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같은 인생을 살다 간 사진작가 김영갑과 화가 반 고흐
작가님! 갑자기 제주도에 가고 싶은데 싸고 괜찮은 숙소 좀 추천해 주세요?
아! 그래요. 언제 가고 싶으신데요? 가신다면 며칠이나 게실 건가요?
내일요. 기간은 5~6일 정도면 충분할 거 같아요.
아 그래요! 마침 잘되었네요. 저희 펜션이 비어있으니 사용하세요. 돈은 받지 않을게요. 대신 마지막 날 청소만 잘해주세요.
이십여 년 동안 사진에만 몰입하며 내가 발견한 것은 “이어도”다. 제주 사람들의 의식 저편에 존재하는 이어도를 나는 보았다. 제주 사람들이 꿈꾸었던 유토피아를 나는 온몸으로 느꼈다. 호흡곤란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을 때 나는 이어도를 만나곤 했다. <김영갑, 그 섬에 내가 있었네, P27)
중산간 광활한 초원에는 눈을 흐리게 하는 색깔이 없다. 귀를 멀게 하는 난잡한 소리도 없다. 코를 막히게 하는 역겨운 냄새도 없다. 입맛을 상하게 하는 잡다한 맛도 없다.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그 어떤 것도 없다. 나는 그런 중산간 초원과 오름을 사랑한다. <김영갑, 그 섬에 내가 있었네, P84)
온종일 누워만 지내기에는 하루가 너무 길다. 사진을 찍을 수 없는 하루가 너무 더디 간다. 침대에 누워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기적을 소망하는 것뿐이다. 지금까지 걸어온 세월을 들추며 과거를 떠올리는 것이 나의 일이다. 슬픔이 밀려온다. 무기력해진 모습에 우울해진다. 침대에 누워 우울해해도 하루는 간다. 무언가에 몰입할 수 없는 하루는 슬프다. <김영갑, 그 섬에 내가 있었네, P194)
밤이 되면 갤러리는 적막하다. 적막함을 즐기며 홀로 정원을 걷는다. 몸이 피곤해지면 편안한 상태로 침대에 눕는다. 건강이 나빠지지 않았다면 밤늦도록 사진 작업에 매달렸을 테지만 이젠 한가로운 일상에 익숙해졌다. 루게릭병이 내게 준 선물이다. <김영갑, 그 섬에 내가 있었네, P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