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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Jul 31. 2019

나만 외로운 걸까? #3 한국의 무너지는 가장들

후기 청년기의 우울과 외로움에 관한 연재


     

가장이라는 책임의 무게


나는 한국에 와서도 여전히 축구라는 나의 취미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학교 선배들이 운영하는 축구 모임에 무임승차하다시피 해서 막내로서 열심히 뛰고 귀여움을 받고 있다. 주로 81, 82학번의 대선배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모임에 나가서 운동도 하고 교류도 하면서 이민으로 단절된 나의 인맥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아직은 깊은 교류를 하지 못하였지만 이제는 선배들이 무엇으로 힘들어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왕성하게 현역으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선배들은 이미 은퇴를 하였거나 해야만 하는 나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한국 사회의 고용구조상 나이가 들면 이직 자체가 거의 막혀있다. 기업에서는 생산성과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성과를 강조하면서 나이 든 사람들을 기둥에서 어느 순간 곁가지로 만들어 버린다. 소위 말하는 가성비 싸움에서 젊고 유능한 직원들에게 경쟁에서 밀리게 되는 것이다. 아프지만 곁가지들은 쳐내야 나무가 살고 숲이 살아나는 원리와 너무 유사하여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점차 수명은 늘어나고 지출해야 할 돈들은 죽을 때까지 필요한데 직업 전선에서 밀려나는 것이다. 축구하는 열정과 체력들을 지켜보면서 직장에서 10년 이상은 더 일해도 충분하다고 느꼈다.  

     

이러한 베이비붐이나 386 세대들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산업화에서 기술혁명으로 나아가는 벤처시대를 이끈 격동기의 한 복판에 있었다. 가장이라는 무거운 어깨를 유지하기 위하여 앞만 보고 치열하게 달려온 우리 사회의 주역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중년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 가정에서조차 인정을 받지 못하고 눈칫밥을 얻어먹는 신세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러한 중년들이 느껴야 할 외로움과 소외감을 이해하고 감싸주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사회는 물론 가정에서조차 버림받다시피 하고 있다. 이미 예견된 사회문제이지만 이제는 정부나 기업에 대책을 바란다는 것은 꿈같은 일이 되어가고 있어 더욱 안타깝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좀 이른 나이기는 하지만 내가 느끼는 이러한 위기감의 팽배는 선배들 못지않다.

     

  


퇴로가 막혀버린 중년의 가장들

     

이처럼 은퇴한 또는 은퇴를 준비하는 세대들은 퇴로가 막혀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부동산 투자를 잘해서 또는 흑수저가 아니어서 월세를 꼬박꼬박 받으며 삶의 기반 자체를 다져놓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은퇴 후의 삶의 방식은 너무나도 다양하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로가 막힌 보통의 가장들의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일반 직장인들은 항상 퇴사를 준비하면서 직장생활 내내 퇴사나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하고 대비한다. 하지만 막상 중간에 퇴사를 해서 자기만의 길을 가는 직장인은 많지 않다. 현실적으로 직장인의 마인드와 사업가의 마인드는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단을 내리기는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안정된 직장일수록 그럴 확률은 높아진다. 그래서 50대에 근접하거나 넘어서면 버틸 때까지 버텨보는 것이다. 그러나 퇴사 또는 은퇴를 해야 할 시기가 오면 발등에 불이 떨어질 수밖에는 없다.

     

정상적인 재취업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재취업은 어느 정도 급여를 포기하는 선에서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그것도 커다란 행운이라고 한다. 대부분은 재취업을 포기하고 자기 사업을 해서 스스로가 일자리를 만들고 취업을 하는 형태이다. 평생 월급만 받던 직장인의 마인드로 사업에 성공하기란 결코 녹녹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사업에 실패함과 동시에 인생 자체가 망가진다. 가정의 해체는 물론이다. 이처럼 중년들의 퇴로는 거의 막혀있다시피 하다. 한국이 프랜차이즈 왕국이 되어버린 이유이기도 하다. 그 무덤으로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외로운 영혼들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뭐라 위로할 말조차 잃어버린다. 이들의 깊은 외로움과 슬픔을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저 공감하고 같이 아파할 수 있는 게 그나마 우리가 친구로서 선후배로서 해줄 수 있는 전부이다.

     



슬픈 자화상

     

퇴로가 막혀버린 우리 사회 중년의 슬픔과 외로움을 마치 남의 일 이야기하듯 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고 가엽다. 다행히도 나는 직장을 일찍 그만두고 오래전에 영국으로 이민을 가서 현지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물론 나도 많은 사업들을 시도하였고 때로는 투자해서 실패도 맛보았다. 사업 실패로 인한 돈을 잃을 때의 아픔은 항상 외로움을 동반한다. 바로 인간관계에서 오는 아픔이자 슬픔이다. 좀 더 심하게 표현하면 배신이다. 하지만 배신이든 사기든 이 또한 나의 경험 부족이고 사람을 볼 수 있는 안목의 부족이 원인이다. 배신하거나 사기를 친 사람들을 탓할 필요도 원망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일어날 일은 어떻게든 일어나게 되어있다. 우리 인간이 예측하고 대비하며 막을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고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여러 번 느끼게 된다. 그것이 사업이고 또 인생이었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사업 문제보다는 가정 문제가 나에게는 더 큰 문제였고 아픔이었다. 대부분의 가장들은 큰 착각을 하고 산다. 가정을 위해 열심히 일해서 행복하게 살다 보면 그 소소한 행복이 언제까지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 말이다. 하지만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스스로가 생각하는 위치와 아내가 또는 아이들이 보는 위치는 전혀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남편이나 아빠가 경제적인 생산능력이 있는 한은 그 다름을 인정하지도 보여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실업자가 되거나 은퇴를 한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그냥 약간만 달라지는 게 아니다. 일단 서열에서부터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보다도 밀린다. 집에 있으면 항상 걸리적거리고 불편한 늙은 아저씨에 불과하다. 개나 고양이는 귀엽고 예쁘기라도 하다. 좀 비약이 심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의 엄연한 현실이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년 가장들이 느끼는 위기라는 것이 가장으로서 더 이상 대우를 받지 못하고 소외받는 것이다. 어디에도 낄 자리가 없다. 


집에 있으면 불편해서 밖에 나와 보지만 마땅히 갈 데도 할 일도 없다. 등산도 매일 다닐 수는 없다. 무릎도 아프고 허리나 관절도 버겁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골프나 운동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모두가 돈이 필수적으로 수반되기 때문이다. 돈 들어갈 일은 많은데 돈 나갈 일만 생긴다. 하지만 통장 잔고는 항상 위태롭다. 무슨 사업을 할 수도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 수도 없다. 한마디로 퇴로가 없는 진퇴양난이다. 이러한 상황을 맞이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중년들에게 퇴로를 찾아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물론 남의 걱정할 처지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나 또한 비슷한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자신만의 삶의 노하우를 살려 자기 발견을 하다 보면 반드시 좋은 콘텐츠가 나올 수 있다. 돈을 쫓아다니는 사람에게 돈은 절묘하게 피해 다닌다. 돈이 쫒아오게 해야 한다. 말은 쉽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차피 남아도는 시간을 마냥 한탄하며 허비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언제까지 자신의 노동력만을 팔 것인가? 자기 발견을 통해 자신의 무한한 잠재력을 끌어내야만 한다. 그것이 거의 유일한 퇴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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