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치다 보면
선생님이 가끔 농담처럼 말씀하신다.
“또 그분이 오셨네요.”
예전에 배웠던 선생님의 반주 스타일이
내 연주 속에서 다시 나타난다는 뜻이다.
선생님들은 대개
자신의 방식이 옳다고 말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 역시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성경을 전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내 반주법이 조금
촌스럽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저 배운 대로
건반을 누르고 있을 뿐인데.
그럴 때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예전 선생님이 또 오셨구나. “
피아노 건반 하나에도
지난 시간들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그 위에는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들의 손길과
작은 숨결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얼마 전 교회에서
청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막내 아이가 여섯 살인데
작년과 재작년의 추억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엄마 아빠와 함께했던
그 소중한 시간들 말이다.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곧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자신의 기억에 의지해
엄마 아빠를 떠올리겠지만
사실 아이의 기억보다 먼저 있는 것은
부모의 사랑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설교 중에
이렇게 말했었다.
하나님의 사랑도
우리의 기억보다 앞서 있다고.
돌아보면
내 삶도 그렇지 않을까.
나는 늘
내 기억과 지성과 경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가만히 돌아보니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보이지 않는 은총 속에서
나는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피아노 건반 하나에도
수많은 사람의 시간이 남아 있다면
아이 한 영혼에도,
그리고 나라는 존재에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숱한 은총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그동안 불평하던 내 입술이
조용히 닫히고
내 마음도
잠잠해졌다.