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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Jun 13. 2020

산이 그림을 그린다!

난 정말 도시를 떠나서도 아무렇지 않게 잘 살 수 있을 거야!

                                                                          

월출산 국립공원


 전날 폭우 주의보가 발령되었다. 주의보는 다시 특보로 격상되었다. 산중에 밤새 비가 내렸지만 아직까지는 그다지 요란스럽게 내리지는 않고 있다. 물론 밤새 섬광이 번득이는 번개가 자주 쳤다. 소리 없는 번개였다. 아주 멀리서 천둥이 쳤으리라! 토요일 아침이다. 국립공원 주차장은 텅 비어있다.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적이 흐른다. 평소처럼 산이란 거대한 창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선다. 가늘게 비가 내린다. 새들만 분주하다. 그런데 산도 분주하다. 산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산은 회색 계열의 하얀 물감만을 사용하고 있다. 반 고흐가 노란색과 청색에 집착했듯이 산은 흰색에 집착하고 있었다. 어쩌면 산은 주체할 수 없는 "외로움"을 이겨 내려고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런던에서 이민 초기에 뭐라도 해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월출산 국립공원


  그림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런던에서였다. 이민 초기에는 뭐라도 해야만 했다. 그래서 런던에서 프라이빗 가이드를 시작했다. 단체가 아닌 개인이나 가족을 승용차를 이용해서 관광을 시켜주는 일이었다. 누가 시켜서도 누가 알려줘서도 아니었다. 뭐라도 해야만 한다는 절박함이 등을 떠민 것뿐이었다. 그래서 내셔널 갤러리와 테이트 모던, 테이트 갤러리, 브리티시 뮤지움 등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명색이 가이드여서 뭐라도 설명을 해야만 했지만 아는 것이 없어서 당황하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넓고 얕은 지식이라도 머리에 욱여넣어야만 했다. 아니면 팩트에 기반하지 않은 소설을 써야만 했다. 손님에게 소설을 쓰기 싫어서 공부를 시작하다 보니 영국의 역사와 주요 관광 포인트 등을 설명할 수 있는 기초적인 지식들이 조금씩 쌓여가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손님들은 현장에서 팩트 체크를 할 수 없었다.     


월출산 국립공원


 하지만 예술분야, 특히 그림은 공부를 조금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내셔널 갤러리를 비롯한 그 많은 런던의 갤러리들에 소장된 그림들을 공부해서 설명한다는 일은 애당초 말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림은 파리로 넘어가면 루브르나 오르세 미술관에서 보셔도 된다며 나는 밖에서 기다렸다. 지금도 그림 공부에 미련이 남아서 고흐 한 사람이라도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태생적으로 예술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던 사람이 생업으로 인해 예술을 공부해야 한다는 일은 슬픔이었다. 지독한 음치가 노래교실에서 노래를 가르치는 일만큼이나 슬픈 일이었다. 어쩌면 먹고 산다는 일은 죽기 전날까지 슬픈 일들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돈은 아무리 공부하고 이해하려 해도 그 끝을 보여주지 않는다. 돈을 공부해서 아주 작은 부자, 부자 축에도 끼어 주기 힘든 부자가 되는  사람들보다는 돈에 문외한인, 적어도 돈에 대해서는 무지렁이처럼 살던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사람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것도 돈의 단위가 달라도 너무나도 다른 부자가 되는 세상이다.  
  

월출산 국립공원


 런던에서 가이드를 하면서 평생 해야 할 거짓말을 그때 다해버렸다. 그래서 이제는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게 몸에 배어서였는지 수시로 거짓말을 하고 살고 있다. 난 조금도 우울하지 않아! 난 돈 따위에는 관심도 없어! 난 이제 열심히 살고 싶지 않아! 난 모든 것을 내려놓았어! 난 건강 하나만 되찾으면 그만이야! 난 혼자여도 충분히 행복해! 난 이혼했지만 생각해보니 이혼하지 않은 것보다 잘한 거 같아! 글이나 쓰고 하루에만 충실할 거야! 다가오지도 않는 미래 속으로 뛰어들어서 걱정거리를 만들고 싶지 않아! 난 정말 도시를 떠나서도 아무렇지 않게 잘 살 수 있을 거야! 등등..    
 

월출산 국립공원


 산은 아주 천천히 여러 가지 그림을 그린다. 사실은 아주 빠른 속도로 수많은 컷들을 그리고 있지만 인간의 눈에는 하나의 장면으로만 보일 뿐일지도 모른다. 가끔씩 장면이 바뀌는, 중학생이던 아이가 숙제로 만들었던 그 단편영화처럼. 아이는 중학교를 한국에서 다녔다. 아픈 엄마를 따라 지방의 어느 도시에서 3년간을 살았고 그러면서 중학교 과정을 마쳤다. 한국어를 하지 못해서 미국계 국제학교를 다녔고 수업은 모두 “맥북”을 통해 이루어졌다. 학교는 작은 언덕에 있었다. 산이라고들 말하는데 도시의 작은 언덕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하다. 8월 중순 한국의 무더위가 주춤거릴 무렵이었다. 입학식전에 오리엔테이션을 하였고 선생님들은 모두 미국인이었고 아메리칸 잉글리시를 사용하고 있었다. 아이는 무척 재미있어하였다. 영어의 미국 사투리라며 아이는 웃었다. 나와 아내도 웃었을 것이다.      

월출산 국립공원


 학교에서는 체육을 제외한 모든 수업은 반드시 “맥북”을 사용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었다. 그날 택시를 타고 갔다가 택시를 타고 온 학부모는 우리가 유일해 보였다. 주차장에는 최고의 수입차들의 전시장을 방불케 하였다. 우리가 탄 택시는 경비실에서 한참을 설명을 하고 증명을 해야 들어갈 수 있었다. 아이는 가끔 동영상을 직접 제작해서 편집까지 하는 학교 숙제를 하였고 런던에 있는 아빠에게도 보내 주었다. 주제들은 단순했다. 아마 첫 번째 아이의 작품은 운전과 관련된 도덕성이 주제였던 걸로 기억난다. 아파트 단지 내의 지하 주차장에서 나오던 차와 아이가 탄 보드와 충돌하는 교통사고가 설정이었다. 결론은 차가 과속을 하지 않으면 아이가 살 수 있지만 과속을 하면 아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그래서 단지 내에서 제한 속도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재미있어서 보고 또 보았다. 당시 아이가 엄마와 한국에서 살던 아파트 단지는 요즘 지어지는  아파트들과 달리 차가 지상을 거쳐야만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월출산 국립공원


 그 시절의 아이는 자라서 성인이 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나에겐 아이일 뿐이다. 아이가 유난히도 반 고흐에 집착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아빠인 나도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반 고흐를 공부하고 연구하고 파고들고 있다. 그의 뭐가 그리 좋은지는 모른다. 아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솔직히 그의 그림들을 봐도 특별한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다만 그의 인생에서 나를 발견할 때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평생을 외롭게 살면서도 사랑을 하려 노력하였다. 그 사랑은 본능이었고 그래서 많은 여인들을 실제로 사랑하였다. 사촌 누나에서부터 사창가의 여자까지. 그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상대는 동생 테오도, 이기적이라고 표한해도 괜찮을 법한 친구 고갱도, 많은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는 가셰 박사도 아니었다. 오직 그림을 그리는 일뿐이었다. 그는 매일 8시에 아젤을 들고 강가나 밀밭 또는 카페로 출근해서 다섯 시에 퇴근을 하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외로움의 덧에 걸려서 팔이 잘리거나 다리가 잘릴 수도 있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팔리지도 않는 그림을 죽기 전날까지 그릴 수 있다는 신념 또한 예술가의 광적인 집착이라기보다는 주체할 수 없는 "외로움"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월출산 국립공원


 비가 오락가락하는 사이에도 산은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흰색 물감만 사용하는 줄 알았더니 진한 초록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산은 그리고 나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 일을 감상한다고 표현하기에는 외람된 기분이 들 정도로 신비롭다. 마치 고흐가 그림을 그리고 내가 그의 곁에서 말을 걸지 않은 채 그의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것처럼.
 

월출산 국립공원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6:00~18: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은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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