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날 떠오르는 그날의 나

오늘 느껴지지 않아도 괜찮아요

by 오승현





오늘이 수능날이라 그런지,

어릴 때의 내가 문득 떠올랐다.


재수를 하고 다시 본 수능을 망쳤던 날.

집 앞 아파트 놀이터에서

그네에 앉아 바람만 맞으며 멍하니 있었다.

분명 슬퍼야 할 순간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 누나들이 다가와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그제야 울음을 흉내 냈다.

가슴에서 올라오는 울음이 아니라,

그 상황이라면 울어야 할 것 같아서

억지로 만들어낸 ‘가짜 울음’이었다.


돌아보면,

그날 울지 못했던 것은

내가 슬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슬픔을 감당할 힘조차 없어서였다는 걸

나는 훗날에야 알게 되었다.


이후 하루하루를 버티며

조용히 밀려오던 삶의 무게가

진짜 슬픔의 자리를 오래 채우고 있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슬픔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기쁨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감정은 늘 같은 모양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어떤 날은 파도처럼 밀려오고,

어떤 날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다.

슬픔과 기쁨의 밀물과 썰물은

각자의 리듬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오늘 수능을 보러 간 아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겠지만

그 모든 감정이 당장의 반응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오늘 수능을 본 누군가에게도

지금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감정은 늘 자기만의 시간에,

자기만의 파도로 밀려오니까.


이제까지 수고한 나에게

정말 잘했다고 말해줄 수 있는

그런 아이들이 되면 좋겠다.


그렇게 우리 아이들을

잠잠히 바라보고,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는 어른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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