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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브런친 글밥(글로 밥 벌어먹는 여자)님의 신간을 축하하며...

by 런던남자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머리털 나고 처음 서평이라는 것을 써본다. 그 첫 서평은 책을 평한다기보다는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써보고 싶었다. 하긴 그게 서평이기는 하지만. 책의 저자는 그동안 브런치에서 알고(?) 지내는 ”브런친”중의 한 분인 “글밥(글로 밥 벌어먹는 여자)”님이다. 방송작가 14년 차의 경력이 고스란히 책에 녹아있다. 방송계에 관심 있는 분들은 물론이고 워라벨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출판사는 유노 북스다.


지난주 병원 몇 곳의 몰아치기 진료 때문에 서율 행 KTX를 탔다. 새벽기차는 한참 출근 시간에 서울역에 도착했다. 산중에서 유유자적하다가 갑자기 아침부터 뛰는 사람들을 보며 덩달아 나도 뛰었다. 서울역에서 서울대병원이 있는 혜화역까진 4호선을 타면 금방이다. 진료 시간은 1시간 이상 남았다. 20분이면 갈 거리인데 내가 뛰고 있었다. 마음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나는 "도시 물"빨이 다 빠지려면 아직 멀었나 보다. 여차 저차 해서 1박 2일간의 병원 진료를 마치고 다시 서울역으로 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용산역에서 다시 갈아타야 했다. 그래서 용산역에서 그냥 내렸다.

기차표는 서울역에서 출발하지만 용산역에서 타도 상관없다. 사실, 서울역보다는 용산역을 더 자주 이용한다. KTX는 거의 용산역에도 정차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용산역에서 정차하지 않아 놓치기도 했다. 그래도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고 지구도 망하지 않았다.


용산역 광장


용산역에 도착하니 30분가량의 시간이 남는다. 목포행 기차는 19시 40분에 출발한다. 나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전날 아침 몸이 그랬던 것처럼 용산역에 있는 최애의 장소로 들어간다. 그곳은 바로 "영풍문고"다. 서울에 올 때마다 광화문 교보문고나 용산역 영풍문고를 들러서 1초 만의 독서를 한다. 신간들의 제목만 보아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은 제목이 일단 끌려야 한다. 그래서 제목이 70% 이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영풍문고에 들어서서 거의 모든 책들의 제목을 읽는다. 그중 와 닫는 책들을 들어서 프롤로그와 목차 또는 에필로그를 읽어본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책이 영풍문고 진열대 몇 곳에 떡하니 편안하게 누워 계시는 것이었다. 서있거나 꼽혀있지 않고. 이런 일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유노 북스”에서 출간한 바로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라는 책이었다. 책의 내용은 이미 그녀의 브런치에서 읽어서 거의 알고 있었다. 물론 브런치에 없는 내용도 많았다. 너무 기뻤다. 마치 내가 쓴 책이 진열되어 있는 기분이었다. 한 치의 망설임이나 주저함도 없었다. 들었던 다른 책들을 놓고 이 책을 샀다. 다른 책들에겐 좀 미안했다.

일단 제목부터 신선하고 멋지다. 우리 국민은 꽤 오래전에 성수대교가 무너진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구! 그것도 오늘 당장!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려면 제목을 잘 뽑아내야 한다. 그런데 잘 뽑아도 너무 잘 뽑았다. 출판사의 어느 분이 제목을 뽑았는지는 모르지만 대단한 감각이다. 설마 저자님이 직접..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대박 날 조짐이 보인다.

서울 - 목포 KTX


기차를 타자마자 책을 읽기 시작했다. 2시간 만에 다 읽어버렸다. 복습하는 기분이었다. 산중의 펜션에 도착해서 매일 한 챕터씩 아껴가며 다시 읽었다. 편집도 예쁘게 잘 되었고 무엇보다 글이 솔직 담백하였다. 요즘 독자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편집과 취향이다. 무엇보다도 줄줄 쉽게 읽힌다. 거기에 재미있기까지 하다. 울컥하는 장면들도 많다. 절대 무언가를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대단한 정보도 없다. 모두가 좋겠다!로 끝나는 저자의 희망을 말하고 있다. 무심코 보던 방송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 나니 모든 방송들이 새롭게 보일 정도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지만 그래도 글쓰기가 가장 편하다는 작가의 말에 14년간의 방송작가의 직업에 대한 애착과 애증과 애환이 애처롭게 묻어나 있었다.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있다. “부디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항상 힘냈으면 좋겠다. 그래도 웃었으면 좋겠다. 최선을 다했던 그때를 기억하면 좋겠다. 이제는 나를 챙기면 좋겠다.”

“내가 최선을 다했던 일이, 내 몸을 돌보지 못할 만큼 사랑했던 일이, 남 좋은 일로만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당한 대가를 받고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도록 든든한 토대가 갖춰지면 좋겠다. 그게 방송계든 어디든. 모든 직장인의 삶의 터전, 일이라면 말이다. (중략) 나는 아직도 헤매는 중이다. 이제는 헤엄을 좀 칠 줄 아니, 보다 능숙하게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어본다. 나의 일에 몰입하고 집착할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었다. 방송가는 상암동으로 옮겨갔지만, 서강대교는 여전히 건재하다. 다행이다.” (본문 중에서)

본문들도 좋았지만 에필로그는 더욱 특별했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간결하게 방송계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처우개선을 요구하다 담당하던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당하고 너무 억울해서 결국 목숨을 버린 어느 지방방송의 피디 이야기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이러한 "을"들의 처절하고 한 맺힌 억울함이 어디 방송계만의 일이겠는가! 대한민국 모든 분야에서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거창하게 자본주의의 배신이나 비애라고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우린 아직도 숨죽이고 있다. 당연하지 않은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나 혼자 나섰다가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 뿐이라는 것을 직장인이나 소상공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그것도 너무나 확실하게. 그래서 우리 사회는 경제 규모에 비해 개인들의 삶은 형편없이 부당해지고 때로는 비참하고 비열해져야만 한다. 자주 옥상에 올라가서 담배를 피우든지, 울든지 그것도 아니면 소리라도 고래고래 질러보지만 한국이라는 세상은 요지부동이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이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어쩌면 인식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행동이 부족한 것일지도 모른다. 행동하는 자에게는 처절한 응징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그 사회문제는 돌고 돌아 결국 자신들의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남의 일 대하듯 해야만 한다. 이기주의가 팽배해서라고, 젊은 층들이 아무 생각도 없고 조직보다는 너무 자신부터 생각한다고 몰아붙인다. 사실, 모든 문제는 "고용구조"의 변화에서부터 출발한다.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취준생은 넘쳐난다. 100세 시대라고 떠드는데 정년은커녕 40대부터 벌써 실업자로 내몰아간다. 이러한 악조건에서 수많은 "을"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선진국이라는 달콤한 단어의 이면에는 부당하게 착취당하고 억압받고 소외받는 직장인들이 있다. 물론, 모든 것은 자본주의가 교묘하게 만들어놓은 자유시장경제와 대기업이라는 두 개의 톱니바퀴가 절묘하게 맞물려서 너무도 자연스럽고 완벽하게 돌아간다. 원청에 하청 그리고 재하청이라는 구조에서 "을"들은 다시 "힘이 있는 을"과 "힘이 없는 을"로 나누어진다. "병"이 생기고 심지어 "정"까지도 생길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자랑스러운 시장경제이고 산업시스템이다. "갑을병정"이라는 단어는 이미 우리 사회의 상용어가 돼버렸다. 의미야 다르지만, 국회의원 선거구에서도 사용된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갑질 오브 갑질의 표본인 의원님들마저도 아무 생각이 없다.

영국으로의 이민전, 그러니까 20년 전에, 직장생활 7년 차 내 월급이 280만 원이었다. 어떻게 아직도 160만 원을 받는 피디들이 있단 말인가! 아무리 지방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의 노동 시간당 임금은 과연 얼마나 되는지 의문스럽다. 매일이다시피 "라꾸라꾸"(침대)에서 잠을 자며 퇴근을 잊은 사람들이 지천이다. 그 많은 노동법의 조항들이 있으면 뭐하나 싶은 의문이 든다. 물론 칼퇴근시키며 야근을 금지하는 회사들도 아주아주 많이 늘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집에 가서 워라벨을 즐기며 두 다리 쭈욱 뻗고 맘 편하게 쉴 수 있을까! 일거리를 싸들고 퇴근하는 사람들은 정말 없을까!

나는 사회학을 전공했다. 신문방송학과 과목들도 틈틈이 수강했다. 나도 한 때는 피디를 꿈꾸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피디 하면 선망의 직업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럴 것이다. 그런 14년 차 경력의 피디가 월급 160만 원을 받았다니. 부당한 처우개선은 역시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결국 그 피디는 계란처럼 깨져서 산산이 부서져갔다. 그것도 일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이 넘는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이 책의 저자가 그랬듯이 나 또한 얼굴도 모르는 고 "이재학 피디"님의 명복을 빌어본다. 부디 하늘에서라도 두 다리 쭈욱 뻗고 영면하시길.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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