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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Jun 27. 2020

이민 첫날 마주한 런던의 디스토피아!

제3화. 이민! 마침내 런던에 도착하다.

 아! 사람들이 행복이라 부르는 것은 어쩌면 이다지도 영혼과 밀접한 것일까! 행복을 외적으로 형성하는 듯한 요소는 어쩌면 이다지도 부질없는 것일까! (중략) 어째서 내 맘은 이다지도 억제할 수 없는 알지 못할 우울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까!(중략) 아무래도 전에 내 기쁨 속에는 어떤 오만함이 깃들어 있었던가 봐. 왜냐하면 이 낯선 지방의 즐거운 분위기 속에 싸여서 느끼는 것은 일종의 굴욕감이니 말이야. <앙드레 지드, 좁은 문, 중에서>    


 알리사가 사촌동생 제롬에게 보낸 편지 내용의 일부다. 알리사는 제롬과의 사랑에서 그저 견뎌내는 힘을 기르고 있었다. 지상의 행복을 포기한 천상의 사랑! 그녀는 편지의 곳곳에 슬픔을 한껏 머금은 "불안"을 키워가고 있었다. 확실한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그들의 사랑처럼, 나의 런던행도 마찬가지였다. 희망과 자신감으로 포장한 그럴듯한 "이민"이라는 패키지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어쩌면, 갓 결혼한 아내와 함께 나만의 짝사랑을 만나러 가는 일은 무모한 짓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아내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오만하기 그지없는 영국이 나의 구애를 받아주리라는 확신은 점차 불신으로 바뀌고 있었다. 아직 비행기에서 내리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구애가 좌절되면서 모든 것은 순진 난만한 꿈과 희망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없었다. 아니 그럴만한 "용기"조차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비록 부실하긴 하지만 "급조된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원래 무모함이란 그런 것이어야 하니까!


 12시간 반의 고단한 비행을 마친다는 캡틴의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현재 런던의 기온은 11도, 로컬 타임은 오후 5시 35분이며 비가 내리고 있다.”는 루틴 한 내용들이었다. 캡틴의 억양은 브리티쉬라는 사실을 마치 과시라도 하듯이 중저음에 자신감이 묻어나고 있었다. 잠시 후에 착륙한다는 자신만만한 캡틴의 목소리와는 달리 나의 자신감은 고도를 낮추는 속도만큼이나 급강하 중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내가 이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고 어엿한 한 그루의 나무로 성장할 수 있을까? 고생 한번 해보지 않은 내가 과연 밀려올 수많은 난관들을 이겨 낼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신음인지 한숨인지 알 수 없는 것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안도였는지 불안이었는지 아니면 둘 다였는지 알 수 없는 모호한 것이었다. 아내가 몇 번 지적했듯이, 좋지 않은, 그저 단순한 습관이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고쳐나가면 그만인 한숨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런던 히스로 공항에 착륙한 비행기는 아주 느리고 침착하게 계류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창밖의 빗줄기는 타원형의 비행기 창문을 희미한 소리와 함께 노크하고 있었다. 안간힘을 쓰지만 매달리지 못하고 미끄러져 내렸다. 늦은 오후였는데 마치 한밤중처럼 진한 어둠이 공항을 감싸며 모든 불빛들은 빗물에 굴절되어 흔들리고 있었다. 가슴 깊은 구석에 꼭꼭 숨겨놓은 우울과 불안이 밀려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내색을 해선 안 된다. 옆에는 나만 믿고 따라온 아내가 있지 않은가! 그것도 홀몸이 아니다. 이만 오천 피트 상공의 맑고 쾌청한 대기에서 하강하기 시작한 비행기는 구름 사이를 해치고 어느새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와 있었다. 우리가 탄 비행기를 맞이한 것은 런던의 먹구름과 어둠과 비와 불빛들이었다. 그 안에는 내색할 수 없는 불안과 근거 없는 희망도 뒤섞여 있었다.   
   

 마침내 비행기는 계류장으로 들어섰고 승용차가 주차를 하듯 지정된 자리에 멈추었다. 승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일어섰다. 나와 아내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내 뱃속에서 자고 있던 아이도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듯이 꼬물거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비행기 문이 열렸고 비행기는 순식간에 텅 비어버렸다. 초가을인데도 런던의 대기는 한기를 품고 있었다. 비 때문인지 어둠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가 긴장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차갑고 낯선 공기였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낯선 언어들! 영어보다 더 많이 들려오는 그 낯선 언어들이 입국장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오직 하나의 언어만 말하고 들으며 살아오다가 온갖 낯선 언어들에 포위당한 느낌이었다. 입국 심사대는 번호를 알 수 없을 만큼 많이 열려있었다. 검은 제복을 입은 이민국 직원들이 표정 없이 심사를 하고 있었다. 줄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이나 길었고 기다리는 시간은 점점 길어져 갔다. 12시간 반의 비행시간보다 지루하고 힘이 들었다. 특히 아내는 더욱 그랬다. 장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런던의 공항은 쉽사리 환영해 주지 않으려는 듯 한 시간 반 가량을 기다리게 하였다.
    

 우리가 서 있는 외국인 줄에서는 점점 침묵이 깊어갔다. 어느 순간부터 심각한 분위기로 전환되면서 떠들고 웃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가끔 통화하는 목소리도 톤이 낮고 속삭이듯 하였다. 예절이 바른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알 수 없는 불안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입국 거절과 동시에 추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앞줄의 사람들이 보여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불안이었는데 그것은 차츰 공포로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었다. 런던 히스로 공항의 입국심사는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온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영국이 EU에 가입하면서도 “셍겐 협정(Schengen Agreement)”을 내세워 기본 중의 기본인 국경을 막았다. 또한 자국 화폐인 파운드를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및 스페인 등이 자국의 화폐를 모두 포기하고 유로화라는 단일 통화를 도입하였을 때도 영국은 유로화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국 내에서 유로화가 사용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일종의 선견지명(?)이었을까! 동거하다가 삐걱거리면 언제라도 EU와 이혼할지도 모른다는 그 선견지명. 즉 EU와 결혼하면서부터 각방을 썼고 딴지갑을 찼던 것이다. 그런 자존심 강한 나라의 입국심사대 앞에서 긴장하지 않을 외국인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심지어 미국인도 마찬가지다. 입국을 허용할지 거부할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입국심사관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입국심사관이 전날 부부싸움이라도 했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그다음 날 재수 없게도 그 심사관의 줄에 서는 사람들은 까다로운 심문 같은 심사를 받아야 할 수도 있다. 가끔 흑인이나 아랍계 승객들의 입국심사 시간이 길어졌고 경찰과 함께 어디론가 끌려가듯이 사라졌다. 툭툭 던지는 가벼운 질문에 꼬투리라도 잡히면 형사나 검사로 돌변하는 사람들이 입국심사관들이기 때문이다. 영국을 한 번이라도 여행했거나 영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고 간단한 몇 가지 질문만 던졌다. 어디서 왔냐고 물었고 Korea라고 답했다. 이어서 North인지 South인지 물었다. 그걸 왜 묻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아무튼 북한에서도 오는 사람들도 있을 터이다. South라고 대답하자 심사관 남자는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무런 표정도 없이 스탬프를 찍어준다. 6개월까지 체류할 수 있는 비자였다. 단, 영국 내에서는 어떠한 일도 할 수 없다는 조항이 스탬프 하단에 적혀 있었다.  North인지 South인지 왜 물었는지는 이해가 가지 않아 지하철 역에서도 곰곰이 생각해야 했다. 입국심사관이라면 여권 색깔만으로도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다. 어차피 사진과 실물을 대조하려면 여권 첫 페이지를 열어야만 한다. 운이 좋은 줄에 섰다는 사실은 불안 속에서도 한 톨의 긍정을 찾아낸 것만큼이나 기분이 좋았다. 입국심사관은 만사에 의욕이 없어 보였다. 간밤에 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허무나 염세 관련 책을 읽다가 마지못해 근무하러 나온 사람 같았다.     
 

 다행이었던 점은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서 짐을 찾는 시스템이었다. 먼저 짐부터 찾고 입국심사가 시작되었더라면 우린 입국 거절이었을 것이 확실하다. 바리바리 싸서 지퍼가 열리거나 지퍼 재봉선이 버티기를 포기하고 터질 것만 같은 이민가방 4개와 기내용 가방 2개 그리고 배낭 하나씩이 우리의 짐이었기 때문이다. 이삿짐 수준에 가까운 우리의 가방들을 그 게으르고 의욕 없는 심사관이 봤더라면 눈동자의 동공이 급히 팽창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범죄자 취조하듯 자세가 돌변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관광객의 짐이라고는 상상이 가지 않는 짐들 앞에 크게 당황했을 게 분명하다. 비록 아무리 의욕이 없는 영국의 공무원이라 할지라도.
    

 세관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린 세관을 통과해 마침내 영국 땅에 입성하였다. 아무 사건사고(?)도 일어나지 않은 무혈입성이었다. 우리는 Costa 앞에서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던 후배 L을 쉽게 찾았다. 우리가 찾았다기보다는 그의 눈에 우리가 먼저 띄었을 것이다. 나와 L은 이년만의 상봉이었다. 나는 차가 어디에 있냐고 물었더니 L은 지하에 있다고 답하였다. 우린 그를 졸졸 따라갔다. 그가 말하는 지하는 지하철이었다. 하기는 일반 승용차에는 짐도 다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지하철이 나았다. 그렇게 피카딜리 라인을 탔고 튜브라 불리는 런던의 지하철은 공항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공항을 벋어 나자마자 답답하다는 듯이 지상으로 뛰쳐 올라왔다.     
 

 나도 아내도 런던이 처음은 아니다. 신혼여행도 이곳으로 왔었고 20대의 젊은 날에도 왔었다. 그것도 같은 해였다. 나는 어학연수로 아내는 여행으로 런던 땅을 밟은 이력이 있었다. 그때는 우리가 런던이라는 같은 도시에 있었지만 그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완벽한 타인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런던의 어느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설사, 그랬더라도 우리는 한국 사람이 지나가는구나! 정도의 생각만 했거나 그조차도 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런던의 지하철은 적당히 분주하였다. 역마다 사람들이 내리고 탔다. 칙칙한 검정 계열의 옷에 무표정한 얼굴들이었다. 처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런던의 공기와 풍경 심지어 스치는 바람마저도 낯설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지는 이 도시의 낯섦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것일까! 나와는 달리 아내의 표정에는 불안보다는 설렘이 가득해 보였다. 과연 이 도시의 어디쯤에 자리를 잡고 뭘 해가며 살고 있을까! 상상이 가지 않는 가까운 미래가 몹시 긴장하며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다.    
  

 사실 나에게는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충동구매를 통해 온 이민에 계획이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구체적이지는 못해도, 윤곽이라도 잡혀있는 청사진이라도 가져와야 했다. 하지만 그런 것조차도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나의 밀어붙이기식의 “배짱”뿐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용기“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길 좋아했다. 내가 처음 런던에 왔을 때, 지금처럼 피카딜리 라인을 타고 공항을 빠져나와 지상으로 올라올 때는 천국에 있는 기분이었다. 작고 귀엽고 아담한 2층 집들의 앞뒤 정원에는 목련이 피어났고 개나리는 이웃과의 경계를 유지하느라 애쓰면서도 활짝 웃고 있었다. 일사불란하게 지어진 집들과 통일된 건축양식, 넘쳐나는 공원들에서 유토피아를 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정 반대였다. 암울한 디스토피아에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비가 내리는 우중충하고 어두운 마을들에는 이미 생을 다한 낙엽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밀려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비 때문인지, 마을 골목에도 그 골목을 이루게 하는 집들의 정원에도 을씨년스러운 그림자만 가득하였다. 마치 사람들이 떠나간 미래의 어느 도시처럼 우울해 보였다.

 아내의 뱃속에 있는 아이까지 세 명의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일을 벌써부터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며칠 쉬며 시차도 극복하고 나서 해도 늦지 않을 걱정이었다. 걱정은 걱정을 키워갈 뿐이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였다. 그런데 인생은 늘 아이러니와 미스터리의 중간쯤에 나를 올려놓고 나의 생각과 행동을 은밀하게 즐겼다. 치밀한 계획이 있었더라면 나는 아예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것이 안정된 서울에서 남들처럼 월급 받으며 착실하게 살았을 것이다. 달나라나 화성은 개척하지 못해도 내 인생 정도는 개척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런던은 이민 첫날부터 무섭도록 냉혹한 얼굴을 보여주고 있었다. 잔인할 정도로 차가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토피아였던 런던이 안면을 싹 바꾸며 모른 체할 줄은 몰랐다. 런던의 하늘에서 순식간에 디스토피아의 암울한 구름들이 몰려드는 일은 다반사였지만 이번만은 느낌이나 강도가 달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불안은 철저하게 기밀을 유지해야만 했다. 야구로 치자면, 선발투수가 1회 초 공도 던져보지 못하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내나 L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나름 노력하고 있는데 L이 갑자기 분주해진다. 지하철을 갈아타야 한다는 것이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아니 저 많은 짐을 어떻게 두 번 씩이나. 아내는 짐을 들면 안 되는 임산부인데 말이다. 그래도 넉살 좋은 L은 웃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형 이 정도는 짐도 아니야! 나 혼자도 옮길 수 있으니 걱정 말라고!" 드디어 우리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낭만과 긍정의 아이콘이던 아내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공항에서 블랙캡(영국의 택시)을 탔을 텐데. 아무리 영국이 물가가 비싼 나라라 할지라도 그랬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고생의 범주에도 끼지 못하는 일상의 미세한 "해프닝"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그땐 알지 못했다. 작고 미세한 불행들은 다가올 큰 불행 앞에서 지극히 평범한 행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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