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이었을까, 동경이었을까, 위로였을까. 아니면 마지막 버팀목이었을까..
택배 상자가 또 하나, 현관 문 앞에 도착했다.
아내도, 아이들도 이제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이 방의 주인은 이미 책이고,
나는 그 책들 사이에 조용히 끼어 앉아 글을 쓴다.
오늘도 나는 그 틈에 비좁게 앉아 생각한다.
"나는 왜 이토록 많은 책을 샀을까."
한 권의 책이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면,
그 문 너머엔 늘 또 다른 책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끝없는 탐험 같았다.
가끔 마음이 울적한 날엔,
책방에 들러 아무 책이나 한 권 사오기도 했다.
책은 나에게 위로였을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읽지 못한 책들이 점점 쌓여갔다.
결심하고 몇 권을 정리해도,
언젠가 다시 그 책이 필요해질 때가 있다.
그러면 또다시 같은 책을 산다.
그럴 때면 스스로를 이렇게 위안한다.
“그 책은 언젠가 읽을 책이었어.”
“그땐 내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던 거야.”
요즘은 더 심각해졌다.
이미 산 줄도 모르고 같은 책을 또 주문한 적도 있다.
이제 책에 번호라도 붙여야 하나 싶다.
하지만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니,
흩어진 책들을 찾고,
또 찾는 복잡한 경험조차 감수한다
어느덧 한 권의 책을 찾는 일마저 고된 일이 되었다.
그럴 땐 늘 착한 아내에게 SOS를 보낸다.
그러면 우린 온 집안을 뒤진다.
마치 보물을 찾듯.
신발장 앞엔 몇 달째 뜯지 않은 박스가 놓여 있다.
도스토옙스키 전집, 톨스토이 전집이 들어 있다.
언젠가 꼭 넘어야 할, 내겐 희망봉 같은 책들이다.
아내도 아이들도 이제 그 박스를 의식하지 않는다.
나만이 집을 오갈 때마다, 그 앞에서 멈춘다.
책장을 채운 책들은
어느새 숫자를 헤아릴 수 없게 되었다.
한때는 장식처럼 자랑스러웠지만,
지금은 그저 나의 미련처럼 느껴진다.
나는 책을 사랑한 걸까,
책을 쌓는 나를 사랑했던 건 아닐까
조심스레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언젠가 TV에서,
바다가 보이는 여수에 대저택을 짓고
그 안에 수만 권의 책을 채운 작가를 본 적 있다.
그때 나는 아내에게
“저건 사랑이 아니라 욕망이야”라고 말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요즘은 택배가 오면
조심스레 박스를 풀어
방 한켠에 숨긴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장난스럽게 말한다.
"아빠 또 책 샀어"
사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
괜히 내가 부끄럽다.
나는 왜 이렇게 책을 사들였을까.
책이 아니라,
책을 통해 되고 싶었던
‘나’를 모은 건 아니었을까.
이 방 가득한 책장은,
작고 조용한 나의 욕망의 풍경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시력이 흐려져
더는 책을 읽을 수 없는 날이 오면,
그때 나는 이 책들과 이별할 수 있을까.
슬플까, 아니면...홀가분할까.
그래서 요즘은 예전만큼 책을 사지 않는다.
한 달에 한 권, 두 권.
조금씩 줄여가는 중이다.
그러다가 요요 현상처럼
열 권 이상을 사버리는 날도 있다.
마흔 중반을 향해 가는 요즘,
눈이 아픈 날이 잦다.
오늘도 눈이 불편해 일찍 잠들었고,
새벽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문득 생각한다.
내가 죽은 뒤 이 많은 책들은
자녀들에게 짐이 되겠지.
나는 도서관 구석,
먼지 쌓인 노랗게 바랜 책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를 슬픔이 밀려온다.
찾는 이 없는 그 책들이,
마치 내 미래 같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또 한 권의 책을 산다.
그리고 조용히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방을 가득 채운 책들은,
결국 내게 어떤 세계였을까.
결핍이었을까,
동경이었을까,
위로였을까.
아니면,
나를 버리지 않으려는
마지막 버팀목이었을까.
오늘도 나는
책장에 꽂힌 책들을 조용히 바라본다.
말없이 나를 지켜온, 그 조용한 세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