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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Jun 06. 2020

영국에서 내게 해채 당한 양식 연어들의 비애!

제14화. 연어의 일생

                                                  

 “시간의 그림자는 누구에게나 똑같다. 인간은 이렇게 한없이 시간에 쫓기며 숨 돌릴 사이도 없이 산다. 시간은 마치 교도소의 간수처럼 몽둥이를 들고 우리의 등 뒤에 서 있다. 시간은 바빠서 쩔쩔매는 사람이나 시간이 남아돌아서 지겨운 사람에게나 똑같은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쇼펜하우어, 인생론 에세이, P 147>     


 나는 어려서부터 지도책을 보고 자랐다. 그래서 또래에 비해 호기심이 많은 편이었다. 지도책에 펼쳐진 나라들을 보며 시간과 공간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내가 지금 서 있는 공간의 지구 반대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100년 전이나 100년 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고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서울에 살 때는 동 시간에 런던이나 뉴욕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하였다. 런던에 살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이민생활 20년 동안 내내 동시간대의 서울이나 뉴욕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에 대해 생각했다. 시드니나 뉴델리는 물론이고 전 세계 주요 도시들이 궁금하였다. 그런 배경에는 어려서부터 몸에 배어버린 호기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난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예감은 언제나 예리한 법이니까. 난 어른이 되면 결코 하나의 도시나 나라에서 평생을 살지 못할 거라고!      

난 정말 어디로 돌아가고 싶은 것일까? 그 종착역은 어디일까? 왜 한 곳에서 나고 자라 그곳에서 죽지 못하는 것일까!

 

 지금도 가끔 어디론가 돌아가는 꿈을 꾼다. 사실, 어젯밤에도 그런 꿈을 꾸었다. 나는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칠레의 안데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를 향하고 있었다. 산티아고는 칠레의 수도다. 안데스를 넘을 때 비행기는 여러 번 난기류를 만났고 추락의 공포까지 느꼈다. 생생해서 눈을 떠보니 안데스가 아닌 월출산에 있는 산장이었다. 사실, 떠나고 싶은 것인지 돌아가고 싶은 것인지 분간하는 일조차 싶지 않다. 그만큼 나의 중심축은 자주 흔들렸고 공간을 배회하며 시간의 목을 조여 가고 있었다. 정말 어디로 돌아가고 싶은 것일까? 많은 도시와 나라들을 전전하였지만, 그러다가 결국은 원점인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어디론가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려면 일단 어디로든 떠나야 한다. 떠나지 않고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 몸 안에는 회귀본능이라는 유전자가 추가되어 있었다. 인간에게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조류나 어류는 아니지만 나라는 인간도 결국은 동물이니까. 철새와 연어와 많은 동물들이 때가 되면 돌아가듯이.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영원한 안식처로 향한 발걸음들 이전에 여전히 돌아가야 할 곳이 많았다. 그래서 떠났다. 시간과 공간의 창살에 갇혀 있는 느낌을 견디지 못하였다. 같은 공간에서 오래도록 살아가는 일은 흐르는 시간에 나의 영혼마저 잠식당하는 일이었다. 영혼 없는 나무가 되는 꿈을 자주 꾸었다. 나무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었지만 꿈에서 본 나무들은 영혼이 없었다. 나의 꿈속에서는, 흔들릴 뿐 이동하지 못하는 것들은 영혼이 없어 보였다. 


나는 직장에서 나의 노동력, 즉 나의 몸을 팔고 있었을 뿐이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의 몸만 내준 것이 아니었다. 나의 영혼마저 팔아먹고 있었다.

 
 이러한 나를 두고 지인들은 “역마살”이 끼었다고 말한다. 역마살! 한 곳에 눌러앉아 다소곳하게 순응하며 살아갈 팔자가 아니라는 의미다. 아침마다 청춘의 태양이 이글거릴 때조차도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다. 매일 아침, 숙취로 인해 쓰린 속을 부여잡으며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며 출근길에 나설 때마다 낯선 나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 뒷모습에서 당당하고 아름다운 청춘이 베어 나왔지만 슬픔도 같이 묻어 나왔다. 그렇게 서울에서 7년이란 세월을 견뎌냈다. 직장인으로 월급을 받아가며 사는 일이 남들 다하는 아주 평범한 일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는 나의 노동력, 즉 나의 몸을 팔고 있었을 뿐이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의 몸만 내준 것이 아니었다. 나의 영혼마저 팔아먹고 있었다. 그것이 7년 동안 느낀 나의 직장생활이었다. 그때도 다른 공간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의 시간과 공간에 갇혀 산다는 일은 잔인할 뿐이었다. 창살 없는 감옥이란 그런 곳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직장에서 자아를 찾고 나를 발전시켜가며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차피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을 믿거나 합리화시켜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울과 불행에 빠져 살아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행복은 어디에서나 널려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주머니나 핸드백에 주워 담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나에게 직장은 그런 것들 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죽은 공간이었다. 그저 시간에 몸을 내주고 때로는 영혼마저 털려버리는 일들은 악몽이었다. 매일 출근을 하지만 오전에는 화장실을 들락거려야만 했다. 분명 변의를 느껴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에 앉지만 매번 실패하고 자리로 돌아와야 했다. 결국 3년 차가 되던 해에는 위와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았고 “신경성 위염과 대장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도 아니었다. 남의 옷을 입고 살았을 뿐이었고 그런대로 견디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직장인들의 비애의 축에도 끼지 못할 수도 있다.    


 나의 직장 생활은, 맞지도 어울리지도 않는 옷을 입고, 7년 동안이라는 세월을 견뎌 낸 것뿐이었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과 맞기는 하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는 느낌은 다르다. 불행하게도 나에게 직장이란 이 둘 다를 의미하였다. 맞지도 어울리지도 않는 옷을 입고 7년 동안이라는 세월을 견뎌 낸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일하기 편한 직장을 다시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영업을 해서 매달 숫자나 그래프로 영업실적을 벽에 걸어놓을 필요도 없었다. 무능한 직원과 팀은 월말이 아닌 연말에 한번 정도 드러나긴 하였다. 그것도 영업실적이나 매출 따위가 아니었다. 부서에 배정된 예산을 집행하지 못했을 때를 두고 무능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사기업이 아니다 보니 이런 현상이 벌어졌다. 회계연도가 끝날 즈음에 멀쩡한 보도블록들을 걷어내고 새 보도블록으로 교체하는 일은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난다.     


 그런 직장에서의 하루라는 시간은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처럼 흘러갔다. 때로는 한쪽 귀퉁이의 벽에 붙어있는 벽시계를 의심하기도 했다. 저 시계는 분명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계가 게으르지 않다면 배터리가 싸구려일 거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하루는 길었다. 매일 반복되는 업무도 그랬지만 팀원들 간의 소통 방식은 군대식으로 위에서 아래도 수직 하강하거나 아래에서 위로 수직 상승하는 식이었다. 에스컬레이터가 아니라 엘리베이터형 방식이었다.     


 11시 45분이 지나기 무섭게 점심시간이 시작되고 1시 15분이 지나야 점심시간이 끝나는 직장에서 그 시간을 견딘다는 일은 고통이었다. 차라리, 친구들처럼 영업을 하고 야근을 하며 시간을 잊으며 살고 싶었다. 몸이 망가지더라도 그렇게 치열하게 살고 싶었다. 시간은 여름날 한없이 늘어지는 엿가락 같은 것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렇게 마냥 늘어지다가 인생의 춥고 배고픈 겨울이 오면 이 늘어진 엿가락들은 과연 회귀할 수 있을까? 답은 아니었다. 그래서 돌파구를 찾았다. 어차피 내 몸을 파는 일은, 영혼이 털리는 일은 월급을 받아먹는 직장인의 운명이었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직이 아닌 다른 길을 모색해야만 했다. 월급은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았다. 월급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직원들을 고용하고 월급을 줄 수 있을까? 답은 다시 나와 있었다. 문제는 무대였다. 그래서 언젠가는 돌아오겠지만 무작정 떠나야만 했다. 내가 나서 자라고 청춘을 아름답게 하려고 몸부림치던 이 나라를 두고 떠나기로 작정했다. 상당히 충동적이었다.     

  7년간의 직장인으로 살아온 세월은 생각해보면 기특하기도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하다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나의 모습이 아니었다. 내가 갈 길이 아니고, 내가 살아가는 방식과도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일산의 3호선 종점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향할 때마다 그 안에 나는 없었다. 나는 어디에선가 마치 집시나 떠돌이처럼 행색이 초라한 여행자였다. 등에는 겨우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배낭이 짊어져있는 그 사람이 나의 모습이었다. 나에게 맞는 옷과 어울리는 옷을 찾아 떠나야만 했다. 언젠가는 본능처럼 회귀하겠지만 그 회귀를 위해서라도 떠나야만 했다. 떠나지 않고서 돌아올 수도 없었다. 산에 오르지 않고는 내려올 수 없는 것처럼.    


 영국으로의 이민도 교환이나 반품이 안 되는 "충동구매"였지만 결국은 돌아오기 위한 떠남일 뿐이었다.


 그래서 영국이라는 나라는 언젠가는 회귀를 꿈꾸며 바다로 향하는 새끼연어의 생활 무대가 되었다. 목적지가 태평양인지 대서양 인지도 모르고 치어는 떠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어는 그 강물의 물줄기를 기억해내고 말 것이다. 성어가 되어서 돌아와야만 한다. 연어의 삶은 그러한 숙명과 순환의 고리 속에서 시간과 공간을 이어가고 있었다. 
 

  20년이란 아마득한 세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른다. 길고 길었던 하루들을 모아서 7년의 생활을 견딘 나였다. 시간을 견디는 일과 시간의 주체가 되는 일은 극과 극이었다. 하루는 짧았고 몸이 몇 개라도 부족하였다. 갓 부화한 연어새끼가 강을 따라 바다로 나가서 살아남았을 때만 연어다운 연어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이민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연어새끼처럼 망망대해에서 수많은 포식자들을 피해 가며 때로는 싸워가며 살아남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 돌아가서 종족 보존을 위한 숭고하고 장엄한 마지막 의식을 치르며 장열 하게 타오를 수 있다. 한 마리의 성채 연어의 삶은 치열한 아름다움과 거룩한 본능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연어를 해채 할 때마다, 숙명처럼 월급의 노예가 되어야만 하는 직장인들과 연어의 일생이 오버랩되었다. 자영업자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이 짊어지고 있는 현실의 무게를 월출산의 거대한 바위들이 알기나 할까!


 그런 자연산 연어는 아니었지만, 스코틀랜드산이나 노르웨이산 양식 연어들은 나의 회칼에 수없이 해체되었다. 공교롭게도 영국에서 나의 직업은 일식집 사장이었던 것이다. 매일 몇 마리씩 연어를 해체해서 초밥과 사시미를 만들고 마끼와 롤을 만들었다. 연어를 해채 할 때마다 연어의 눈을 바라본다. 연어는 언제나 눈을 뜨고 있었다. 내 인생만큼이나 애처롭고 안돼 보였다. 직업으로서 연어를 대하는 자세는 비싼 연어의 살들을 1그램이라도 손실되지 않고 인간의 입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었다. 냉동이 아닌 연어의 냉장 유통기한은 2주다. 그래서 연어는 비행기를 타고 많은 나라로 날아다닐 수 있는 것이다. 연어를 해체할 때마다 그들의 일생이 생각났다. 물론 자연산은 아니다. 비록 양식이라서 자연산 연어들의 그러한 일생을 모른다 할지라도 그들도 연어는 연어였던 것이다. 회귀하지 못하고 시간과 공간에 갇혀 살다가 회칼에 의해 해체당하는 양식 연어들. 전 세계 대부분의 임금 노동자들이나 직장인들이 회귀 한번 해보지 못하고 해체당하고 말듯이. 종국에는.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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