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자주 그리고 여러 번 싸워야 한다!
지난해 여름이었다. 벌써 정확하게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이 나의 상처를 이만큼이라도 봉합해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월이 약이다.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정말 세월이 약이었다. 지난해 여름이 시작되면서 아이와 아내가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영구 귀국하였다. 다시 영국으로 이사 온 것이다. 드디어 우리 가족은 완전체가 되어 행복하게 살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였다. 봄부터 그렇게 가족이 돌아올 날 만을 기다리며 들뜬 마음으로 하루하루의 힘듦을 버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반전은 너무도 쉽게 찾아왔다. 바로 아내가 변한 것이다. 예전의 아내가 아니었다. 더욱 강해지고 무서워진 완전체 같은 사람으로 돌아온 것이다. 우리는 서로 간의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시작하였다. 결혼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피해 갈 수 없는 밤샘 토론에서 서로에 대해 많은 상처를 남겼지만 그 상처로 인해 끄집어져 나온 생채기 들을 볼 수 있었다. 왜 그토록 나를 냉대했는지 알 수 있었다. 오해라고 우기기에는 이미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렀고 아내의 마음은 떠나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의 밤샘 토론이 이어졌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서로의 마음만 확인할 수 있었다.
말이 밤샘 토론이었다. 이것은 토론이라기보다는 엄연한 부부싸움이었다. 논리에서 밀리는 내가 아내를 이길 확률은 거의 없어 보였다. 나는 그 순간에도 아버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싸우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던 나였지만 이제는 조금이나마 이해가 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렇게 고성을 질러가며 때로는 폭력이 오가며 부부싸움을 하셨다. 그리고는 그다음 날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졌다. 도대체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두 분이서 정말 싸우기는 한 것일까? 어린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루 걸러 한번 꼴로 싸우고 또 싸우셨지만 서로에 대한 불신은 없어 보였다. 순간적인 감정들로 인해 싸우는 일들이 빈번했지만 앙금은 남지 않았다. 그 이유를 이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방식을 옹호하거나 옳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번도 제대로 싸우지 않고 참고 견딘 결과는 이렇게 커다란 부메랑이 되어 나의 목을 겨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물론 그때는 이미 늦어도 너무 늦어버린 시기였다. 그렇게 밤샘 토론은 우리 부부의 모든 문제들이 도마 위에 올랐고 검증에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어떠한 정답도 도출할 수 없었다. 없는 정답을 찾아내는 일이 어쩌면 더 힘든 일일 수도 있다. 부부간에도 다름과 차이를 인정해야 해결이 날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시간만 허비할 뿐이었다. 그리고 서로에게 상처만을 남길 뿐이었다.
몇 주 전이 결혼기념일이었다. 우리는 6월의 중간쯤에 방배동의 어느 웨딩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 결혼식도 많은 하객들의 축복을 받으며 행복하고 성대하게 치러진 결혼식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빠짐없이 결혼기념일에는 아내에게 아내가 좋아하는 백합을 한 다발씩 선물하곤 하였다. 하지만 이번 결혼기념일에는 아무런 선물도 줄 수가 없었다. 심지어 결혼기념일 전후로 있는 서로의 생일도 챙기지 않았다. 가슴이 아팠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을 탓할 수도 없지만 탓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무의미한 시간의 틀에 갇혀 액자 같은 삶을 지속할 용기도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삶의 용기를 상실한 채 앞으로 나아가는 힘에는 한계가 느껴졌다. 추진력이 부족한 로켓은 결국 추락하고 만다. 현재의 나의 상황은 추락하지 않으려는 로켓과 같다. 남아있지도 않은 사랑을 잡아보려는 몸부림이 가슴 아플 뿐이다. 누구를 위한 몸부림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모든 것은 결정되었는데도 미련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를 나도 모르겠다. 이제는 그 끈을 놓아주어야 할 때가 왔다. 그래야 아내도 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삶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다. 그 추진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그래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
내가 오늘도 살아가는 이유는 삶이 저만치 앞서가면 힘겹지만 뒤에서 쫒아가는 방식과 다를 바 없다. 비둘기가 전진하는 힘은 머리를 먼저 앞으로 내민 다음 몸이 따라가는 방식이다. 언뜻 보기에는 동시에 이루어지는 동작 같지만 실은 머리가 먼저 나가고 몸이 머리를 따라간다. 나도 비둘기처럼 한 발짝 앞서 나가는 삶을 말없이 따를 뿐이다. 거기에는 어떤 법칙도 철학도 없다. 살아간다는 일은 이처럼 의미 없는 비둘기의 머리 동작만큼이나 단순하고 명료할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의 머리가 그 단순한 일들을 크게 부풀리는 일에 일조하고 있기 때문에 몸이 따라가지 못할 뿐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든다. 그렇다. 누군가의 삶은 그저 그런 것일 수도 훌륭한 것일 수도 있다. 머리를 얼마만큼 몸뚱이가 열심히 따라가느냐의 문제일 뿐일 수도 있다.
이혼! 흔히들 이혼하면 남의 이야기처럼 쉽게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 되었다.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아내의 일방적인 이혼 통보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 충격을 표현하자면 이렇다. 마치 내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그런 기분이었다. 더 이상 의지할 사람이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돌이켜보면 많은 사람들이 겪었고 또 겪고 있는 일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나의 일이 되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차라리 죽음이라면 쉽게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가 있다. 하지만 나에게 이혼이라니! 생각하면 할수록 답이 나오질 않았다. 현실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비현실 같은 일을 인정하려면 어떤 힘이 필요하였다. 어쩌면 그 힘은 영영 나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당장 나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 인식이다. 그리고 죽음처럼 이혼 또한 누구에게나 그리고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삶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 일부분에서 내가 지금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자존심과 자긍심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려서 어디론가 흘러가 버렸다. 아버지나 형제들에게조차 나의 이혼 사실을 알릴 용기가 나지 않는다. “저런 지질하고 못난 놈이 다 있나” 하며 금방이라도 비웃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들도 알게 될 것이다. 갑자기 나의 결혼식 장면이 떠오른다. 축가를 불러주던 친구들과 봉사활동 일찍 마치고 단체로 축해해 주려고 온 회원들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마음이 떠난 다는 일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고 너무나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걸 가지고 왜 마음이 떠났는지 따지며 분석하고 있었다. 어리석음의 극치를 보여주는 나의 행동들이었다. 돌이켜보면 일이 다 그렇게 진행되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바람이 부는 방향을 물이 흐르는 방향을 우리가 모두 제어하거나 통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연스럽다는 의미는 바로 물이 흐르는 대로 바람이 부는 대로 내버려두는 일이다. 그것이 나를 위한 일이고 상대방을 위한 일이다. 부는 바람을 막아서는 것도 흐르는 물길을 돌려보려는 것도 어리석은 일일 뿐이다. 자연스럽게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싶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자꾸 욕심이 생긴다. 인연의 끈이 이리도 질기고 모질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서로에게 자유를 찾아가게 길을 터주는 일이 바로 이혼이다. 아이가 미성년자가 아닌 이상 이혼이 문제 될 일은 거의 없다. 굳이 마음이 떠난 사람과 같이 살 필요도 이유도 없는 것이다. 결혼했으니까 무조건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도 버린 지 오래다. 각자의 자유를 찾아가도록 새장 문을 활짝 열어주는 것이 이혼이라고 본다. 이혼을 아직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참고 살지 못하고 이혼한다고 비난부터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본인에게 언제든지 현실로 들이닥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혼이다. 남의 일처럼 쉽게 말할 수 있은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나 또한 반성한다. 죽음과 이혼이라는 추상적이지만 묵직한 현실은 그것을 마주하기까지는 결코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죽음에 대해서도 좀 더 신중하게 이야기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항상 부정적으로만 보던 이혼이 준 선물은 생각보다 많다. 나는 아직 법적으로 완벽하게 이혼한 상태는 아니다. 내가 이혼 서류에 서명을 하는 순간부터 법적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내는 이미 서명을 마친 상태이다. 이혼을 바라보는 시각도 제각각이지만 이혼 자체가 부정적인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혼하려고 사랑하고 연애하며 결혼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의 마음이 변했다고 표현하기보다는 사람의 마음이 식었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고민하게 된다. 마음이 식었다는 이야기는 한때는 뜨거웠다는 말이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뛰고 위해주고 싶은 마음이 영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왜 마음이 식었느냐고 따지고 해명을 요구하는 어리석음만큼은 범하고 싶지 않았다.
언제든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물며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어찌 탓할 수가 있겠는가! 가끔은 사랑이 있기나 한 것인지 뜬금없는 생각에 잠길 때가 많다. 그만큼 사랑의 수명이 짧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일은 가슴 뛰는 일이다. 그것보다 더 즐겁고 짜릿한 기분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분은 언제든 다른 상대로 이동하거나 소멸될 수도 있는 휘발성이 아주 강한 것이다. 언제 어디로 휘발되어 스멀스멀 사라질지 모르는 사랑에 집착하며 가정의 울타리라도 지켜보려는 가장들의 어깨는 작고 좁아질 수밖에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받아들여야만 한다면 말없이 그리고 이유를 묻지 않고 받아들이고 싶다.
이혼이 준 선물들은 생각보다 많다. 먼저 자유를 주었다는 점이다. 더 이상 가장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가지 않아도 된다. 또 하나는 그럴 확률은 아주 희박하지만 진실한 사랑을 찾아 나서고 싶은 욕심이다. 이 나이에 무슨 사랑을 다시 하느냐고 비웃을 수도 있지만 솔직한 심정이다. 결혼 생활로 인해해보지 못한 진실한 사랑을 이제라도 해보고 싶다. 물론 법률적인 부분이 완전히 마무리가 된 다음에 진정한 자유인이 된 다음의 일이다.
사랑을 다시 하라고 해도 가정까지 꾸리며 또 다른 상처를 받고 싶지는 않다. 상처를 주는 일도 마찬가지다. 의도하지 않은 상처가 서로를 아프게 하기 때문에 미리 보호막을 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사랑도 이제는 현명하게 하고 싶다. 한때는 스님처럼 살고 싶기도 하였지만 결코 길지 않은 인생을 굳이 수도승처럼 살면서 자신을 학대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진심이 무엇인지 그리고 가슴이 알려주는 대로 살고 싶다. 이제부터라도 진솔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 더 이상 누구를 원망하고 상처를 주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이제부터라도 자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아우성이 아니더라도 분명 나에게서 나는 소리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