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스레 건네는 한 권의 기억
올해,
나는 30편의 시를 모아 첫 독립시집을 냈다.
언젠가 시집을 내고 싶단 생각은 했지만,
그건 막연한 꿈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어느 날, 무슨 용기였는지
서랍 속에 감춰두었던 시들을 꺼내
《가끔 어떤 날》이라는 이름으로 엮었다.
모아보니,
그 시들은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쓰인 것들이었다.
하나같이 고요했고, 어두웠다.
그래서 부제를 ‘고요한 삶의 그늘들’이라 붙였다.
어떤 이는 이 시집을 읽고 위로를 받았다고 했고,
또 어떤 이는 너무 어둡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알았다.
같은 시도 사람마다 다르게 읽힌다는 걸.
날씨나 마음의 결에 따라 시가 달리 느껴진다는 걸.
그게 시의 신비이자 매력이라는 걸 새삼 배웠다.
한 권의 시집을 내며,
나는 ‘삶의 역설’을 경험했다.
무가치하다고 여겼던 순간들,
쓸모없다고 밀쳐둔 기억들,
잊고 싶어 외면했던 그 시간들이
결국 나에게 시집을 선물해 주었다.
눈앞에 놓인 시집 한 권은,
그렇게 신비로운 삶의 양면성을 말해주고 있었다.
보통 독립시집의 수명은 2주라고들 한다.
내 시집은 가족과 지인들의 응원 덕에
한 달 만에 110권이나 팔렸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정말 눈에 띄게 조용해졌다.
그래도 시집을 볼 때마다
나는 내 자식 같은 애착을 느낀다.
사람들이 찾지 않아도,
이 시들은 내 삶이 낳은 조용한 언어들이니까.
투박하고 미숙하더라도,
그건 내가 살아낸 시간의 숨결이다.
요즘은 기도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심폐소생술처럼 숨결을 불어넣어 주셔서,
이 시들이 누군가의 마음에 날아가 닿기를.
그래서 어느 날, 누군가에게 조용한 위로가 되기를.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지금의 나처럼 시집을 냈던,
내 기억 속 첫 번째 시인.
외삼촌.
자주색 표지, 집과 자전거,
그리고 가족이 그려진 그림.
무뚝뚝한 외삼촌이 시집을 박스에 담아
조심스럽게 가족들에게 건네던
손길이 떠오른다.
나는 그때 초등학생이었고,
시집을 몇 장 넘기다 이내 덮어버렸다.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시집은 단지 글의 묶음이 아니었다.
외삼촌의 하루들이고, 묵묵히 눌러 담은 삶의 결이었다
그 삶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여수의 화학공장에서 일하던 외삼촌은
어느 날 갑작스러운 폭발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저녁 뉴스를 보며 무거워지던 가족들의 눈빛,
그리고 곧 전해진 소식.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고,
삼촌은 그렇게 떠났다.
그 시집도, 세월 속에 조용히 사라졌다.
요즘 들어 삼촌의 시집이 자꾸 떠오른다.
내가 셀레임과 두려움으로
누군가에게 조심스레 시집을 건넬 때마다,
그때의 삼촌이 겹쳐진다.
그 시절,
삼촌은 어떤 마음으로 시를 썼을까.
어떤 밤에,
어떤 숨결로 시를 적었을까.
가장의 무게를 안고
작업실 앞에 서 있었던 그에게,
시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지금 세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어느덧 외삼촌이 살았던 삶의 자리에 살아가고 있다.
비로소 이제야, 외삼촌의 시가 읽힐 나이가 되었다.
이제야 나란히 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건 더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오늘따라, 문득
외삼촌이 그립다.
그리고
외삼촌의 시집이
이제 와서야
너무 읽고 싶다.
아마도 가족에 대한 시였을까.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던 저녁의 풍경이었을까.
아니면, 작업실에서 기도하듯 써 내려간
하루의 기록이었을까.
그 책 한 권의 시집 속에는
무슨 이야기가 담겨 있었을까.
어떤 세계가 펼쳐졌을까.
그 생각이, 자꾸 마음을 붙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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