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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Aug 15. 2020

바람이 불면 당신인 줄 알겠습니다.

자주 흔들리는 일상은 무엇 때문일까!


 요즘 마음이 자주 요동을 친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통증으로 인한 고통은 단지 육신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마음까지 덩달아 고통스럽다. 마음이 느끼는 통증은 육신의 통증을 훨씬 넘어선다. 그 고통은 글로 표현하거나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말로 설명할 수도 없다. 그냥 고통스럽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책도 읽을 수가 없다. 아무리 집중을 해도 활자가 눈에만 들어오지 마음까지 파고들진 못한다. 책 한 권을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글도 거의 쓰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읽고 쓰는 일이 일상이었는데 그 일상마저 사정없이 흔들린다. 고통스럽다. 왜 그런 것일까? 고통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일까! 아니면 마음이 흔들려서 고통스러운 것일까! 단순히 통증 하나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고 싶진 않다. 모든 것을 다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일까! 내가 살기 위해선 그 방법밖엔 없는 것일까! 이미 내려놓을 만큼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다시 욕심이 싹트고 있었나 보다. 글쓰기에 대한 욕심은 물론이고 새로운 사랑과 비즈니스에 대한 열망까지 말이다.


전직 대통령이 손주를 태우고 다녔던 자전거
"바람이 불면 당신인 줄 알겠습니다."


 봉하마을의 전직 대통령 묘소 근처에서 발견한 문구다. 안타깝게도 그분께서는 삶을 놓기 직전의 마음을 글로 남기고 떠나셨다. 우리 사회에서 정의는 실종되었는지도 모른다. 온갖 심각한 범법을 저질러놓고도 벽에 똥칠할 때까지 버티고 사는 위인들이 부지기수다. 그만큼 우리 모두의 삶은 소중한 것이다. 우리가 쉽사리 죽지 못하는 이유다. 읽고 쓰지 못하는 고통이 얼마나 처절한 것인지를 유서로 남기고 떠나야 했던 그 마음을 헤아려보고 싶었다. 삶을 놓아야 했던 그분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어서 봉하마을을 찾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분의 고통을 헤아린다기보다는 나의 고통을 헤아려보고 싶었다.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전직 대통령의 마음과 아무의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나의 마음을 비교해보고 싶었다.

 나와 그분의 고통을 저울로 달아서 비교해 볼 수 있다면 과연 몇 그램씩이나 될까! 그분의 고통에 비하면 나의 그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힘이 들고 지쳐간다. 좀 더 크고 육중한 고통 앞에 나의 고통은 작고 사소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던 이유는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직 죽음으로만 내려놓을 수 있는 고통의 무게를 알고 싶었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기 짝이 없다. 평범한 일상이 권태가 아닌 행복이었다는 사실은 꼭 불행이 들이닥쳐야만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작은 상처들은 더 큰 상처 앞에서, 작은 불행들은 더 큰 불행 앞에서 별것 아닌 것이 될 수 있다. 물론 작은 상처도, 작은 불행도 각자가 지고 가야 할 엄연한 상처이고 불행이다.  


봉하마을의 전직 대통령 묘소


 여름날의 봉하마을엔 참배객도 관광객도 없었다.


 봉하마을이 그렇게 작고 조그마한 시골 마을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일부 언론에서 아방궁이라 그렇게까지 비난하던 전직 대통령 사저도 작고 초라해 보였다. 봉하마을 입구는 공장과 폐차장인지 중고 자동차 시장인지 알 수 없는 공간들이 심란하게 나를 반기고 있었다. 좁고 패인 꼬불꼬불한 길들을 한참 지나서야 자그마한 산 아래 마을이 보였다. 내가 나고 자란 정읍의 시골 마을보다 더 심란해 보였다. 이곳에서 퇴임 후 새로운 삶을 꿈꾸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작고 초라한 마을이었다. 시골 마을들은 TV에서 보는 것처럼 낭만적이지도 목가적이지도 않다. 한가하고 고즈넉해 보이는 곳이긴 하지만 그곳에도 치열한 삶이 놓여있을 뿐이다.


정적만이 감도는 여름날의 봉하마을


 오랫동안 전직 대통령의 묘역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모든 것이 일장춘몽처럼 허무했다.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오래전부터 그분의 소멸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렸다. 하지만 나의 일상은 그마저도 주저하며 용기를 내지 못하는 나날들이었다. 처음으로 찾은 봉하마을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에 대한 애도가 목적이 아니었다. 내 눈으로 직접, 많은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의 소멸을 확인하고 싶어서였을 뿐이다. 치사하긴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나의 고통과 일렁이는 마음이 별것 아니라는 위로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분은 내게 아무런 위로도 주지 못하셨다. 한 인간의 소멸은 그저 소멸일 뿐이라는 단순한 사실만을 깨달으며 무거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분이 꿈꾸던 세상이 내가 꿈꾸는 세상이었지만 그분도 나도 길을 잃어버렸다. 사람 사는 세상은 우리가 나가야 할 길이었지만 그 길들은 시골 마을에서조차 길을 잃고 있었다.


 요즘은 새로운 비즈니스를 위해 마음만 바쁘다.


 영국과 유럽에서 중고 카라반을 수입해서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 이전의 여행산업은 개인의 레저 산업으로 바뀔 것이다. 철저하게 비대면 여행인 트레일러 카라반은 일부 마니아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도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이다. 언제까지 글만 쓰면서 살아갈 수도 없는 일이다. 지난달 프리랜서 분야의 긴급 고용안전 지원금 신청을 하면서 알게 된 내 수입은 경이로웠다. 1년 동안 글쓰기 강의로 벌어들인 총수입은 200만 원이 채 되지 못했다. 연소득 200만 원이 내 지난해 소득의 전부였다. 월급도 아닌 연봉 200만 원짜리 인생이었다. 아마추어 작가들이 글로 밥 벌어먹고 사는 일은 낙타 없이 사하라를 횡단하는 일만큼이나 험난하다. 책이 나오든 나오지 않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현실은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자각하지 않을 수 없는 엄중한 현실이 나를 괴롭혔던 것일까!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전직 대통령의 모습


 봉하마을에서 돌아오면서 오랫동안 사색에 잠겨야만 했다.


 나의 마음에 요동쳤던 파도들의 원인은 바로 200만 원이었을지도 모른다. 영국에서 토요일처럼 바쁜 날에는 하루에도 벌었던 200만 원이 월급도 아닌 연봉이 된 현실에 망연자실했다. 그렇다고 돈에 구애받지 않던 시절이 사무칠 정도로 그립다는 말은 아니다. 그 시절에는 자유도 행복도 느낄 수 없을 만큼 바삐 살았다. 글 한 줄 쓸 시간도 책 한 권 읽을 시간도 없었다. 고가 브랜드의 옷도 많았지만 입을 일이 없었다. 덕분에 지금 아무도 봐주지 않는 산중에서 잘(?) 입고 있다.

 사실 일에 함몰되어 있던 그 시간이 그립기도 하지만 평생 돈만 벌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특히 한국에서 돈 없이 살아간다는 일은 불안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일이었다. 매일 줄어드는 통장의 잔고를 확인할 때마다 우울했다. 알 수 없는 불안이 쓰나미처럼 몰려들었다. 돈이 없으면 이가 흔들려도 참아야 하고 병원도 마음대로 다니지 못한다. 아무런 복지혜택도 누리지 못한다.

 나처럼 희귀 난치성 질병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의 질병코드에 등록이 되지 않는 희귀 질환들이 등록된 희귀 질환보다 더 많다. 사실 이미 등록된 희귀 질환들은 치료가 가능한 것들도 많다. 하지만 아무도 이런 사실에는 관심조차 없다. 의사도 공무원도 정부도 마찬가지다. 돈이 되지 않는 질병들을 연구하는 기관이나 전문가 집단도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이기도 하다.

 코로나라는 재앙이 몰려오는 것도 오랫동안 지속된 장마와 그로 인한 홍수피해들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로 인한 개발지상주의가 초래한 대재앙의 전조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우려했지만 간과했던 일들이다. 모든 것은 말뿐이었다. 개발지상주의는 아직도 질주 중이다. 환경이 파괴되고 상태계가 교란되면서 사람도 자연도 시름하며 앓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돈 앞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공범이 되고 마는 세상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소멸이 머지않았다는 대자연의 경고일지도 모른다. 나에겐 그런 소리들이 들린다. 내가 미쳐가고 있는 것일까!


봄부터 나의 거처가 된 월출산 국립공원


  사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다.


 그래서 봄이 한창이던 4월에 이곳 남도의 산중으로 들어왔다. 덕분에 그나마 있던 강연 수입도 사라졌다. 산중까지 강연을 듣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산중에 살다 보니 매달 지출은 200만 원 이상에서 100만 원 정도로 대폭 줄었다. 하지만 산중에 살아도 기본적인 지출은 막을 수가 없다. 보험료도 내야 하고 병원도 다녀야 하고 자동차도 움직여야 한다. 가끔은 비싼 KTX도 타야 하고 요즘처럼 더운 여름에는 읍내 카페에도 가야 한다.

 그나마 통증이 덜한 날에는 괜스레 마음만 분주해진다. 마음이 요동칠 시간조차 없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비즈니스도 해내야 한다. 그 잠깐의 시간들이 너무나도 소중해졌다. 하루에 불과 서너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는 시간들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통증이 잠시 주춤하는 그 시간들에는 나도 모르게 "땡큐"라는 말을 자주 중얼거린다. 행복이라는 것이 이처럼 가까운 곳에 있을 줄은 몰랐다. 통증 없이 무언가에 몇 시간 만이라도 몰입할 수 있는 시간들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런던에서 지난날 하루에 200만 원 이상을 벌어도 느낄 수 없었던 그 무엇보다 값진 행복이다.   
  

 어쩌면 삶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반드시 변하고 만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영원할 것만 같은, 그래서 쉽게 맹세하던 사랑도, 친구사이의 우정도, 가끔 느끼는 행복도, 운 좋게 거머쥐고 있던 부도 반드시 변하고 만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내가 변했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20년의 영국 이민생활이 주는 단절을 서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20년 전의 나는 이름뿐일지도 모른다. 나를 이루는 육체부터 정신까지 모든 것이 변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것도 옳은 말은 아닌 듯싶다. 나만 보더라도 매일 변하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은 파도처럼 매일 요동을 쳐댄다. 전날 썼던 글을 다시 읽노라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손가락 마디들이 오글거린다. 변덕이 죽 끓듯 한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를 대할 때는 과거의 기억에만 의존하지 않으려 나름 노력해야 한다. 현재 그 친구가 가지고 있는 마음에만 집중하려 한다. 우리가 내뱉는 수많은 언어들은 우리의 마음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에 찔리기도 하고 말에 베이기도 하는 것이다. 말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일부이니까. 어쩌면 일부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서로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우린 말 못 하는 고통의 주머니를 서너 개쯤은 달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단지 그것들을 무시하거나 억누르려 애쓸 뿐이다. 긍정을 외쳐대면서 잠시 꺼내볼 용기조차 내지 못한다. 어쩌면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과제이자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통증에게도 기꺼이 마음을 내줄 생각이다. 이젠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


 PS: 바람이 불면 당신인 줄 알겠습니다. 그때마다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날 제대로 인사도 못 드리고 왔네요. 사실, 당신의 소멸을 마주하고 서 있기가 너무 힘겨웠습니다. 그날 사들고 왔던 봉하빵을 차 안에서 하나도 먹지 못할 정도로 말입니다. 이젠 모든 고통을 내려놓고 그곳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시면서 영면하시기 바랍니다.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소외받고 힘겨워하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입니다. 그것이 정의이고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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