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서는 순례자
(*표지는 첫째 딸 은비가 여덟 살 때 그린 그림입니다.)
어린 시절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저의 발걸음은 책방을 향했습니다.
책방 조명 아래의 따뜻한 온기,
종이 냄새가 주는 평온함,
책 속 문장이 건네는 위로 속에서
저는 그곳에서 안식을 누리곤 했습니다.
아내와 결혼한 이후에도
저는 여전히 책방을 자주 찾습니다.
저희 가정은 매월 첫째 주를
책방에 가는 날로 정해 두었습니다.
첫째 아이가 네 살이 되던 해부터
열두 살이 된 지금까지,
세 아이들과 설렘 속에
책방 나들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늘,
책방에 가는 날을 기다립니다.
어린 시절 제가 경험했던
책방의 온기를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엄마 아빠와 두 손을 잡고 걸었던
책방의 기억이
아이 마음에도 남아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삶의 어려움이 찾아올 때,
책 속에서 위로와 지혜를 찾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저는 아이들과 책방을 갑니다.
새로운 브런치북 <순례자의 책장〉은
아빠가 자녀들에게 전하고 싶은 책들과
그 책들 사이에 놓인
일상의 이야기를 담아낸 기록입니다.
이 연재에 등장하는 책들은
새로 발견한 책들이 아닙니다.
어디선가 유행처럼 찾아온 책들도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 방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
시간이 흘러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곁에 두고 있는 책들입니다.
이 연재의 이름을
〈순례자의 책장〉이라 부른 이유는,
지금까지 책장에 꽂힌 책들 속에서
위로를 받아왔던 한 사람이,
이제는 방에 수북이 쌓인 책장을 정리하며,
길 위에서 위로를 전하는 사람으로
순례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순례자의 책장〉에서 다루는
서른 권의 책은 지극히 주관적으로,
저의 삶에 위로와 용기,
지혜와 삶의 방향을 건네주었던
책들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 책장을 비우며
순례를 시작하려 합니다.
책장을 비운다는 것은
책을 떠난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 그 이야기들을
길 위로 가져간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 책장 앞에서
순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순례를,
저와 함께
시작해 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