 바란다.       

              

2019년 12월 23일

경기도의 한적한 카페에서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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