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년간의 영국 여행 이야기
영국의 날씨는 의외로 잘못 알려진 부분이 많다. 억울하게 오해를 받고 있는 부분도 상당히 많다. 그 오해를 하나씩 밝혀서 영국 날씨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풀어주고 싶다. 일단 영국 하면 비의 나라처럼 인식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물론 일부는 맞지만 일부는 틀린 말이다. 영국 날씨의 가장 큰 특징은 우기와 건기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비는 주로 겨울에 온다. 즉 겨울이 우기인 것이다. 여름에는 비가 자주 오지는 않는다.
북대서양 난류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날씨가 온화해서 비가 자주 내리는 것이다. 만약 섬나라가 아니었다면 비대신 눈이 내렸을 것이다. 겨울에는 거의 비가 매일 내린다고 봐도 될 정도로 자주 내리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산이 필요할 정도로 많이 그리고 오래 내리지 않는 특징이 있다. 기온은 영하가 아닌데도 영국의 겨울이 춥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매일 오락가락하는 비가 주범이다. 그래서 겨울에는 잔디도 푸르다. 영국 프리미어 축구 경기를 즐겨보는 눈썰미가 있는 축구광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유명한 버버리 코트도 출발은 비옷이었다. 군인들이 입었던 방수가 되는 트렌치코트였던 것이다. 우산을 들고 총을 쏘거나 전쟁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우의가 필요했던 것이다. 버버리가 군납을 하고 왕실에 납품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였다. 버버리의 트렌치코트가 전 세계 코트의 대명사가 된 이유도 비 때문이었다.
영국의 겨울은 한국처럼 그렇게 심하게 춥지는 않지만 길고 우울하다. 그 이유는 해가 뜨지 않기 때문이다. 겨울에 해를 보기란 쉽지 않다. 겨울철에 비행기를 타고 영국으로 들어서면 온통 구름 왕국으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해는 떠 있는데 구름이 해를 가리는 것이다. 길고 긴 영국의 겨울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없던 우울증도 생기게 한다. 오후 3시 반 정도면 벌써 어두워진다. 영국의 겨울은 상상만으로도 결코 즐겁지 않다. 사진은 겨울철 오후의 영국 런던의 풍경이다. 시간대는 3시에서 4시 사이 정도이다. 구름은 항상 비를 머금은 비구름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비를 뿌린다. 섬나라 특성상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비가 오면 여름에도 싸늘해진다. 반드시 얇고 가벼운 방수재킷 하나쯤은 소지하고 다녀야 한다.
반대로 여름은 건기다. 비가 거의 오지 않는다. 때로는 심각할 정도로 가뭄이 지속된다. 텃밭이나 정원의 잔디에 호스를 통해 물을 뿌리는 행위를 금지시킨다. 적발 시에는 천 파운드의 벌금을 부과한다. 따라서 여름에는 잔디나 풀들이 누렇게 말라죽어간다. 비가 오지 않는다는 의미는 날씨가 좋다는 반증이다. 나는 영국의 여름만큼 완벽한 날씨를 아직 경험하지 못하였다. 겨울에는 거의 얼굴을 내밀지 않던 해가 여름에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하루 종일 떠있다. 물론 매일 해가 떠있는 건 아니지만 겨울에 비하면 영국의 여름은 환상 그 자체이다. 영국의 여름 기온은 가끔은 30도를 넘어설 때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흔치 않다. 보통 한국의 에어컨을 켜어놓은 정도의 온도인 26도 정도이다. 따라서 영국 여행의 최적기는 바로 여름인 것이다. 작열하는 태양을 즐기다가도 해가 구름에 가리거나 나무 그늘에 들어서면 쌀쌀함을 느낄 정도이다. 영국 여행 시에는 여름에도 얇은 재킷을 가지고 다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봄과 가을은 우리처럼 뚜렷하지는 않지만 봄에는 철쭉과 개나리가 피어나고 가을에는 단풍이 드는 모습들은 한국과 아주 유사하다. 봄에는 공원이나 산에는 고사리가 지천이다. 특히 리치먼드 파크에 가면 그 넓은 공원 전체가 고사리로 가득하다. 그 많은 사슴들이 고사리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고사리에 독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아는지 참 신기하다. 개나리와 철쭉을 보고 있노라면 아름다운 우리 한국의 산하가 떠오르곤 한다. 영국의 봄을 맨 먼저 알리는 전령은 매화이다. 매화를 필두로 수선화가 먼저 피고 목련이 피어난다. 그 뒤를 이어 개나리와 각종 꽃들이 피어난다. 철쭉은 봄의 끝자락을 알리고 여름의 시작은 장미가 알린다. 영국은 꽃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꽃들을 사랑하고 가꾼다. 마약류로 분류되는 양귀비꽃도 지천이다. 울릉도에만 난다는 명이도 지천이다. 영국에서는 와일드 갈릭이라고 한다. 우리처럼 즐겨 먹지는 않지만 지방에 가면 샐러드로 먹는 사람들도 가끔 있다고 한다.
영국은 매일 비만 오는 나라는 아니라는 오해가 풀렸기를 바란다. 영국의 여름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영국이 얼마나 멋진 날씨를 가지고 있는지 감탄할 것이다. 미세먼지라는 단어조차 없는 청정지역이 바로 영국이다. 차량의 매연 규제가 심하고 공장이 거의 없다. 모든 공산품은 중국산이거나 동남아산이다. 다만, 물에 석회석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다. 그래서 웬만하면 물은 생수를 먹는 것이 좋다.
영국의 여름철에는 수많은 페스티벌이 열린다. 가장 대표적인 페스티벌이 글라스톤 버리 페스티벌이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페스티벌도 인생에 꼭 한 번은 봐야 할 축제다. 영국 여행은 겨울도 낭만이 있지만 가능하면 여름에 오는 것이 좋다. 선선한고 청명한 날씨에 축제도 보고 생맥주도 마시면서 런던 거리를 활보하는 맛도 제법 그 재미가 쏠쏠하다. 단 여름철에는 프리미어리그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프리미어는 가을철부터 겨울 그리고 봄까지 이어지고 여름에는 긴 휴식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