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사람이 아니라 목적지가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까!
아저씨...
한국에서 사고 치고 온건 아니죠?
근데.. 영국에선 뭐해먹고 살 거예요?
계획은 가지고 있는 거죠?
기네스는 이 달랑거리는 소리 맛으로 먹는 거 아닌가요?
아저씨...
아저씨는 어떻게 아저씨보다 키도 크고 이쁜 언니와 결혼했어요?
아저씨네 댑따 부자죠?
언니가 임신 중인데도 이민을 올 만큼 급한 이유가 있었나요?
아기는 아들이에요 딸이에요?
아기 이름은 지었나요?
왜 미국이나 호주가 아니고 영국까지 이민을 왔어요?
보통 미국으로 많이 가잖아요?
태어날 아기가 아저씨 닮아서 머리가 크면 어떡하죠?
혹시 런던에 친척이라도 있나요?
아저씨 꿈은 뭐예요?
등등...
고향 런던이 나를 부른 것뿐이야! 내가 이민을 온 것이 아니라니까. 아가씨는 고향이 부산이랬지. 아가씨는 세계여행 중이고 지금은 유럽 여행 중이라고 했지. 얼마나 길지 모르겠지만 세계여행을 마치면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갈 예정이잖아. 아가씨가 떠나온 고향으로 언젠가는 돌아가고 말듯이 나는 고향 런던이 불러서 돌아온 것뿐이야. 그래서 이민이 아니고 이사인 거야. 나는 런던으로 이사 온 거야.
아무리 봐도 아저씨는 고향이 런던인 도시남처럼 보이지 않아요. 시골 촌놈처럼 보인다고요. 런던이 고향인 증거를 보여주세요. 제가 믿을 수 있도록.
그거야 어렵지 않지.(사실은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었음. 옆에서는 아내와 L부부가 계속 재미있어서 어쩔 줄을 몰라함) 아저씨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국의 어느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단다. 그런데 내가 태어나기 전에 런던에서 세계 농촌문제에 관한 세미나가 있었지. 그런데 나의 아버지가 한국 대표로 참가한 거야. 런던에서 “한국 농촌의 미래”라는 주제로 발표를 위해서. 그때 비행기 티켓은 부부동반으로 참석할 수 있도록 두장씩 보내졌고 그래서 어머니도 따라나선 거야. 보통 농사일은 혼자가 아닌 부부나 가족이 함께 하기 때문일 거야. 그때 아저씨는 엄마의 뱃속에서 7개월째 놀고먹는 백수였지. 지금 옆에 있는 언니의 뱃속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저씨 아이처럼 말이야. 한국에서는 비행기를 탈 때 별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돌아올 때는 문제가 된 거야. 왜냐하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영국은 선진국이었거든. 선진국들이 안전 문제에 대해 깐깐하고 까다롭게 굴잖아. 그래서 만삭이 되어가는 어머니는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할 수가 없었던 거야. 런던에서 출산을 마치고 나서야 비행기를 탈 수 있었지. 믿기지 않겠지만 그땐 그랬나 봐. 나는 그때 태어나지 않아서 정확한 이유는 몰라. 내가 고향이 런던인 이유인데 믿기지 않지? 사실 나도 믿기지 않거든
제가 외동딸이거든요.
아빠가 돌아가시면 재산은 엄마와 제가 상속받을 거예요.
근데 왜 좀생이처럼 저러시는지 모르겠다니까요.
짜증 나서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도 않아요.
엄마가 아빠 몰래 경비 일부를 보내주고 계세요.
나머지는 제가 현지에서 알바를 해서 해결해요.
여기 민박집처럼요.
세상의 모든 목적지들이란 어떻게 태어나는 것일까. 사람에게 목적지가 필요한 게 아니라 목적지가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이 떠나고 돌아오는 게 아니라 떠날 곳과 돌아올 곳이 인간들을 주고받는 게 아닐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10주년 특별 판, 이장욱, 절반 이상의 하루오>
그런데, 몇 달 후에 태어날 아저씨의 아기가 걱정되네요.
아저씨처럼 머리가 댑따 크면 어떡하죠?
역시나...
내 눈은 못 속인다니까요.
아저씨는 아기가 너무 예뻐 보이죠?
제 눈에는 엄청 못생겨 보이걸랑요.
아기가 이렇게 통통하고 둥글 거려도 되는 거예요?
마치 농구공에 테니스공 몇 개로 연결해 놓은 거 같아요.
갓 난 아이가 이렇게 머리가 커도 되는 거예요.
주름살도 있고요.
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