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런던남자 Nov 16. 2020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만난 코리아의 위상

한국이라는 나라와 한국인이란 자부심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막상 접하고 보니 눈물이 날 정도였다. 아! 이것이 코리아의 진정한 국격이구나.


 국어사전에 의하면 국격이란 "한 국가의 대외적인 품격"을 의미한다. 인격처럼, 국격이란 우리가 목청을 높여가며 떠들어 대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나 다른 나라들이 알아서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화자찬에 불과한 공허한 말장난일 뿐이다. 내가 엊그제 영국에 입국하면서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경험한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교도소에서 여생을 마감해야 할지도 모르는 한국의 전직 대통령이 있다. 그분은 어떻게 찾아내셨는지 국격이란 용어를 유난히도 자주 사용했다. 거의 오남용 수준 이상이었다. 해외에서 그 생소한 단어를 듣고 있노라면 손발이 오그라들 거 같은 민망함이 몰려오곤 했다. 입만 열면 대통령 자신부터 (새빨간) 거짓을 말하면서 국격을 외치는 모순은 보기에도 딱해 보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가 내뱉었던 말들과 그가 실행에 옮겼던 어마어마한 국책 사업들 중 상당 부분은 거짓이나 잘못된 것이라고 법원에서 판결하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그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국가에서 제공하는 공짜밥을 먹고 공짜 잠을 자고 있다. 얼마 남지 않았을 여생을 그렇게 보내야 한다니 측은지심이 들기도 한다.



 26개월의 기나긴 한국 생활을 마치고 비행기에 오른 날이 하필 13일의 금요일이었다. 지인 중에는 불길한 징조라고 출국일을 조정하라고 귀뜸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또 어떤 이는 영국 상황이 심각한데 이 시국에 거길 왜 가냐고 성화였다. 심지어 영국에 살고 있는 아들조차 내년 봄에나 들어오라고 만류했다. 하지만 한 번 마음먹으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실행에 옮기고 마는 나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그 전직 대통령을 닮아있었다. 모두가 우려했던 13일의 금요일에 인천공항을 출발해 같은 날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12시간 반의 비행을 마치려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을 때는 오후 4시 무렵이었다. 예상대로 햇빛이라고는 한 줄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런던의 상공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우울하다 못해 암울한 표정으로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만 같았다. 그래도 눈물은 용하게도 잘 참아내고 있었다.


 곧 비행기가 착륙한다는 안내 방송과 함께 순간 침묵이 흘렀다. 오랜 습관처럼 착륙 직전에는 좌우측으로 개방된 작은 창문들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순간 측은지심이 다시 일렁이고 있었다. 골목을 빼곡 채운 채 숨만 쉬고 있는 듯한 낮은 런던의 이층 집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개가 자욱한 채 어둠이 낮을 대신 하려 마중 나오던 참이었는지 이미 몇몇 창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막 불이 캬지기 시작한 런던의 2층 집들 모습


 육중한 동채가 잠시 흔들리더니 비행기는 마침내 영국 땅에 내려앉았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코 앞에서 영국의 방역요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심지어 한국의 주민센터나 극장에서 하는 발열체크도 하지 않고 멀뚱멀뚱 바라만 보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이들은 마스크를 살짝 쓰고 있었다는 점이다. 마스크를 썼다기보다는 쓰는 흉내를 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행히 대한항공은 히드로 공항 터미널 2를 사용 중이어서 그다지 붐비지 않았다. 평소라면 입국심사를 위해 한두 시간은 기본이고 3시간 이상까지도 줄 서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공항은 정적만이 감돌뿐이었다. 입국심사장에 도착하니 비로소 심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행렬이 보였다. 입국심사가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그래서 영국 영주권자들 마저도 긴장하게 만드는 런던 히드로 공항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국 여권을 가진 사람은 코로나 검사도, 입국심사도 없이 전자여권을 기계에 스캔하는 것이 전부였다. 막상 입국심사 게이트를 통과하고서도 믿기지 않아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아고 있었다. 인상 고약한 이민국 직원들과 말꼬리 잡기식 실랑이를 벌이지 않고서도 입국 심사대를 통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상대는 AI도 귀신도 아닌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마치 지하철에 교통카드를 대고 나오는 기분이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한국 여권으로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물론 탑승 48시간 전에 영국 정부의 사이트에 QR코드를 스캔해서 3페이지 정도의 개인 신상을 기재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었지만 말이다.


런던 히드로 공항의 eGates 안내 표지판


  참고로 사진에 표시된 것처럼 런던 히드로 공항의 eGates를 이용할 수 있는 국가는 영국, EU, 호주, 캐나다, 일본, 싱가포르, 한국, 스위스, 미국 등이다. 조건은 "48시간 비자"를 영국 정부에 온라인으로 신청해서 받아들여저야 한다. 48시간 비자라고 하는 이유는 영국 국경에 도착하기 48시간 이내에 비자 폼을 신청해야 하기 때문이다. 1주일 전에 미리 신청할 수도  없고 정확히 48시간 전에 신청해야 한다. 이 비자는 영국 정부에서 제공하는 Passensinger locator form을 작성해서 사전 승인을 받으면 된다. 영국 공항에 입국할 때는 전자여권을 단순히 스캔해서 영국 정부의 시스템에 입국자의 얼굴을 메치시키면 된다. 따라서 여권 스캔할 때 마스크는 벗고 카메라에 얼굴을 일치시키면 게이트가 열리는 방식이다.


런던 히드로 공항의 수하물 찾는 곳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한국 여권을 소지한 입국자는 2주 자가격리 대상에서도 면제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eGates를 통과해서 짐을 찾고 세관을 통과 후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자유롭게 이동하면 된다. 한국의 국격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영국의 히드로 공항을 드나들며 겪었던 숫한 감정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90년대 초반 어학연수를 왔다가 공항에 억류당한 경험부터 시작해서 영주권을 받기 전까지 입국 심사대에 설 때마다 긴장해야만 했던 아픈 역사들이 말이다. 왜 이렇게 한국은 힘이 없는 것일까. 무슨 죄인도 아닌데 잔뜩 주눅이 들어서 입국심사관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말과 표정들은 차라리 소리 없는 몸부림에 가까웠다.


 오래전, 동남아 사람들이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입국 심사를 받을 때 겪었을 그 마음을 이해하고도 남을 것 같다. 당시에는 불법체류자가 워낙 많아서 그랬다지만 지금은 어떨지 궁금하다. 싱가포르를 제외한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들은 여전히 한국에 비하면 딱히 내세울 게 없는 나라들이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내가 영국에 도착하기 하루 전에 코로나 확진자가 33,470명으로 정점을 찍었다는 사실이다. 이미 록다운(Lockdown)을 시행하고 있는 상태에서 말이다. 영국에 도착해서 길거리를 돌아다녀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은 잘해야 10~20% 수준이었다. 그것도 KF94 같은 비말 차단 마스크가 아니라 덴탈 마스크가 대부분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내가 눈에 띌 정도였으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 다음 편에서는 영국인들이 마스크를 대하는 자세와 왜 코로나 확진자가 연일 신기록을 수립하는지를 알아볼 예정이다.

최근 영국 코로나 확진자 현황은 12일 33,470명, 13일 27,301명, 14일 26,860명이다.


주) 위 글은 위험하게 살기 위해 런던으로..(https://brunch.co.kr/@namulondon/472)의 후속 편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