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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Jul 19. 2020

근데.. 영국에선 뭐해먹고 살 거예요?

제6화. 사람이  아니라 목적지가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까!

아저씨...
한국에서 사고 치고 온건 아니죠?
근데.. 영국에선 뭐해먹고 살 거예요?
계획은 가지고 있는 거죠?


 선아의 질문은 제법 정곡을 찔러 들어왔다. 방어할 틈도 없이 치고 들어오는 선아가 미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나는 답변을 내놓아야 했다. 화재를 돌릴 수는 없었다. 아내를 비롯하여 모두가 선아와 나의 대화를 은근히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녁 식사가 끝날 무렵 선아는 설거지를 후다닥 해치우고 유리잔 일곱 개를 준비해 왔다. 1 파인트짜리 스텔라와 기네스 맥주잔이 섞여있었다. 그녀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식탁은 다른 게스트들이 치웠다. 후배 L은 무료 공항 픽업도 모자라서 민박집에서 아침과 저녁식사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다. 손님들이 넘쳐나는 이유였다. 대신 설거지는 손님들이 하는 것이 관례처럼 보였다. 잠시 후 후배 L이 사 온 기네스 캔맥주 한 박스가 냉장고에서 나왔다. 검정에 가까운 색상의 알루미늄 캔에 들어있는 기네스! 몇 달 전 나와 아내가 영국으로 신혼여행을 와서 사 가지고 간 바로 그 기네스 캔맥주였다. 흔들면 달랑거리는 소리가 나는.

 선아는 기네스를 스텔라 잔에 정성스럽게 따르고 있었다. 아내와 그새 친해진 선아였다. 성격이 밝고 시원시원해서 낯을 가리는 법이 없는 선아였다. 그녀는 기네스 캔이 비어갈 무렵 습관처럼 캔을 흔들어 달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어디 하나 구김이 없어 보이는 선아! 그다지 미인은 아닌데도 웃는 인상이 예뻐 보였다. 하기야 스무살에는 뭘 입어도 예쁠 나이긴 하다. 스무 살에 세상에 맞서는 법을 배우고 있는 그녀가 기특해서 매일 대화를 했다. 우린 주로 유럽 여행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의 학생 시절 유럽여행 경험담들이 그녀에겐 많은 도움이 되길 바라며 나도 신이 났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로마행 야간열차를 탔다가 도둑맞은 이야기에 그녀는 신기하다는 듯이 관심을 갖기도 했다. 나만 도둑맞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탄 객차 한 량에 탄 승객 대부분이 털린 이야기였다.


기네스는 이 달랑거리는 소리 맛으로 먹는 거 아닌가요?


 선아는 기네스 일곱 잔을 정성스럽게 따라 주었다. 내가 바텐더 걸이라고 놀렸더니 크게 웃는다. 바텐더 걸은 맞지만 화류계 소속은 아니라고 받아치는 선아는 특별 안주도 내왔다. 이층 침대의 배낭 어딘가에 꼭꼭 숨겨둔 비장의 안주를 꺼내오는 선아는 의기양양했다. 잠시 후 부엌 쪽에서 쥐포 냄새가 진동을 했다. 쥐포를 구울 때 특유의 오그라드는 소리가 군침을 삼키게 하고 있었다. 런던에서 쥐포 안주라니! 부산에 계시는 선아 엄마가 EMS로 보내준 것이라고 했다.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쥐포를 가위로 자르던 선아는 잠깐 자신의 집 이야기를 했다. 내가 물었기 때문이다. 후배 L부부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우리 부부는 선아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어 했다. 파티 자리를 같이하고 있는 다른 손님도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선아는 알고 보니 어느 부잣집 외동딸이었다. 겨우 스무 살의 그녀가 손님 대접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듯이 후배 L부부는 미소 짓고 있었다. 손님이 많아서 피곤할 법도 한데 이들 부부는 항상 즐거워 보였다. 돈 버는 맛에 힘든 것도 잊어버린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들 부부는 런던에서 죽도록 개고생 하며 민박집을 운영했다. 결국 4년 만에 한국 수도권 외곽에 아파트를 살 수 있었던 이유기도 했다. 이들이 해외취업을 원할 때 런던에 가서 민박집을 하도록 상담해준 사람이 바로 나였다. 선무당이 사람 잡은 꼴이었다.


 그날 나와 아내는 민박집 송별 파티를 마치고 다음날 런던 시내 관광을 나섰다. 늦은 오후에야 한인 타운 민박집에 도착했다. 그것도 기차를 두 번이나 잘못 타는 생쇼를 하는 바람에 마누라님에게 제대로 찍히고 말았지만. 우리와 곧 태어날 아기가 살집을 렌트할 때까지 1주일가량 머물 민박집은 조용한 주택가의 가정집이었다.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임시 거처로 머물렀던 후배 L의 민박집은 대로변에 있었다. Zone 2의 센트럴 라인에 있는 도미토리형 민박집은 밤낮으로 거친 소음들에 시달렸다. 앞에선 차 소리가 뒤에서는 기차소리가 민박집을 포위하며 괴롭혔다. 런던의 관문인 히스로 공항과 런던 시내를 직선으로 이어주는 M4(4번 고속도로)와 A4(4번 국도)가 연결되는 도로에는 항상 차들로 넘쳐났다. 온 세상이 잠든 고요해야 할 새벽에 차들이 달리는 소리는 더욱 과장되어 들렸다. 엔진 소리만으로도 자동차인지 트럭인지 버스인지를 구분하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런던 시내의 집들은 나이들이 지긋해서 방음에 취약해 보였다. 백 살은 기본이고 이백이나 삼백 살 이상의 집들도 많아 보였다. 이중창이 아닌 집들이 많았고 이중창이라 하더라도 창틀이 나무인 이중창이어서 소음을 차단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전통을 지키려다 정신병에 걸리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런던의 한인타운은 아주 작았다. 시골 동네만 했다. 민박집 주변에는 여러 골목들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전형적인 영국의 이층 집들은 이웃과 경계를 벽 하나로 공유하고 있었다. 이웃과 벽을 공유하는 집들은 지붕마저도 공유하고 있었다. 지붕은 대체로 어두운 색이었다. 동유럽이나 스페인 포르투갈의 집들이 붉은색의 지붕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과는 달랐다. 굴뚝에는 TV 안테나가 달려 있었고 연기를 뿜어내는 굴뚝은 볼 수 없었다. 집 앞 가로수에서 떨어진 넓고 붉은 나뭇잎들은 목적지를 상실한 채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기차역이 가까워서 가끔 기차소리가 들렸지만 시끄럽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차가 다니지 않는 주택가의 민박집은 조용하고 아늑했다. 반면 후배 L의 도미토리형의 민박집에는 드나드는 여행자들로 북적였다. 임신한 아내가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가난한 배낭여행자들이 대부분이어서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에도 초인종이 울렸고 그때마다 소리에 예민한 나는 잠에서 깨었다. 새벽에 질주하는 차들의 엔진 소리에는 무방비였다. 처음으로 내가 소음에 지나치게 민감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다음 해에 태어난 아이가 그 민감한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나중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아이가 소음에 견디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깨달았을 때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소음에 반응하는 신경마저도 유전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기분은, 아이가 소음에 반응할 때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나와 아내가 한인타운 민박집으로 거처를 옮기기 전날 저녁이었다. L부부는 우리를 위해 작은 환영 및 송별 파티를 해 주었다. 그 파티에는 민박집에 있던 게스트들도 몇 명 참석하였다. L은 인근 마트에서 기네스를 사 왔고 L의 아내는 부지런히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의 메뉴는 닭볶음탕이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매콤한 것이 먹고 싶을 아내를 위한 배려였다. 저녁 테이블에는 우리와 후배 L 부부를 포함해 일곱 명이 둘러앉았다. 거기에는 우리가 첫날부터 일주일 가량 보아온 선아도 있었다. 선아 아버지는 부산에서 버스 회사를 운영한다고 했다. 선아는 민박집에서 청소나 주방일 등을 도우며 무료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살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직선적이고 거침없는 성격으로 보아 돈에 구애받지 않을 정도의 넉넉한 집안에서 자란 것이 분명했다. 건배를 위해 유리잔을 들었을 때부터 선아의 질문 공세는 이어지고 있었다. 그 전은 대화였던 분위기가 갑자기 인사청문회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그것도 아내 앞에서 말이다. 모든 질문에 답변할 의무는 없었지만 아내가 궁금해할 사항도 들어있어 보여서 답변을 피하진 않았다. 가끔은 삼천포로 빠지는 답변을 해서 자리를 즐겁게 하기도 했지만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면서 불편하거나 마음이 상하진 않았다. 오히려 맹랑하고 귀여워서 좋았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선아는 재미있다는 듯이 집요하리만큼 캐물었다. 나는 아재 개그를 적절하게 섞어서 겨우 답변을 해내고 있었다. 옆에는 아내가 맞은편에는 후배 L 부부가 배꼽을 잡고 웃고 있었다.


 아저씨...
 아저씨는 어떻게 아저씨보다 키도 크고 이쁜 언니와 결혼했어요?
 아저씨네 댑따 부자죠?
 언니가 임신 중인데도 이민을 올 만큼 급한 이유가 있었나요?
 아기는 아들이에요 딸이에요?
 아기 이름은 지었나요?
 왜 미국이나 호주가 아니고 영국까지 이민을 왔어요?
 보통 미국으로 많이 가잖아요?
 태어날 아기가 아저씨 닮아서 머리가 크면 어떡하죠?
 혹시 런던에 친척이라도 있나요?
 아저씨 꿈은 뭐예요?
 등등...


 하나의 답변이 끝나기가 무섭게 새로운 질문들이 던져졌다. 말은 파티라고 해놓고선 청문인지 고문인지 모를 선아의 악의 없는 질문들! 그녀는 이제 갓 세상으로 나온 호기심 많은 새끼 고양이 같았다. 새끼 고양이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20여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답변이 있다. 그녀는 나의 고향을 물었고 나는 런던이라고 대답한 것이다. 여기 런던이 나의 고향이거든. 그래서 이민이 아니라 이사 온 것뿐이야. 선아는 동그랗고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위아래로 스캔하듯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영국에서 태어났다고요? 설마!!! 나는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이 겁 없는 부산 아가씨는 검사가 피의자를 추궁하듯 성실한 답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나는 좀 더 성의를 가지고 진실에 입각해서 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향 런던이 나를 부른 것뿐이야! 내가 이민을 온 것이 아니라니까. 아가씨는 고향이 부산이랬지. 아가씨는 세계여행 중이고 지금은 유럽 여행 중이라고 했지. 얼마나 길지 모르겠지만 세계여행을 마치면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갈 예정이잖아. 아가씨가 떠나온 고향으로 언젠가는 돌아가고 말듯이 나는 고향 런던이 불러서 돌아온 것뿐이야. 그래서 이민이 아니고 이사인 거야. 나는 런던으로 이사 온 거야.       


 그녀의 눈동자는 더욱 커졌다. 연신 고개를 저으며 파상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아저씨는 고향이 런던인 도시남처럼 보이지 않아요. 시골 촌놈처럼 보인다고요. 런던이 고향인 증거를 보여주세요. 제가 믿을 수 있도록.  
 그거야 어렵지 않지.(사실은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었음. 옆에서는 아내와 L부부가 계속 재미있어서 어쩔 줄을 몰라함) 아저씨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국의 어느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단다. 그런데 내가 태어나기 전에 런던에서 세계 농촌문제에 관한 세미나가 있었지. 그런데 나의 아버지가 한국 대표로 참가한 거야. 런던에서 “한국 농촌의 미래”라는 주제로 발표를 위해서. 그때 비행기 티켓은 부부동반으로 참석할 수 있도록 두장씩 보내졌고 그래서 어머니도 따라나선 거야. 보통 농사일은 혼자가 아닌 부부나 가족이 함께 하기 때문일 거야. 그때 아저씨는 엄마의 뱃속에서 7개월째 놀고먹는 백수였지. 지금 옆에 있는 언니의 뱃속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저씨 아이처럼 말이야. 한국에서는 비행기를 탈 때 별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돌아올 때는 문제가 된 거야. 왜냐하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영국은 선진국이었거든. 선진국들이 안전 문제에 대해 깐깐하고 까다롭게 굴잖아. 그래서 만삭이 되어가는 어머니는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할 수가 없었던 거야. 런던에서 출산을 마치고 나서야 비행기를 탈 수 있었지. 믿기지 않겠지만 그땐 그랬나 봐. 나는 그때 태어나지 않아서 정확한 이유는 몰라. 내가 고향이 런던인 이유인데 믿기지 않지? 사실 나도 믿기지 않거든    


  아하! 그럴 수도 있겠는걸요. 그럼 언니도 마찬가지겠네요? 부산 아가씨는 아내의 볼록한 배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곧 아저씨의 아이가 태어날 거잖아요. 그럼 아저씨 아이도 고향이 런던이 되는 거네요. 그렇지. 우리 아이도 고향이 나처럼 런던이 되는 거지. 그렇다고 미국처럼 시민권이 주어지진 않아. 영국은 미국처럼 속지주의가 아니라 속인주의를 채택하고 있거든. 그래서 한국의 돈 좀 있는 아줌마들이 미국으로 원정 출산을 가는 거야. 돈 좀 있는 아저씨들이 원정 도박을 가듯이.   

부산 아가씨는 재잘거리며 쉬지도 않고 질문을 이어갔고 나는 진땀을 빼며 답변을 이어갔다. 덕분에 우리의 환영 및 송별 파티는 밤늦게까지 이어졌고 모두 즐거운 표정이었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아가씨와의 대화는 신선했고 의외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무엇보다도 당돌함 속에서 빛나는 순수한 모습이 예뻐 보였다. 그녀는 오랫동안 아버지의 버스회사 이야기와 1년 남짓 그곳에서의 경리 생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집이 상당한 부자임에도 아버지가 외동딸인 자신에게 여행 경비를 전혀 대주지 않는다고 연신 불만을 토로했다. 내가 이유를 묻자 자기 아버지의 인생철학이라고 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예외는 아니다." 그녀가 왜 아버지 버스회사에서 1년 남짓 경리 생활을 해야 했는지 이해가 갔다. 대학도 가지 않고서.     

 선아의 아버지는 아주 멋지고 훌륭하신 분이라고 하자 그녀는 순간 나를 매섭게 째려보았다. 세상에 어린 딸이 장기간의 해외여행을 나서는데 그 경비의 전부는 아니어도 일부는 좀 도와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 그녀의 불만이었다. 아버지에게 돈은 더 이상 목적이 아닌 일상의 결과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목적지를 잃어가는 아버지의 돈들은 그래서 의미 또한 잃어간다고 했다. 그녀 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못해서 회사 경영도 엄마가 한다고 했다.

 

 제가 외동딸이거든요.
 아빠가 돌아가시면 재산은 엄마와 제가 상속받을 거예요.
 근데 왜 좀생이처럼 저러시는지 모르겠다니까요.
 짜증 나서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도 않아요.
 엄마가 아빠 몰래 경비 일부를 보내주고 계세요.
 나머지는 제가 현지에서 알바를 해서 해결해요.
 여기 민박집처럼요.      


 나는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선아가 말했던 목적지를 잃어가는 아버지의 돈들에 대해서 말이다. 저렇게 철없는 외동딸을 둔 아버지의 고민이 어떤 것일지. 왜 그녀를 대학에도 보내지 않고 경리 생활을, 그것도 1년씩이나 시켜가며 돈에 대해 공부시키려 했는지 말이다. 아마 세계여행이라는 환상도 처음부터 선아 뚯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자신의 소멸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외동딸을 강하고 특별하게 키우려고 대학 대신 세계여행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을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세상을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모두가 좋은 대학이라는 하나의 목적지를 위해 달려가고 있을 때, 어린 딸을 미지의 세상으로 등을 떠밀었을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부모의 심정을 어찌 어린 외동딸이 이해할 수 있을까. 그녀 아버지의 돈은 목적지를 잃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 아버지의 돈뿐만 아니라 다가올 소멸도 마찬가지였다. 돌이켜보니, 그녀의 아버지는 강하면서도 치밀하고 철저하면서도 현명하기까지 한 분이셨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목적지들이란 어떻게 태어나는 것일까. 사람에게 목적지가 필요한 게 아니라 목적지가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이 떠나고 돌아오는 게 아니라 떠날 곳과 돌아올 곳이 인간들을 주고받는 게 아닐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10주년 특별 판, 이장욱, 절반 이상의 하루오>  


 송별 파티가 끝날 무렵 그 맹랑한 부산 아가씨는 끝내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한마디를 툭 던졌다.   


 그런데, 몇 달 후에 태어날 아저씨의 아기가 걱정되네요.
 아저씨처럼 머리가 댑따 크면 어떡하죠?


 런던에 도착한 지 1주일째 되는 날의 파티를 마치고 어찌어찌해서 해가 바뀌었다. 그 부산 아가씨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영국이라는 낯선 문화와 사회에 적응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해가 바뀌면서 출산을 했고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개나리가 지고 철쭉이 필 무렵의 어느 봄날이었다. 후배 L부부는 우리 아기가 보고 싶다고 한번 놀러 오라고 성화였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의 건강하고 잘생긴 아기를 자랑하고 싶었는데 그 자리에서 날을 잡았다. 어쩌다 부모가 된 초보 아빠의 기쁨은 나를 팔불출로 만들고 있었다. 이 점에선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아기를 빨리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약속한 날에 민박집을 찾았을 때 운명처럼 그 부산 아가씨와 상봉하고 말았다. 유럽여행에서 그날 돌아온 그 부산 아가씨와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친 것이다. 선아는 아주 반가워했다. 무엇보다도 아기에 대한 관심이 컸다. 아이를 안아보기도 하고, 뚫어지게 아기의 눈동자를 쳐다보기도 하고, 손과 발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여자의 본능이었을 것이다. 자신도 언젠가는 엄마가 되고 말 것이라는 그 본능을 나의 아이가 일깨워준 것이다. 그렇게 한참 동안 아기를 신기한 나라에서 온 인형처럼 다루더니 몇 마디를 툭 던졌다.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는 무심코 던진 말이었다. 나는 우리 아기 이쁘지 않아? 우린 이뻐서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라고 막 말하려던 참이었다.


 역시나...
 내 눈은 못 속인다니까요.
 아저씨는 아기가 너무 예뻐 보이죠?
 제 눈에는 엄청 못생겨 보이걸랑요.
 아기가 이렇게 통통하고 둥글 거려도 되는 거예요?
 마치 농구공에 테니스공 몇 개로 연결해 놓은 거 같아요.
 갓 난 아이가 이렇게 머리가 커도 되는 거예요.
 주름살도 있고요.
 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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