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를 잃지 않기를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by 오승현






“이 글은, 글을 잘 쓰는 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기 목소리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은비야. 아빠가 새로운 브런치북의 첫 책으로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골랐어. 이 쉽지 않은 여정의 첫 책을 무엇으로 시작할지 참 오랫동안 고민했는데, 결국 지금 아빠 가방에 넣고 다니는 책으로 돌아오게 되더라. 요즘 아빠는 이 책을 며칠 동안 천천히 다시 읽고 있었거든.


이 책은 작가 지망생들을 위한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떤 시선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존재론적 글쓰기에 관한 책이야.




아빠가 마흔이 넘는 시간을 살아오며 문득 후회되는 것이 하나 있어. 바로, 일기를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릴 때 방학이면 따뜻한 방에 엎드려 일기를 몰아 쓰던 기억은 있지만, 일기의 진짜 가치를 천천히 알려준 어른들은 만나지 못했던 것 같아.


지금에서야 알게 된 건, 일기는 하루를 기록하는 숙제가 아니라 내 삶에 허락된 선물들을 세세하게 바라보는 시선이고,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여러 감정들에 색과 온기를 입혀주는 시간이었던 거야.


그렇다고 지금부터 일기를 꼭 써야 한다는 말은 아니야. 다만, 글쓰기가 우리 삶과 내면을 더 깊고 넓게 만드는 선물이라는 사실만은 네가 기억해 주면 좋겠어.




나탈리 골드버그는 공교육이 저지른 가장 끔찍한 잘못을 이렇게 말해.


“공교육이 저지르는 가장 끔찍한 잘못은 타고난 시인이자 소설가인 어린 학생들에게서 그들의 문학을 빼앗는 것이다.”


시는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독자에게 생명을 건네는 언어인데, 우리는 너무 일찍 문학을 쪼개고 설명하려 했던 것 같아.


또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야. 사실 아빠도 내 마음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그런 우리가 타인을 깊이 이해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니.


문학은 나와 다른 성격, 다른 배경, 다른 고민을 가진 타인의 세계 속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게 해주는 아주 귀한 선물이야. 그래서 아빠는 네가 나보다 더 많이 문학을 만나며 자랐으면 좋겠어.





나탈리 골드버그는 이렇게 말하지.


“작가가 쓰는 글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재료로 해서 이루어진다. 덧없이 지나가 버리는 세상의 모든 순간과 사물들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켜 주는 것, 그것이 작가의 임무다.”


그녀는 우리 삶이 글쓰기의 재료가 되기 위해서는 90퍼센트는 듣는 일에 달려 있다고 말해. 오늘도 아빠는 강단 위에서 많은 말을 하고, 이 공간에서도 또 글을 쓰고 있지. 그러다 보니 이런 나의 모습이 어느 순간 죄책감처럼 다가오기도 해. 글쓰기가 타자를 향한 기록이 아니라 자기만족, 자기 에고를 위한 언어로 전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야.


그래서 요즘 아빠의 고민 중 다짐한 게 있어. 글을 쓰면서도 사람을 계속 만나야 한다는 것. 그들의 온기를 느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글은 금세 생명을 잃어버린다는 사실 말이야. 이 균형을 잃는 순간, 아빠는 세상을 이해하는 순례자가 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골드버그는 이 책에서 사물의 이름을,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고 말하지.


갑자기 아빠가 좋아하는 어느 시인의 시가 떠올랐어.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삶을 살아가며 이 균형 감각은 정말 중요한 것 같아. 신앙도, 글쓰기도, 취미도 나를 고립하게 만드는 것이 되면 안 된단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 온기를 함께 느낄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생기로 가득 차오르는 것 같아.




여기에 마지막으로 아빠가 꼭 남기고 싶은 말이 있어.


너의 목소리에 확신을 갖고 살아가라는 것!


유명한 작가만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야. 신이 허락하신 이 고귀한 삶을 너의 언어로, 너의 삶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


아빠도 많이 부족하지만, 그런 순례자가 되기 위해 오늘도 애써 걷고 있단다. 다만, 너의 에고에, 그리고 나의 에고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이 순례길 위에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깨어 있어야 해.


그렇게 우리 모두,

인생의 순례자로 허락하신 삶을 사랑하며,

천천히, 깊이, 삶을 향유하자.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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