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청년기의 우울과 외로움에 관한 연재
5월의 하반기에 접어들며 계절은 이미 여름을 향해 치닫기 시작하였다. 아카시아는 하얀 꽃을 떨어뜨리고 잎만 무성하다. 바닥에서 말라버린 꽃에는 아직 그 특유의 강한 향의 여운이 미처 허공에 흩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그 빈자리를 기세 좋은 넝쿨장미들이 여기저기서 아우성을 지르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화려하고 분주하다. 끊임없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려는 자연의 순환과 변신 앞에서 요지부동인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가슴속을 넘나드는 휑한 바람이다. 총탄을 맞고 구멍이라도 난 듯 허한 가슴을 채워줄 무언가를 찾아 오늘도 현관문을 나선다. 그것은 소중하고 단란한 가정에서조차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5월 중순의 한가롭고 화창한 토요일이다. 점심 무렵의 태양은 강렬하다. 수은주는 30도를 넘어서고 있다. 나는 매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축구장으로 향한다. 우리가 모여서 축구를 하는 운동장은 반포나 하남은 물론 원당과 남양주까지 다양하다. 축구경기는 보통 아침 일찍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조기 축기라고 부른다. 그런데 오늘은 12시부터 5시까지 일정이 잡혀 있다. 한국에 와서도 빠지지 않고 참가하는 모임이 바로 축구 모임이다. 대학 동문들의 모임인데 유대감이 아주 강하다. 대부분은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선배들이다. 이들의 축구 사랑은 대단하다. 1주일 내내 단톡 방 모임에서는 축구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각자 즐기던 골프나 자전거 등 다른 동호회 모임은 내팽개친 채 오로지 축구에만 전념하고 있다.
축구에만 전념한다고 표현하기에는 어감이 약한 느낌이다. 다소 과격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미쳤다고 표현해야 정확할 것 같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흔히들 가슴 뛰는 일을 하라고 한다. 그런데 이 말에는 약간의 모순이 있다. 가슴 뛰는 일은 남이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그것도 아주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에 미친다는 의미는 긍정적이고 즐거운 일이다. 반면 문제들도 없지 않다. 특히 게임이나 도박 등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개인이 자재할 수 있는 힘만으로 중독을 피해 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금연보다 몇 배는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영국에서부터 축구에 미친 동호회 사람들과 상당히 오랫동안 교류를 이어왔다. 이들이 축구를 좋아하고 급기야 미치기까지 한 이유와 방법은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공통된 함수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경기 후 모두 이것을 축구장에 내려놓고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바로 외로움이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어도,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있어도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친구를 만나서 술자리를 가져도 마찬가지였다. 축구장에 나와 몇 시간 동안 뛰며 땀을 흘리는 행위는 숭고한 의식 그 자체다. 세상의 모든 잡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뛰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육체적으로 너무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에는 한계에 달할 때까지 열심히 뛰는 편이다. 극한의 경지를 느꼈을 때 모든 에너지가 방전되면서 무아지경이 된다. 1주일에 그렇게 몇 시간이라도 생각의 고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큰 축복이다. 외로움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전혀 없다. 있던 외로움도 관성처럼 나가떨어진다. 축구에는 그런 마력이 숨어 있다.
지난해 가을에 한국에 와서도 나는 제일 먼저 축구를 할 수 있는 모임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 과 동기의 도움으로 대학 동문회 선배들이 운영하는 축구모임을 발견하였고 지체 없이 회원이 되었다. 하지만 허리디스크 환자였던 나에게 축구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운동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운동장으로 향하는 나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느껴졌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이다. 내가 쓸쓸하고 애처로워 보였다.
저 인간은 얼마나 외로웠으면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토요일마다 축구하러 나가야만 하는 것일까? 스스로가 한심하고 못마땅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 자신의 처지가 이해가 갔다. 그러면서 다른 동호회 활동이나 한류스타를 좋아하는 모임, 나아가서는 게임을 즐기는 청소년들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필요한 무언가는 내가 필요한 그것과 결코 다르지 않았다. 이해의 폭이 세대를 넘어서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태어난 이상 삶을 살아내야 하는 인간에게는 동서고금이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동일한 과제였던 것이다. 이제는 그 많은 클럽이나 동호회 활동들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살아있는 한 피해 갈 수 없는 외로움은 그렇게 분산되고 희석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우울증은 병으로 인정되어 많은 정신과 의사가 존재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우울증 못지않은 고통을 안겨주는 외로움은 아직까지는 각자의 몫이다. 이제는 외로움에 관한 많은 연구와 함께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