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청년기의 우울과 외로움에 관한 연재
나는 매주 월요일 이른 아침이면 어김없이 춘천에 간다. 그것도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설레는 마음으로 간다. 남양주에서 춘천까지는 고속도로로 달리면 채 1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 짧은 시간의 드라이브 또한 소소한 즐거움이자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강원도에 가까워질수록 겹겹의 원근감으로 다가오는 산들의 아름다움은 자못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 원근감은 나의 달리는 속도에 따라 달라지면서 한 폭의 수묵화를 끊임없이 나에게 선사한다.
이렇게 매주 월요일 아침에 춘천에 가는 이유는 한주 간 내 몸 뼛속까지 쌓여있는 외로움을 춘천이라는 곳에 내려두고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외로움을 내려두는 방법은 춘천의 스타벅스라는 커피숍에서 매주 하루 만에 책 쓰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만에 책 쓰기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은 하루 동안의 몰입을 즐기기 위해서다. 몰입의 힘은 나에게 책 한 권을 완성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나에게 선사한다. 그것이 바로 나의 외로움을 내려놓을 수 있는 힐링 타임인 것이다. 어찌 보면 책 쓰기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내려놓기이다. 나를 내려놓을 수 있는 온전한 하루라는 시간은 나에게는 전혀 기대치 못한 은총 같은 선물이었다.
안식년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온지도 벌써 해가 바뀌었고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세월 참 빠르다. 아침에 노트북을 챙겨 나의 사무실인 구리 돌다리 사거리의 한 커피숍으로 향한다. 오전에는 텅 비어있던 자리들이 오후가 되자 만석이 되고 시끌벅적해진다. 조용하면 조용한대로 소란스러우면 소란스러운 대로 이러한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좋다. 내가 집중하여 글을 쓸 때는 소란스러움 따위는 전혀 상관이 없다. 오히려 고요한 아침이나 저녁에는 글쓰기가 더 어려워진다.
내가 안식년을 택하여 1년이라는 시간을 나에게 온전히 선물할 수 있었던 것은 전폭적으로 이해하고 지지해준 아내 덕분이다. 이민 생활 동안 사업체의 사장으로서, 집안의 가장으로서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이 벌써 20년이 되어간다. 지칠 대로 지치고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겪는 일상이고 특히 가장들은 반드시 겪어야만 하는 홍역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 들면서 가장들이 느끼는 무게와 소외감을 나 또한 느끼면서 그 외로움의 깊이를 헤아려보고 싶다.
춘천은 나에게 낯선 장소이면서도 나의 청춘이 고스란히 스쳐 지나간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춘천이라는 도시에 정감이 가고 정이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 80년대 후반 춘천의 306 보충대라는 곳으로 입대하여 북방면에 위치한 11사단 훈련소에서 신병교육을 받던 시절이 바로 사월이었다.
그 사월의 찬란함은 너무나 쓸쓸하고 외로웠다. 연병장의 모래바람과 땀내로 뒤범벅이 된 채 긴 하루를 보내면서 힘들다는 생각으로 눈앞이 캄캄하였다. 사방에는 개나리꽃이 지기 시작함과 동시에 가지에서 이파리들이 파릇하게 돋아날 때쯤이면 진달래가 만발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진달래가 필 무렵이 사월 중순이었다. 그때는 외롭다는 생각보다는 항상 힘들다는 생각이 앞섰다.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구르며 새로운 인간으로 개조되는 과정은 녹녹지 않았다.
하루 일과의 시작과 끝이 없었다. 어디서부터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침 6시면 어김없이 울려 퍼지는 기상나팔소리는 우리 모두를 슬프게 하였다. 그 슬픔은 고통이었고 두려움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외로움을 느낄 만큼 아침 시간은 한가롭지 않았다. 그렇게 6주 만에 개조되어 국방부가 요구하는 하나의 병사로 태어나 3년이라는 군 생활을 한 곳이기에 더욱 애증이 교차하는 곳이 바로 춘천이다. 군 제대 이후에는 춘천이나 홍천지역을 가본 적이 없을 만큼 혹독한 기억이 나를 괴롭혔다. 해마다 봄이면 죽음과 외로움을 동시에 느끼면서 그렇게 그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냈다.
나는 지금까지 한국의 특정지역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 이유는 물론 집이 영국 런던에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춘천에 매주 오면서 춘천에 살고 싶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춘천 시내를 구경하거나 닭갈비를 먹어본 적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춘천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바로 나의 외로움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장소를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까짓 외로움을 아무 데나 내려놓으면 될 일이지 왜 굳이 춘천까지 가야 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나도 그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나의 가슴이 그렇게 춘천을 받아들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기회가 되면 춘천에서 관광도 하고 닭갈비에 소주 한잔 하고 싶다. 아무튼 춘천이란 도시는 한때는 나의 청춘을 송두리째 앗아간 악몽의 도시였지만 지금은 나의 퇴로를 열어주고 있는 고마운 장소임에 틀림없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