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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Feb 09. 2020

비혼! 석기시대의 유물을 밀어내기 시작하다!

페닐 에틸아민(PEA)의 저주 1권 1화. 인류의 사기 문화유산


”첫눈에 당신에게 반해버리고 말았어요! (중략) 당신과 일평생을 같이 하고 싶어요! (중략) 저와 결혼해 주세요! (중략) 신랑 신부는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어쩌고 저쩌고.. (중략) 미안해! 생각해 보니 당신 하고는 계속 같이 살기는 어려울 것 같아! (중략) 서로를 위해 이혼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거 같아! (중략)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랄게!”     



그의 연애들과 실연은 물론 결혼과 이혼에 이르는 길은 이처럼 흔한 패턴의 반복이었다. 남들 다하는 일이고 새삼스럽게 이슈가 될 이유도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일상이었다. 돌이켜보면 모두가 우발적인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개연성도 인과관계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하나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된 파생상품일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결혼하던 날을 잊지 못한다. 연애에서 결혼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 승리한 수컷 사자처럼 좋아서 속으로 으르렁대며 포효했었다. 야호! 드디어 나도 장가간다.

      

흔히들, 우연한 만남을 인연 심지어는 운명이라고까지 치켜세운다. 여기에 반기를 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본능처럼 누군가에게 콩깍지가 쓰이는 일과 결혼제도와의 관계에 의문을 제기할 뿐이다. 왜 한 사람과 평생을 같이 해야 하는지에 의문을 품은 것이다. 20년 전에는 결혼 제도에 반기를 드는 일은 흔치 않았다. 이혼을 할 때 하더라도 결혼은 해야만 하는 것쯤으로 당연시 여기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에도 결혼은 "해도 후회, 하지 않아도 후해"라는 생각이 강하였다. 그렇지만 비혼이나 비혼 주의라는 단어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사이 세월은 흘렀고 상황은 바뀌었다. 아예 결혼을 하지 않는 비혼 주의자들이 늘고 있다. 이처럼 결혼 제도에 반기를 들기까지는 수 만년이란 세월이 필요하였다. 인류의 시작과 함께 이어져 내려온 결혼제도는 그 자체가 철옹성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결혼할 무렵 유선도 결혼을 하였다. 그녀의 결혼식은 한참이 지난 후에 알았다. 그녀가 왜 청첩장을 보내지 않았는지는 의문이었다. 그는 결혼 후 영국으로 떠났고 그녀는 중국으로 떠났다. 중국 주재원으로 파견된 남편을 따라간 것이었다. 유선만은 결혼을 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녀를 거쳐 간 많은 남자들은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의 100일간의 처절한 페닐 에틸아민 분비를 유선은 알지 못한다. 만약 그녀가 알았더라면 그도 내침을 당했을 것이다. 그는 어쩌면 간택도 받지 못하고 내침을 당하는 초유의 사태를 우려했는지도 모른다. 90년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는 어느 해로 기억한다. 그해 4월 말의 약소국 외교 정책론이라는 수업시간이 지금도 선명하다. 미스코리아 서울 진에 당선된 학생이 같이 수업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학내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사건이기도 하다. 민족 운운하는 학교에서 미스코리아는 말이 되지 않는다는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그녀는 예체능 특기생으로 입학하였다. 항상 수업에 열심이었고 청바지에 라운드티를 입고 다니는 지극히 평범한 여학생이었다. 어느 봄날부터 그녀는 한동안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방송과 언론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녀가 그해 늦은 봄 미스코리아 서울 진에 당선된 것이다. 학교의 수치라며 정치 사회대 후문의 오르막길에는 대자보들이 매일 붙었다. 총학생회와 각 동아리 연합 등은 마치 면암 최익현 선생의 상투 철학 같은 글들을 쏟아내기 시작하였다. 그녀와 안면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친분이 있지는 않았다. 유선 때문에 그녀를 알게 되었을 뿐이다. 매일 새벽에 도서관 자리를 잡으러 올라가면서 그 대자보들을 떼어내기도 하였다. 유선의 부탁이었다. 새벽에 때어낸 자리에 대자보는 다시 붙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의 기사도 정신은 반 강제적인 호기와 어쩔 수 없는 정의였다. 그녀는 기말고사가 끝나고 다시 볼 수 있었다. 미스코리아 진이 되어서 나타난 것이다. 여전히 청바지에 하얀 라운드 티셔츠 차림이었다. 저렇게 평범하고 눈에 띠지도 않는 여학생이 미스코리아 진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그녀는 조신하였고 착했지만 그 후로 마주칠 일이 없어졌다. 어쩌면 유선이 더 예뻤서였는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의 홍보대사로 전락한 미스코리아라는 제도가 지금도 잔존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 당시에는 신데렐라가 되는 등용문이었다. 



유선은 골초였다. 그에 못지않게 담배를 많이 피웠다. 어느 날 무언가가 가슴에서 뛰쳐나와 담배 연기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4월 말 그 수업시간 이후로 시작된 가슴앓이는 심각하였다. 혼자만의 사랑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아름다운 봄날을 사막으로 만들고 있었다. 몇 년 전 4월 중순 강원도 홍천의 모 사단 연병장에서 모래바람을 마주하며 느낀 상막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그 시절로 돌아가서 연병장을 구르며 육체를 극한으로 몰아넣고 싶었다. 그녀의 담배 불을 붙여주면서도 멀쩡하던 손이 떨리기 시작하였다. 그 시절, 불티나 라이터의 불꽃은 때로는 화염방사기로 돌변하였다. 자동차의 급발진 같은 사고가 불티나에서도 종종 나타났다. 하지만 그 원인을 밝힐 수는 없었다. 300원짜리 라이터의 흔한 불량품 정도로 치부하고 말았다. 한 번은 학생회관 앞에 있는 민주광장의 벤치에서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불티나의 불꽃이 너무 길게 뿜어져 나와 그녀의 머리에 불이 붙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불은 꺼졌지만 제법 머리가 타버렸다. 얼굴이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머리는 다시 자라기 때문이다. 머리에 불이 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모든 일은 순식간이었고 불을 끄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그녀는 그날 미용실에 가서 단발이 되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도 우스운 이야기다. 하지만 그는 그 재미있는 진풍경 앞에서도 웃지 못하였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유선이라는 동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100일간의 짧지만 강렬한 페닐 에틸아민 분비는 자연스럽게 희석되고 있었다. 그녀도 같은 해에 졸업을 하였고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졌다. 그는 그 이후로도 많은 인연을 만들어나갔다. 우연을 가장한 인연의 총합은 언제나 마이너스였다.      

결국, 그는 그의 인생에서 이성을 빼기로 결심하였다. 포기를 모르는 자신에게 회의와 환멸이 몰려오던 시기가 세기말과 겹치면서였다. 금단 현상처럼 다가오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급하게 봉사모임을 만들고 활동을 시작하였다. 뭐라도 해보려는 몸부림은 페닐 에틸아민에 대한 거부이자 독자생존의 준비과정이었다. 당시 그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프랑스의 장 폴 사르트르였다. 사르트르와 시몬느의 계약결혼은 발간 당시 프랑스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을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사르트르의 계약결혼마저도 석연치 않게 다가왔다.      



누구나 당연시하는 결혼 제도 자체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에게 사유재산의 축적이 불가능했더라면 지금처럼 1처 1부제의 결혼제도는 정착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시대에 맞게 진화해온 결혼제도는 언젠가는 사라질 수도 있다. 결혼제도는 수만 년 지속되어온 가장 오래된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수만 년 동안 인류는 결혼제도에 의지해 왔다. 그 대가가 생존이었고 종족보존이었다. 누구에게나 당연시되는 이 제도의 모순과 부작용은 남녀의 성 평등지수가 높아질수록 현실화될 것이다. 일부 여성들에게는 결혼 제도가 더 이상 절실하지도 유효하지도 않다. 남편을 사냥터에 내보내고 육아를 전담하던 시대가 원시 수렵 사회였다. 농경사회도 마찬가지였다. 그 형태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지만 이제는 여성이 직접 사냥을 하는 시대에 돌입하였다. 인류가 지금까지 직면하지 못한 일대의 대 변화의 시대에 막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선은 그가 결혼하던 해 보다 1년쯤 먼저 결혼하였다. 그녀의 결혼은 충격이었다.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결혼해도 그녀만큼은 평생 독신으로 살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근거는 유선의 단순하고 직선적인 성격이 한몫하였다. 그녀는 누구에게 얽매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였다. 그녀의 사전에 연애는 있지만 구구절절한 사랑 따위는 없었다. 가슴앓이를 하던 그해 5월 초 무렵이었다. 중간고사가 끝나면서 그녀와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아침에 국수로 해장하였다. 그도 유선도 취했던 술이 깨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연애관을 털어놓았다.     



유선: 오빠야!

그: 왜?

유선: 오빠는 누구 좋아하는 여자 없어?

그: (머뭇거리며..) 있지!

유선: 누군데! 왜 아직까지 나한테 얘기 안 했어?

그: 미안 사실은..

유선: 그게 왜 미안할 일이야!!

그: 그게 아니고.

유선: 아이고! 울 오빠 이래 가지고 어디 장가나 가겠나..

그: 그렇지?

유선: 오빠야! 언제 시간 나면 그 언니 나 좀 보여줘라(딸꾹~~)

그: 그.. 그래!

유선: 아이고 울 오빠야가 제법이네. 나 몰래 여자도 만나고..

그: 그렇지?(아휴 이것을 소리 나지 않는 총으로 한방 먹이고 싶다!)

유선: 오빠야!!

그: 응

유선: 난 말이야! 한 놈하고 평생 사는 것처럼 웃기는 일은 없다고 봐!

그: 무슨 소리야?

유선: 오빠도 그렇지 않아?

그: 아닌데..

유선: 근데.. 왜 자꾸 사르트르 할아버지 이야기하는데. 그 할아버지 좋아하잖아!

그: 그렇긴 하지.

유선: 그래 오빠야! 는 나하고 평생 결혼 같은 이상한 거 하지 말고 나랑 따로 살자!

그: 뭔 소리야??

유선: 뭔 소리긴.. 내 진심이야!

그: 너 혹시 나 좋아하니?

유선: 응 하늘만큼 땅만큼..

그: (몹시 흥분하며..) 정말?

유선: 응! 정말. 근데 남자가 아니라 선배로 좋아. 그냥 죽을 때까지 그렇게 좋아해도 되지?

그: (합장 또는 기도하며.. 부처님 어찌하오리까!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응.. 그래     



그러던 그녀가 그보다 먼저 결혼을 하였다. 그에게 연락도 없이 극비리에 결혼식까지 올렸다. 유선은 왜 연락을 하지 않았을까! 그는 유선의 결혼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그녀가 과연 자신의 소신을 깨고 결혼이라는 제도에 흡수될 수 있을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유선은 결혼 직후 중국으로 떠났다고 했다. 그는 그다음 해에 수도자처럼 살기 위해 만든 봉사모임에서 한 이성에게 마비되고 말았다. 유선을 그렇게 떠나보내고 나서도 많은 실패를 맛보았다. 그의 결혼관이나 생각들은 정상적인 여성이 보기에 극히 비정상이었다. 페닐 에틸아민의 분비가 약했는지도 모른다. 그 또한 어떠한 사랑 따위에도 건재함을 과시하였다. 누구나가 당연시하는 결혼 제도를 거부할 이념무장에 돌입하던 시기였다. 스님이나 수사가 되어 신부님이 되려고도 무던히도 괴로워했었다. 페닐 에틸아민이 분비될 때마다 몸서리쳤고 본능과 이성 사이의 협곡에서 구름다리들은 출렁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봉사활동 중에 생에 가장 강력한 페닐 에틸아민의 공격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가 그렇게 반감을 가지고 혐오하던 결혼제도와의 상충은 어느 날 절충으로 돌아서 있었다. 일사천리도 진행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제도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시간으로의 여행에는 채 몇 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페닐 에틸아민에는 어떤 항생제도 소용이 없었다. 수만 년 동안 세상의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불과 몇 달에서 몇 년도 가지 못하는 유효기간의 덫에 빨려 들어가게 하는 마성이 페닐 에틸아민에는 들어있었다. 이중 삼중으로 코팅되어 어떠한 항생제로도 치료가 불가한 것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결혼 자체가 아니었다. 결혼 이후의 청사진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근거 없는 낙관론과 막연한 희망이라는 거미줄에 걸려드는 시간은 마법처럼 빨리 다가왔다. 페닐 에틸아민의 역할이 끝나는 시점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분명 커다란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그 거대한 음모가 말이다. 결혼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려면 결혼생활 내내 평생을 자기 부정과 합리화로 일관되게 밀어붙여야만 한다. 그것이 결혼제도란 덫의 민낯이었다. 다행히 요즘 세대들은 그 음모를 눈치채고 있다. 30년 전에 유선이 눈치채고 경계한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비혼이라는 무기로 무장한 채 그 거대한 음모와 맞서고 있다. 신념을 가지고 단호하고 용감하게..   





참고로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는 삼성동 아지트리에서 "나는 매주 한 권 책 쓴다" 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루 만에 책을 쓰고 매월 또는 매주 책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처럼 매주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이 15명(매월은 60명 이상) 이상 되었다. 앞으로도 그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강의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https://www.onoffmix.com/)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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