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청년기의 우울과 외로움에 관한 연재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나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마음이라는 것이 다스리고 싶다고 다스려지는 것이 아님을 물론 안다. 명상을 하고 종교를 가져 봐도 항상 출렁이고 요동치는 나의 감정을 통제할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한마디로 아무런 퇴로가 없었던 것이다. 이 외로움이 우울함과 겹칠 때는 더욱 힘들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퇴로를 찾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글쓰기를 통한 책 쓰기였다.
책 쓰기는 독서와는 또 다른 그 무엇이었다. 그동안은 독서를 통하여 내 마음을 다스리고 내 지식의 폭을 확장함으로써 어떤 탈출구를 찾을 줄 알았다. 하지만 찾으면 찾을수록 그 길은 멀고 요원하기만 하였다. 오히려 더욱더 큰 혼란이 초래되기도 하였다. 지식이란 알량한 이름으로 머릿속으로 입력만 되고 출력이 되지 않는 비정상적인 행태가 평생 지속되었던 것이다. 즉 먹기만 하고 배설을 하지 못하는 만성 변비 환자였던 것이다. 배설의 카타르시스를 단 한 번이라도 느낄 기회가 오래전에 있었으면 내가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된 책 쓰기를 통해 나는 인생이 송두리째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배설의 희열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한마디로 시원하고 후련하였다. 마음속에 응어리진 것들이 단지 마음이 아닌 대장 내에서 부패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대장 안은 가스로 가득하였고 배출구가 필요하였지만 항문은 꽉 막혀있었다. 이러한 응어리들이 글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몸 밖으로 배설될 때의 희열은 나의 기쁨이었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듯하였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시원함이었고 상쾌함이었다. 미숙하나마 글을 쓰고 책을 완성해내면 몸속에 축적된 외로움이란 감정들이 가스가 빠져나오듯 그렇게 배출되었다.
내가 책 쓰기에 빠진 이유는 이처럼 간단한 것이었다. 글쓰기 능력이나 그동안 쌓인 지식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나는 평생 책 한 권 쓰지 못할 줄 알았다. 아니 내 이름으로 책을 쓰고 작가가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 일은 나의 영역이 아닌 전문 작가들의 몫이라고 생각하였다. 넘어설 수 없는 금단의 벽이었고 선악과였던 것이다. 나는 매주 한 권씩 책을 쓰고 있다. 그것도 하루 만에 쓴다. 나에게 그런 능력이나 재능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동안 내가 힘들고 외로웠던 이유를 어렴풋이 알 듯하다. 내게 가슴 뛰는 일은 바로 글쓰기였고 책 쓰기였던 것이다. 그것은 첫사랑을 느끼는 감정과 동일하였고 항상 내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물론 나는 전문작가도,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니다. 하지만 매주 꾸준하게 책을 쓰다 보면 언젠가는 나의 또 다른 벽을 넘어설 날이 올 것이라는 작은 욕심을 부려본다. 그 날을 위해서 그리고 나의 외로움을 내려놓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도 글을 쓰고 마음과 머리를 비우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러 번 봉사활동을 하게 된 계기를 솔직하게 밝힌 바 있다. 사회에 기여하고 어려운 이웃을 도우려는 거창한 뜻은 추호도 없었다. 단지 착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려고 봉사모임을 만들었고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봉사활동의 매력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봉사활동 모임을 이끌고 매주 쉬지 않고 열심히 봉사한다는 자부심이 상당히 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봉사를 하는 것인지? 봉사를 받는 것이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하였다. 남에게 하나를 주면 나는 두 개 이상을 받을 수 있었다. 바로 나의 공허함과 자만을 내려놓고 그들의 순수함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평생을 한 공간에게 고립된 생활을 하는 그들은 외로움과는 먼 삶을 살고 있었다. 물론 전적으로 나의 느낌이다. 내가 그들의 마음에 들어가서 마음을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봉사활동은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고 그중에서도 나의 외로움을 내려놓을 수 있는 훌륭한 스승이었다. 하지만 나의 목적이었던 배우자를 봉사모임에서 찾았고 이민을 떠나면서 당시 유일한 통로가 막혀버렸다. 그렇게 20년의 세월을 힘겹게 보냈다. 외로움은 끊임없이 몰려왔지만 배출할 통로가 없어져버린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 행복해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모질게 견디어낸 세월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지난해 가을 한국에 오게 되면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20년 전에 같이 활동하였던 옛 봉사회원들을 다시 모집하여 봉사활동을 시작한 일이다. 그다음에 육체적 정신적 치료를 시작하였다. 그만큼 나는 외로움에 대한 통제가 삶의 화두였고 경계였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죽음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였다. 내가 특별하거나 특이한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내 감정이 시키는 대로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행해졌던 행동들이었다. 지금은 매주는 하지 못하고 매월 한 번씩 일산의 벧엘의 집이라는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나에게는 새로운 삶의 활력이고 중년의 중2병을 다스리는 지침이자 활력소가 되고 있다. 단지 내려놓음만을 배우고 오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몰랐던 존재의 문제도 거기에서 답을 찾아가고 있다. 단지 어머니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에 작고 사소하지만 소금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아직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주위도 돌아보고 뒤도 돌아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단지 나이만 먹어가는 중년은 내가 생각하는 존재의 이유와 부합하지 못하는 듯해서 불편하다.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아까운 시간들을 그냥 허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고 싶다. 그러려면 지금부터라도 나이와 상관없이 할 수 있는 취미생활뿐만 아니라 특정 콘텐츠 개발을 해야 할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콘텐츠 개발은 적극적으로 SNS를 하는 세대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아쉽다. 세상의 모든 것은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대나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나 할 수 있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만의 콘텐츠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렇게 불평등한 세상에서도 평등한 것이 있다. 바로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이다. 그리고 누구나 죽어야 하는 죽음이다. 이 두 가지가 우리 인생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젊었을 때는 경제적 활동이라는 명목으로 열심히 사용하지만 은퇴 후의 중년이나 노년은 남아도는 시간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는 사고의 틀이 노동이라는 한정된 곳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육체적으로 쇄약 해지기 때문에 노동을 통한 경제활동이나 취미 활동은 한계에 직면한다. 몸도 여기저기 삐걱대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병원에 가보면 환자의 대다수가 노인들일 정도이다.
젊었을 때부터 콘텐츠 개발을 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해졌다. 바로 의학의 발전으로 수명이 계속 연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암 정복도 머지않아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신만의 콘텐츠 개발에 소홀한 채 노동력에만 의지하는 삶을 사는 경우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할 일은 없어지면서 시간은 남아도는 무서운 세상이 도래할 수도 있다. 아니 벌써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 노인빈곤이 바로 그것이다
나의 취미는 축구다. 나는 완전히 축구에 미쳤다. 20년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토요일 아침이면 축구장에 나간다. 준비물도 필요 없다. 달랑 축구화 한 켤레면 끝이다. 아침도 먹거나 준비하지 않는다. 맥주와 축구는 빈속이 최고다.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고도 주춤거리기는 하지만 축구장에 빠지지 않고 나간다. 뛰지 못하더라도 운동장에는 나가야 직성이 풀린다. 그렇다면 나만 이럴까? 나는 환자 축에도 끼지 못한다. 자나 깨나 축구만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어디 축구뿐이랴! 골프, 야구, 배드민턴, 등산, 수영 심지어 걷기까지 다양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특정 스포츠나 취미에 빠져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즐거워서일까? 젊은 사람들이 게임이나 BTS 같은 스타들에 빠져드는 현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어딘가에 미친다는 것은 결국 마음이 허하고 의지할 데가 없다는 뜻이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범인은 바로 외로움이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무엇이든 좋다. 한 가지에 빠져들고 거기에 미쳐간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외로움에 대한 가장 훌륭한 처방전이기도 하다. 이제는 무언가에 한 번쯤 미쳐보자. 그래서 나른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삶에도 콩닥거리는 양분을 제공해 주자. 사랑이 될 수도 있지만 사랑은 아픔을 동반하니까 권하지는 않는다.
세상에 외롭지 않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디 사람만 외로울까? 동물들 심지어 식물들도 외로움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어느 시인은 바람이나 돌도 외로움을 느낀다고 하였다. 외로움을 학문적인 접근을 통해 분석하는 글이나 논문은 이미 많이 나와 있다. 서두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나는 지극히 주관적으로 내가 느낀 외로움의 정체를 파헤치고 싶었다. 외로움도 과연 원죄(sin)처럼 근원적인 것이고 우리가 극복할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하였다. 참으로 멀고도 먼 길을 돌고 돌아와서 이제야 나의 외로움의 정체를 밝힐 수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가 만약 글쓰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 정체를 밝히기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외로움과의 싸움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점차 전통적인 가족은 해체되고 1인 가족은 늘어나고 있다. 애완동물 열풍이 부는 것은 그 좋은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영국처럼 외로움 부서를 만들고 장관까지 임명하는 나라도 있다. 이처럼 외로움을 허투루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외로움이 얼마만큼 건강에 나쁜지에 대한 논문들도 계속 발표되고 있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4차 산업혁명과의 한판 승부보다는 외로움과의 싸움이 더욱 심각해질 수도 있다. 인공지능이 갖지 못하는 감정을 선점하고 통제하는 세상이 바로 5차 산업혁명의 전조가 될 수도 있다.
나의 경우, 결국 외로움이란 나의 열망을 억제하는 그 무엇에 한한 것이었다. 그 통로를 조금 열어주었을 뿐인데 나는 홀가분하면서 형언할 수 없는 개운함을 느낀다. 느끼한 음식을 먹고 난 뒤 차가운 콜라나 맥주 한잔을 들이켜 그 느끼함을 씻어낸 기분이다. 그 차가운 콜라와 시원한 맥주 한잔의 역할을 해준 것이 바로 글쓰기였다. 초등학교 때 써본 일기가 다였을 정도로 글쓰기와는 담을 쌓고 살아왔다. 더구나 책을 쓰는 일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고 결코 나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한 글쓰기가 내 몸에서 썩어 냄새가 나는 나의 응어리들을 치유해 줄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단지 글을 쓰고 책을 집필해 나가고 있을 뿐이었는데 놀라운 치유가 시작된 것이다.
그동안 억눌리고 갈 곳을 잃은 나의 자아가 비로소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자아실현이라는 경험을 하는 중이다. 속단하기 이르지만 그동안의 나의 우울과 외로움은 마땅히 분출될 틈이 없어서 생긴 결과였다. 이것 또한 나의 발견이다. 내가 나 자신을 계발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얼핏 보면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확연하게 다른 의미다. 이미 내 몸속에 내재되어 있던 응어리들이 몸 밖으로 뛰쳐나왔을 뿐이다. 글이라는 도구를 통해 그렇게 밖으로 나온 또 다른 나의 분신들과 세포들은 그렇게 숨을 쉬고 새 생명을 얻어가고 있다. 나의 세포분열은 참으로 놀랍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다. 세포분열이 가속화될수록 나는 발전할 것이고 계속해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