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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Aug 03. 2019

여보, 나 1년만 쉴까? #8 무인도에서 길을 잃다.

일과 질병이란 일상에서 휴식과 치유 및 힐링에 관한 연재이다



섬이란 여행자에게는 아름답고 낭만적이지만 현지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고립을 의미한다. 그 고립을 자발적으로 찾아 들어가는 행위에는 어떤 의지가 표출되어 있다. 그 의지를 흔히들 여행이라고 한다. 때로는 기행이나 체험 또는 탐험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번 무인도 여행에는 나의 의지는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방송 촬영이라는 일정에 단순한 호기심이 발동한 것뿐이었다. 치기 어린 호기심 하나로 나의 무인도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실, 무인도에서 글을 쓴다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었다. 이태백이나 두보가 부럽지 않았다. 섬이란 곳도 낯설었지만 무인도가 주는 의미는 낯 섬을 넘어서 미지의 세계로 침범하는 침입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 침입자는 정복자라고 표현될 수도 있다. 어느 한 지역을 정복하여 나의 통제하에 둔다는 것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거의 본능에 가까운 영역의 개념이었다. 나의 마음속에도 정복하고 통제해야 할 영역이 있었던 것이다. 그 영역 게임을 현실 속에서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무인도란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단위면적 10만 평당 5인 이하가 거주하면 행정구역상 무인도라고 한다. 오래전부터 무인도 여행은 나의 로망이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이나 공지영의 해리에서 언급하는 무진과 유사한 의미로 다가왔다. 무인도에는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가능하면 혼자 가고 싶었다. 혼자 무인도에서 며칠을 보내고 싶었다. 생존보다 중요한 이유는 바로 외로움에 대한 고찰이었다. 그러나 혼자서 용기를 낼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사무실을 공유하는 황 대표에게 무인도 촬영 제의가 들어왔다. 황 대표는 이미 무인도 여행 전문가 반열에 올라 있었다. EBS 한국기행 팀이었다. 사전에 작가와의 미팅이 있었다.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선뜻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방송 출연도 어색하지만 무인도의 낮 섬에 선뜻 다가서기가 두려웠다.

     

작가와의 미팅 후 나의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갈까 말까를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결론은 가지 않는 걸로 스스로 자신과 합의를 보았다. 순간순간 밀어닥치는 선택이나 결정이 삶이고 인생이다. 선택이나 결정 앞에 주저하는 나의 모습이 생경하다. 결단이 필요할 때 결정을 내리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한 것은 40대 중반부터다. 나의 우울증이 시작되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후기 청년기의 외로움이 표출된 그 시점은 내 인생에 있어서 역경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그 우울의 시초는 알 수 없는 외로움이었다. 나는 어느 순간 혼자였다. 세상과 철저하게 고립된 무인도에서 그렇게 홀로 서있었다. 간혹 작은 배들이 마음속의 무인도를 들락거렸지만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일들이었다. 관계 설정을 따로 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나는 그렇게 무인도에서 외로움과 싸우기 시작하였다. 비상식량이 있는 고독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싸움은 치열해졌다. 전쟁이 따로 없었다. 전세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견디지 못할 시점에서는 가끔 휴전을 해보지만 일시적인 미봉책에 불과할 뿐이었다. 전세가 불리해도 전사할 수는 없었다. 선택은 오직 하나였다. 삶에서 명예롭게 퇴장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마음속의 무인도에서 탈출하는 길이었다. 길이라기보다는 탈출구였고 비상구였다.

     

삶에서 퇴장하지 않아도 되는 극적인 행운이 찾아왔다. 나에게 한국행이라는 왕복 항공권이 주어진 것이다. 아내와의 협의 후 한국행을 택하였고 한국에 오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우연한 기회에 글쓰기를 통해 책을 쓰기 시작하였다. 글을 쓰면서 나의 내면과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 대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치열해졌고 지금은 치유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던 차에 다시 현실 속의 무인도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모험이었다. 이미 체험한 내면의 무인도와 오버랩이 되기 시작하였다. 내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는 이유였다.

     

출발 며칠 전에 삼성동 연구실에서 다시 무인도 탐험 및 촬영 이야기가 나왔다. 나도 모르게 생년월일을 황 대표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나의 마음과는 달리 머리는 벌써 무인도행을 결정하였던 것이다. 이번 무인도 여행은 그렇게 어렵게 결정되었다. 이민이나 결혼 같은 큰 문제를 앞에 두고도 주저함이 없던 나는 이렇게 결정장애에 시달리고 있었다.

     

무인도에서 1박 2일은 나에게 많은 것을 깨우쳐 주었다. 나와의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졌다. 그동안의 가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자유였다. 나는 더 이상 누구에게 무언가로 인정받아야만 하는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나 자신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 인정받는 것이었다. 아니 인정받기보다는 인정해주는 것이었다. 수동의 나가 아닌 능동의 나였다. 그렇다고 항상 긍정은 아니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큰 선물을 안고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나 자신에게도 선물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즐거운 일이다.

 

    


천연기념물이라고 하는 검은 머리 물떼새들이 짝을 이루어 날아다니는 사승봉도라는 무인도에서 느낀 진정한 무인도는 서울이었다. 그토록 와보고 싶었던 무인도는 정작 평화롭고 한가하였다. 쓸쓸함만이 섬을 지키고 있지는 않았다. 바람과 파도가 친구가 되어주었다. 갈매기와 검은 머리 물떼새가 이웃이 되어주었다. 드넓은 백사장의 모래알들 틈 사이로는 반짝이는 물질들이 가득하였다. 유리의 원료로 쓰이는 규사라고 한다. 백사장을 가득 매운 햇살들은 규사와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열렬한 햇살의 구애를 거절하는 규사들의 매력에 정신없이 빠져들 무렵이었다. 문득 해변에서 사막을 보았다. 모로코에서 보았던 사막보다 훨씬 광활한 사하라나 고비 같은 사막이었다. 그렇게 무인도에서 또 다른 무인도와 사막을 만났다.

     

나에게 무인도는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세계였던 것이다. 어느 한 곳을 특정 지을 수 없었다. 바다에 외롭게 떠있는 섬도 무인도였고 광활한 사막도 무인도였다. 내가 임시 거처로 사용하는 쪽방 같은 원룸도 무인도였다. 내 마음속에 떠있는 외로움이라는 섬도 역시 무인도였다. 물론 서울이라는 도시도 무인도였다. 나는 그렇게 수많은 무인도에서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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