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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물투데이 Mar 26. 2021

내 도시락은 내가 만든다

좋은 남편 되기

"반찬이라니.."

요즘 회사 다니면서 작지만 계속 머릿속을 헝클어 트리는 것이 있다. 바로 점심 도시락에 어떤 반찬을 넣을 지에 대한 고민이다. 귀찮음을 받아들여 편의점에서 간편 도시락이나 인스턴트 음식을 사서 먹는 것은 괜찮은 생각이다. 하지만 건강을 생각하자니 줄기차게 편의점 음식을 사 먹는 것은 영 아니올시다 이다. 맛있는 음식을 주문해서 먹자니 내 통장이 어느 순간 텅 비어버리는 경험을 할 것 같아 이마저도 두렵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직접 도시락을 싸는 수밖에. 결혼 한지 얼마 안 되었고 아침마다 와이프에게 도시락 싸 달라고 부탁하기가 꺼려졌다. 아내가 아침마다 어학당에 가서 공부하고 집에 와서도 과제하느라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자니 내가 하나라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옷장 사이를 파고들어 주섬주섬 오늘 입을 옷을 갈아입는다. 화장실 가서 냉큼 세수를 하려 한다. 손에 찬물이 닿으니 괴롭다. 바로 보일러를 틀어서 따듯한 물로 세수를. '도리~도리~' 추운 것은 너무 싫어요.

이번 아침 반찬은 미역줄기 볶음! 수미네 반찬이라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되었었다. 식감이 꼬들꼬들하다고 들어서 냉큼 인터넷에서 구매했다. 그게 벌써 1달 전이었다니.. 1달 전에 사놓은 염장된 미역줄기를 싱크대에 올려놓는다. 너무 좋은 점이 썩어서 버릴 걱정이 없다는 것이었다. 양파나 애호박 등등 일반 야채, 채소 재료들은 냉장보관을 해도 금방 쓰지 않으면 상태가 나빠져 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널찍한 볼 안에 찬물을 가득 채우고 염장된 미역줄기를 풀어놓고 소금기를 뺀다. 얼추 20분을 생각하고 물에 계속 담가 둔다.

미역줄기 볶음을 하려고 해서 식용유와 간장, 참기름, 양파 반 개, 양배추 1/4 개를 준비한다. 양파랑 양배추는 채 썰어서 접시에 잘 담아 놓는다. 미역줄기 볶음을 하려면 미역줄기 상태를 잘 봐야 해서 조금씩 잘라서 먹어보며 확인한다. 물기를 어느 정도 살짝 짜고서 뜨거운 물에 빠르게 데쳐 준다. 다시 찬물 샤워를 "촤롸락~~". 프라이 팬에 기름을 두르고 채 썬 양파와 양배추를 센 불에 '훅~훅~' 볶는다. 양파가 약간 투명해지는 느낌이 들어 미역줄기도 넣고 볶아준다. 왼손으로 팬을 잡고 스냅을 주면서 "훅~훅~". 우리 집에서는 내가 최고의 셰프.  마치 유명 중국집 주방장 되는 듯이 폼을 잡고 신나게 볶아준다. 크으.. 이런 게 불을 다룬다라는 느낌인가. 자화자찬에 빠져 허우적대는 게 너무 좋다.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흩뿌려주고 미역줄기에 고소함을 입력시켜준다. '음.. 고소한 냄새~' 커피 향 대신 참기름의 고소함으로 아침을 시작해도 나쁘지 않다. 시계를 확인하니 출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플라스틱 용기를 꺼내서 볶은 미역줄기 볶음을 후다닥 담아낸다. 다른 용기도 꺼내어 갓 지은 밥도 담아낸다. 훗.. 난 좋은 남편인 듯.


지하철을 기다리며 문득 어머니가 싸주셨던 도시락이 생각난다. 노랗게 잘 익은 노른자, 하얗게 먹음직스러운 흰자, 거기에 김치. 칼집이 난 상태로 잘 구워진 똥글똥글 비엔나소시지들. 

간단하지만 어떤 도시락 부럽지 않았던, 어머니의 분주한 손길이 담겼던,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함이 담겼던..


학교 가고 있을 아내에게 문자 하나를 남겨 본다.

"밥이랑 미역줄기 볶음 해놨으니까, 학교 다녀와서 꼭 점심으로 챙겨 먹어~" 


P.S 다음에는 더 맛있는 반찬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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