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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첫돌, 알을 깨고 "인간 사람"이 되어간다!

브런치에서의 1년, 그 치열했던 30개의 느낌과 소감들

by 런던남자


오늘은 나의 첫돌이다. 브런치 첫돌!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넘어지고 엉덩방아를 찧고 때로는 주저앉기도 한다. 포기하지 않고 울면서 일어서기를 반복하다 보니 아이는 걷기 시작했다. 걸음마를 아장거리면서 세상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참새 때보다 더 재잘거리며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그런 무리 속에서 나라는 아이는 인정받고 싶다는 강한 욕구에 사로잡힌다.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녀석이 말이 아닌 글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 그것은 어쩌면 동면중인 "관종"이라는 금단의 DNA를 건드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금단의 사과! 하지만 먹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사과의 맛! 달콤할 수도 시큼할 수도 아니면 독이 들어있을 수도 있는 그 사과를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하지만 토끼처럼 겨우 앞니 몇 개만 나서 아직은 씹을 수가 없다. 토끼는 앞니로도 잘만 자르고 갉아먹고 하던데. 우리 인간은 토끼보다 나은 것이 별로 없나 보다.

그렇게 브런치라는 공간에 글을 써가며 조금씩 성장 중이다. 나름 성과도 있었고 문제도 많았다. 가장 큰 성과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점은 중독에 가까운 브런치 생활을 하고 있고 여전히 독자의 마음을 유혹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외국에서 20여 년을 살다 보니 한글 맞춤법도 대부분 까먹었다. 브런치에 처음 글을 연재했을 때 독자들이 지적하는 맞춤법들에 당황하곤 했다. 맞춤법도 모르는 사람이 작가랍시고 글을 쓴다는 비아냥과 악플들! 그래도 굴하지 않고 혼자서 고개를 들었고 뒤집기들 했다. 지금은 제법 걸음마를 하고 있다. 언젠가는 제대로 걸을 수 있기를 그래서 독자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제대로 유혹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막연하지만 제법 구체적인 나의 꿈을 향해 오늘도 생각하고 생각하며 자판을 두드린다. 생각하지 않으면 나는 존재하지만 존재감이 없는 아기에 불과하다. 칭얼대고 또 칭얼대며 아기는 성장한다. 나의 글들은 내면의 아기가 칭얼대며 웅얼거리는 소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글로 옮기면 의미를 가지면서 아가의 우주는 확장되어 나간다. 끊임없이.


세상은 항상 의미 있는 분할을 통해 진보해왔고 앞으로도 진보해나갈 것이다. 예수 이전의 세상과 이후의 세상이 다른 것처럼 코로나 이전의 세상과 이후의 세상 또한 크게 달라질 것이다. 개인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는 영국 이민 이전의 세상과 이후의 세상, 아내와의 이혼 이전의 세상과 이후의 세상 그리고 카카오 브런치 작가가 되기 이전의 세상과 이후의 세상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새로운 세상들은 이전의 세상들을 깨고 나올 때 훈장처럼 내 몸과 마음에 나이테로 된 옷을 입혀줬다. 그때마다 알을 깨고 새로운 세상으로 머리를 내밀듯이 나라는 인간은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하고 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최근에 탈피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다. 오늘! 2020년 7월 17일 금요일!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다. 생일은 자축하기 민망하지만 브런치 작가 생일은 자축하고 싶다. 브런치로 인해 표류하던 나의 삶에 이정표가 생겼으니까.


2019년 7월 17일 "하루 만에 책 쓰기 #1 인생의 새로운 도전" 이라는 글로 브런치에 첫 연재를 시작하였다. 2020년 7월 16일까지 총 340개의 글을 올렸다. 하루 평균 0.93개의 글을 올렸다. 그러니까 적어도 일요일 빼고는 매일 올린 셈이다. 2020년 3월 1일에는 브런치 글 300개 기념으로 브런치에 글을 300개 쓰고 느낀 점 10가지! 를 쓰기도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구독자가 천명에도 미치지 못했고 조회수는 백만을 한참 밑돌고 있다(구독자 913명, 총 조회 수 723,104회). 한마디로 계속 글을 쓰기는 했지만 팔리지 않는 글들이었던 것이다. 독자에게 겨우 말을 걸기는 했지만 유혹할 수 없었다. 부족한 사유와 필력의 결핍은 힘에 겨웠다. 독자를 유혹하려면 솔직해서만 되는 일이 아니었다. 뇌쇄와 관능을 갖추지 않고 글이 Sexy하기란 쉽지 않았다. 단기간에 노력해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많이 사유하고 그 사유들을 글로 옮기는 일은 지난한 과정이었다.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좌절과 절망의 파도를 타고 있다. 매일 좌절하고 매일 절망하지만 결코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유는 무엇일까? 글을 300개 올리고도 자가 진단을 했지만 1주년을 맞이해서 다시 해보려 한다. 이유는 가끔은 내가 성장하는 모습을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쓴 모든 글에는 나의 생각들이 정리되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칭얼대고 웅얼거리는 생각들이.


다음은 내가 1년 동안 브런치에 340개의 글을 쓰고 느낀 점들을 나열해 보겠다. 그리고 올봄에 228일 동안 300개의 글을 올리고 나서 내가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 10가지도 카피해서 올려보겠다. 솔직히 말하면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매일 좌절하고 절망했다. 하루도 그들을 질투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다들 글을 잘 써도 너무 잘 썼다. 내 글만 찌질하고 알맹이도 없었다. 프로 작가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초보 작가들의 글들도 나의 영혼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아! 글이란 저렇게 써야 하는데... 아! 이런 글도 너무 좋은데... 난 뭐 하고 있는 걸까? 나의 글들은 왜 이렇게 퍼질러 놓은 똥처럼 정이 가지 않는 걸까... 나는 훌륭한 작가가 되기는 애당초 글러먹은 건 아닐까... 단 하루도 브런치에서 질투하고 절망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중간에서 포기하고 싶은 유혹! 그 달콤하고 황홀한 유혹은 나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또 유혹했다. 정작 독자는 유혹하지 못하면서. 이제 그만 쓰라고! 너의 글은 거기까지가 한계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썼다. 글을 쓰지 않은 생각들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잡념에 불과했다. 사유가 되지 못하는 잡념들 앞에서 나는 거칠어졌고 용감해졌다. 그 잡념들을 떨치고 생각이 되고 깊은 성찰이 되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만 했다.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소멸 앞에서 당당하고 싶었다. 내가 사라지면 우주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무런 의미도 없이 입고 먹고 자며 지구별에 잠시 살다 간 "인간 사람"에 불과해지고 말 것이다. 초라한 "인간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부정할 수 없는 나의 소멸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줘야 나의 우주는 살아남을 수 있다. 소크라테스를 비롯하여 수많은 "인간 사람"들이 아직도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글을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별한 존재로 천년이 훨씬 넘는 장대한 세월 속에서 불멸(?)의 기쁨을 누리고 있지 않는가! 쓰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을 것이다. "프로 라이터"들이 즐비한 브런치의 세계! 그 속에서 나는 매일 똥과 같은 때로는 똥보다 못한 글을 싸(쓰)고 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많은 선배 작가들이 이야기한 똥 이야기! 자신의 글이 똥이라는 개념을 이제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만약 내가 브런치에 1년 동안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느꼈을 감정 10가지
1. 명확하지 않은 삶의 이유와 목적 없음이 주는 무력감
2. 불안으로 시작되는 우울과 정신의 황폐화
3. Ageing(나이 듦)의 과정에서 느끼는 시간의 허비와 허무
4. 꿈과 미래에 대한 구체적이지 못한 잡념 속에서의 환상과 환멸
5. 자아에 대한 무지, 정체성과 실존의 문제로 인한 괴로움
6. 외로움과 고독에 백기투항
7. 조만간 또는 언젠가는 나의 책을 낼 수 있다는 꿈의 포기
8. "다발성 말초신경병증"이라는 희귀 난치성 질환에 분노하고 울분을 토하는 자포자기의 삶
9. 끊임없는 전신 통증과의 싸움에서 의지할 지원군이나 보급병 없는 완패
10. 언제일지 모르는, 하지만 언젠가는 찾아오고야 마는 죽음과 동시에 소멸되고 마는 나라는 존재의 상실


내가 브런치에 1년 동안 글을 쓰면서 느낀 좋은 글이란?
1. 가벼우면서도 재미있게 쓴 글
2. 독자에게 무언가를 주거나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글
3. 독자와 마음을 주고받으며 교감할 수 있는 글
4. 오랫동안 울림이 있는 잔잔한 글
5. 문장 속에 내가 살아 있는 글
6. 오직 나만 쓸 수 있는 글
7. 독자에게 말을 걸고 유혹할 수 있는 글
8. 한 단어의 키워드, 명확한 주제 설정(내가 가장 후회하는 부분임)
9. 짧고 스파이시한 글
10. 가장 평범한 이야기가 가장 위대한 이야기


브런치에 글을 쓰면 쓸수록...
1. 호기심이 생겼다.
2. 메모하는 나를 발견하였다.
3. 소재가 넘쳐났다.
4. 콘텐츠들이 생겼다.
5.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6. 자존감도 올라갔다.
7. 성장이 느껴졌다.
8. 우울감이 치료되었다.
9. 돈이 (겨우 월세와 공과금을 낼 수 있을 정도의 아주 조금씩이지만)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10. 행복지수가 높아졌다. 동시에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고 살아갈 이유들을 발견하였다.


브런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함일 것이다. 어떤 작가는 글 몇 개로 금방 수 천의 구독자를 모으며 책을 출간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중간에서 포기하고 만다. 노출병! 바로 이 노출병에 걸리면 말이다. 노출이 되지 않더라도 꾸준하게 글을 쓰고 올려야 한다. 독자가 단 1명이어도 좋다. 예를 들자면, 제7회 브런치 북 대상을 받은 노정석 작가의 책 "삼파장 형광등 아래서"의 브런치 글은 고등학생 A의 기록들이었다. 당시 노정석 작가는 구독자가 2명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브런치 북 대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고3이었던 그가 일기를 쓰듯 끊임없이 브런치에 글을 썼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정미소 출판사의 김민섭 대표에게 발탁된 것이다. 그의 책을 읽으면 어떤 프로 작가들보다 깊은 사유와 필력에 눈물이 날 정도다. 난 그 책을 서너 번은 읽었다. 고등학생의 냉철한 사유와 교육에 대한 철학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솔직했다.


사실 브런치에는 글쟁이들로 넘쳐난다. 아마존의 정글보다 더 치열해진 브런치다. 축구의 FA나 골프 또는 테니스 등의 Open은 아마와 프로가 모두 참가할 수 있는 대회다. 잉글리시 FA나 브리티시 Open, US Open, 호주 Open, 윔블던 Open 등은 아마추어들이 프로와 경쟁할 수 있는 기회다. 브런치는 초창기부터 활동한 절대강자와 기존 출간 작가들은 물론이고 이제 갓 입성한 신인작가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글을 쓰고 있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란 어쩌면 즐기지 않고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매일 반복되는 질투와 동경 속에 좌절과 절망을 반복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브런치에 똥을 싸고 그 똥을 보며 좌절하고 다른 작가들의 글을 보며 매우 절망한다. 아주 기쁜 마음으로. 즐기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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