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묻는다면,
나는 늘 신중하게 대답한다.
내게 사랑은 불꽃처럼 타오르는 감정보다,
시간이 지나 내 삶에 스며든 회색빛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내 사랑의 이름에는
하나님, 아내, 아이들, 부모님, 친구들,
그리고 루시드폴과 정밀아 같은 뮤지션,
빈센트 반 고흐와 김영갑 같은 예술가가 있다.
얼마 전 루시드폴의 정규 11집 새 앨범이 나왔다.
그의 노래는 내 삶의 호흡처럼 늘 곁에 있었다.
제주도에 살던 때,
첫째 아이가 갓 돌이었을 무렵,
아내의 허락을 받아 혼자 콘서트에 간 적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공연장의 열기보다 이어폰으로 혼자 듣는
그의 목소리와 기타가 더 마음에 생생하게 남았다.
돌아보면 연극도, 뮤지컬도 그랬다.
사람들 사이에서 보는 것보다
조용한 공간에서 혼자 듣고 바라볼 때
훨씬 깊이 스며들었다.
이십 대,
그의 노래에 깊이 빠져 질릴 만큼 듣고
더 이상 찾아 듣지 않을 무렵,
그제야 사람들에게 말했다.
“가수 중엔 루시드폴을 가장 좋아해요.”
나에게 사랑이란 늘 그런 것이다.
쉽게 말하지 않지만,
오래 머무는 회색빛 명사.
올해 11월에 루시드폴 콘서트가 열린다.
아내는 다녀오라고 하지만,
아마 나는 가지 않을 것 같다.
마음 한편은 여전히 많이 흔들리지만.
여전히 내 방식대로,
내 공간에서,
나만의 추억과 함께
그의 노래를 들을 것 같다.
마흔을 지나며,
회색 신사들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아직 누군가의 새 앨범에 설렐 수 있다는 건
어쩌면 작은 기적 같다.
나는 아직도 루시드폴의 노래에,
정밀아의 노래에 설렌다.
이 설렘을 잃고 싶지 않다.
이번 앨범 〈또 다른 곳〉 중에서,
루시드폴이 포르투갈어로 부른 ‘Agua’라는 곡은
특히 감미롭고 좋다.
나는 늘 그렇듯 한 곡에 꽂히면
끝없이 반복해서 듣는다.
유튜브 뮤직에서 상위 0.05% 리스너로 집계된
노래와 찬양이 몇 개나 될 정도로.
아마 올가을과 겨울은,
다시 그의 노래와 함께 흘러갈 것이다.
그리고 문득 눈을 감고 상상한다.
루시드폴처럼 제주에서의 삶을.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서귀포의 바다와,
아내와 아이들과 알콩달콩 살던 시간,
꿈 앞에 울고 웃으며
간절히 기도하던 그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