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런던남자 Jun 01. 2020

헬기 타고 나타난 친구와 나의 생애 첫 비빔밥

친구에게 만들어준 생애 첫 비빔밥이 전주비빔밥을 이기다!



 모두 퇴근한 여동생의 식당에서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한식 요리를 한다. 그 요리 이름은 뭐가 들어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산채비빔밥"이었다.   

                                                   

 스토리의 무대는 월출산 국립공원이다. 나는 식당 바로 위에 있는 펜션에 거주한다. 1층의 식당은 저녁 7시 반쯤 문을 닫는다. 밤에는 등산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두 퇴근한 식당에서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한식 요리를 한다. 그 요리 이름은 "산채비빔밥"이다. 분량은 2인분이고 손님은 방금 전 헬기를 타고 국립공원 주차장에 내린 친구들이다. 산채비빔밥을 자주 먹었지만 막상 만들어보려니 그 안에 무슨 나물들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나물들이 바뀌기 때문이다. 여동생의 나물은 맛있기로 이미 인근에만(?) 정평이 나 있다. 그 나물을 먹은 손님들은 두세 번 리필을 요구한다. 그럴 때면 사실 귀찮으면서도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비법을 알려달라고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내가 보기에는 딱히 비법이 없는데 말이다. 아무튼 나물에 대한 여동생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른다.    
   

 토요일 저녁 8시 무렵이다. 아래층 식당도 문을 닫고 퇴근한 시간이다. 나는 2층 펜션에서 쇼펜하우어의 인생 에세이집인 “사랑은 없다”를 읽고 있다. 니체만큼은 아니지만 쇼펜하우어를 좋아해 가는 중이다. 니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쇼펜하우어라는 영감탱이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철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철학은 여전히 따분하고, 재미없고, 어렵고, 이해도 가지 않는 학문이다. 쉬운 말들을 어쩜 그렇게 어렵게 하는지 그것도 재주이고 능력이다. 그래서 철학인가 보다. 아무튼 싫다. 그런데도 철학서적들을 뒤적인다. 뭔가 뒤틀린 인생의 답을 거기에서라도 찾고 싶은 욕심 때문일지 모른다. 어쩌면 답을 찾을지도 모른다. 그때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휴대폰의 벨 소리가 산장의 정막을 깨며 호들갑을 떤다. 이 시간에 나에게 전화를 해줄 만한 사람이 누가 있더라! 고향에 홀로 계시는 아버지는 한잔 하시고 TV 앞에서 꾸벅꾸벅 졸거나 주무실 시간이다. 여동생 내외는 방금 퇴근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 시간에 나에게 전화를 걸 사람이 없다. 텔레마케터도 이 시간에는 전화하지 않는다. 심지어 보이스피싱 사기꾼님들도. 저녁 8시면 도시에서는 불야성이 시작되는 초저녁이지만 산중에서는 적막이 시작되는 한밤중이다. 모든 것의 이동이 멈추는 시간이다. 국립공원에 산답시고 자존감 높은 길고양이들만 분주해진다. 녀석들은 야행성이 분명하다. 밤이 되면 국립공원의 주인은 녀석들이다. 전화를 보니 자주 통화하는 고향 친구 이름이 떠있다. 통화는 아주 짧게 끝났다. 싱거웠다. 친구는 "헬기를 타고 가는 중이니 주차장에 나와서 헬기가 착륙할 만한 공간을 확보하고 기다리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것도 10분 내에 도착하겠다며. 나는 "알겠어"라는 단 한마디만 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이지(Situation)"이지? 어리둥절한 채 한 동안 멍을 때려야만 했다.   
   

 이 시간에 이곳 산중에 오겠다고? 그것도 헬기를 타고? 설마 농담이겠지?


 전화를 끊고 읽던 책으로 다시 시선을 돌린다. 허무맹랑한 친구의 장난전화는 잊은 채 다시 쇼펜하우어 영감탱이에 몰입해본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니체처럼 명료하고 직설적이면서도 단순하다. 니체처럼 잘난 채도 하지 않아서 좋다. 왠지 이 영감탱이가 점점 좋아진다. 어쩌면 니체를 버리고 이 영감탱이로 갈아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밖에서 헬기 소리가 들린다. 그럼, 10분 전의 친구가 한 말이 사실이라고! 그러고도 남을 친구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에서 헬기를 타고 다니는 지인은 없다. 결단코! 맹세코!!


    

월출산 국립공원  헬기장



 그런데 갑자기 요란한 헬기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점점 커질 무렵 다시 휴대폰이 울린다. 10분 전의 그 친구다. 반대편에 있는 대형 버스 주차장에 착륙했으니 내려오라는 것이다. 그럼 정말 헬기를 타고 왔단 말인가! 헬기 소리는 분명 들렸다. 물론 환청일 수도 있었지만.
 
  내려가 보니 헬기는 보이지 않는다. 이미 주차장에는 어둠이 검게 장악하고 있다. 먼발치서 친구가 또래의 여자와 같이 걸어온다. 평생 비혼 주의자인 친구가 그새 변심을 한 것인가! 친구는 옆에 있는 여자를 소개해 주지 않는다. 멀리서 보면 제법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외모에 긴 머리가 유난히 찰랑거린다. 검은색 계열의 긴 원피스는 산중의 심오한 어둠과 조화를 이루려고 나름 노력하며 나풀거린다. 그런대로 어울린다. 그런데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얼굴이 아닌가! 살면서 이런 경험이 제법 많기는 했지만. 어디서 였더라!  
   

 친구는 계속 그녀의 소개를 미루었고 한동안 어색한 조우가 이어진다. 아무리 보아도 중학교 동창 같았지만 이름이 떠오르질 않는다. 그래서 5년쯤 후배 아니냐고 물었다. 그녀는 굉장히 좋아한다. 이들은 벌초를 마치고 와서 지금 무척 배가 고프다고 했다. 나는 갑자기 무슨 요리든 만들어서 굶주리고 나이 든 양들을 보살펴야 할 의무가 생기고 말았다. 그래 무슨 요리든 해보자. 정 안되면 내 주특기인 해물 라면이라도.
 

 “죽을 만큼 행복하다!”라는 순간의 경험은 짜릿했고 정말 죽을 만큼 행복했다. 그것도 아주 사소한 일로 말이다.


 잠겨있던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 불을 켰다. 스위치만 10개 가까이 되었다. 어느 것을 켜야 할지 몰라 모두 켰다. 불이 일제히 켜지자 60평이 넘는 식당은 중학생 시절로 우리를 데려간다.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 이럴까! 타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아무튼 그런 기분이다. 우린 그 짧은 만남 사이에서 중학생의 신분이 되고 우리들만의 아름다운 "청춘 파티"가 시작된다. 세상에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산중에서 늘 외롭던 나는 지금 이 순간이 꿈만 같다. “죽을 만큼 행복하다!”라는 표현이 이럴 때 쓰라고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리에 앉자 헬기 기장(?)인 익수는 그 여자를 소개해 준다. 예상대로 중학교 동창이다. 서로가 서로를 전혀 몰라볼 정도로 세월이 흘러버린 것일까! 나는 "원판불변의 법칙"을 신봉하기 때문에 전혀 성형수술을 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해본 일조차 없다. 그렇다면 그녀가!!  

 “금강산도 식후경! “이라고 이들은 일단 무슨 음식이든 최대한 빨리 식도를 통해 위까지 배달해주어야 한다. 절박해 보인다. 그래 뭐든 만들어보자. 일단 주방으로 들어간다. 주방에도 스위치가 따로 있다. 그 스위치를 켜자 깜짝 놀라 자빠질 뻔했다. 모두 퇴근한 주방은 물청소까지 깨끗하게 되어있다. 주방만 보아도 여동생의 성격이 보인다. 어찌나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퇴근했는지 아무것도 손댈 엄두가 나지 않는다. 형광등의 밝은 불빛 아래 싱크대와 냉장고들은 유난히 반짝거린다. 문제는 동생의 식당 주방에서 요리를 해본 경험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차려준 음식만 먹다가 요리를 하려니 난감하다. 아무튼, 이 배고픈 영혼들을 위해 15년 경력의 프로페셔널 요리사의 실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하지만 식자재가 어느 냉장고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주인 없는 남의 부엌에 들어가서 냉장고나 냉동고를 뒤적이며 요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난감하고 어렵다. 가정집도 아닌 대형 식당의 업소용 냉장고에서 식자재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내가 만든 산채 비빔밥과 비빔밥의 원조인 전주비빔밥의 한판 승부가 시작되다.

 

  잠깐 고민을 하다가 가장 쉬운 산채비빔밥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주재료인 나물들은 이미 만들어져서 나물반찬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다. 뚜껑들만 열면 요리가 시작된다. 그렇게 뚝딱 산채 비빔밥 두 개를 만들어서 테이블로 가져갔다. 한식은 처음이라서 미안했다. 그렇다고 산중에서 싱싱한 연어를 구해 초밥을 만들어줄 수도 없다. 일단 여동생만 믿어보기로 했다. 이미 여동생이 만들어둔 숙주, 미나리, 콩나물, 고사리, 머위, 애호박, 열무, 시금치, 각종 버섯, 그 외에도 이름도 모르는 나물들을 골고루 담아내서 그 위에 달걀 프라이를 올렸다. 밥은 그날 팔다 남은 공기 밥이 전기밥솥에 보관되어 있다. 정말 다행이다. 물론 고추장과 된장이 정당히 어우러진 아욱 된장국도 같이 나갔다.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된장국을 올려 데우기만 하면 된다.


  친구들은 나물이 그득한 비빔밥 그릇에 밥을 넣고 고추장과 약간의 참기름을 넣고 쓱싹쓱싹 비비기 시작한다. 고기는 생략이다. 내가 채식주의자이다 보니 고기 요리는 엄두가 나지 않기도 했지만 산채비빔밥에는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것이 더 맛있다. 물론 내 생각이다. 두 사람은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말도 하지 않고 먹기 바쁘다. 다행히 밥솥에 남은 밥도 넉넉하다. 두 사람은 맛의 고장 전주에서 살다 보니 입맛이 까다로울 것이다. 물론 이것도 내 생각이다. 전주 하면 비빔밥의 고장 아닌가! 40년 가까이 오리지널(원조) 전주비빔밥을 먹어온 사람들에게 비빔밥을 만들어주다니! 나도 참 용감하다.

누군가를 위해 그들만의 특별한 요리를 해준다는 일이 이처럼 행복한 일인지는 몰랐다.


  사실 나는 런던에서 오랫동안 일식 요리만 해왔다. 한식은 정말 처음이다. 그런 왕초보가 아무것도 모른 채 갑자기 만들어낸 비빔밥을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신기해서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바라본다. 그중 한 사람은 30년 만의 상봉이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현실과 비현실의 중간쯤에서 그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입을 반쯤 벌린 채, 넋을 놓아버린 채, 바라보고 있다. 아주 뿌듯하고 흐뭇한 표정으로. 행복이 이런 거였구나! 얼마 만에 느껴보는 행복인지 모른다. 순간 눈물이 날 뻔했지만 꾸욱 눌러둔다. 누군가를 위해 그들만의 특별한 요리를 해준다는 일이 이처럼 행복한 일인지는 정말 몰랐다.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닌 런던의 아내 생각이 났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른다.

  여동생의 나물들은 모두 이 고장에서 생산된 재료들과 들기름을 사용해서 무쳐낸다. 어떤 나물들은 된장이나 고추장이 들어가기도 한다. 어떠한 조미료도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그 나물들은 매일 먹는다. 채식을 해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한 번도 물리거나 맛이 없다고 생각된 적이 없다. 나물만 먹어도 살이 빠지거나 기력이 딸리지 않는다. 엄격한 "비건"에서 일반 "채식주의자"가 되면서 달걀과 우유 그리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영역이 많이 확장되었다. 먹는다는 즐거움의 크기와 가치를 비건 생활을 통해 배웠다. 여전히 채식을 하지만.      

  내가 만들어준 산채 비빔밥을 절반쯤 먹고 나서야 친구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실 두 사람이 시간을 내어 나를 보러 온 것은 아니었다.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실망이다! 두 사람의 부모님이 공교롭게도 월출산 근처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 고향이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곳이 바로 이 근처 마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이 같이 날을 잡아 벌초를 하러 온 것이다. 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나다니 놀라운 인연들이다. 두 사람은 팔촌 정도의 먼 친척 관계인데 얼마나 먼지는 모른다고 했다.


우린 비빔밥을 먹으며 아름다운 청춘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시절의 풋풋한 청춘은 들기름으로 무쳐낸 나물들만큼이나 맛깔스럽고 아름다웠다.


  우리는 비빔밥을 먹는 사이에 이미 어린 시절의 청춘들이었다. 중학생이던 시절의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눠본 기억은 전혀 없다. 이번이 처음이다. 가물거리는 추억들을 두 사람은 용케도 기억해낸다. 산골의 중학교는 면 소재지에 하나였고 남녀공학이었다. 하지만 합반은 아니었다. 중앙 현관을 기준으로 우측이 남학생 교실 좌측이 여학생 교실로 나뉘었다. 2층짜리 건물이었다. 남녀 각각 두 학급씩 네 학급이다 보니 같은 반이 아니라도 누가 누구인지는 대충 알고 지냈다.      

 그런데 지수는 내 기억에 존재하지 않았다. 지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기억 속에도 나는 없었다. 우리는 그 사실이 너무 신기하고도 궁금했다. 이름만 대어도 어느 마을에 사는 누구인지 알겠는데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니. 사춘기가 늦게 온 나는 중학생 때까지 여학생에게 전혀 감정을 느끼지 못하였다. 다른 친구들은 연애하느라 바쁜데도 나는 공부만 한 거 같다. 그 당시 시골에서 내가 유일하게 집중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공부뿐이었다. 인터넷도 휴대전화도 없던 아날로그 시절에도 어린 청춘들은 끼를 주체하지 못하였다. 시골에는 그 흔한 제과점 하나 없었다. 그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연애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소문들도 무성하게 나돌았고 선생님들은 교내나 근처 야산 등에서 연애하다 걸리면 “정학“ 처분을 내린다고 협박하였지만 아무도 정학을 당하는 일은 없었다.   

  익수는 그 모든 것들을 어쩌면 그렇게 사실적으로 그려내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역시 문학도다웠다. 지수는 서양화를, 익수는 국문학을, 나는 사회학을 전공했다. 지수는 유화를 그렸고 이미 전시회도 몇 번 열었다고 했다. 그날 저녁 헬기를 타고 나타난 두 사람은 역시 유머감각이 상당하였다. 승용차로 10분 후에 도착한다는 말을 어쩌면 그렇게 멋지게 표현해 낼 수 있을까! 역시 익수다웠다.  
 

 인연! 그것은 분명 운명의 고리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친구와 북한군 귀순 병사와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와의 인연이 그랬다. 우리 세 사람의 인연이 그랬던 것처럼.


 익수는 불과 몇 년 전에 저승 문턱까지 다녀왔다. 당시만 해도 내가 영국에서 살고 있어서 병문안 한번 가보지 못했다. 지수의 말에 의하면 중환자실에서 그를 면회하고 나오는 친구들의 얼굴에서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고 했다. 그녀 역시 면회를 나오면서 마음의 장례식을 치렀다고 했다. 그런 친구가 기적처럼 살아난 것이다. 정말 기적이었다. 그 친구의 이야기는 참으로 드라마틱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픔이었다. 처음 여동생에게 익수의 사고를 접하면서 커다란 절망을 느꼈다. 살아나더라도 평생 누워서 지내야만 한다는 말은 오래도록 가슴에서 저리고 아팠다. 익수는 결혼을 하지 않아서 가족이 없는 친구다.


 어찌 보면, 우리 인간에게는 생명 그 자체에 대해서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다. 극히 예외적인 일들이 있기는 하지만 삶과 죽음 앞에 나약하기는 인간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다. 익수의 경우는 특별했다. 생명줄을 놓지 않으려는 환자의 의지가 현대의학의 혜택과 맞물리면서 그는 죽지 않을 수 있었다. 익수는 고향 마을의 사고 현장에서 헬기로 이송되었고 2년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장소는 아주대 응급실과 중환자실이었고 그를 이송하고 살린 사람은 바로 "이국종 교수"였다. 그가 퇴원하던 날 아주대 병원 중환자실에 처음으로 "기념패"가 걸렸고 의사와 간호사들 그리고 직원들이 도열해서 박수를 치며 축하해 주었다고 한다. 그 시기는 "북한군 병사" 한 명이 판문점의 비무장 지대에서 귀순하다가 총격을 받고 이송되던 시기와 오버랩된다. 나도 그 장면을 영국에서 BBC를 통해 본 기억이 난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했다.  


헬기와 인생 비빔밥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청춘들이 월출산 앞마당에서 물안개처럼 피어오른다.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웃었다. 반쯤만 남은 달은 산 중간쯤에 편안한 자세로 걸려 있다. 아름다운 청춘으로 돌아가 있는 우릴 말없이 내려다본다.


 그래서였구나! 의문이 풀리는 순간은 언제나 짜릿한 전율이 흐른다. 마치 방금 무언가를 깨달은 선지자처럼. 익수는 방금 전 헬기를 타고 이곳 월출산 국립공원 주차장에 착륙한 것이다. 아주대병원 중환자실에서 나오면서 마음속에서 그의 장례식을 이미 치러버린 먼 친척이자 친구인 지수와 함께. 우리는 밤늦도록 월출산의 달과 별을 보며 그 시절의 청춘들을 쏟아낸다. 아름다운 청춘들이 월출산 앞마당에서 물안개처럼 피어오른다.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웃었고 크기를 알 수 없을 만큼 행복을 실감한다. 온몸으로.

  두 사람은 여전히 내가 만들어준 비빔밥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생 비빔밥"이라고 계속 치켜세운다. 하긴,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나의 생애 첫 비빔밥이 그렇게까지 맛이 있었을까! 지수는 코로나로 인해 반 실직상태라고 했다. 우울해 보인다. 보이지 않는 불안 앞에서 연신 담배를 피우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그런 그녀가 안쓰러웠다.
 
  그들은 늦은 시간에 다시 헬기를 타고 내비게이션을 전주로 설정한 후 이륙하고 있다. 나의 불가사의한 "월출산 국립공원표 산채비빔밥""전주비빔밥"을 눌렀다며 엄지 척도 잊지 않는다. 기특한 녀석들이다. 그렇게 두 사람이 탄 헬기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간다. 헬기 소리가 희미해진다. 고맙다 친구들아! 다음엔 여동생에게서 산채비빔밥 만드는 법을 전수받아 제대로 만들어주마! 그때도 비빔밥을 먹으며 우린 아름다운 청춘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서울 선정릉 [모두의 캠퍼스] 강의 신청하기  / 월출산 국립공원 카페 [기억] 강의 신청하기 


작가의 이전글 아주 흔하고 헛된 맹세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