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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다름, 폭력과 비건 생활

"그 남자의 살림살이" #8. 비건은 요요 없는 최고의 다이어트

by 런던남자



비건 한 달 만에 일반 채식주의자로

비건, 이젠 한국에서도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고기, 생선, 우유, 계란 등 일체의 동물성 지방을 먹지 않는 극단적 채식주의자로 생활하기는 쉽지 않다. 얼떨결에 시작했던 비건 생활이 벌써 한 달이 되었다. 한 달의 치열하고 힘겨웠던 체험을 공개한다. 그 이유는 아주 오랫동안 내가 지니고 있던 비건 주의자들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에 대해 반성하기 위해서다. 또 하나는 한국 사회에서 비건으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힘겨운지도 알려주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탄수화물을 마음껏 섭취하면서도 살이 빠지는 다이어트 효과를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이 다이어트에는 요요 현상도 없다. 체질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살이 빠져도 너무 자연스럽고 쉽게 빠졌다. 나는 살이 빠지기를 원하지 않는 마른 체형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무척이나 고마울 수도 있는 다이어트 효과가 나에겐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결국 비건 생활을 한 달 만에 접어야 했다.


비건 생활이 가르쳐준 "다름"의 진정한 이해

오랫동안 영국에서 음식장사를 하면서 나름 색안경을 끼고 대했던 손님들이 바로 비건들이었다. 음식을 주문할 때마다 이들의 까칠함과 선민의식(?) 못지않은 오만(방자)함에 치를 떨 정도로 비건들이 싫었다. 까다로워도 너무 까다로웠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조리할 때 프라이팬을 종류별로 분류해 사용하는지, 튀김용 기름 솥이 분리되어 있는지, 우유나 계란이 들어가지는 않았는지 정도의 문제라면 그래도 괜찮았다.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자신들이 금방이라도 위기에 빠진 지구를 구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싫었다. 비건이 아닌 사람들은 생각도 없고 자신들의 먹거리 때문에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가축들과 그 가축들이 먹어치우는 사료와 풀 때문에 황폐화되는 지구의 산림을 들먹거릴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이민 초기부터 생존을 위해 수많은 영국인들과 부대끼다 보니 당시에는 순간적으로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화를 달고 살았다. 돌이켜 보니 분노조절장애라는 일종의 병이었다. 그래도 손님에게 화를 내거나 심지어 싫은 기색도 할 수도 없었다. 올라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버티는 양쪽 입꼬리를 억지로 밀어 올려서 어색한 미소를 지어야만 했다. 고객이 왕이어서가 아닌 먹고사는 문제였기에 생각하면 지금도 씁쓰름하다. 어쩌면 먹고사는 일에 분노조절장애 따위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사소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응어리는 늦은 가을날 낙엽이 쌓이듯, 동지섣달 함박눈이 쌓이듯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비록 시한부이긴 하였지만, 그러던 내가 비건이 된 것이다. 물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치의 선생님의 결정이었다. 몸 안의 염증 치료와 혈관 및 신경계의 변화를 위해서 동물성 단백질을 한 달 정도만 차단하면서 그 변화 과정을 지켜보는 일종의 임상실험이었다. 병원 입원 중 얼떨결에 시작한 비건 생활이 정확히 한 달이 지나고 있다. 나의 몸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지 않았음에도 체중 감소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신비로운 체험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왜 영국의 비건들이 그렇게 요란과 호들갑을 떨었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다름을 머리로만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의미 없고 허무한 일인지도 깨닫게 되었다. 이전의 나 같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영국에서도 비건으로 살아가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다. 대부분의 식당에는 비건 메뉴들이 있고 메뉴 표에도 비건들이 먹을 수 있는 메뉴들은 별도 표시해둔다. 한국에 비하면 영국의 슈퍼나 마트에는 비건 식품들이 제법 많이 진열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건들은 여전히 도끼눈을 뜨고 의심의 눈초리로 질문을 해댄다. 그것이 싫은 사람들은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기도 한다. 아직도 세상 대부분 사람들은 고기와 생선을 먹기 때문이다. 우유와 계란은 말할 것도 없다. 우유나 계란을 먹지 않으면 빵과 면의 세계에서 멀어져야 한다. 비건 레스토랑이나 비건 베이커리가 있기는 하지만 도처에 적절하게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제 한 달의 비건 생활을 마치고 일반 채식주의자로 돌아간다. 그 과정에서 느꼈던 장점과 단점들을 정리해 보겠다.


비건 생활의 장점;


1. 최고의 다이어트

탄수화물을 실컷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 오히려 살이 빠진다. 나는 4주 만에 3킬로가 빠졌다. 나에게 3킬로는 다른 사람의 6킬로나 그 이상의 무게로 다가오는 충격이었다. 한마디로, 비건은 살찌는 것이 소원인 나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일반 채식으로 돌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2. 변비 해결

고기를 많이 먹을 때에 비해 획기적으로 변비가 개선되었다. 화장실에 오랫동안 앉아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신비로운 체험이었다. 배에 가스가 차는 일도 줄어들면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는 방귀의 난발사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지하철에서 터져 나오는 방귀를 참다가 다음 역에서 급하게 내린 적도 있었다. 방귀가 잦으면 똥이 나온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잦은방귀는 장내 세균이 감소하면서 독소가 쌓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3. 혈관청소

직접 내 혈관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혈류에 녹아서 혼탁해진 동물성 지방이 사라졌다. 혈액순환이 좋아지면서 안색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물론 불면증으로 잠을 설친 다음날은 전과 다르지 않았지만.


4. 쉬워진 설거지

조리가 간편해지면서 설거지도 쉬어졌다. 동물성 지방을 섭취하지 않기 때문에 설거지에 사용되는 세재도 대폭 줄었고 그만큼 물도 절약할 수 있었다. 먹고 나면 잔뜩 쌓인 설거지가 한없이 귀찮아지기 마련이다. 설거지가 싫어서 사 먹는 경우가 잦아지기도 했다.


5. 가벼워진 몸

혼자 살면서 먹기 힘들었던 콩과 잡곡을 먹게 되었고 각종 채소와 과일을 매일 섭취하게 되었다. 쾌변을 보면서 몸이 가벼워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틈틈이 과일을 먹지 않으면 허기를 느꼈다. 간식을 전혀 먹지 않았던 내가 간식을 먹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평소에 먹지 않던 과일을 매일 먹기 시작한 것이다. 남자들의 못된 특성 중 하나가 바로 과일 먹는 습관이다. 누가 깎아다 주면 그렇게 잘 먹지만 스스로 깎아서 먹는 남자는 많지 않다. 나의 아버지가, 내가 그리고 나의 아들 녀석이 그랬던 것처럼


6. 줄어드는 술자리

술자리에서 고기와 생선을 빼고 술안주를 먹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부침개를 먹어도 계란이 들어간다. 따라서 술자리를 피하게 된다. 사회적 거리두기 탓도 있지만 그래도 술집에 가보면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제법 많다. 자연스럽게 술자리를 멀리하기 시작하였다. 술을 멀리하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0년 전 담배에 이어 이젠 술도 자연스럽게 끊어가고 있다. 술 담배의 빈자리를 매일의 독서와 글쓰기가 대신하고 있다.



비건 생활의 단점;

1. 비건 식당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

한국에서 비건들이 밖에서 식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아직까지 비건에 대한 인식이나 배려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심각하였다. 성소수자 문제만큼이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하고 별난 사람으로 취급을 받기도 하였다.


2. 그림의 빵

제과점에서 우유나 계란이 들어가지 않은 빵을 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였다. 온라인으로 구매해서 냉동해 두고 먹어야 할 정도다. 빵을 직접 구워볼까도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혼자 먹겠다고 베이커리 공부까지 하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효율성이 없었다.


3. 김치에도 동물성 단백질이

김치에는 각종 액젓이 들어가서 먹을 수가 없다. 비건 김치를 따로 구매해서 먹거나 직접 담아 먹어야 한다. 그 흔한 김치찌개도 먹을 수가 없다.


4. 게으른 사람과 비건

비건은 어찌 되었든 집에서 요리를 직접 해 먹어야 한다. 밖에서 한 끼를 먹으려면 큰 맘먹어야 한다. 고기도, 생선도, 우유도, 치즈도, 계란도 안된다고 하면 상대방도 허탈해하며 똥 밟은 표정을 짓는다. 그럴 때마다 나도 아찔해진다. 나처럼 혼자 사는 게으른 사람들에게 비건 생활은 치명적이다. 하지만 어떠한 방법으로든 요리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요리 실력이 없기 때문에 간단하게 준비할 수 있는 각종 야채 쌈을 자주 먹기도 한다. 같은 요리만 반복하다 보면 1주일만 지나도 두부는 냄새도 맡기 싫어진다.


5. 무궁무진한 채식의 세계

나처럼 왕초보에게는 다양한 채식의 세계는 그림의 떡이다. 비건 세계에 제대로 입문하면 오히려 다양한 먹거리들을 접한다. 일단 부지런해야 하고 먹는 것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한 끼 때운다는 개념으로는 곤란하다.


6. 노력하지 않고 되는 일은 없더라

제대로 된 식단을 짜지 못해서 빈혈이 생겼다. 먹는 일이 고역이 되어가고 있었다. 비건 생활이 대충 해서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먹는 즐거움도 마찬가지다. 노력하지 않고 그냥 되는 일은 없었다.



그럼 여기서 비건(Vegan)과 베지테리언(Vegetarian)의 차이를 알아보고 채식인들의 종류를 살펴보겠다. 비건은 넓은 의미에서 베지테리언에 속하지만 베지테리언이 모두 비건인 것은 아니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비건과 베지테리언이 혼용되어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베지테리언은 섭취하는 종류에 따라 다양하게 나뉜다.


채식주의자의 종류

1. 비건(Vegan)

비건은 우리말로 “완전 채식”을 말한다. 육류, 어류, 유제품, 난류, 꿀 등을 섭취하지 않는다. 또한 동물의 가죽이나 새의 깃털로 된 제품과 동물 실험을 거친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 나에겐 가죽 구두와 벨트 가방 그리고 오리털 이불 등이 해당되었다. 오리털 이불을 버릴 수가 없어서 그냥 사용했다.


2. 프루 테리언(Fruitarian)

윤리, 종교, 문화, 건강 또는 경제 등의 이유로 과일만 먹는 사람들을 말한다. 식물도 생명이기 때문에, 오로지 식물이 우리에게 허용한 것들만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과일의 씨에도 생명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과육만 먹고 씨앗은 땅에다 심어줘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과실을 직접 따지 않고 땅에 떨어진 과실만 먹는 사람들도 있다. 식물도 동물처럼 고통을 느낀다고 믿기 때문이다.


3. 락토 베지테리언(Lacto Vegetarian)

육류, 어류와 난류는 먹지 않지만 우유, 치즈, 버터, 요구르트와 같은 유제품과 꿀은 먹는다. 인도 불교에서 소의 우유를 신성시해서 나타난 채식주의의 형태이다.


4.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Lacto Ove Vegetarian)

난류를 먹는 락토 베지테리언이다. 달걀과 우유가 허용되면서 특정 영양소들을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채식주의자 중 비중이 가장 큰 종류이기도 하다. 디저트나 과자를 끊기 어려운 사람들이 선호한다.


5.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 Vegetarian)

육류는 먹지 않지만 어류, 난류 및 유제품은 먹는다. 육류만 먹지 않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넓다.


6. 폴로 베지테리언(Pollo Vegetarian)

동물 가운데 닭이나 오리와 같은 가금류는 먹는 준 채식주의자로 어류를 먹으면 Pollotarian, 어류를 먹지 않으면 Pollo Vegetarian으로 나뉜다.


7.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

평소 채식을 하다가도 상황에 맞게 육류를 섭취하기도 하는 유연한 채식으로 세미 베지테리안이라고도 한다.


탁월한 다이어트 효과

내가 비건 생활을 시작한 이유는 나 자신의 건강 때문이었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도, 동물의 복지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아직 한국에서 비건으로 살아간다는 일은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 많아 보였다. 지구를 들먹거릴 정도로 원대한 이유가 아니어도 좋다. 자신의 건강, 특히 과체중 때문이라면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다이어트에 효과가 탁월하다. 나는 대학 졸업 이후 거의 체중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한 달 만에 3킬로가 빠진 것이다. 계속 비건을 고집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젠 고기를 먹지 않아도 고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처음 비건을 시작했을 때 나타났던 고기에 대한 금단현상도 사라졌다. 고기는 앞으로도 먹지 않을 생각이다. 엄격한 채식주의자에서 일반 채식주의자로 돌아간다. 살을 다시 찌우기 위해서. 살이 찌지 않는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살 한번 쪄보려고 한약이나 보약부터 안 먹어본 것이 없다. 밥을 두 공기씩 먹고 매일 고기를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누구는 팔자 좋은 소리 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마른 사람들의 꿈은 살 한번 쪄보는 것이다. 살이 있어야 근육도 만들기 수월하다. 멸치가 근육을 만들려고 아무리 몸부림쳐도 멸치의 근육이 눈에 띌 리 없다.


수행보다 어려운 비건 생활

비건으로 사는 일은 수행보다 더 어려웠다. 식당에서도 술자리에서도 심지어 집에서도 먹는 행위가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먹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 살면서 비건 요리를 매일 해서 먹을 만큼 준비된 비건이 아니었다. 요리 실력도, 요리에 대한 열정도, 심지어 식탐조차도 없는 인간이다. 군것질을 모르고 살아왔던 사람이다. 배가 고프지 않으면 먹을 생각이 나질 않는다. 점심때마다 찾았던 서브웨이의 직원들도 별난 사람처럼 쳐다보았다. 중국집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저것 빼 달라고 하다가 마지막에 소스까지 빼 달라고 하면 그게 무슨 요리냐고 표정이 험악해지던 주방장님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한국에서 비건으로 살아간다는 일은 영국이나 유럽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체험했다. 내가 운영하던 영국의 식당에서 비건 손님들이 겪었을 난처함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물성 단백질을 먹지 않는 사람들이 별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였던 나였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장만 보더라도 채식에 적합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소들은 채식만을, 사자들은 육식만을 한다. 하지만 인간은 채식과 육식을 병행하는 잡식을 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동물과 식물들은 인간의 먹이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인간이 먹지 못하는 동물은 같은 종인 인간뿐이고 식물은 독이 있는 버섯 등일 정도로 인간은 닥치는 대로 먹고 있다. 인간이 무슨 권리로 다른 동물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어릴 때부터 있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고기가 선택사항이 될 수 없었다. 없어서 먹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비건의 눈에 비친 당연하고 만연한 세상의 폭력성

우리 한국도 개고기를 먹던 시절이 있었다. 길거리엔 보신탕집이 흔했었다. 서구인들이 우리의 식문화를 비판할 때마다 불편했던 것이 사실이다. 막상 우리가 반려견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왜 그들이 우리의 개고기 문화를 그렇게 비판했는지 이해할 수 있기 시작한 것이다. 반려견이나 반려 묘란 단순히 애완동물이 아니라 말 그대로 반려동물이다. 즉, 같은 공간에서 같이 먹고 자는 식구(가족)가 되어버린 것이다. 서구인들이 볼 때는 야만인들이 따로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식용으로 키웠다지만 그들의 눈에는 식구를 잡아먹는 야만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세상은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이다. 인간의 역사는 폭력의 역사다. 폭력으로 온통 얼룩져 있다. 멜 깁슨이 만든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에서도 하나님이 그의 아들에게 얼마만큼 피를 요구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철저하게 성경의 고증에 입각해서 만들어진 영화라는 사실이 더 섬뜩하다. 영화는 예수가 유대교 제사장들에게 십자가에서 처형되기까지의 12시간의 고난을 이야기하고 있다. 무자비한 폭력과 피가 압도적이다. 마치 신이 피에 굶주린 흡혈귀처럼 영화에서 피가 난무한다. 어쩌면 멜 깁슨은 폭력은, 정당하지는 않지만, 필연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려 했는지도 모른다. 신 마저도, 폭력은 어찌할 수 없이, 지켜보아야만 하는 일이라는 사실에 몸서리가 쳐진다.

2016년 맨 부커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읽은 지 오래되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옮겨보겠다. 주인공 영혜의 아버지는 폭력을 일삼는 참 나쁜 가장이다. 자신의 딸을 물은 개에 끈을 묶어 오토바이에 매달고 죽을 때까지 끌고 다니기도 하는 엽기적인 아버지다. 개가 죽자 보신탕으로 가족들에게 먹게 한다. 누린내가 나는 개고기를 가족들은 두말없이 맛있게 먹어야만 한다. 주인공인 막내딸 영혜는 어느 날 꿈을 꾸고 나서 채식주의자가 된다. 성인이 되어 결혼까지 한 딸에게 강제로 고기를 먹이는 아버지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가장 어둡고 암울하게 다루고 있다. 마치 작가가 직접 체험이라도 한 것처럼.


영화 혹성 탈출의 유인원과 인간의 전쟁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영장류란 이유만으로 종을 만들었고 종과 종 사이에는 죽고 죽이는 살육이 진행되고 있다. 인간의 폭력성은 과연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지, 인간은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 답은 우리 인간 자신에게 있었다.


머리만으로 타인의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던 삶


이번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의 비건 체험을 통해 엄청난 다이어트 효과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바로 “다름 “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방식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머리만으로 타인의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기란 아주 쉽다. 우리는 그렇게 다름을 인정하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인정했다는 말 자체는 상당히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비건 손님들을 대하면서 그들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행동을 취했지만 내 마음속은 혈관을 타고 도는 염증처럼 짜증이 섞여서 돌고 있었다. 솔직히 그들이 상당히 불편했다. 특히 줄이 길게 늘어서는 주말에는 더욱 그랬다. 내가 비건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왜 그들이 동물성 단백질을 피하려고 그토록 집착하고 진상 짓을 했는지. 내가 한 달 동안 했던 것처럼.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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