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장 나답게 해 주었던 고마운 축구 이야기
저건 뭐야! 저게 지구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축구 경기인가! 지구인들은 저 작은 공 하나를 두고 왜 저렇게 열심히 쫓아다니는 걸까! 공을 쫓아다니는 인간들은 그렇다 쳐도 그걸 재미있다고 경기장에서 구경하는 저 많은 인간들은 또 뭘까! 그것도 모자라서 지구별 전체에서 TV로까지. 4년마다 월드컵이랍시고 공 하나를 두고 난리를 떠는 이상한 지구인들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종족들이란 말이야. 저 단순한 종족들을 정복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라고. 둥근 공 하나만 던져주면 지구인들을 우리의 노예로 만들 수 있어. 레이저가 뿜뿜 나오는 광선총 따위의 무기도 필요 없다니까.
영국팀 감독님 잠깐만요? 감독님은 선수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으시면 안 됩니다. 경기하는 선수들과 혼동이 될 수 있으니 형광조끼나 다른 옷으로 갈아입으셔야 경기장에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감독이라뇨. 저는 감독 아닌데요. 저도 뛰는 선수라고요.(감독은 보통 나이 많은 아저씨들이 맡기 때문에 기분이 몹시 나빠진 상태. 내가 나이 많은 아재이긴 하지만.)
정말인가요? 그럼 대한축구협회에서 발행해준 선수등록증 카드와 신분증 보여 주세요. 일반 신분증 말고 여권 보여주세요. 여권에 찍힌 영국 체류 비자도요.
축구는 나를 나답게 해주는 유일하면서도 특별한 "그 무엇"이다. 우리의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그 무엇은" 지치고 만신창이가 된 나의 육신과 심신을 다독여주는 친구이자 의사이다. 비록 아주 먼 미래이긴 하지만 언젠가 외계인이 지구별을 점령할 수도 있다. 그때 식민지 지구별에서 축구의 재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계인들에게 끌려가서 죽기 직전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 일이 온다면 나는 대답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축구를 할 수 있게 해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