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모든 것들 사이에서 변하지 않는 것
가을이 되니,
마음이 호젓하니 잔잔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고독이 나쁘지 않다,
마음에 평안을 주는 그런 느낌이 좋다.
모든 사람을 품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고독.
# 떠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 1
요즘 마음을 고요하게 위로해 주는 곡이 있다.
한 바리톤과 한 소프라노가 불렀던,
사랑이 멀어질 때
먼저 닿겠다고 고백하는
가곡 '마중'.
"사랑이 너무 멀어
올 수 없다면
내가 갈게
..................
사는 게 무언지
하무뭇하니
그리워지는 날에는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
[ '마중(On the way to you>' 가사 중에서.. ]
살다 보면
사랑도, 관계도, 어떤 감정도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 버린다.
그럼에도
우리는 끝내 기다리고
또 다가간다.
그 마음의 떨림이
대목마다 조용히 가슴을 울린다.
# 떠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 2
가을이 깊어져서 그런 걸까.
백석 시인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흰 바람벽이 있어〉가 자꾸 생각난다.
1941년,
디아스포라 시간 속에서 쓰인 시.
좁고 누추한 방,
희미한 흰 바람벽을 스크린 삼아
떠나간 이들의 얼굴이
하나씩 돌아오는 장면들.
어머니,
사랑했던 사람,
어릴 적 함께였던 존재들…
그리고 그 위에
자기 얼굴 위로
자막이 스쳐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러고 언제나 넘치는 /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 -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중
백석의 고독은
절망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의 글 사이로
은근한 기쁨이 스며오기에.
가을의 고독은
나쁘지 않다.
# 떠나는 것들 속에서 나를 지키는 축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행복한 순간들이
환영처럼 희미해져 간다.
모든 것이
시간의 물결에 쓸려간다.
하지만,
피아노는
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준다.
아이들의 웃음도,
아내의 따스한 사랑과 위로도
언젠가 스쳐 사라진다.
흔들리던 마음 위에
피아노는 조용히 서서
나를 다시 세운다.
어쩌면
그게 내가
피아노를 치는
이유였다.
모든 것이 잠든
고요한 새벽,
피아노 앞에 앉으면.
나는,
살아 있음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피아노는
늘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내 존재의 흔들리지 않는 축.
하나님,
그리고
피아노의 선율.
그 은총 덕분에
나는 무너지지 않는다.
쓰러지는 시간들,
스쳐가는 사람들,
늙어가는 하루들을
나는 오히려
더 사랑하게 된다.
쓰러져가는 시간 속에서,
변하지 않는 피아노를 축 삼아,
순간의 사랑을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