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질병이란 일상에서 해방되어 휴식과 치유 및 힐링에 관한 연재이다.
1년 동안 휴식이 주어졌을 때 첫 달은 당황스러웠다.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매일 다니는 병원 진료도 오전이면 끝났다. 오후에는 도서관에도 다니고 운동도 하고 여행도 다니지만 뭔가 어색하였다. 남들이 출근하는 평일 낮에 도서관에 앉아있는 것도 운동하는 것도 여행을 다니는 것도 생경하고 어색한 일들이었다. 평생 쉬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첫 달은 휴식 연습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그 연습의 첫 단계는 매일 자신과의 대화였다. 대화방식은 거울을 보고 하기도 하고 벽을 보고 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점점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평생 동안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대화가 이루어질수록 나 자신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부터 왜 사는지에 대한 평생의 화두들이 던져지기 시작하였다. 당장 그 답이나 해법을 찾을 생각은 없었다. 단지 진지하게 나 자신과의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였다. 그러다가 그 대화들을 기록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를 블로그에 기록하면서 10년 동안 잠자던 블로그라는 것도 시작하였다.
블로그는 타인들과의 소통도 겸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의 생각에 공감을 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나는 점점 더 글을 올리는데 재미를 들여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블로그 친구도 생겨나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용기도 생겼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나만의 책을 한권만이라도 쓰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차에 운명처럼 책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그것은 운명이었다.
내가 책을 쓰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책 쓰기는 질병이 준 선물이었다. 책 쓰기를 통해서 나는 니체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질병조차도 인생에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니체라는 조금은 엉뚱한 철학자를 존경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의 책들을 읽어나갔다. 많은 위로가 되었고 많은 지침이 되었다. 내가 니체가 된 심정이었다.
하루 만에 책 쓰기를 통해 매주 한 권씩 책을 쓸 수 있는 것도 다 니체가 준 질병에 대한 관점의 변화였다. 심각한 질병을 안고 있다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그 시간에 나는 더욱더 보람 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 졌다. 질병을 원망하고 한탄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기에는 나에게 주어진 1년이라는 휴식이 너무 아까웠고 시간 낭비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도 작동하였다. 반년 정도 매주 한 권씩 책을 쓰면서 나는 많은 생각들을 정리해나갈 수 있었다. 그 정리된 생각들은 빨래를 개듯 차곡차곡 개어서 수납장에 고이 모셔두고 있다. 그렇게 칡넝쿨 엉기듯 엉겨있던 나의 생각들은 하나씩 정리가 되기 시작하였다.
인간이라면 생각의 고통을 수도 없이 느껴보았을 것이다. 생각이라는 것이 주는 부작용은 끝이 없이 확장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걱정이 또 다른 걱정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생각까지 미리 가불 해서 걱정하는 오지랖에 진저리가 쳐졌다.
나의 소원은 하루라도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은 것이었다. 생각의 꼬리들은 집요하게 서로를 끌어당기며 아프게 하였다. 머리는 터질 것만 같았고 항상 무슨 일이 터질 듯한 불안감이 엄습하였다.
이러한 생각들은 책 쓰기를 통해서 대부분 정리되고 있다. 놀랍고 신비로운 경험이다. 책을 매주 한 권씩 써내면서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냥 습관처럼 책을 쓸 뿐이다. 그러면서 부수적으로 나타나는 효과 중 하나가 바로 복잡했던 생각의 정리였다. 집안이 더러우면 청소를 하고 살이 찌면 다이어트나 운동을 통해 몸매를 관리하듯 생각도 정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이제는 생각 자체도 단순해지고 있다. 그 결과는 삶 자체가 단순해지고 나아가서 죽음에 대한 생각도 정리가 되면서 삶이 더욱 단순해지는 순기능들이 표출되기 시작하였다. 내가 평생 프로젝트로 매주 한 권씩 책을 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년 동안의 휴식은 자유롭게 치료와 휴양은 물론 취미생활까지 가능하게 하였다. 취미 생활이라고 별다른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매일 읽고 쓰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거기에 기존의 축구와 봉사활동을 지속할 수가 있었다. 도예 같은 새로운 취미생활도 하고 있다. 이러한 취미 생활은 말 그대로 놀이일 뿐이다. 이러한 놀이들은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이러한 취미들이 사업이 되고 돈이 될 수도 있고 없고는 얼마만큼의 콘텐츠가 쌓이느냐에 달려있다.
질병이 가져다준 1년 동안의 휴식이라는 선물은 나에게 축복이었다. 질병이 아니었더라면 나 자신을 돌아볼 기회도 취미생활을 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한국에 와서 쉬면서 책을 쓰는 작가가 되리라고는 더욱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지만 1년 동안의 달콤한 휴식은 나에게 너무도 소중한 시간이었고 너무나 많은 선물을 선사해 주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1년 동안의 휴식은 나의 인생 후반전을 완벽하게 대비시켜 주고 있다. 오늘도 니체에게 그리고 마르크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이처럼 책이란 시대와 공간을 넘어서 타인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위대함이 숨어있다.
사실 한국에 오자마자 허리디스크 정도는 가볍게 치료될 줄 알았다. 우울증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질병은 나를 좌절과 절망에 빠트렸다. 생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니체의 책을 폈다. 그리고 무작정 읽었다. 거기에는 삶의 의미가 있었다. 구원의 의미가 있었다. 질병이 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치료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치료 과정에서 또 다른 질병이 발견되었지만 결코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 질병이 하나씩 발견될 때마다 오히려 그 질병에게 감사하고 있다. 그 질병들이 가져다줄 선물들을 생각하고 있다. 관점이나 인식의 전환이 이처럼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철학이 갖는 위대함을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어떠한 질병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 나도 니체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삶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아마도 평생 책 쓰기를 멈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