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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들어오는 자여 모든 희망을 버려라!

"그 남자의 살림살이" #8. 병원 격리 2주를 마치며

by 런던남자



“여기에 들어오는 자여 모든 희망을 버려라. “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서 지옥문에 적혀있는 문구다. 희망이 없는 곳이, 비전이 없는 곳이 그리고 꿈이 없는 곳이 지옥이라는 메시지 치고는 간결하면서 강렬하다. 한 줄의 이 문구는 희망을 잃어버리는 바로 그 순간부터 지옥이 시작되거나 펼쳐진다는 것이다.

죽어야만 지옥에 간다는 생각은 종교적 색채가 너무 강하고 단편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후에 경험해야 할 지옥보다 현제의 지옥이 견디기에 더 버거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영영 경험하지 못할 수도, 죽자마자 곧바로 경험할 수도 있는 사후 지옥은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막연하다. 사후 이후까지 걱정하고 있기에는 현실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어쩌면 삶 속에서의 지옥만큼 처절한 것도 없으리라! 희망을 잃어도 매듭이 매일 이어져야만 하는 것이 삶의 굴레다. 뜨개질을 하다가 실수로 풀려버린 바늘 코의 실들을 어찌할 수 없는 것처럼 삶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찰나이다. 우리는 관성처럼 풀리려 발버둥 치는 삶을 안거나, 이거나, 밀거나, 끌거나 심지어는 짊어지거나 하며 내일로 나아가야만 한다. 나 또한 이러한 육중하고 둔탁한 삶의 굴레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불행이란 녀석의 사전에 자비나 배려 따위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행은 언제나 파도처럼 연달아서 다가온다. 그 파도들이 모여서 해일이 되고 쓰나미가 되어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다. 무자비하고 난폭하게 모든 것을 쓸어버릴 기세로. 예고도 리허설도 없이. 경매를 위해 빨간딱지를 부치러 들이닥치는 법원의 집달리(집행관)처럼 말이다.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오전의 재활치료들이 끝나고 점심을 먹었다. 오후의 연골주사를 끝으로 2주간의 병원 생활도 끝이 난다. 외출이나 면회가 전면 금지되면서 본의 아니게 병원 격리생활의 고통을 겪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덕분에 자유의 소중함을 배우고 있다. 비싼 병원비를 지불하며 말이다. 사실 코로나 바이러스 시국에서 가장 위험한 곳과 가장 안전한 곳의 경계에서 병원은 많은 의문점을 노출 중이다. 어쨌든, 모 아니면 도의 장소에서 살얼음판 같은 하루들이 모여 2주를 채워가고 있다.

다행히(?) 병실에는 TV가 없다. 바이러스를 빌미로 공포를 조장하는 온상 중의 하나인 TV와 맞서며 2주 동안이나 공포에 떨 필요가 없었다. 나는 마약김밥보다 더 중독성이 강한 유듀브와는 담을 쌓은 지 오래다. 하지만 이번 병실에서 2주간의 TV 외면 사태는 유튜브와 연을 끊은 것과는 결이 다르다. 사실은 겁을 먹고 현실을 회피나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기껏해야, 잠들기 전에 오늘의 확진자 수를 체크하는 정도였으니 말이다. 물론 입원 중인 병원이 위치한 성남시로부터 확진자 정보는 거의 매일 문자를 통해 배달되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에 감사하다는 생각은 점점 희석되어 의미를 상실하고 있었다. 대신 바로 옆에 위치한 분당제생병원의 문제들은 결코 남의일로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 참 간사하다. 들이닥친 불행과 마주하지 않으면 소 닭 보듯 하기 때문이다.

입장을 바꾸어서, 지금 내가 입원한 병원에서 집단 감염이 일어났더라면.. 생각만으로도 아찔하고 끔찍하다. 그렇지 않아도 나의 면역력은 눈 한번 흘겨보지 못하고 정신없이 추락하고 있는 중이다. 면역체계의 교란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은 마음에도 피부에도 와닫지 못한 채 공허하게만 들린다. 면역이란 말 자체가 와닫지 못하고 주위를 서성일뿐이다. 때로는 무식이 우리 삶의 고통의 무게를 덜어주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다. 어정쩡하게 알 바에야 차라리 전혀 모르는 무식을 택하는 일이 현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처럼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사실은 아직까지는 제법 유효하다. 이러한 최악의 상황에서 코로나에 겁을 먹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관절이나 척추수술 환자가 대부분인 재활병동에서 말이다. 어머니나 아버지 정도 연배의 어르신들, 그것도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시는 분들의 자지러지는 기침 소리가가 들리면, 나의 신경세포들은 바짝 긴장한 채 사방을 경계하는 매서운 눈빛의 길냥이로 돌변하곤 한다. 사실 입원병동의 병실들은 분리되어 있기는 하지만 하나의 유기체처럼 연결되어 있다.


지금 입원 중인 병원의 입원실에서는 하루에 최소 두 번의 혈압과 온도 측정이 이루어진다. 어느 병실에서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바튼 마른기침 소리라도 들리는 날은 추가 체크들이 이루어진다. 하루에 세 번이나 그 이상의 온도와 혈압체크가 이루어지지만 그렇다고 불안까지 잠재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느 정도는 운도 따라야만 이 사악한 녀석을 피하거나 따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퇴원을 축하라도 해주듯이 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그러고 보니 분당에는 2주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 입원하는 날 잠깐 내리고 처음이다. 매일 하릴없이 창살 없는 창밖을 하염없이 내다보며 자유를 꿈꾸어왔다. 오직 꿈꾸는 일만이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퇴원 날 아침에 퇴원 서류들을 챙기고 짐을 정리한다. 나의 경우에는 코로나 때문에 병원에서 격리된 것은 아니었다. 희귀 난치병인 "다발성 말초신경병증"의 기본 검사들과 1월 달에 수술한 왼쪽 무릎의 재활치료를 위해서 입원했을 뿐이다. 입원과 동시에 지역사회의 2차 감염을 막기 위해 자연스럽게 면회와 외출이 금지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감옥으로 돌변하였다. 간호사 선생님들은 도끼눈을 뜨고 24시간 외출을 감시한다. 그렇게 감금당한 하루 24시간은 게으름을 피우며 더디게만 흐른다. 마치 고지혈증에 걸린 환자의 동맥과 정맥의 혈관들처럼 답답하기만 하다. 병실의 시간은 붉은 머리띠와 조끼를 입고 파업은 아니지만 태업을 하는 노동자처럼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그것도 2주씩이나.


내가 사용하는 4인실의 병실 내에서도 환자 간의 접촉이 금지되면서 서로 간의 대화 자체도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격리의 병실 생활에서 다시 한번 자가 격리가 이루어진 것이다. 2주 동안 가장 힘들었던 점은 환자 간 대화의 단절도, 불합리하고 일그러진 고독도, 막연하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이라는 희망의 상실도, 원인조차 모르는 희귀 난치병으로 인한 전신의 통증도 아니었다. 바로 어떤 특별한 기능의 자유의 부재로 인한 고통이었다.


즉, 아무것도 안 할 자유가 아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유의 박탈이 초래하는 상실의 고통들이었다. 그 고통들은 디스크 환자의 탈출한 추간판처럼 중추신경을 압박하며 신음하고 악취마저 풍기고 있었다.

1그램이 채 되지 않을 듯한 가볍고 하찮은 자유들이었다. 예를 들면, 병동 1층과 2층에 있는 카페에도, 병동 입구에 있는 편의점에도, 근처 김밥 집에도, 도로의 트럭에서 파는 당도가 의심되는 하우스 딸기에도, 심지어 한 두 뼘이 될까 말까 한 경계 위에 있는 드넓고 전망 좋은 옥상에도 갈 수 있는 자유가 박탈된 것이다. 특히 카페인 중독자에게는 흔한 일이지만,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대한 동경과 짝 사랑은 가장 큰 고통이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연상할 때마다 코로나 녀석의 멱살이라도 잡아 흔들고 싶을 정도로 분노마저 치밀어 올라왔다. 그럴 때마다 나의 혈압은 160에서 오락가락하였다.

지난주 월요일부터 얼떨결에 그리고 반강제적으로 시작된 비건 생활도 8일째 순항 중이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바로 옆 건물의 커다란 마트나 백화점 지하 슈퍼에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만 원짜리 사과 한 봉지만 사 오면 과일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는데도 시디신 침만 흘리고 있다. 여우가 신 포도를 생각하며 침을 질질 흘리듯이 내가 사과를 생각할 때마다 입안의 특정부위에 침이 고이기를 반복한다. 사과를 이렇게까지 그리워해 보기도 처음이다. 두고 온 냉장고의 사과들의 안부가 걱정된다. 있을 때 먹어치우고 올 걸 그랬다.


또 하나의 고통은 거의 무한대처럼 주어진 주체할 수 없는 널 부러지고 방치된 시간들이었다. 경험상으로 환자에게 넘쳐나는 시간들은 그다지 유용하지 않아 보인다. 누워있어야 하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누워서도 책을 읽고 글도 쓸 수 있지만 그것 또한 상당한 의지와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무기력과 우울은 누워있는 시간에 비례해서 찾아들었다. 그 또한 크나큰 고통들이었다.

의자에 앉아서 몇 시간이고 또는 하루 종일 책을 읽고 글을 쓰던 날들이 카드로 루이뷔통을 지르는 행위만큼이나 사치처럼 느껴진다. 불과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그러한 사치는 짝퉁 명품들처럼 흔해빠진 그렇고 그런 것들이었다. 사실 카페는 나의 사무실이자 서재였다. 배가 고프면 카페 밖으로 나가 원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고, 은행 볼일이 있으면 은행에 다녀왔다. 마트에 갈 일이 있으면 마트에 갔고, 가늘고 억센 머리카락이 귀를 스치기 시작하면 미용실로 달려가서 녀석들을 정리했다. 자유로운 카페도 싫증이 나면 약간의 규칙과 규율이 존재하는 인근 도서관에 갔다. 나의 의지대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의 소중함을 그때는 알지 못하였다. 그러한 소소한 자유들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또 하찮은 일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마치, 호주 골드코스트의 광활한 해변 백사장에 펼쳐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래알처럼 말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그 모래알들은 침상에 누워서 시간을 좀먹는 환자처럼 가만히 있지 않다. 해가 뜨면, 자신만의 크기에 맞게 햇빛을 품었다가 내보내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비가 오면, 자신보다 큰 빗방울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버텨낸다. 바람이 불면, 바람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한다. 때로는 파도의 요청에 의해 일정한 간격으로 액션을 취하는 꽤나 괜찮은 엑스트라 역할을 해내기도 한다. 이유나 목적 없이 존재하기 위해 해변에 누워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래알 하나하나는 각자의 방식대로 하루와 맞서고 있는 것이다. 인고의 시간들을 견뎌내는 일이 어쩌면 모래알의 존재 이유인지도 모른다.


그 모래알들은 자유의지로 이동하지 못하는 불편을 않고 살아간다. 세상이 하라는 대로 하며 살지만 불평 따위를 늘어놓지도 않는다.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고독하고,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프기도 하지만 언제나처럼 한결같다. 마치 어느 시인의 시처럼 말이다.


외로움이 찾아올 때면
살며시 세상을 빠져나와
홀로 외로움을 껴안아라.
얼마나 깊숙이 껴안는가에 따라
네 삶의 깊이가 결정되리니


불편함이 찾아올 때면
살며시 익숙함을 빠져나와
그저 불편함을 껴안아라.
불편함과 친숙해지는 만큼
네 삶의 자유가 결정되리니


불편과 고독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추구하는 것
불편과 고독의 날개 없이는
삶은 저 푸른 하늘을 날 수 없으니
굽이도는 불편함 속에 강물은 새롭고
우뚝 선 고독 속에 하얀 산정은 빛난다.


박노해 시인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시집 중 "불편과 고독"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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