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런던남자 Jan 31. 2020

너! 이성은 언제 잃을 건데..

페닐 에틸아민(PEA)의 저주 #1. 2☆이전

#프롤로그

인간의 본능과 결혼제도!


그가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4월 중순의 대학 캠퍼스는 한껏 들떠 있었다. 사방에서 피어나는 봄의 전령들에 잠식당하기 시작하면서 덩달아 군상들의 짝짓기도 시작되었다. 360도 작동하는 수컷들의 촉수 못지않게 암컷들의 유혹도 만만치 않다. 젊은 청춘들은 또래의 누구라도 붙잡고 뭐라도 해보려는 욕망으로 이글거렸다. 젊은 청춘이었던 그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동성에 대한 욕망은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없다. 다행이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이성에만 반응한다. 동성끼리는 종족 번식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미 그의 DNA는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인간이 언제부터 세상에서 가장 부도덕한 결혼제도라는 덫에 걸려들기 위해 스스로 몸부림쳐야 했을까! 그것도 한 배우자와 평생을 말이다. 안타깝게도 거미줄에 걸려든 곤충들이 거미줄을 끊고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거미줄에 스스로를 옭아매려고 몸부림치는 군상들의 모순은 어쩌면 동물보다 못한 기억력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자의든 타의든 거미줄에 걸려든 이상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거미줄에서도 온갖 유혹과 일탈이 기다린다. 어쩌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본능은 철저하게 억제당한다. 생각도 행동도 배우자 몰래 해야만 한다. 죽을 때까지 거미줄이라는 덫에 걸려 살면서 없는 사랑도 지키고 머나먼 행복도 찾아내야 한다. 그것이 미덕이고 도덕이고 심지어 진정한 사랑이라고 포장을 당한 채 살다가 지구별을 떠나간다. 어디로 가는지는 아직 아무도 물증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일 수도 다행일 수도 있다. 만일 인간이 동물처럼 사유재산을 소유하지 못하였다면 현존하는 결혼제도가 유지될 수 있었을까! 에 대한 답은 회의적이다.


그는 군 복무와 배낭여행 및 어학연수 등으로 인해 휴학이 길어졌다. 마지막 학기를 위해 다시 학교로 돌아오던 날은 영국에서 귀국하고 난 이후였다. 마지막 한 학기를 남겨두고 돌아온 캠퍼스에는 막걸리를 마시며 어수선한 낭만을 즐기던 그 시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민주화 운동이 일단락되면서 학내 분위기는 공부 모드로 전환되어 있었다. 그가 몇 달 동안만 머물기로 한 고시원은 중앙 승가대학이 있는 개운사 앞에 있었다. 정경대학 후문 쪽에서 약간 안쪽이었다.


봄이 완연해질수록 그의 속은 타들어만 갔다. 아직 경험해 보지는 않았지만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캠퍼스에서는 후배 유선과 매일 붙어 다녔다. 남들은 CC(Campus Couple)인 줄 알지만 그녀의 옆에는 갓 입학한 신입생이 보디가드처럼 따라다녔다. 누가 보아도 둘은 연인이었고 그는 그냥 밥 잘 사 주는 좋은 선배였다. 새로운 수컷에게 밀려나는 느낌이었지만 그녀를 잃고 싶지는 않았다. 참 묘한 수컷의 심리였다. 전투라도 신청해야 하는데도 꼬리를 내리고 집사 노릇을 자처한 것이다. 그의 일과는 매일 이른 아침에 중앙도서관에 가서 자리를 잡아두는 일로 시작되었다. 그를 위한 일인지 그녀를 위한 일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놈의 자리까지 확보해달라는 유선의 요청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도서관 자리 쟁탈전이 치열하였다. 자리를 잡지 못하면 하루 종일 메뚜기 신세로 전락하여 남의 비어있는 자리를 전전해야 했다. 당시에는 카페가 없던 시절이었다. 담배 연기 자욱한 다방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나란히 잡은 세 개의 자리의 중앙에는 유선이 앉고 그녀의 왼쪽에는 신입생이 앉았다. 유선의 오른쪽은 그가 앉았다. 이건 완전한 좌청룡 우백호였다. 둘이 또는 셋은 이상하지만 붙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 가장 속상할 때는 그놈의 밥값까지 계산할 때였다. 그마저도 유선에게 멋진 선배로 점수를 따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페닐 에틸아민의 범람!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체내 호르몬의 변화가 감지되면서 일생일대의 혼돈을 겪게 된다. 그해 4월 말의 어느 날 밤이었다. 언젠가는 소설로 그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어 졌다. 그래서 그때의 심경들을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일기도 에세이도 소설도 아닌 단순한 기록이었다. 심장박동 수와 혈압 등을 기록하듯이 말이다.


그날은 금요일 오후였다. 정외과의 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유선과 같이 수강하는 유일한 과목이었다. 그는 이수해야 할 학점이 6학점이었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9학점을 수강 신청하였다. 이수 학점을 채우면서 졸업논문 짜깁기에 정신이 없던 와중이었다. 국회 도서관까지 다녀왔다. 누가 보면 박사학위 논문 준비하는 대학원생으로 착각할 정도다. 그날은 그녀와 나란히 앉아 약소국 외교 정책론이라 수업을 들었다. 수업 시간 동안 내내 백발의 젊은 교수님의 열강이 이어졌다. 핵무기와 핵 억제력에 대한 이야기들이 커다란 강의실을 유령처럼 떠돌기 시작하면서 식은땀이 났다. 그 교수님은 벌써 30여 년 전에 지금의 남북문제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었다. 그녀의 보디가드 신입생이 없는 유선의 옆자리에 앉기 시작한 것도 벌써 두 달이 지나간다. 8번째 수업이었을 것이다. 한 번도 빼먹지 않았다면 말이다. 유선에게서는 늘 그녀만의 향이 났다. 머리카락에서도 옷에서도 향수인지 화장품인지 모르지만 향이 흘러나왔다. 싱그럽지만 시큼한 라임과 레몬의 중간 향이었다. 그녀의 까칠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성격도 배어 나왔다.


문제는 그날 수업 시간 내내 그의 몸에서 페닐 에틸아민이 분비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수업을 마치고 다시 도서관에 가서 그녀 곁에 앉을 자신이 없어졌다. 유선의 옆에는 다리가 유난히 긴 모델 같은 신입생 놈이 앉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의 기록들은 처절하였다. 벅찬 감동과 희열, 사랑, 증오 그리고 죽음 등의 단어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고시원에 누워서 몽환적인 봄날 밤을 허우적거린 것이다. 다리를 책상 아래로 뻗어야 누울 수 있는 고시원의 작은 공간은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다음날부터는 중앙도서관 자리는 두 자리만 잡아야 했다. 도저히 그녀의 곁에 다른 수컷과 함께 앉을 자신이 없었다. 그녀로부터 간택을 받을 확률이 희박하다는 사실은 직감으로 전율처럼 타고 들었다.


4월 말부터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까지의 기간을 지금도 잊지 못하는 이유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어이없음 때문이다. 유선의 주위를 맴도는 그는 부인할 수 없는 수컷이었다. 지독하게 외롭고 처절하게 아팠다. 그녀의 냄새는 물론 생각만으로도 정자들은 흥분하였고 그녀의 몸을 파고들 기세였지만 언제나 생각뿐이었다. 장장 100일간의 사투였다. 당시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비상사태였다. 유효기간이 끝나기 전에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녀에게는 이미 젊고 싱싱한 수컷이 있었기 때문에 운신의 폭은 좁고 가팔랐다. 곁에 있기는 하지만 먼발치에서 주위를 맴도는 수컷 사자의 신세였다.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어 암컷들을 전부 차지하려면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것이 수컷 사자들의 운명이다. 때를 기다리다가 그때가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백수의 제왕에게도 넘지 못할 벽이 있는 것이다. 차라리 그 고통을 감내하고서라도 삶을 이어가는 것이 수컷 사자들의 운명이다.


그는 예상대로 100일 동안 아무 반란도 일으키지 못하였다. 그 흔한 단어 하나 내뱉지 못하였다. 그녀의 마음을 훔칠 수 없다는 절망은 깊고 슬펐지만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 자라고 있었다. 그 신입생 녀석에게는 피할 수 없는 군 입대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컷 신입생은 결국 한 학기를 마치고 군에 입대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옆자리는 더 젊고 더 멋진 수컷으로 즉시 대체되었다. 그는 다시 절망하였지만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확률 게임에서 이길 승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 용기도 배짱도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결과가 지금까지 그녀와의 좋은 선후배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그녀는 두 번의 성공적인 결혼과 두 번의 성공적인 이혼을 하며 한층 성숙해 있었다.


지금도 좋은 선후배 사이가 주는 편안함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깊은 아픔이 내재되어 있다. 아주 오래된 기억들을 소환하는 이유는 페닐 에틸아민의 사기를 파헤치기 위해서다. 유선은 그 뒤로도 많은 수컷들을 관리하며 당대를 호령하였다. 수컷들은 몰려들었고 하루살이처럼 청춘을 불태우다 버림받았다. 돌이켜보니 그것이 가장 솔직하고 도덕적인 사랑의 방정식이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흔한 종족 번식의 과정일 뿐이다. 인간은 그것을 유별나게 대하고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의 이름이 바로 ”사랑“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이 동물이기를 거부한 태초의 인간은 누구였는지 묻고 싶다. 창조나 진화의 문제를 넘어서 그 이면거래를 파헤치고 싶다. 살아남기 위해 거대한 음모를 정자와 난자에 코팅당한 채 인류는 아파하고 있다. 그 코팅의 정체가 사랑할 때 분비되는 페닐 에틸아민이다. 유효기간이 최대 3년이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이제는 그 코팅을 벗겨내고 싶다. 이제 사람들은 3년이라는 유효기간마저도 기대하지 않는다. 유효기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약보다 더 심한 중독 현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방황하고 아파한다. 흔한 유행가 가사들이 애절하다 못해 절절한 이유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자연으로 돌아갈 시기가 오고 있다. 그 자연은 동물의 세계로의 회기다. 페닐 에틸아민의 사기와 농단에 현혹되지 않을 재간은 없다. 하지만 그것은 동물적인 본능에 지나지 않는다. 그 본능이 일시적인 쾌락과 유희에 불과해야 한다. 평생을 이어간다는 일은 자신은 물론 배우자를 기만하는 가장 부도덕한 일이다. 신들은 물론이고 통치자들도 결혼제도를 합리화시켜야만 했다. 그들에게는 다스려야 할 백성이 필요했을 뿐이다. 3개월이나 3년의 유효기간으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한 배우자와 같이 살라는 것은 동물의 세계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결혼제도라는 거대한 음모!


동물은 인간처럼 비도덕적이지 않다. 이성을 가졌다는 인간치고 도덕적인 인간은 없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도덕이란 잣대는 동물의 세계에서 보면 가장 비도덕적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본능을 평생 억제하거나 포기해야 하는 것이 결혼생활이다. 동물들의 짝짓기는 종족보존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들의 숭고한 행위를 사랑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다. 유독 인간만이 종족보존을 위한 임무 외의 목적으로 섹스를 즐긴다. 순간의 쾌락은 길어봐야 한 시간 남짓이다. 

인간 세상은 참으로 가관이다. 주색 가무가 예술로 승화하고 섹스는 사랑이라는 과대포장 속에서 타다 말다를 반복한다. 영장류라고 온갖 오만을 떨면서 그 순간의 쾌락 앞에 모두가 이성을 잃어버린다. 아니, 이성을 잃지 않으면 주변에서는 난리가 난다. 부모 세대가 그랬듯이 자식 세대들에게도 이성을 잃을 것을 강요당한다. 그리고 어쩌다 뿌려진 씨앗들이 자라나 또 다른 과대포장의 지난한 과정을 반복한다. 그 과정을 벗어나려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각자 그 이유가 다르지만 결혼제도에 반기를 든 것은 분명하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결혼제도라는 거대한 음모가 인류에게 가해 온 피해는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고 크다. 이제라도 아주 조금씩 그 음모들이 벗겨지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는 삼성동 아지트리에서 "나는 매주 한 권 책 쓴다" 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루 만에 책을 쓰고 매월 또는 매주 책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처럼 매주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이 15명 이상 되었다. 앞으로도 그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강의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https://www.onoffmix.com/)에서 할 수 있다.


"나는 매주 한 권 책 쓴다" 강의 신청하기


작가의 이전글 이혼! 고양이의 친권과 양육권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