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갑 작가 사진 앞에서
제주에 가면
나는 늘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에 간다.
지금까지 서른 번은 넘게 찾았을 것이다.
갈 때마다 뚜렷한 이유는 없지만,
그의 삶과 사진이 주는
잔잔한 위로에 마음이 머문다.
김영갑 작가는
제주의 바람에 이끌려 그곳에 정착했다.
가난한 사진작가였던 그는
밥을 굶을 때도 많았지만,
제주의 오름과 들판을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했다.
그 사랑은
온전히 사진 속에 쏟아졌다.
김영갑 작가에게 바람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었다.
그는 바람을 통해 보이지 않는
존재의 흔들림을 찍고자 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든 것을 흔들고, 지나가며,
그 흔들림 속에서
살아 있음의 결을 남긴다.
그는 그 결을 기다렸다.
한 장의 사진을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비를 맞고, 눈을 맞으며,
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가 찍고 싶었던 건
멈춰 있는 순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의 흔들림이었다.
그 흔들림 속엔
제주의 생명과, 자신의 고독이 함께 있었다.
세상에 이름이 알려질 무렵,
그는 루게릭병을 진단받았다
움직일 수 없던 마지막까지
침대에 누워 창문 너머로
제주의 하늘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는 더 이상 셔터를 누를 수 없었지만,
바람과 하늘은 여전히 그의 곁에 있었다.
그에게 하늘은 마지막까지
세상과 이어진 창이었고,
기도의 호흡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만든 갤러리,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해 세운
‘두모악 갤러리’.
그곳엔 지금도
그의 사진과 바람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나는 그곳에 가면
그가 바라보던 하늘을 떠올린다.
흔들리는 갈대와 흔들리는 구름,
그 안에 스며 있는 조용한 생명의 호흡을.
그의 사진 속 바람은
결코 멈춰 있지 않다.
조용히 흐르며,
보이지 않는 시간의 결을 따라 움직인다.
그 바람 앞에 서면
내 안의 고요가 흔들린다.
그 흔들림 속에서
나는 오히려 평화를 느낀다.
아마도 김영갑이 바람을 찍으며 보았던 건
세상의 풍경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의 떨림이었을 것이다.
그의 사진을 통해
사람들은 알지 못한 채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존재의 떨림을 느낀다.
태초의 낙원처럼 고요한 풍경,
오름의 곡선,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생명.
그가 사랑했던 제주의 바람,
그리고 그 바람에 흔들리던 갈대는
결국 그의 삶과 닮아 있다.
그의 삶처럼, 바람과 하늘은
여전히 제주를 지난다.
그리고 내 마음을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