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로부터 온 빛 하나

현재를 살게 하는 피아노

by 오승현









몸이 회복되자

삶은 예전 모습처럼,

굴러가기 시작했다.


다리에 근력이 붙고,

쩔뚝이며 걷지만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약속은 점점 늘었고

해야 할 일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겉으로 보면

아무 문제없는 일상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자주

무언가 잃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어딘가 중요한 감각 하나가

조용히 멀어지고 있었다.


아팠을 때의 나는

많이 느렸고

자주 멈췄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고독이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다.


외로움이 아니라,

고립이 아니라,

나에게 가장 정직해질 수 있었던 상태.


몸이 회복되면서

그 고독의 감각은 점점 희미해졌고

삶은 다시 바빠졌다.


나는 다시

삶이 주는 역할 속으로

돌아갔다.






쉬는 날인 월요일 오전,

방에서 혼자 피아노를 친다.


아내는 방에서 일을 하고,

아이들은 어린이집과 학교에 가고,

나와 피아노만 남아 있다.


건반을 누른다는 것은

현재를 친다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늘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먼저 살며

염려와 불안을 끌어안고 산다.

미래의 걱정 속에서

현재는 쉽게 사라진다.


하지만 피아노는

미래를 살지 않는다.

오직 한 음 한 음

현재를 살뿐이다.


그래서

한 음 한 음을 누르는 동안만큼은

미래가 멈추고

현재가 살아난다.






건반 위에 닿는 빛을

가만히 바라본다.


요즘 예배당 창문사이로 흘러내린

빛이 장의자를 비출 때

그 모습을 보며 따스함을 느낀다.


피아노를 치는 방 안에서,

창가를 통과한 빛이 건반 위

손끝에 닿는다.


아득한 우주에서,

먼 태양으로부터

수많은 시간을 건너

지구의 아침까지 도착한 빛.


그 빛이

우연처럼

지금 이 시간,

이 피아노 위에

그리고 나의 손끝에 닿아 있다.


나는 우주 속

은하의 한 점,

지구별의 한 사람.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지금, 여기

충분히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분명히 도착한 것들 앞에서

나는 잠시 말을 잃는다.


그래서 피아노 앞의 아침은

음악 이전에

광대한 우주 속에 나를 만나는

경이의 시간에 가깝다.






피아노는

나를 위로하기 위한 악기가 아니다.

도피의 장소도 아니다.


피아노는

내가 사는 자리에 오게 하고

나의 실존의 자리로 초대한다.


생각으로만 살던 곳에서

몸이 머무는 곳으로,

역할로 서 있던 자리에서

존재로 앉는 자리로.


표피만 남은 삶이

다시 나의 자리로 내려오게 하는 일,

떠 있던 나를

지금, 여기로 착지시키는 일.


그래서 피아노는

도망이 아니라

착지에 가깝다.






어느 날 사라질

시끌벅적했던

신기루 같은 행복에서


피아노는 나를 데리고

훗날의 시간으로 건너간다.


젊음이 지나고

명함에 직책이 사라지고

아무도 손뼉 치지 않는 날들 끝에서,


노인의 언덕에 남아 있을

그 고독으로

나를 미리 초대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피아노 앞에 앉는다.


사라질 것들에

너무 마음을 맡기지 않기 위해,


한 음 한 음은

나를

평안한 고독에 앉게 한다.






외롭지 않은 고독,

견뎌야 할 감정이 아니라

머물러도 괜찮은 상태.


어쩌면

피아노는 음악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고독을 연습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피아노를

친다.


그 고독 속에서

피아노는

내가 더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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