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방, 나의 배, 나의 우주

침대 위에서 시작된 조용한 항해

by 오승현





다리가 아프고, 입원 생활이 길어지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침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입원 생활뿐 아니라 요즘 집에서도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 위에서 보낸다.


그래서인지 침대가 가끔

바다 위에 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침대에 누워 창밖을 보면

탁 트인 하늘이 그대로 보인다.

감사하게도 우리 동네는 높은 빌딩이 없어

막힘 없이 이어지는 푸른 하늘을 매일 보게 된다.

그 하늘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내가 그것을 ‘바다’라고 상상해 왔던 것 같다.

푸른 면이 길게 이어진 풍경 속에서

나는 작은 배 위에 누워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리고 집 바닥,

방바닥이 위험한 바다처럼 보인다.

목발 없이는 건너가기 어렵고,

무엇보다 침대에서 떨어지면

크게 다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나는 한 척의 작은 배에 머물게 된다.


새벽이면 창밖 4차선 도로를

지나가는 차들의 소리가

묘하게 파도처럼 들린다.

멀리서 밀려와 스르르 빠져나가는 그 리듬.

그 소리를 들을 때면 이 침대는 정말로

밤바다 위를 떠다니는 작은 배가 된다.


가만히 보니 목발은

내가 누운 이 배를 젓는 노를 닮은 것 같다.

그리고 아내가 침대에 가져다주는 간식은,

먼 대양을 항해할 때 필요한 식량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기 있는 나는 외롭지 않다.

아이들이 오고, 아내가 오고,

누군가 잠깐 들렀다 가는 작은 섬처럼

혼자 있지만 고립이 불편하지 않은 자리.

나는 잔잔한 배 위에 누워 평온함을 느낀다.


생각해 보면

이 침대가 배처럼 느껴지는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침대 선반에는 좋아하는 책들이 쌓여 있고,

피아노 액자와 김영갑 작가의 사진이 걸려 있다.

충전기, 영양제, 혈압약이 가까이 있고,

향수, 지갑, 카메라도 늘 손 닿는 곳에 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거의 모두 이 침대 주변에 모여 있었다.

아마 그래서 처음부터 이 공간이

이상하게 안전하다고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서 여기는

단순한 침대가 아니라

나에게 완비된 안식처다.


그리고 아무도

지금의 나를 게으르다고 말하지 않는다.

입원했을 때도 그랬고,

집으로 돌아온 지금도 그렇다.

누워 있는 시간은 회복이고

내가 지나가야 할 과정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나도 안다.


그래서 이 침대는

입원실이었고,

집이었고,

배였고,

가끔은 작은 우주처럼 느껴진다.


병원에서 퇴원하던 날

나는 내 차트를 떼어왔다.

이 시간을 잊지 않으려고,

삶이 조용히 건네준 교훈을

놓치지 않으려고.

지금 그 차트는

내 침대에 조용히 붙어 있다.


가끔 그 차트를 들여다보면

마치 항해 중인 조타수에게 목적지를 알려주는

작은 지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어디에서 건너왔는지,

지금 어디쯤에 서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조용히 가리키는 표식처럼.


언젠가 다리가 완전히 회복돼

이 방바닥을 자유롭게 걸어 다닐 때,

그 차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조용히 중얼거릴 것 같다.


“아, 내가 이 시간을 지나왔구나.”


오늘도 나는

이 작은 배 위에서 대양을 항해한다.

움직이지 못하는 시간들이

이상하게도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문득 그런 마음이 들었다.

이 글들이 나를 언젠가

정말 먼 미지의 대륙으로 데려가면 좋겠다고.


오늘도 나는 한 척의 배 위에 누워,

어두운 밤하늘 별을 바라보며,

조용히 노를 저으며 생각한다.


이전 22화설교와 에세이 사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