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 하루 만에 책 쓰기로 매주 한 권 책 쓰기 프로젝트는 나의 평생 프로젝트로 2019년 2월 11일 월요일에 춘천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죽기 전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을 소망한다. 만일 이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면, 나는 이미 질병과의 전투에서 1패를 기록하며 다른 별로의 고독한 여행을 시작하였을 확률이 아주 높다.
@ 제목 : 그 남자의 살림살이
@ 부제: 생의 첫 휴일은 넘쳐 흘러내리는 널브러진 자유 앞에 의미를 상실하였다. 그 무엇도 아닌 경계인의 삶은 이어질 수 있을까?
@ 출판사: Easy books
@ 저자: 런던남자
@ 분량: e book 기준 165페이지(폰트 22)
@ 목차:
제1화. 생의 첫 휴일에
제2화. 전투준비태세와 피아식별
제3화. 하이에나를 반려동물로 키운다구!
제4화. 글쓰기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제5화. 만일, 다산 선생에게 노트북이 있었더라면?
제6화. 브런치에 글을 300개 쓰고 느낀 점 10가지!
제7화. 채식했을 때 음경 크기와 발기시간의 놀라운 변화
제8화. 병원격리 2주를 마치며..
@ 소개 : 제1화. 생의 첫 휴일에
노동의 가치와 인생
마르크스는 노동을 인간의 본질적 속성, 즉 의식적 생활 활동을 노동과 동일시하였다. 이 의식적 활동을 통하여 자신의 활동과 공동체의 성원으로서 사회적 위치와 존재를 깨닫게 된다고 그의 [경제학철학수고]에서 말하고 있다.
약속도 없는 일요일! 마음 편하게 하루 종일 쉬고 있으면 왜 불안감이 밀려오는 것일까?
우리는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일한다. 노동은 분명 소중하고 가치 있는 행위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일하지 않고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많은 현자들과 기업가들이 노동에 가치를 부여해왔다. 그 결과는 아니지만 저마다의 인생은 일하려고 주어진 것처럼 소비되고 만다. 일만 하다 가려고 세상에 오지 않았다는 것쯤은 누구나 각성하고 있다. 하지만 꼬리에 마치 고깃덩어리라도 붙어있는 줄 알고 끊임없이 꼬리를 잡으려 돌고 도는 개는 끝내 그 고깃덩어리가 허상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안다고 해도 이미 때는 늦고 만다. 현실의 무게 앞에 때늦은 각성은 약국에서 박스로 파는 카페인 그득한 싸구려 드링크만도 못하다. 일에 방점이 찍힌 생을 살다가 좀 쉴라치면 병마들이 그새를 참지 못하고 좀비처럼 덤벼들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내가 잠시라도 쉬고 있으면 불안이 엄습해왔다. 꼭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일요일 오전을 그럭저럭 한가하고 여유롭게 흘려보내지만 오후엔 뭐라도 가치 있는 일을 하려 들었다. 본능처럼 말이다. 이는 가정이라는 울타리 구성원이나 혼자서 사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그렇다면 진정한 휴식은 무엇일까?
나는 그 휴식들을 발견하고 하나씩 실천해볼 생각이다. 어쩌면 나의 휴식들은 오로지 나를 위해 하는 모든 행위들을 포함하게 될지도 모른다. 다만, 효율성이나 생산성이 배제된 행위들이어야만 한다.
돌이켜보니, 지금까지 수많은 주말과 휴일을 소비해왔다. 그 횟수를 헤아리는 일 자체가 무의미해질 만큼 많은 세월은 흘러버렸고 나는 어느덧 반백년 이상의 세월을 하수구로 흘려보내고 말았다. 그렇다고 세월을 탓할 수도 없고, 나 자신을 탓할 수도 없다. 단지, 흥청망청 써버린 세월의 과소비에 대한 대가는 몸과 마음으로 감당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앞만 보고 무던히도 열심히 살았다고 자위하는 자신에 절망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요즘은 의도적으로 글쓰기도 멈추고 독서와 사색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바싹 엎드린 채 여러 날을 보냈다.
이제부터라도 나를 위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 라면을 하나 끓여먹어도 우아하고 격조 있게 먹고 싶다. 냄비째 가져다 나무 받침대 위에 올려놓고, 뚜껑 위에 면을 후후 불며 식혀가며 먹는, 상당히 저급한(?) 삶에서 탈출하고 싶다. 다시 라면을 끓이려면 냄비 설거지를 해야만 한다. 꼴에 입맛은 까다로워 컵라면은 절대 사절이다. 싱크대에 내팽개쳐진 채로 놓여있는 라면 냄비가 마치 내 인생 같았다. 필요할 때면 씻어서 사용하고 허기를 채우고 나면 다시 싱크대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지는 노란 양은 냄비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심란하면서도 서글펐다. 저 냄비나 내 인생이나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지금까지의 삶의 패턴을 송두리째 버리고 새 출발을 하고 싶다. 냄비가 그걸 가르쳐줄 줄은 몰랐다. 그러고 보니 소크라테스나 공자보다 더 위대한 스승이 바로 냄비였다.
위대한 스승을 재활용 코너에 버리다.
그래서 위대한 스승을 버리기로 하였다. 뚜껑 포함 3천 원짜리 싸구려 냄비를 재활용 코너에 버리고 올라오면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를 흘깃 보았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조차 나와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어색하다. 마치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내 몸을 빌려 쓰는 느낌이다. 전신 거울은 아니지만 여기저기 붙어있는 거울들은 오목과 볼록의 중간 정도에서 부분 부분이 일그러져 보였다. 그랬다. 지금까지 내 모습이 바로 저 찌그러진 모습이었다. 이젠 나 자신을 그렇게 막 대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자신에게도 인정은 차처하고 대우조차 받지 못하는 남자를 누가 좋아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모자라 성한 곳도 없이 나이마저 들어가는데.
그래서 지난주부터 결심하였다. 매주 하루는 정말 나를 위해 살아보자고! 나를 위해 24시간을 사용해 보자고! 그러려면 나의 생산성 없는 부지 럼 떠는 습관부터 버려야만 했다. 토요일은 물론 일요일에도 도서관이나 별 다방에 아침부터 1등으로 출책(출석체크)하는 일도 중단해야만 한다. 물론, 한없이 늘어질까 봐 그러는 줄 안다.
드디어 1주일간의 준비 끝에 오늘 목요일이 왔다. 나에게는 성스러운(?) 일요일인 셈이다. 어쩌면 내 인생을 통틀어 첫 휴일 인지도 모른다. 사실, 지난주부터 나름대로 준비한 세간살이들은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잠을 자는 곳에는 커다란 해피트리와 야자수들이 둘러싸게 배치를 마쳤다. 그리고 작은 화분들이 20여 개나 들어왔다. 혼자 살지만 살림살이를 하려면 새로운 식구가 필요했다. 혼자 사는 사람이 생뚱맞게 무슨 살림살이냐고 할 수 도 있다. 그것도 50대 아재가 말이다.
나는 고양이보다 더 이기적으로 살기로 했다.
먼저, 해피트리, 올리브, 유칼리툽스, 뱅갈 고무, 선인장, 동양란, 허브, 몇몇 다육이들(이미 꽃을 피운 녀석도 있다.), 기타 등등의 가족들이 어제까지 입주를 마쳤다. 작은 오피스텔이 생뚱맞은 푸르름으로 활기 넘친다. 예쁜 화분으로 분갈이들도 마쳤다.
마음 같아서는 내친김에 점찍어 두었던 길냥이 한 마리까지 모셔오고 싶었지만 서로를 위해 포기하였다. 야생의 길냥이가 아파트도 아닌 좁은 오피스텔에서 갇혀 사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영국은 고양이의 천국이다. 한집 걸러 한 마리씩 사는 것 같다. 영국처럼 고양이들이 켓 도어를 통해 2층 집을 자유자재로 느나들 수 있으면 알마나 좋을까? 그래야 고양잇과 동물 특유의 영역싸움도 하고 다른 고양이들과의 사회화 과정에도 일정 부분 참여할 수 있다. 개와 달리 고양이는 산책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스스로 산책하게 해줘야 한다.
가끔 아파트나 오피스텔의 방충망에 매미처럼 붙어있는 고양이들이 보인다. 안쓰럽고 짠하다. 그래도 길냥이보다 행복한 녀석들임에 틀림없다. 의식주에서 식과 주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자유와 교환당한 식과 주는 생존이 걸린 문제다. 어쨌든 고양이는 가족으로 모셔오기 힘들다. 자주 오피스텔을 비우기 때문에 대신 돌봐줄 사람이 없다. 1월처럼 2주 이상 입원하면 길냥이를 돌볼 방법이 없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기적이고 자유롭게 사는데 길 양이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미안하다. 점찍어 두었던 길 양아! 난 너보다 더 이기적으로 살기로 했거든!)
나만을 위한 생애 휴일 풍경에는 진정성을 담으려 나름 노력했다!
목요일 아침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침 공복에 한강변에서 2시간을 걷고 걸었다. 걷는 시간은 무릎 재활에도 좋지만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들이다. 사유의 시간에는 나 자신만 존재한다. 당장 다음 달 월세와 공과금 그리고 병원비와 임플란트 비용까지 걱정거리들이 빨랫줄에 빨래가 널리듯 널려있다. 그래도 잠시나마 현실을 부정하고 잊을 수 있는 시간이 바로 걷는 시간이다. 자주 가는 한강변의 올갱이 해장국에서 브런치를 먹고 다시 한강변을 걷는다. 다슬기가 표준어 같은데 여기 김포에서는 다들 올갱이라고 한다. 아마 경기도나 충청도 사투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전라도에서는 대수리라고 한다. 햇볕이 미어터지는 커다란 직사각형의 식당 창문 너머로는 일산대교가 보인다. 저 다리를 건너면 일산이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걷다가 조류생태공원의 풍차 근처에 자릴 잡았다. 몇 시간이고 햇살들을 온몸으로 맞이한다. 휴대폰에서는 책 읽어주는 남자나 여자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귀로 듣는 독서는 눈에 피로를 주지 않고 시신경을 쉬게 해 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지난해부터는 매일 한두 권은 귀로 듣는다. 특히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오로지 귀만 쫑긋 열어두고 소등한다. 거의 대부분은 절반도 듣지 못하고 잠에 패하고 말지만 그 또한 의도한 패배이고 행복이다. 오늘 공원에서는 "왜 우리는 거짓말을 할까?"와 "말초신경병증의 증세와 원인" 2권을 듣다 보니 3시간이 훌쩍 흘러버렸다. 바람은 여전히 냉기를 머금고 있지만 목요일 나른한 오후의 이른 봄을 느끼면서 책을 접하는 일은 행복이었다. 잠시 동안이지만 내가 가꾸고 수확한 행복의 뿌리들은 알차고 토실하다.
책을 들으면서 졸리다 싶으면 재활운동을 틈틈이 해준다. 한 발로 벤치에 올라갔다 내려오기 동작을 반복하며 얼마 전 수술한 왼쪽 무릎관절 주변의 잔근육들을 키우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멍 때리기다. 잡념이 스멀스멀 올라오면 잠시 눈을 감는다. 눈만 감아도 멍 때리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참선이나 명상이라는 거창한 것도 알고 보면 멍 때리기가 아닐까! 단전에 힘을 주고 호흡을 하는 것 자체가 자연스럽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스트레스일 수도 있다.
별 다방이나 도서관 안 가고 버텨보기는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매일 마시는 커피를 생략할 수는 없다. 나는 어느 정도 카페인 중독자임에 틀림이 없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하루 종일 커피 생각이 간헐적으로 난다. 공원에서 나와 처음으로 커피를 테이크어웨이 해서 마셔보기에 도전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메가 사이즈가 3천 원이다. 오피스텔로 돌아와서 시원한 커피를 반 정도 마시고 그동안 미루고 미루어 두었던 자전거를 타려고 나선다. 본격적인 라이딩을 하려면 6개월 동안이나 겨울잠을 자던 자전거에 바람도 넣어주고 윤활유도 칠해 주어야 한다. 내친김에 후미등도 교체하였다. 잠깐이지만 동네 자전거 매장 사장님과 라이딩에 대한 대화가 오고 간다. 벌써 마음은 한강에서 낙동강 변까지 내달린다. 올해는 국토 대 종주를 꿈꾸어 본다. 남들은 걸어서도 하는데 자전거로 못한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라이딩은 동네 주변의 한강변에서 몸과 자전거를 동시에 풀듯이 가볍게 이루어졌다. 자전거 녀석도 간만의 외출에 신이 난 모양이다.
나는 매일 오피스텔을 나가고 들어올 때마다 현관의 자전거에게 인사를 한다. 그리고 스위치를 켠다. 자전거와 인사는 안장을 툭툭 두 번 다독이는 방식으로 인사한다. 나갈 때는 "아빠 다녀올게! 집 잘 보고 있어!" 돌아올 때는 "아빠 다녀왔네. 심심했지? 하루 종일 집 잘 보고 있었어?" 그래도 제법 몸값이 있는 녀석이라 밖에 길냥이처럼 둘 수도 없다. 자전거가 예뻐서가 아니라 잃어버리면 목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자전거와의 동거를 허락한 것도 역시 돈이었다.
라이딩을 마치고 처음으로 돌아와 오피스텔 대청소를 했다. 대청소는 차일피일 미루던 험난한 과제였다. 살림살이를 시작한 이상, 청소와 요리는 나를 위한 성스러운 노동이 될 것이다. 그리고 살림살이의 축을 이룰 것이다. 솔직히, 지금의 오피스텔로 이사 와서 대청소는 처음이다. 지난해 9월 말이니 벌써 5개월이 되어간다. 옷장과 이민 가방들 정리부터 유리창과 창틀 닦기까지 한 시간이 후다닥 지나가 버린다. 그나마 좁은 오피스텔이어서 다행이다. 지방 도시에 아이와 아내가 몇 년 지내던 30평 후반대의 아파트라면 청소하는 것도 일이었다. 호텔식으로 이루어진 작은 오피스텔이 혼자 살기에 참 좋다. 서향이라서 비록 햇빛도 거의 들어오지 않지만 대신 밤에는 달빛이 충분히 그리고 깊숙하게 들어온다. 보름 무렵이면 며칠은 커튼을 반쯤 열어두고 잔다. 달빛이 들어오게 하려는 나의 소소한 배려다. 달빛은 편안하고 부드럽기는 하지만 따뜻하지 않은 슬픔이 묻어있다. 그래도 싫지 않다.
저녁땐, 몇 주 고민하던 아이패드 프로 1세대를 샀다. 당근에서 중고로 직거래하고 오면서 나만의 만찬을 위해 쇼핑도 한다. 오늘은 그동안 벼르던 소고기도 샀다. 껌처럼 질긴 수입 산이 아닌 한우다. 습관적으로 찾던 노란 냄비가 보이지 않아 한참을 찾았다. 오늘 버린 것을 그새 까먹은 것이다. 오늘은 오래간만에 전기밥솥이 아닌 돌솥에 밥을 해본다. 첨벙하고 밥 물을 손등에 맞춘 다음 인덕션 위에 올려둔다. 그 사이에 이불 빨래를 한다. 매트리스 커버를 벗겨 창밖에서 먼지를 털고 세탁기에 넣는다.
마침 친구로부터 전화가 온다. 통화하다 보니 한 시간 동안이나 수다를 떨었다. 남자들, 특히 아재들도 전화로 한 시간 이상 수다를 떨 수 있다는 사실에 내가 놀라곤 한다. 남자들의 수다에는 주로 축구와 같은 동아리 활동이 주를 이룬다. 오늘은 재활운동과 축구동아리 선배 이야기가 메뉴였다. 언제나 정이 많고 고마운 친구다. 대학 동기니 벌써 30년 지기가 넘었다. 그 친구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벌써 다른 별에 있을지도 모른다. 남자들의 수다는 사실 여자 못지않다. 술자리에서 이미 수도 없이 경험해보지 않았던가!
오랜만에 소고기와 가마솥 밥으로 저녁을 먹는다. 몇 안 되는 반찬도 접시에 예쁘게 담는다. 평소 같으면 김치 통 뚜껑만 열면 그만이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밥알이 제대로 씹히지 못한 채 그냥 넘어간다. 고기도 마찬가지다. 어금니 2개가 너무 심하게 흔들려 저녁 만찬은 겨우 마무리가 되었다. 만찬이 끝나고 바로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를 마치고 깨끗한 방에서 노트북을 켠다. 그런데! 온몸이 찌릿찌릿하며 이상감각이 심하게 밀려든다. 사실 오늘 일정은 상당한 무리다.
우려가 현실이 되자 당황스럽고 공포가 밀려온다. 자리에서 일어서 바닥에 배를 대고 엎드린다. 큰 대자로 엎드려서 통증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누어도 보고 엎드려도 보고를 반복하다 보면 통증이 약해지는 순간이 있다. 하루에도 수차례 겪는 일이다 보니 이젠 익숙해질 만도 한데도 여전히 힘이 든다.
나이가 들면 겁이 없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가 된다. 나에게 더욱 충실해지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벌써 희귀 난치병에 무너져 내리기엔 하고픈 일들이 너무 많다. 지금 하고픈 일들을 20대부터 시작했더라면 이라는 후회가 밀려온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다시 5년이나 10년 후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지나고 보니 사랑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었더라! 이기적이지 않은 사랑은 결국 깨지고 만다.
결과적으로, 일에 방점이 찍힌 삶은 아내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파괴하고 있었다. 생존의 문제 앞에서 표류할 때조차 사랑에 방점을 찍지 못한 대가는 가혹하고 참담하였다.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배려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때로는 무관심으로 돌변할 수도 있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랑은 일방적인 배려만으로 부족하다. 일과 삶에도 밸런스가 필요하듯이 사랑에도 나와 상대에 대한 적당한 밸런스가 중요하다. 즉, 적당한 긴장관계가 사라지면 어느 순간에 무관심으로 돌변하고 만다. 내가 경험한 사랑의 반대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무관심이었다.
잠자리에 누울 시간이다. 잠자리를 에워싸고 있는 예쁜 나무와 식물들이 밤새 나를 지켜줄 것이다. 드디어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사는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처럼, 가정에서 독립해 혼자 사는 중년 남자의 살림살이 이야기를 틈틈이 써보고 싶다. 나의 은밀한 사생활들과 그에 따르는 심정 변화 과정을 드러내고 싶다.(그렇다고 노출증 환자는 아니니 염려 마시길!) 혼자 살수록 자신만의 살림살이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싶다.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아내가 전쟁을 치르듯 맞닥뜨렸던 살림살이처럼은 아니어도 말이다. 내가 나를 위해주고, 안아주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을 주지 못하면 당연히 받는 일도 어려워짐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왔다.
지나고 보니 사랑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었더라! 내가 주고받았다고 착각했던 오류와 과오투성이들을 뭉떵 그려놓고 사랑이라고 우겨왔던 것이 나의 삶의 방식이었다. 아내와의 관계에 아파했고 아내를 아프게 하고 말았다. 항상 상대방을 먼저 탓하였다. 나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드는 무관심이 가장 힘들었다. 사랑 없이 부부라는 이름으로 같이 사는 일은 희망 없이 바다의 한가운데서 표류하는 일보다 더 가혹하였다.
이제부터라도 나의 살림살이의 포인트는 사랑이 될 것이다. 누군가를 향해도 아니면 자신에 대한 짝사랑이어도 상관없다. 나의 반려 식물들과 반려 자전거 그리고 반려 글쓰기가 있는 한 나는 아주 조금씩 그리고 느릿하게 행복해질 것이다. 그리고 무서운 밤의 통증들을 이겨낼 것이다. 아니, 그 혹독한 말초신경계의 통증은 이기지 못하더라도 그에 대한 공포는 이길 수 있을 것이다. (2020년 2월 20일 목요일 생애 첫 휴일에)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서울 선정릉 [모두의 캠퍼스] 강의 신청하기 / 월출산 국립공원 카페 [기억] 강의 신청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