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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Jun 14. 2020

비누냄새!

국립공원의 입산통제와 장대비에 대한 추억!

                                                            

입산통제중인 월출산 국립공원

 
 일요일 아침까지 국립공원은 호우특보로 입산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적막한 산중에 내리는 빗소리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온갖 불협화음을 배재한 채 아름다운 오케스트라로 변신한 상태다. 온갖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는 물론이고 심지어 모기와 하루살이들도 자기들만의 목소리를 내며 자연의 웅장한 오케스트라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장대비는 오전 10시가 되어서야 갑자기 뚝 그쳤고 그새 등산객들이 입구에서 들뜬 마음으로 서성거렸다. 관리사무소 입구에는 진입통제용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다. 먼저 와서 기다리던 등산객들은 언제 입산통제가 해제되는지 물었다.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들은 수시로 어디론가 전화를 해서 지침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비가 그친 지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입산통제가 풀렸다. 삼삼오오 기다리던 등산객들은 완전무장을 한 채 인간의 영역에서 산의 영역으로 넘어선다. 산은 여전히 베일을 걷어내지 않고 있었다. 베일이라는 것은 물방울을 머금은 안개인지 구름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희뿌연 것이었다. 자신들의 차량에서 대기하던 사람들은 그 베일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그 시간쯤에 비가 그치고 입산통제도 풀릴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주말과 휴일에 국지적이긴 하지만 순간 150밀리 이상의 집중호우가 퍼부을 수 있다는 날씨예보는 토요일 저녁까지만 해도 빗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최근 들어 폭우가 내린다는 예보는 여러 번 빗나갔다. 날씨와 여자는 믿을 수 없다는 상투적인 말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예보란 가능성의 확률일 뿐이다.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비올 확률 50%면 기상청의 입장에서는 비가 와도 맞고 오지 않아도 맞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은 아니라는 듯이 밤새도록 장대비가 퍼부었다. 비가 내리는 산중의 공기는 음습하고 어둠 속에서 뭐라도 금방 튀어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새벽녘에 퍼붓는 빗소리에 깨어서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일요일 새벽에 장대비를 오랫동안 바라보며 저 장대비 속으로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비누를 미끄러지지 않게 두 손으로 잡고서 수돗물이 아닌 장대비의 빗물로서 온몸의 구석구석을 씻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누 냄새가 주는 그 행복을 어떤 소설 속의 주인공들처럼 느낄 수야 없겠지만 왠지 그래 보고 싶었다. 그들이 절대 지워지지 않을 오물과 냄새에 찌든 신발과 옷과 몸을 아파트 발코니에서 씻어내듯이 나도 온몸의 통증과 염증을 씻어내고 싶었다. 순간의 충동이었다. 물론 실행하지 못하였다.      


 “동이 틀 무렵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창문을 사납게 두드려대는 바람 소리는 수없이 채찍을 휘두르는 소리처럼 들렸다. 의사의 아내는 일어나 눈을 뜨고 중얼거렸다. (중략) 저 빗소리 좀 들어봐! (중략) 비는 억수로 퍼부었다. (중략) 이 비를 이용해야 돼. (중략) 이제 더러운 옷과 신발을 닦을 수 있는 물이 생겼구나! 그치지 말아 다오. (중략) 나는 더러운 건 무엇이든 다 씻어버릴 거예요, 자 일을 해요. 시작합시다. (중략) 이제 세 여자가 자기들 몸을 닦을 차례다. 그들은 머리를 물에 적시고, 서로의 등을 닦아준다. 그들은 눈이 멀기 전인 어린 소녀 시절 정원에서 술래잡기할 때처럼 깔깔거리며 웃는다. 동이 텄다. 첫 햇살이 세상의 어깨너머로 들여다보다가 다시 구름 뒤로 숨었다. 비는 계속 내리지만 빗줄기는 가늘어졌다. 여자들은 부엌으로 돌아가 물기를 말리고, 의사의 아내가 화장실 장으로 가서 가져온 수건으로 몸을 문지른다. 그들의 몸에서는 비누 냄새가 강하게 난다. 그것이 인생이다.”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P 392>     


 갑자기 눈이 멀기 시작하면서 물과 화장실도 없이 오랫동안 격리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수용소를 탈출해서 목욕하는 장면이다. 모두가 눈이 멀면서 도시 전체의 기능은 마비되었고 오직 의사의 아내만 눈이 멀지 않았다. 눈이 머는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전염성이 훨씬 강했다. 결국 모두가 눈이 멀면서 정부의 기능은 마비되고 인간 본연의 추하고 악한 모습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도시 전체는 약탈과 쓰레기장으로 변하고 사람들은 죽어간다.      

 그러던 와중에 장대비가 내린 것이다. 오랫동안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전혀 씻지 못하는 상황에서 동틀 무렵의 목욕 장면이다. 그것도 장대비를 이용한 발코니에서의 목욕 장면은 가슴 뭉클하다. 목욕 전 첫 번째 한일은 온갖 오물에 오염된 신발들을 빠는 것이었다. 그다음은 넝마처럼 된 옷이었는데 옷은 아무리 빨아도 소용이 없었다.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한번 도 씻지 못하던 여자들이 언제 해본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목욕을 하는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감명 깊은 부분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갑자기 눈을 떠가기 시작하는 그 순간보다 더.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이민 초기의 일이다. 여름이 조금씩 희미해지는 8월이었다. 이 시기에 영국에서는 많은 축제와 카니발이 열린다. 글라스톤 버리 카니발을 비롯하여 에든버러 축제 등 크고 작은 카니발이 끝나면 학교가 개학하며 가을을 맞는다. 그해 런던 외곽의 어느 도시에서도 성대한(?) 카니발이 열렸다. 나와 아내는 임시직원 두 사람을 고용하여 카니발에 참가하였다. 카니발에서 일식을 팔기 위해 해당 카운셀(시청)에 사전 허가를 받아 놓았고 자리 배치도까지 받았다. 그날 하루 동안 팔 수 있는 양을 예상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그 당시는 한 곳에서 음식을 팔지 못하고 장돌뱅이처럼 떠돌아야 했다. 그러면서 지역의 시장 특성과 영국인들의 음식 취향도 파악하고 메뉴도 개선해 나갈 수 있었다. 아무런 실력도 없이 식당부터 오픈하면 5년 동안 살아남을 확률은 5% 미만이었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식을 택한 이유는 그 당시까지만 해도 한식이 지금처럼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가장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일식이었다. 일식은 “단짠”의 대명사였고 처음 먹는 사람들도 그다지 거부감이 없었다. 물론 초밥이나 생선회를 제외하고. 반면 한식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다.     
 

 아침 6시부터 움직이기 시작한 우리는 가로 4.5미터 세로 3미터의 캐노피를 쳤고 부지런히 세팅을 마쳤다. 7시가 지나자 세팅이 끝났다. 동시에 시커먼 먹구름이 지나가기 시작하였다. 비가 예보되어 있었지만  우리처럼 준비하는 상인들은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비가 어지간히 와서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영국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7시부터는 그날 당일 팔 음식 준비에 들어갔다. 카니발은 10시부터 6시까지 열린다. 우리도 다른 상인들처럼 비에 대비는 하면서 평소대로 많은 양의 식재료를 준비하고 10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10시에 우렁찬 북소리와 함께 카니발의 행진이 시작되면서 비가 오기 시작하였다. 그것도 보통 비가 아니라 장대비였다. 하지만 축제에 참가한 시민들이나 우리 같은 장사치들은 잠깐 지나가는 비라고 치부하고 그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비는 10시부터 6시까지 단 1분도 쉬지 않고 무섭게 퍼부었다. 주체 측은 계속해서 행사를 강행하였지만 흠뻑 젖은 시민들은 쇼핑센터나 집으로 뿔뿔이 흩어져갔다. 덕분에 근처의 쇼핑센터와 맥도널드 등은 하루 종일 북새통을 이루었다. 반면, 다른 상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네 사람은 하루 종일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장사를 시작도 못해보고 장은 파시 하고 만 꼴이었다. 임시로 고용된 직원들은 잘 알고 지내는 지인이었다. 그래도 그들의 인건비를 건네주고 그날 팔지 못한 식자재는 모두 버려야만 했다. 갑자기 울화가 치밀었다. 이민 초기였고 한참 화가 많을 때였다.     
 

 그때 나는 하루 종일 생각했다. 절대로 음식장사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많은 상인들은 비에 흠뻑 젖은 짐들을 패킹하면서 도둑맞은 하루에 넋이 나간 모습들이었다. 살면서 이런 날은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비싼 자릿세와 인건비에 식재료비들을 따지면 적지 않은 손실이었다. 비에 익숙한 영국인들이지만 이러한 장대비에는 그들도 속수무책이었다. 빗나가길 바라던 일기예보가 이처럼 정확하게 맞으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였다. 심지어 주체 측인 카운셀 직원들마저도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먹고사는 문제는 시기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다. 그날 하루 종일 안절부절못하며 짜증을 내던 사람은 나뿐이었다. 심지어 하늘에 삿대질을 하며 저주를 퍼붓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나를 오히려 어르고 달랬다. 이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하루짜리에 불과한 “작은 불행”이라고. 그래서 짜증 낼 필요도, 화낼 필요도, 하늘에 삿대질할 필요도 없다고 나를 위로했다. 어차피 내리기로 아주 오래전부터 약속된 장대비였고 그 약속이 지켜진 것뿐이라고, 이깟 하루짜리 불행을 불편으로 생각하면 그만이라고, 집에 가서 따듯한 물로 샤워하고 넷이서 펍에서 생맥주나 마시자고, 그래서 오늘의 작은 불행을 털어내면 그만이라고, 얼른 돈 모아서 번듯한 식당 차리면 되지 않느냐고.     
 



 점심때가 되자 등산객들이 제법 몰려든다. 불과 두 시간 전에 입산통제가 풀린 사실을 어떻게 알고 저렇게 모여드는 것일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 궁금증은 오후 4시쯤 풀렸다. 이미 예약이 된 산악회 회원들이 다수였다. 아래층의 식당에서 소란스러운 소리들이 들린다. 아주 오랜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자의 예감만 예리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나의 휴대폰이 울린다. 여동생의 긴급 호출이다. 식당으로 뛰어 내려가 서빙을 돕는다. 그렇게 1시간도 안되어서 소란은 수습되었다. 같은 산악회 회원들인데도 서로 먼저 음식을 달라며 절대 양보하지 않는 모습에서 작은 슬픔이 느껴졌다.

 코로나의 여파가 길어지면서 사람들이 상당히 날카로워지고 예민해져 있었다. 누구 하나 걸리면 금방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였다. 어쩌면 봄에 오지 못한 등산을 이제라도 와서 복받치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2층 펜션으로 올라왔다. 내가 런던에서 아주 오랫동안 하던 식당일을 여동생이 지난해 봄부터 시작했다. 세상에 어느 일 하나 힘들지 않은 것이 없다지만, 식당일만큼 힘든 일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여동생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런던의 아내도 마찬가지다. 3월부터 강제 휴업에 들어간 런던의 식당들은 7월은 되어야 오픈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것도 그때 가 봐야 한다는 것이다. 런던의 아내도 아직까지 식당 문을 열지 못해 애만 태우고 있다. 

 어제저녁에 펜션 내부에 있던 화분들을 밖으로 내놓았다. 오랜만에 자연을 만끽하라고. 그런데 비를 얼마나 맞았는지 아이들은 뾰루퉁하고 의기소침해 있었다. 나를 원망하는 듯한 눈길들을 피해 안으로 달아나듯 들어와 버렸다. 장대비가 밤새 내리고 아침까지 내릴 줄 알았더라면 나도 그들을 밖으로 내놓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미안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실내 식물들에게 밤새 장대비를 맞춘 죄책감을 생각하다 보니 이민 초기의 그 런던 외곽 어느 도시에서의 장대비와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의 장대비가 서로 만나서 아는 체를 하고 있었다. 서로 결코 어울리지 못할 것 같은 시간과 장소의 이질감은 장대비라는 동질감으로 오랜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다른 사람들이 깨기 전에 갑자기 미친 짓을 해보고 싶어 졌다. 장대비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그 빗물로 샤워를 하고 싶었다. 그것도 발가벗고 비누로 머리부터 얼굴, 가슴, 사타구니와 허벅지, 종아리와 발바닥까지 구석구석을 비누로 씻어내고 싶었다. 마치 의사의 아내와 다른 두 눈먼 여자들이 발코니에서 그랬던 것처럼. 창문 너머의 산중에도 동이 트고 있었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6:00~18: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은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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