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 위의 시간

버릴 수 없는 추억 한 대

by 오승현


우리 집엔 50년 된

어쿠스틱 피아노가 있다.


누군가에겐

낡고 무거운 악기일 뿐이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삶의 일부이다.


추억을 품고 이사 다녔고,

건반 위엔 가족의 시간이 고스란히 놓여 있다.


그래서, 이 피아노의 가치는

세상 어떤 기준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아파트가 빼곡한 이 나라에서

어쿠스틱 피아노는

어느새 애물단지가 되었다.


중고 거래 앱에선 무료 나눔 하거나,

믿기 어려운 헐값에 거래되는 걸

자주 보게 된다.


하지만 나에겐,

이 피아노는 다르다.



어릴 적,

누님들과 나는 이 피아노 앞에 모여

꾀꼬리처럼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사진 속엔

어머니가 손수 만든 하얀 레이스 피아노 커버,

피아노 위에 올려진 인형들,

악보를 사러 갔던

레코드 가게의 공기까지 담겨 있다.


이 피아노는 단순한 악기가 아니었다.

가족의 온기로 가득한 따뜻한 공간이었고.


서울로 상경한

가난한 부모님의 사랑이 담긴,

삶의 첫 선율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피아노의 가치를

10만 원, 20만 원으로

계산할 수 없다.


내 마음속에서

이 피아노는 1억,

아니 그 이상이다.

그래서 차마 버릴 수 없었다.


인천에서 제주로,

제주에서 목포로,

목포에서 의정부로 이사할 때마다

나는 언제나 이 피아노와 함께했다.



때론 배에 실려 바다를 건넜고,

때론 트럭에 실려 제주의 초원을 지났고,

굽이굽이 언덕과 골목을 넘어왔다.


결혼 이후

이 피아노는 늘 내 곁에 있다.



오늘도 나는 피아노 앞에 앉아

조심스레 건반을 누른다.


여전히 피아노는

맑고 청아한 소리를 낸다.


피아노 건반 위에서

추억이 춤을 춘다.


젓가락 행진곡을 치던 누님들과 나의 손,

이제 그 시절 부모님 나이가 된 나의 손,

이젠 내 아이들의 작은 손이

건반 위에 함께 포개어 닿는다.


값비싼 스포츠카도, 명품 가방도, 반짝이는 보석도,

이 피아노만큼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아니,

이 피아노는 그 무엇보다 더 소중하다.


오늘도 나는 건반을 누른다.

잊고 있던 추억들이

조용히 깨어나

다시,

함께 춤추고

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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