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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Jul 02. 2020

돈가스를 던지던 런던의 역대급 진상 아줌마!

분노의 플라잉 돈가스 사건과 분노조절장애

                                

  분노조절장애를 단순히 정신 어느 분야의 질병쯤으로만 여기며 살던 때가 있었다. 나도 가끔은 그런 욕구와 충동을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병이 그리 간단치 않은 무서운 병이라는 것을 경험한 후에는 “사이코페스들”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사고를 친 직후 자신은 단순히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라서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없을 거라며 당당한 미소까지 지을 때 그녀의 모습에서 악마가 보였다. 그녀의 영혼은 이미 악령들에게 조아리며 조정당하는 사이코페스였다. 그래서 경찰에까지는 신고하지 않았다. 대신에 사과는 받아냈다. 영혼이 전혀 없거나 있어도 이미 심각한 냄새와 함께 부패해가는 사과이기는 했지만.
     

 4년 전쯤 평일 점심시간이었다. 런던의 기나긴 겨울이 꼬리를 감추기 시작하면서 봄이 달려들고 있었다. 정말이지 모처럼 화창한 날씨였다. 야외 테이블들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유럽인들에게 큰 기쁨이다. 그 공간과 시간에서 햇볕을 즐기는 일보다 더한 기쁨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영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자연이 주는 햇빛 하나에 모두가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 사고가 일어난 시점은 바쁜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길게 늘어섰던 손님들의 줄은 많이 줄어들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신입직원 한 명과 늦은 브런치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뭐가 “휙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가르며 비행하고 있었다. 그건 분명히 손님에게 서빙된 돈가스였다.

 "사장님, 요즘은 돈가스가 새처럼 날아다니기도 하나 봐요!" 라며 같이 식사를 하던 신입직원은 농담처럼 말을 던졌다. 나도 "그러게,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라면서 그 농담을 받아냈다. 별생각 없이 다시 고개를 숙이고 식사를 이어가려던 찰나였다. 퍽 소리와 첨벙 소리가 들리긴 하였지만 나의 뇌에선 단순한 백색 소음쯤으로 무시하고 있었다. 그 비명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이어서 Call the police! Call the police!라는 소리들이 앞쪽에서 들렸다. 오더를 하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던 손님들의 목소리였다.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자마자 나는 일어나 돈가스가 투하된 현장으로 달려갔다. 누가 보아도 명백한 테러였다.   

  

 돈가스를 던진 사람은 익숙한 여자 손님이었고 테러를 당한 사람은 여자 직원이었다. 그녀는 매니저였고 테러리스트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해왔기 때문에 그녀의 표적이 되었다. 매니저는 오픈된 주방 입구 쪽에서 튀김만 전담한다. 튀김 기계는 돈가스용, 치킨가스용, 새우용 등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영국에는 채식주의자가 많기 때문이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무슬림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숙련된 직원인 매니저가 튀김만 전담해서 튀기는 중이었다. 매니저는 보통 때처럼 열심히 튀김들을 튀겨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정체불명의 돈가스가 날아든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폭탄은 매니저 몸에 정확히 명중했다. 튕겨진 돈가스는 튀김기의 펄펄 끓고 있는 기름 속으로 "풍덩" 소리를 내며 잠수하였다가 다시 튀어 올라왔다. 그 여파로 고온의 기름이 많이 넘치고 튀었지만 안전용 고글과 식당 주방에서 쓰는 플라스틱 마스크와 플라스틱 앞치마 그리고 안전화 덕분에 큰 화상은 피할 수 있었다. 기름 온도는 190도였다.


 말이 필요 없는 테러였고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곧이어 큰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오가고 있었다. 나로서는 상상조차 가지 않는 낯선 장면이었다. 나의 잠재의식 깊은 곳에서 고이 자고 있던 분노가 밀려 올라왔다. 나는 그녀를 ”살인미수범“으로 기소할 것이라면서 증인과 증거를 보전하려는 행동을 취했다. 분노조절장애! 그녀가 앓고 있는 질병이다. 내가 그녀와 다르지 않으려면 나의 분노와 협상을 하고 타협을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일 뿐이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은 나를 비롯하여 직원들과 다수의 손님들이었다. 그 손님은 직원들 모두가 피하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진상 정도면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하자 인간도 "레벨"이 있다고 가르쳐 주는 손님이었다. 그 손님은 단골이었고 항상 7~8명의 가족과 함께 몰려왔다. 결코 반갑지 않은 손님이지만 그래도 손님은 손님이었다. 직원들에게 무례한 것은 기본이었다. 그 손님의 가족이 먹고 간 자리는 마치 폭탄을 맞은 것처럼 난장판이 되곤 하였다. 매번 주문한 음식을 바꿔달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습관처럼 보였다. 마치 하인들에게 꼬투리를 잡아서 자신의 권위와 위엄을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주문한 음식이 나와서 서빙을 하면 그중 한두 가지는 다른 음식으로 바꿔 달라고 하는 손님인 줄은 직원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 마음이 변해서 먹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다른 메뉴로 바꿔달라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몇 번 바꿔 주라고 했다. 어찌 되었던 손님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소중한 사람들이니까. 한두 번 그랬더라면 이해가 갈 수도 있다. 인간은 누구나 사소한 실수를 범하고 살기 때문이다. 망각도 변심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녀 일당은 3년 정도를 매주 한두 번은 오는 단골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손님의 하자는 유효기간이 지난 생막걸리처럼 부풀어 올랐다. 음식이 나와서 서빙 단계에서 바꿔주는 일도 말이 되지 않는데 먹다가 다른 메뉴로 바꿔달라고 때를 쓰곤 하였다.           


 그때마다 직원들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그건 안 된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결국 매니저에게 보고해서 매니저가 나선다. 매니저는 원칙주의자여서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하였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면 내가 끼어든다. 매니저 몰래 몇 번 바꿔 주기도 했다. 결국 모든 것은 내 잘못이었다. 원칙을 고수하지 않고 손님을 배려해 준 것이 결국은 누군가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그 손님은 요르단 출신으로 덩치가 상당히 컸고 유치원생쯤 돼 보이는 딸아이가 하나 있었다. 부모님으로 보이는 노인 커플과 사촌이나 팔촌쯤 되어 보이는 친척들과 그에 딸린 아이들이 있었다. 그래도 그 아줌마의 남편과는 어느 정도 말이 통하긴 하였지만 아줌마의 기가 너무 세서 남편마저도 아줌마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나는 더 이상 손님으로 받을 수 없다고  정식으로 말했다. 다시는 우리 가게에 오지 말라는 통보도 잊지 않았다. 직원들에게도 그 아줌마 손님들은 주문도 받지 말라고 당부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고. 그 당시 아줌마는 흥분해서 POLICE를 외쳤지만 나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아줌마는 요르단에서 하인을 몇 두고 살았다고 자랑했고 태어나서 이런 수모와 대접은 처음이라며 분노하고 있었다. 그래도 경찰을 부르지는 않았다. 경찰을 부른다는 행위는 그 아줌마를 인간으로 대하는 일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내 마음속의 분노들은 꿈틀거렸고 사이코페스를 인간으로 대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그림자처럼.


 그 아줌마는 씩씩거리며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하며 테이블과 의자들을 걷어차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가운데 손가락으로 하늘을 찔러대며 온갖 쌍욕과 저주를 퍼부으며. 그녀는 시종일관 무례함을 잃지 않는 놀라운 아줌마였다. 마침내 우리 가게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직원들은 안도했고 그 이후에도 어지간한 진상 손님들은 그러려니 했다. 역대급 진상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자 있는 인간들은 세상에 차고 넘친다. 나부터 하자 인간이다. 문제는 정도의 차이였다. 최소 인간이 가지고 살아가야 할 인성과 인격의 범주 내에서의 하자가 아닌 것들은 누군가에게 반드시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만다. 그 아줌마가 요르단의 자기 하인을 어찌 다루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세상 사람들을 마치 자기 하인 대하듯 하는 일은 이해의 범주를 한참 벗어난 것이었다. 그것도 영국의 수도인 런던에서 말이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쯤은 이제 고양이들도 알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평화는 채 1년을 유지하지 못했다. 죽어도 우리 식당에는 오지 않을 거라며 테이블과 의자를 걷어차며 나갔던 그 아줌마 일행이 슬그머니 다시 나타난 것이다. 직원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다들 나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한참을 망설였다. 모른 척하고 손님처럼 오더를 받을 것인가! 그냥 내쳐야 할 것인가! 딸아이의 눈망울이 나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결국 또 한 번 치명적인 양보를 하고 말았다. 그날은 내가 직접 오더를 받았다. 주문서를 주면서 원하는 메뉴를 자필로 적고 서명까지 해달라고 하였다. 그러면 오더를 받아주겠다고 했다. 손님 입장에서 이 정도의 황당한 "무례"를 당하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야 상식이다. 하지만 그 아줌마는 이번에도 상식을 깨고 말았다. 내가 요구한 대로 서명까지 한 것이다. 오더를 받고 오면서 다시 주의를 주었다. 한번 주문이 들어가서 요리가 시작되면 음식은 바꿀 수 없다고. 그래서 신중히 생각해서 주문하라고. 그 아줌마와 가족 일행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들은 비로소 안도했다. 10여분 후에 음식들이 나왔고 열심히 먹기 시작하였다.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주문한 음식을 바꿔달라고 하지 않았다. 나도 안심해서 가장 구석의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아줌마가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먹고 있던 돈가스를 새우튀김 우동으로 바꿔달라는 것이었다. 직원들은 단호하게 “NO”라고 하였다. 그녀는 나를 찾지 않고 새우를 튀기던 매니저를 찾았다. 나름 머리를 굴린 것이다. 매니저가 그 아줌마 테이블로 갔고 역시 단호하게 “NO”라고 하였다.       
    

 아줌마는 체념하듯이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매니저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 새우와 돈가스를 튀기고 있었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아줌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매니저를 향해 돈가스로 돌직구를 던진 것이다. 튀김 기계들이 놓여있는 스탠드에는 강화 유리가 정면과 좌우에 부착되어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덩치 큰 아줌마는 소리를 버럭 지르며 돈가스를 매니저를 향해 던졌고 그 돈가스는 매니저를 강타했다. 천만다행으로 매니저는 완전 무장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무서운 화상은 피했지만 그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다.   


 음식을 먹던 손님들은 “POLICE “에 전화해야 한다면 ”999”을 막 누르려고 하였다. 나는 다급하게 제지하고 나섰다. 경찰을 부르지 말라고 요청했다. 일단 손님들에게 사과한 다음 그 아줌마를 불러냈다. 매니저도 불렀다. 매니저에게 먼저 사과부터 하라고 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아줌마는 “SORRY”라고 하였다. 영혼 없는 사과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였다. 나도 매니저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나의 일관성 없는 행동으로 인해 매니저가 받았을 깊은 상처는 아주 오랫동안 마음 깊은 곳에 웅크리며 남아있을 것이다.   

 “POLICE “를 부르지 못하게 한 것은 그 아줌마의 인생과 아이와 남편이 불쌍했기 때문이었다. 가장 불쌍해 보이는 사람은 딸을 그런 괴물로 만들어버린 그녀의 부모였다. 그녀는 하인을 몇 사람이나 두고 사는 집에서 자랐다고 했다. 엄마 아빠가 하인을 대하는 모습을 아주 어려서부터 보고 배우며. 인간 행세를 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그녀의 일상이 처량해 보였다. 중대하고 심각한 하자를 유지 보수해가며 생활하고 있는 그녀가 가장 안쓰러웠다. 그 뒤로 그 아줌마를 가끔은 마주쳤지만 우리 가게에 오는 일은 없었다. ”999” 버튼을 터치하면 경찰차가 즉시 달려온다. 가게에서 경찰서가 보인다.      


 런던에서 오랫동안 음식 장사를 하다 보니 별의별 진상들을 만나왔다. 실제로 세상에는 진상들이 넘쳐난다. 모든 사람들이 하인으로 보이는 진상들도 적지 않다. 손님도 중요하지만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직원들이었다. 손님들과 직원 간에 분쟁이 발생하면 무조건 손님 편을 들지 않았다. 손님도 왕이긴 하지만 모두가 왕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자 있는 왕들이 너무 많다. 문득, 런던에 있는 직원들이 보고 싶어 지는 날이다. 요즘 런던은 모든 식당이 강제 휴업 중이다.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하자 있는 인간들을 손님으로 대하는 일도 일상이고 행복이라는 사실을 코로나라는 바이러스가 가르쳐주고 있다.

 그 요르단 아줌마를 생각할 때마다 분노가 치밀었다가도 측은지심이 든다. 용서를 했다가도 용서가 안된다. 어쩌면 나의 깊은 내면에도 마그마처럼 분노가 끓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줌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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