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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지만 치킨은 먹고 싶어

그동안 나는 몇 백 톤의 치킨을 식자재로 사용했을까?

by 런던남자


얼마 전 산골마을 산책을 하다 어느 집에서 나온 듯한 수탉과 마주쳤다.
한참 동안이나 눈싸움을 벌였지만 녀석은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내가 만만해 보였나 보다.
아무리 위풍당당한 수탉이라지만 아무 생각 없이 먹어왔던 그 치킨 아니던가!
감히 치킨 주제에 눈알을 부라리며 대든다.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그냥 참기로 했다.
절대 기가 죽거나 무서워선 아니었다.
그런데 치킨이, 아니지 수탉이 내게 뭐라 꼬꼬댁거린다.

싸울 의사가 없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다.
내 귀엔 뭔가를 묻는 것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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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말복이 언제니?
너는 나의 적인 거 알지?

어라!
요것 봐라 감히 치킨 주제에 말이 상당히 짧네.

내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자 녀석은 다시 눈을 부라리며 공격 자세를 취한다.
옆에서 구경하던 대여섯 마리의 암탉들은 시야에서 멀어진다.

내가 물러서지 않을 뜻을 보이자 양 날개를 퍼덕인다.
설마 날아서 공격해오는 것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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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대답해줬다.

지난주 8월 15일이었고 이미 지났어.
그래 너의 적 맞다.
알겠어. 휴우~~~~ 꼬끼오
수탉과의 대치는 그렇게 끝났다.
휴우~~~~~

근데 말복은 왜 물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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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채식주의자지만 치킨집 앞을 지나다닐 때마다 녀석이 떠오를 것만 같다.
지구 상의 그 많은 인간들은 무슨 권리로 그 많은 치킨들을 먹어치우는 것일까?

인종, 종교, 문화를 막론하고 치킨을 먹지 않는 민족은 없다.
채식주의자를 재외 하고는...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치킨을 치킨데리야키, 치킨가츠, 치킨누들, 치킨우동 그리고 치킨강정에 사용했을까?
매주 250kg 정도의 치킨 타이(허벅지)를 사용했으니 말이다.
한 달에 2톤, 일 년이면 24톤, 10년이면 240톤.......,
마릿수는 상상조차 어렵다.
휴우~~~~

미안하다! 그동안 나의 런던 가게에서 구워지고 튀겨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치킨들아!
나도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구.
언젠가는 우리 인간도 육식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그래도 가끔 치킨이 먹고 싶기는 하다.
채식주의자가 된 지 꽤 되었는데도 말이다.
바삭하게 튀긴 치킨에 생맥주 한 잔 마실 때처럼 행복한 순간도 없을 것이다.
빈속이어야 그 참맛을 즐길 수 있다.
빈속을 부드럽게 채워주는 바삭한 치킨과 시원한 생맥주의 조화는 경이롭다.

치킨의 포만감과 생맥주의 시원함이 그립다.

가게 근처의 펍에서 퇴근 후 한잔하던 직원들이 그립다.

런던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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