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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May 24. 2020

영국 유치원생의 가든과 가난

어쩌다 보니 국립공원에 삽니다!

 

가난이 구체적으로 말을 걸어올 때는 난감하고 때로는 슬프기까지 하다. 


 가난은 익숙해지면 보통의 일상들에 불과하지만 가난이 구체적으로 말을 걸어올 때는 난감하고 때로는 슬프기까지 하다. 심할 때는 "비참함"마저 느껴야 한다. 굴욕적이지만 인정하고 삶을 견디어내야만 한다. 언젠가는 이 지긋지긋한 가난의 굴레를 벗어던질 날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와 관련된 일에는 더욱 그렇다. 부모들은 다른 건 몰라도 가난만은 결코 대물림하지 않으려 한다. 가난이 단지 불편한 문제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은 사람을 위축되게 하고 많은 것을 인내하도록 집요하게 강요한다. 세상에 절대적 가난은 존재할 수 없다. 우리가 말하는 가난의 대부분은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 누구와 비교해서 가난하다는 의미다. 보통은 이웃집이나 친구들과의 비교지만 때로는 그 범위가 넓어져 동네의 어떤 부잣집과 비교하기도 한다.  내가 겪은 어린 시절의 가난과 나의 아이가 어렸을 때 겪은 가난은 의미는 같지만 비교 대상이 많이 다른 가난일 것이다.  지금부터 나의 아이가 유치원생이었을 당시 느꼈을 그 가난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영국의 유치원생 아이가 엄마와 아빠에게 컴플레인(Complain)을 처음 제기한 것은 집에 가든이 없다는 것이었다.


 올해 대학생이 되는 아이가 다섯 살 무렵이었다. 어느 날 친구 생일파티에 다녀온 아이는 제법 심각한 표정이었다. 아마도 그날이 아이가 엄마와 아빠에게 컴플레인(Complain)을 처음 제기한 날일 것이다. 내용은 바로 우리 집에 대에 대한 것이었다. 전반적으로 집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무엇보다도 가든이 없다는 것이다. 불만이나 불평의 범위가 드디어 장난감이나 레고 등에서 좀 더 거시적인 것으로 발전(?) 한 것이다. 그 첫 컴플레인(Complain)이 바로 가든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 우리 집은 방 2개짜리 플랏(Two bed flat)이었다. 아래층에는 상가가 있고 2층과 3층을 사용하는 상가주택이었다. 가든이 없는 것은 당연하였다. 앞쪽은 하이스트리트였고 뒤쪽으로 작은 가든이 하나 있었지만 주차공간으로 활용하였다. 그것도 가든의 일종이라 우겼지만 아이는 인정하러 들지 않았다. 어쨌든 우리 집에는 가든이 없었고 아이는 본격적으로 파티에 다니기 전까지는 가든에 대한 집착이 없었다. 아마 다른 집도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을 것이다. 집만 나가면 공원들이 널려(?) 있었다.    


 그러던 아이가 자라면서 유치원에 가고 친구들의 생일파티에 초대되기 시작하였다. 생일 파티는 YMCA나 피자헛 등 다양한 곳에서 치러졌다. 하지만 간혹 아이들의 집에서 생일 파티가 치러지기도 하였다. 영국 유치원생들의 생일 파티는 보통 2주일 전에 생일 초대 카드를 보낸다. 그러면 전화로 참석여부를 알려준다. 당일 날에는 생일 카드와 선물을 준비해서 파티가 열리는 장소까지 데려다주었다가 파티가 끝나면 다시 데려온다. 이민 초기는 자리도 잡지 못했고 먹고살기 바쁘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생일 선물이나 카드는 아주 간소한 것들이어서 돈이 들지 않았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토요일은 부부 모두 가장 바쁜 날이었다. 생일 파티가 있는 날에는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오려면 부부 중 한 사람은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유치원생들 중에서 가장 부자였던 아이의 생일 파티였을 것이다. 집과 가든이 넓기 때문에 당연히 그 아이의 생일 파티는 집에서 열렸다. 그날은 내가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왔는데 가든에 축구 골대가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몇 차례 같은 반 아이들의 집에 초대되면서 아이는 노골적으로 컴플레인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왜 우리 집은 좁고 가든이 없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던 모양이다. 유치원생에게 가난이란 의미는 단지 집이 좁고 가든이 없는 것이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당시만 해도 2층의 방 2개는 학생들에게 월세로 내주고 우리 가족은 거실에서 생활하였다. 거실은 말 그대로 거실이어야 하는데 우리 집은 거실이 베드룸이었던 것이다.  

   

 집이 너무 좁고 협소해서 외부에서 생일 파티를 해야만 하는 부모의 심정을 아이가 이해할리 없었지만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가난은 유치원생의 아이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와 아내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난감하였다. 아직 가난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아이에게 가난을 설명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도 곧 가든이 큰 집으로 이사 갈 계획이니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아이는 어느 정도 이해하고 수긍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생일 파티가 계속해서 열린다는 점이었다. 잊을만하면 아이는 다시 가든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 아내와 나는 다시 난처해지면서 같은 답변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날짜 개념이 없던 아이에게 조만간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내일로 이해되었을지도 모른다. 유치원생에서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아이는 여전히 생일 파티에 초대되었고 같은 질문을 해왔다. 우리 아이의 생일 파티는 집이 아닌 동네의 YMCA 강당이나 피자헛에서 해 주었다. 아이는 우리가 생일 때마다 형편이 나아져서 그렇게 큰 강당이나 레스토랑에서 생일 파티를 해 주는 줄 알았다.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허세를 보이기도 하였다. 집이 아닌 곳에서 아이의 생일 파티를 하려면 비용도 많이 들고 일도 많아지고 번거롭다. 동네 YMCA 강당에서 아이의 생일 파티를 할 경우에는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먼저 장소를 예약하고 파티 진행요원을 섭외해야 한다. 음식도 주문해야 한다. 2시간 정도 진행해 주는 데 지불해야 할 돈은 우리 돈으로 대략 30만 원 정도로 기억된다. 사실, 집이 너무 좁고 협소해서 외부에서 생일 파티를 해야만 하는 부모의 심정을 아이가 이해할리 없었지만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많은 생일 파티를 경험하면서 아이의 세상은 넓어지기 시작하였다.      


 영국 아이들의 생일파티 문화와 친구들을 선별해서 초대할 수 있는 아이의 권한 


 영국에서는 세 살 반이 되면 유치원에 입학할 수 있다. 아이가 유치원생이 되면서 아이의 우물이 갑자기 넓어지기 시작한다. 친구들도 생기고 선생님이란 존재도 알게 된다.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규칙이 필요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 많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가장 큰 변화는 친구들이라는 존재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집에서 혼자 응석만 부리던 아이에게 비교대상이 생기기 시작하는 시기가 바로 유치원생이 되면서부터다. 어쩌면, 자기들끼리의 비교는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들의 생일 파티를 다니면서 아이는 변하기 시작하였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친구의 크고 넓은 집과 정원을 작고 좁은 자신의 집과 비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에서는 아이들 생일파티 문화가 조금은 독특하다. 초대를 하고 초대를 받아야만 그 파티에 참석할 수 있다. 유치원이라 할지라도 싫어하는 친구에게는 초대 카드를 보내지 않는다. 보통 부모들은 아이에게 친구를 초대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준다. 그러면 아이는 같은 반 친구들의 이름에 초대할 친구와 초대하고 싶지 않은 친구를 가려낸다. 그리고 카드 내용도 직접 작성한다. 겨우 친구 이름과 자기 이름만 쓰는 정도이지만 파티의 주인공은 아이 자신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주려 한다. 나와 아내도 그랬다. 아이는 생각보다 초대하고 싶지 않은 친구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아이에게 그 이유를 물어야만 했다. 아이는 그냥 싫다고만 대답하였다. 나를 닮아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아이는 낮을 많이 가렸고 친구도 많지 않았다. 나와 아내는 벌써부터 아이의 사회성을 걱정해야만 했다.   

    

 영국은 공원(Park)과 정원(Garden)의 나라다. 올해도 여지없이, 그 아름다운 공원과 정원들에도 근사한 4월의 봄이 내려앉았을 것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도 수선화와 목련이 질 무렵이면 철쭉이 피어나고, 철쭉이 질 무렵이면 장미가 피어난다. 그러면 봄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여름이 차지하는 것이다. 장미가 피어나지 않고는 여름이 오지는 못한다. 그래서 영국의 여름은 한국보다 조금은 더 부지런하다. 3월 말이면 벌써 서머타임(Summer time)을 시작한다. 물러나야 할 계절과 그 자리를 이어받을 계절을 구분해내는 일이 바로 공원과 정원에서 이루어진다. 비록, 이번 봄은 바이러스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지만 바이러스도 어찌하지 못하는 것이 꽃들이다. 이번 4월에도 영국의 꽃들에게는 잔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들에게만 잔인할 뿐이었다.     


 아들아, 이제 아빠는 재벌 총수들보다도 수백 배 더 큰 가든에 살고 있단다! 네가 유치원생이었을 때의 가난이 부디 상처로 남아있지 않기를 바란다.


 어쩌다 보니 국립공원에 살게 되었고 이곳으로 이사 온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나간다. 이젠 재벌 총수들보다 수백 배 더 크고 멋진 공원에서 살고 있다. 런던에 있는 아이에게 이 사실을 자랑하고 싶지만 아이는 이미 너무 커버렸다. 이번 가을이나 내년 가을에 대학생이 되는 아이에게 가든 이야기를 하면 아이가 코웃음을 치고 말 것이다. 그래도 기회가 되면 아이에게 아빠의 정원을 보여주고 싶다. 어린 시절 아이가 받았을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항상 가슴이 아프다.      


 14년째 살고 있는 지금의 집은 물론 집의 앞과 뒤 그리고 옆에도 가든이 있다. 하지만 유치원생이었을 당시의 아이의 가든은 어쩌면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였을지도 모른다. 우리 부부가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온 이유다. 소처럼 일했고 아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줄 수 있었지만 아내는 여전히 아이에게 안 되는 일이 더 많은 엄마였다. 아이가 유치원 시절의 가든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한 때는 기억했어도 이제는 잊어버렸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쩌면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셨을지도 모른다. 그게 부모의 마음 이리라! 다행히도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거의 없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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